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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요 청자의 유형 분류와 특징

조선 왕실은 사용할 기물이나 구조물에 대한 일정 규범과 견양(見樣) 을 두었다. 특히 세종연간(14181450)에는 자기를 포함한 공예품에 대하 여 집중적인 규제를 가하였다.283) 봉상시(奉常寺) 주관 하에 제기나 기물 을 견양에 따르도록 하였고, 공조가 해당 기물에 대한 제작을 담당하고 화원(畵員)을 참여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왕실에서 사용할 대상에 제한과 규정을 적용한 사실은 단순히 왕조의 규율과 규범을 뿌리내리고 자 했던 노력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실상은 왕실 내 특정 영역에서 특 별한 용도로 사용되던 기물이 하나의 형식으로 통일되지 않았던 실태를 매번 지적하며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왕실 소용품을 별도 로 구분함으로써 보다 용이한 관리를 꾀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자는 왕실의 요구에 따라 백자, 청화백자와 함께 제작되었다. 그러나 16세기 중반이 되서야 청자는 동궁의 소용품으로 제작과 사용이 이행되 었다. 이에 따라 과연 이른 시기부터 청자가 견양을 모방하고, 엄격한 사 용과 관리를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었을지 확언하기 어렵다. 오히 려 일정한 규제 없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양하게 전개되어 고려청자를 모방하거나 응용하고, 타공예품과 공통된 시대양식을 드러내거나 경우에 따라 청자만의 독창성을 드러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관요 청자는 총 14종의 기종, 41개의 기형, 26개의 소재, 55개 의 문양으로 세분화할 수 있었다. 여기에 시각적 속성을 통해 고려청자 의 영향을 보이는 전통유형, 백자와 분청사기를 포함하여 조선시대 공예 품의 특징과 유사한 시대유형, 조선으로 유입된 자기와 비견되는 외래유

283) 世宗實錄 卷22, 世宗5年(1423) 10月 27日, “(전략)今奉常寺所造圓壇祭器內, 簠簋 大尊 象尊 壺尊 著尊 犧尊 山罍 罍洗 香爐用磁器, 燭臺 襌勺用白木, 竝依體制製造. 匏 爵令奉常寺(裁)〔栽〕種預備, 其燭臺 襌勺 匏爵等, 用畢埋之. 雖未經行祭, 立秋後依式 埋之, 後祭時更備以祭.” ; 世宗實錄 卷27, 世宗7年(1425) 3月 11日, “使臣朴實馬, 留 養義州病死. 尹鳳齎來石燈盞大見樣, 請下送.(후략)” ; 世宗實錄 卷54, 世宗13年(1431) 11月 16日, “命工曹, 進節日表筒畫龍見樣, 覽之曰: "今看見樣, 則畫龍有牙齒, 拜表時, 予見表筒, 不畫牙齒." 卽命畫員齎金追及聖節使之行畫之(후략)” ; 世宗實錄 卷57, 世 宗14年(1432) 8月 4日, “檀君 箕子 高句麗三殿祭器, 初倣圖畫體制造作, 竝不如法. 請三 位祭器內簠簋等, 改以鑄器; 籩篚, 令奉常寺造送; 瓦, 本道見樣燔造.”

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별표 4~13>

1) 전통유형 ; 고려청자의 계승과 편중(偏重)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행하던 시기에도 청자의 제작은 계속되었다. 자 연히 고려청자를 제작하던 사기장의 제작기술과 요업은 그대로 전승되었 을 것이다. 실제로 고려청자가 조선 관요 청자에 미친 영향은 실물간의 비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즉, 구연의 외반정도와 측사면의 형 태, 내저면의 곡률(曲律), 굽의 형태와 높이, 굽 내면의 요철(凹凸) 등 세 부 형태에서 고려청자와 유사한 측면을 보인 예를 살펴볼 수 있다.

관요 청자 중에서 전통유형에 해당하는 기종으로 발, 접시, 대발, 향로, 화분, 기대, 돈을 들 수 있으며, 전체 14개의 기종 중에서 7개에 달하였 다. 관요 청자의 기형과 비견되는 고려청자 중 출토지가 명확한 예는 강 진 사당리 40․43호, 용운리 10호, 삼흥리, 부안 유천리 가마 등에서 제 작되거나 무안 도리포 해저에서 인양된 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즉, 관요 청자와 유사한 기형의 고려청자는 11세기부터 14세기에 이르기까지 고려시대 전기간에 제작된 경우가 많았다.284)

284) 강진청자박물관 편, 강진 고려청자 소장 유물 100선, 강진청자박물관, 2012, p. 36, pp. 160~161, p. 167 ; 同著, 강진 고려청자 500년-강진 청자요지 발굴유물 특별전, 강진청자박물관, 2006, p. 34, p. 55, p. 58 ; 경기문화재연구원 편, 용인 보정리 청자 요지, 경기문화재연구원, 2006, p. 323 ; 국립광주박물관 편, 전남지방 도요지 도자 보고(Ⅱ), p. 107 ; 국립중앙박물관 편, 강진 용운리 청자요지 발굴조사 보고서(도 판편), 국립중앙박물관, 1996, (원색도판102) ; 同著, 고려 왕실의 도자기, 국립중앙 박물관, 2008, p. 67 ; 同著, 천하제일 비색청자, 국립중앙박물관, 2012, pp. 21~23, p. 77, p. 97, p. 103, p. 127, p. 132 ; 同著, 부안 유천리 도요지 발굴조사 보고서, 국립중앙박물관, 2011, p. 169 ;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편, 무안 도리포 해저유물 , 국 립해양유물전시관, 2003, p. 143, p. 193 ; 민족문화유산연구원 편, 강진 사당리 43호, 용운리 63호 고려청자 요지 발굴조사 약보고서 , 민족문화유산연구원, 2013, p. 27, p.

196 ; 부안청자박물관 편, 부안 유천리 고려도자, 부안청자박물관, 2006, pp. 13~15, pp. 30~31, p. 34, pp. 47~50, p. 63, p. 71, p. 74 ; 불교중앙박물관 편, 열반 궁극의 행복, 불교중앙박물관, 2014, p. 174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편, 부안 진 서리 청자요지-제18호요지발굴,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01, p. 78 ; 조선 관요박물관 편, 청자의 色과 形, 경기도(재)세계도자기엑스포조선관요박물관, 2005, 도66, 도138, 도141, 도178 ; 해강도자미술관 편, 대전 구완동 요지, 해강도자 미술관, 2001, p. 105 ; 호림박물관 편, 호림박물관명품선집Ⅰ, 호림박물관, 1999, p.

71.

기형면에서 고려청자와 유사한 관요 청자는 전체 43개의 기형 중에서 9개 기형에 불과하였다. 이와 달리 고려청자의 문양과 유사한 관요 청자 의 문양은 전체 55개의 문양 중 33개에 달하여 기형과 뚜렷한 차이를 보 였다. 한편, 관요 청자의 문양과 비견되는 고려청자 역시 강진 사당리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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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삼흥리, 용운리, 부안 유천리, 용인 보정리 요지에서 출토되 어 고려 전기간에 걸쳐 제작된 청자에 해당하였다.

고려청자의 기형과 유사한 이른바, 전통유형의 관요 청자의 기종과 기 형(발-1-A, 접-5, 대-2, 향-1-A, 향-2, 향-3, 화-1, 기-1, 돈-1)은 이르 면 15세기 후반, 늦어도 16세기 전반부터 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관요 청자가 이른 시기부터 고려청자의 특징을 이어받았음을 뒷받침한 다. 그중에서도 향로, 화분, 기대, 돈은 무문의 예를 찾기 어려울 만큼 시 문 빈도가 높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기형에 시문된 문양((연화당초문-2), (연판문 -1), (모란초문), (국화초문-1-A), (당초문-2), (연환문), (귀면문), (용문), (이수문), (연주문-2), (윤형문), (능화문-1), (능화문-2))의 대다수가 형 태, 구성, 시문방식, 시문 위치까지 고려청자와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려청자는 기종, 기형, 문양의 개별적인 측면에서 영향 을 미친 것이 아니라 향로, 화분, 기대, 돈의 기형과 함께 해당 개체에 시문된 문양까지 관요 청자에 일괄적으로 투영되었다.285)<별표 12>

관요 청자는 향로, 화분, 기대, 돈 외에 발, 접시, 대발과 같은 음식관 련 기명 또한 고려청자의 기형과 유사하였다. 그러나 고려청자의 해당 기종에 시문된 문양은 관요 청자의 문양과 시문대상, 구성면에서 차이를 보였다. 이와 달리 고려청자의 향로, 화분, 기대, 돈과 같이 여가나 의례 와 관련한 특수기명이 기종과 기형, 그리고 해당 기종에 시문된 문양의 종류와 구성, 시문방식까지 관요 청자로 재현된 사실은 주목을 끈다. 요 컨대 고려청자를 재현한 관요 청자의 제작은 당시 고려청자의 실물자료 나 도해(圖解)를 실견하거나 고려청자에 대한 인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285) 고려청자박물관 편, 강진 사당리 고려청자, 고려청자박물관, 2016, pp. 124~125 ; 국립중앙박물관 편, 천하제일 비색청자, p. 50 ; 호림박물관 편, 호림박물관명품선 집1, p. 71.

것이다. 특히, 관요 청자가 특수기명으로 편중된 고려청자의 기종과 기 형, 문양을 선택적으로 재현한 사실은 당시 고려청자에 대한 선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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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286)

2) 시대유형 ; 분청사기

백자 양식의 공유

(1) 분청사기유형

분청사기와 비견되는 관요 청자의 기종으로는 발, 접시, 잔, 대발, 병, 호, 뚜껑, 향로 등을 들 수 있으며 총 43개의 기형 중에서 16개의 기형이 분청사기 유형에 해당하였다. 이중 (향-1-A), (병-2-B)를 제외한 나머지 기형은 모두 백자유형에 포함되었다. 관요 청자와 기형상 유사한 분청사 기는 인화상감기법이 사용된 경우가 많았으며 관요 설치 이전에 대부분 제작되었다. 해당 분청사기 대다수가 경상도, 전라도 일대 가마에서 제작 된 것으로 양분되지만 (발-1-A), (잔-2), (호-2-B)는 지역의 편중 없이 다양한 지역에서 제작된 분청사기의 기형에 해당하였다.287)

관요 청자의 문양 중에서 분청사기의 문양과 유사한 예는 연판문, 국 화초문, 국화당초문, 연화당초문, 모란초문, 화초문, 당초문, 귀면문, 곤충 문, 사각문 등 전체 55개의 문양 중 21개에 달한다.288) (연화당초문), (화 초문), (초문), (당초문), (운문)을 제외한 나머지 문양은 모두 분청사기의 문양과 시문기법이 동일하였다. 특히, 관요청자의 (연판문-3-A), (국화초

286) 실제로 관요 청자는 다른 자기에 비해 향로, 화분에 대한 제작비중과 사용 위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며 이를 당시 향유했던 문화와 이를 주도한 계층을 중심으로 논의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Ⅵ장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287) 국립공주박물관 편, 계룡산 분청사기, p. 36, p. 42, p. 44, p. 47 ; 국립광주박물관 편, 무등산 분청사기, p. 31, p. 76 ; 同著,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도요지, p. 102, p. 108, p. 119 ; 同著, 전남지방 도요지 도자보고(Ⅱ), p. 108 ; 국립중앙박물관 편,

광주 충효동 요지, p. 67 ;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경복궁 침전지역발굴조사 보고서 (본문, 도면), 국립문화재연구소, 1995, p. 240 ; 부산박물관 편, 기장 상장안 유적, 부산박물관, 2011, p. 62, p. 71 ; 전북문화재연구원 편, 완주 화심리 유적, p. 373, p.

376, p. 385, p. 387, p. 391, p. 398 ; 한강문화재연구원 편, 서울 군기시터 유적, p.

160 ; 한울문화재연구원 편, 서울 종로 관철동 175번지 유적, p. 219 ; 同著, 종로 청진12~16지구 유적Ⅲ(유물Ⅰ), p. 683 ; 同著, 종로 청진12~16지구 유적Ⅳ(유물

Ⅱ), p. 67 ; 호남문화재연구원 편 고창 용계리 요지, p. 37, p. 149.

288) 강경숙, 분청사기 연구, p.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