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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시대 당․정․군의 권력엘리트

Dalam dokumen 김정일 시대 북한의 정치체제 (Halaman 83-102)

가. 조선노동당

(1)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전문부서

당의 최고지도기관은 당대회이며, 5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것으로 되 어 있다. 당대회는 당규약에 따라 ‘당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에 관한 기본문제를 결정’ 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당 중앙위원회나 정치국의 결정사항을 추인해 주는 명목상의 기구일 뿐이다.

그러나 북한은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 지금까지 국내외 사정으로 당대회를 열지 못하고 있다.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에는 당 중앙위원회가 최고지도기관의 역할을 한다. 당 중앙위원회는 6개월에 1회 이상 전원 회의를 개최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전원회의가 개최되지 않는 기간에

81북한은 1999년 20년간 산림보호에 힘써 7백10여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이웅찬

(54), 첨단기술인 특수합금원판, 전기접점재료 등의 기술을 개발한 현영라(55),

13년간 탄광에 근무하면서 높은 실적을 올린 김유봉(42), 북방 산골에서 세벌농

사(3모작)의 기적을 창조한 박옥희(57), ․소형발전소 건설에서 높은 실적을 올린 허용구(41), 세계마라톤을 제패한 마라토너 정성옥(25) 등을 ‘시대의 선구 로 선정하고 이들을 따라 배우라고 촉구한 것을 시작으로 고난의 행군시기에 당성과 자력갱생의 모범을 보인 군당 책임비서, 기업소 지배인들을 ‘시대의 영웅 으로 내세우고 있다. 로동신문 , 1999년 11월 6일.

는 당 정치국과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지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당 중앙위원회는 당대회에서 선출된 정위원․후보위원․준위원으로 구성되며, 표결권은 정위원만 갖되 발언권은 후보위원과 준위원에게도 준다. 1980년 당대회에서 선출된 당중앙위원은 정위원 145명과 후보위 원 103명으로 248명이었다. 그 후 여러 위원들이 사망하거나 탈락했지 만 여러 차례 보선이 이뤄져 1993년 12월까지 당 중앙위원회 정위원은

153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후 당 전원회의가 열리지 않아 보선이 이뤄

지지 않으면서 현재 당 중앙위원은 후보위원을 포함해 170명 선으로 줄 은 상태이다. 이들이 사실상 북한의 당, 정, 군을 움직이는 최고 권력엘 리트인 것이다.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해당 시기에 당이 직면한 문제 등을 토 의․결정하며, 당 총비서, 당 정치국 위원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및 당 중앙위원을 선거하고 당 비서국과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 당 비서국은 필요시 당 인사 및 당면과제 등 당내 문제를 토의․결정하며, 그 결정의 집행을 조직․지도하는 핵심부서이다.82

문제는 1993년 12월 제6기 21차 전원회의를 마지막으로 당 전원회의 가 열리지 않아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정치국 운영이 사실상 마비상태 에 있다는 점이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일성, 오진우가 사망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 혼자 남은 상황이고, 정치국 정위원도 김영남, 박성철, 김 영주, 계응태, 전병호, 한성룡 등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 활동하는 간부는 김영남, 계응태, 전병호, 한성룡 등 4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과거의 사례

82노동당 규약 제3장 26조는 비서국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필요시, 당 인사 및 당면문제 등 당내 문제를 토의 결정하며 그 결정의 집행을 조직 지도한다”고 규정 하고 있다.

를 감안할 때 인민군 총정치국장, 인민무력부장, 내각 총리 등이 정치국 위원에 포함되어야 하지만 당 전원회의가 열리지 않아 보선이 이루어지 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노동당의 운영은 김정일 총비서를 정점으로 하는 비서국과 그 산하의 전문부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즉 김 위원장은 당내 각 부서의 담당 비서와 조직지도부를 통해 모든 현안을 보고 받고 이를 결재하는 방식으로 각종 정책 결정과 인사문제, 기타 당의 주요 조치를 처리한다. 따라서 당 중앙위 비서들은 김위원장 의 신임이 두터운 측근이거나 그 분야에서 충성심과 능력이 검증된 핵 심간부들이다.

현재 당 중앙위 비서는 김정일 총비서를 비롯해 전병호, 한성룡, 계응 태, 김국태, 김기남, 최태복, 김중린, 정하철 등 9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만경대혁명학원 1기 출신들로 혁명 2세들이며, 정하철 비서를 제외하고

는 1960~70년대부터 김정일 위원장을 보좌해 온 측근들이다.

이들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부서는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이다. 특 히 김정일 시대에 조직지도부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김일 성 시대 존재했던 총비서 서기실의 기능까지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 조직지도부는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한 당의 영도와 통제를 실현하는 데서 총비서의 오른팔 역할을 수행하는 부서이다. 한마디로 총비서가 당 조직지도부를 통해 북한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당 조직지도부의 사명과 임무는 전당과 전사회에 김정일 위원장의 유 일지도체제를 확립하며 모든 간부들과 당원, 주민들의 당생활을 장악하 는 것이다. 특히 당간부 및 전체 당대열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당정치 국 위원 및 후보위원, 당 중앙위원회 위원․후보위원․준후보위원의 직

함을 가진 국가 및 정부 행정간부들, 중앙과 지방의 각급 당간부, 중앙당 직원 등의 선발과 임명 및 해임을 전적으로 주관한다.

일부에서는 김 위원장이 1990년대 들어 선군정치와 군대를 중시한다 해서 권력의 중심이 군부로 이동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 나 조직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노동당의 막강한 힘은 예나 지금이나 변 함이 없다.

이러한 역할 때문에 조직지도부 부부장 이상은 부장을 겸직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최측근들로 발탁되며 조직지도부는 한결같이 최고의 가정 성분, 충실성, 실력 등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당 조직지도부는 행정과, 당생활지도과, 검열과, 통보과, 종합과, 당원등록과, 지방지도과 등 여러 개의 과와 실로 구성되어 있다.

또 장성택, 이용철, 이제강 등의 제1부부장과 강상춘, 이명제, 이철, 고 학겸, 문명언 등 10여명의 부부장, 과장 및 부과장․책임지도원․부원 등 약 60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83 역할에 걸맞게 조직지도부 구성원들의 위상은 대단하다. 부부장 이상은 말할 것도 없 고, 과장․부과장은 중앙당 내 다른 부서 부부장이나 내각 장관급보다 영향력을 행사한다.

선전선동부는 당의 학습제강이나 선전제강을 작성하고 교육시키는 등 당의 선전과 사상사업을 관장하는 핵심부서이다. 선전선동부장은 정 하철 비서가 겸직하고 있으며 2004년 물러난 최춘황 제1부부장을 대신 해 이재일 제1부부장이 부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특히 1960년대 김정 일 위원장이 선전선동부 과장으로 활동하면서 후계자로 부상했듯이 김 위원장의 딸인 김설송이 이 부서의 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어 주목된다.

83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신경완의 증언(1997).

<그림 Ⅲ-2> 조선노동당 조직체계

당대회

당대표자회

중앙검사위원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김정일 위 원: 6명 후보위원: 7명

비서국 총비서: 김정일 비 서: 9명

검열위원회 위 원 장: 박용석 부위원장: 조진욱 위 원: 4명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위 원: 12명

조직지도부 38호실 당역사연구소

선전선동부 통일전선부 문서정리실 간부부 대외연락부 농업정책검열부 국제부 35호실 과학교육부 군사부 작전부 근로단체부 민방위부 군수공업부 재정경리부 39호실 경제정책검열부 총무부 신소실

※ 22개 전문부서 (12개 시․도)

※자료: 통일부, 북한권력기구도 (2003.1).

당 중앙위원회의 다른 전문부서들은 과학교육부(부장 이광호), 재정경

리부(부장 이봉수), 문서정리실(실장 채희정), 작전부(부장 오극렬), 대외

연락부(부장 강관주), 38호실(실장 임상종), 39호실(김동운) 등에 부장이 임명되어 있다. 근로단체부장으로 있다가 내각 당위원회 제1비서로 자리 를 옮긴 원동구와 경공업부장을 지낸 김경희, 당중앙검열위원장 박용석 도 부장급 간부에 해당한다. 또 간부부(김국태 비서 겸직), 경제정책검열 부(한성룡 비서 겸직), 군수공업부(전병호 비서 겸직), 당역사연구소(김 기남 비서 겸직) 등은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와 마찬가지로 부장직을 담당 비서들이 겸직한 채 김히택(경제정책검열부), 주규창(군수공업부), 이광(당역사연구소 수석부소장) 등이 주도하는 제1부부장 체제로 운영 되고 있다. 이외에 총무부, 농업정책검열부, 국제부,84근로단체부, 통일 전선부(제1부장 임동옥), 35호실 등은 부장이 공석인 채 파행적으로 운 영되고 있다. 또한 이하일 차수가 부장으로 있던 군사부는 2003년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에서 탈락한 이하일 차수가 해임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후임이 확인되지 않았고, 민방위부장 김익현이 해임되고 장성우 3군단장 이 부장으로 임명됐다는 설과 신소실장에 김정림 당역사연구소 부소장 이 임명됐다는 설이 나오고 있지만 역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방 당 간부로는 이영복 남포직할시(2004년 특급시로 변경) 당 책임 비서, 이길송 평안남도당 책임비서, 김평해 평안북도당 책임비서, 연형 묵 자강도당 책임비서, 김경호 양강도당 책임비서, 김운기 황해남도당 책임비서, 노배권 황해북도당 책임비서, 이태남 함경남도당 책임비서, 홍석형 함경북도당 책임비서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강현수, 최원익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평양시당 책임비서와 강원도당 책임비서는 여전히 공석이거나 후임이 확인되지 않았다. 2003년 6월 개성직할시에 포함됐

84김양건 국제부장은 지난해부터 활동이 없어 와병중이거나 해임된 것으로 보인다.

Dalam dokumen 김정일 시대 북한의 정치체제 (Halaman 83-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