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북한의 다층집권체제는 1972년 헌법 제정에 의해, 주석을 국가최고 직책으로 하며, 그 아래 중앙인민위원회, 그 하부 조직으로 지방에 각급 인민위원회라는 당과 정의 혼합체의 위계관계를 조직함으로써, 일단 완성․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우선 다층집권체제의 계층별 구조를 ‘수령’-당 중앙위원회- 도, 시․군당위원회-기층당조직의 순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체제가
1990년대의 경제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선군정치, 1998년의 헌법개
정 등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대해서, 이어서 다루기로 한다.
가. 개인적 독재자: ‘수령’
다층집권체제의 권력의 정점에는 개인적 독재자가 존재한다. 이 경우 이 독재자를 선임하고 교대하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독재자는 자신의 공적 지위를 영속적으로 사유․독점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독재자의 권력의 연원은 그가 차지하고 있는 공직 때문에 일시적 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공식적으로 맡고 있는 직책과 상관없 이 인물 그 자체로부터 연유하기 때문에, 독재자는 편의에 따라 어떤 직 책을 담당하더라도 권력을 변함없이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정책과정에 존재해야 할 규범과 절차는 독재자의 권력 행사에 제한을 가하기 때문 에, 이는 일반적으로 무시된다. 또한 국가 및 행정 기관의 권한과 기능은 헌법적 또는 법적 규범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에 대한 인물적 충 성의 연계가 중요하다. 따라서 정치체제는 제도와 규범의 총체가 아니 라, 인물적 지배와 충성의 관계의 총체로 구성된다.193 어떤 기관이나
인물의 지위와 역할은 제도와 규범에 의해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의 권력의 유지에 편리한 바에서 또한 독재자의 그때그때의 총애 의 변덕에 따라 달라진다.194
이 때문에, 북한의 정치제도와 기구를 평가할 때, 이데올로기적 자화 상과 헌법상의 액면 또는 일반적 정의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실질적 기능구조와 역할을 보아야 한다. 우선 조선노동당은 본래의 의미에서
‘정(치적)당’이라고 할 수 없고, 독재자의 명령 하달과 집행을 위한 관료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당의 대의기구라고 할 수 있는 당대 회와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이 기능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조 직을 정당이라 부를 수 있게 해주는 기본적 제도와 메커니즘이 결여되 어 있기 때문이다. 당의 대의기구 대신에 원칙상 그 대의기구의 결정을 집행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당기구, 즉 당비서국과 그 산하 전문부서, 그리고 지방당 및 당기층조직과 전문당료의 관료적 조직체가 실질적 ‘조 선노동당’이다. 이러한 조직은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라는 자화상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최고지도자의 명령 전달과 관리, 집행을 위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데올로기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조선노동당’이 라는 것이 북한 정치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의 유지 차원에서 불가
193이러한 인물적 관계는 종종 족벌 연합으로 발전한다. 절대독재와 족벌연합의 합 체를 왕권주의(sultanism)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동일하게 공산주의적 지도자 독재이지만, 스탈린 체제, 그리고 모택동 체제는 족벌연합은 아니었다. 이러한 점에서 김일성 체제, 그리고 루마니아의 차우체스쿠 체제의 차이가 존재한다.
여기서는 족벌적 측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에 관하여, 박형중, 북한의 개혁개방과 체제변화 (서울: 해남, 2004) 참조.
194Robert H. Jackson and Carl G. Rosberg, Personal Rule in Black Africa:
Prince, Autocrat, Prophet, Tyrant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2); Jing Huang, Factionalism in Chinese Communist Polit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참조.
결하지만, 현실적 통치기구로서는 반드시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이 아 니다. 다시 말해, 독재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권력 유지의 중추로서 당, 군대, 기타 정치경찰 조직, 또는 행정경제조직 등에서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 것에 대한 선택권이 존재한다. 물론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의 문제, 현실적으로 당기구와 당료의 방대한 기반 등으로 볼 때, 독재자의 권력 유지를 위한 관료조직의 하나로서의 당은 쉽게 포기할 수 없지만, 당 자 체가 독재자와 구별되는 독자적 이해관계를 가지거나 지나치게 세력이 팽창하는 것은 위험요소가 된다.195
결국에 해답은 기관끼리, 개인끼리 권한의 중복, 견제와 균형, 감시와 통제의 체제를 구성하도록 하면서, 그 위에 일종의 ‘균형자’ 또는 ‘통합 자’로서 독재자가 위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는 효율면에서는 매우 떨어지지만, 최고권력자의 권력유지라는 측면에서는 훌륭한 체제이 다.196 따라서 독재자 아래에 어느 한 기관, 또는 어느 한 인물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몇 개의 중요한 기관 또는 개인 끼리 경합하는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이 경우, ‘당’에 대한 균형추는 ‘군’ 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비밀경찰’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이 매우 중요했(하)다면, 그 이유는
1951956년 탈 스탈린화 정책 표방 이후, 흐루시초프는 비밀경찰조직 및 국가조직
에 대해 당의 역할과 위상을 재건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개인의 전횡과 여러 ‘개혁’ 조치가 당조직과 당료의 ‘안정성’을 해치게 되면서, 흐루시 초프는 정치국과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다시 말해 ‘당’의 반발에 의해 실각되었 던 경험이 있다. Jeremy R. Azrael, “The Internal Dynamics of the CPSU, 1917-1967,” Samuel P. Huntington and Clement Moore, Authoritarian Politics in Modern Society: The Dynamics of Established One-Party System (New York: Basic Books, 1970), pp. 261-283.
196Hannah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New York: Meridian
Books, 1958); 마루야마 마사오, 충성과 반역: 전환기 일본의 정신사적 위기
(서울: 나남, 1990); Andrew Eisenberg, “Weberian Patrimonialism and Imperial Chinese History,” Theory and Society, Vol. 27 (1998), pp. 83-102 참조.
북한정치체제에서 (공산)당이 차지하는 제도적 역할과 위상 때문이 아 니라, 김정일이 당조직을 담당했기 때문이며, 또한 그를 통해 당으로부 터 ‘정치조직’으로서의 성격을 완전히 세탁해냄으로써, 가장 효율적인 침투․세뇌 및 지배조직으로 바꾸어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보 아야 한다. 김정일이 명목상 2인자로서만 행세해야 했던 김일성 시대와 는 달리, 김정일 자체가 전체 체제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당에 권력이 집중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당은 물론 매우 중요하 지만 부분적으로 대체될 수 있는 여러 기구 중의 하나일 뿐이다.197 현 재 북한의 경우, 여전히 비서국과 비서들, 특히 조직지도부의 역할이 매 우 중요하지만, 군의 위상이 높아지는 가운데 1998년 헌법개정 이후 국 방위원회가 실질적․형식적으로 중요해졌으며,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98
나아가 조선노동당과 같은 관료기구는 수직위계를 따라 ‘명령-복종과 집행’의 원칙에서 기능하지, 그 어떤 ‘영도’나 ‘지도’에 의해서 기능하지 않는다. ‘영도’나 ‘지도’라고 하는 것은 정치과정을 통해 개별 이익의 일
197예를 들어, 정영태는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서, 군대 내에서 당조직의 위상은 강 화되고 당 우위의 원칙이 견지되고 있지만, 군대조직에 대한 중앙당의 획일적 통제라는 측면에서는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본다. 즉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으로서 군을 직접 통제하게 됨에 따라, 인민군대 내 정치조직은 중앙당의 통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직접 통제하에 있다는 것이다. 즉 군대 권력과 당중앙의 권력이 수평적으로 위치되어 있는 권력구조가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정영태, “김 정일 정권 하 정치군사체제 특성과 변화전망,” 김정일 정권 10년: 변화와 전망,
pp. 22-23. 이는 군대의 당조직이 중앙당의 통제를 받는다는 통상적인 차원의
당의 군에 대한 우위론과는 다른 논리이다.
198정창현, 2004년 4월 13일.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거의 운영이 되고 있지 않다.
이대근은 국방위원회와 국방위원장이라는 직책이 단지 김정일에의 권력승계를 위한 정당성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고, 국방위원회는 형식상의 힘없는 기구라 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대근, “조선인민군의 정치적 역할과 한계,” 현대북한연 구 , 제4권 제2호 (2001.12).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1998년 이전까지는 맞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국방위원회의 위상이 실질화되고 있는 것 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반 이익으로의 통합 및 설득과 모범을 통한 그것의 관철의 경우에만 사 용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도’나 ‘지도’라고 하는 것은 당 과 정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에서 전자의 후자에 대한 역할을 표현할 때 사용가능한 개념이다. 따라서 북한에서처럼 당과 정이 일체화되어 있는 경우에는 적절한 개념이 아니다. 적절한 개념은 ‘대행’과 ‘지시’이다.
<그림 Ⅴ-1> 조선노동당의 조직체계도
노동당 중앙위원회
직할시 및 도 당위원회
시․군․구역 당위원회
리․동 초급당 위원회
당 세 포 직할시, 도급기관 및
연합기업소 당위원회
시․군․구역기관 및 지방 산업공장 초급당 위원회 인
민 무 력 부 총 정 치 국
사 회 안 전 부 정 치 국
국 가 안 전 보 위 부 당 위 원 회
철 도 부 정 치 국
문 화 예 술 부 당 위 원 회
각 중 앙 기 관 당 위 원 회 각 중 앙 기 관 당 위 원 회
각 중 앙 기 관 당 위 원 회
분초급당위원회
당 세 포
출처: 현성일, “북한사회에 대한 노동당의 통제체계,” 북한조사연구, 제1권 1호 (1997),
p. 5.
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노동당의 중앙조직으로는 당대회, 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 원회, 당 중앙검사위원회가 있다. 당 중앙위원회는 다시 당 중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