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주의는 다양한 지적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묶 기가 매우 힘들지만, 물질에 초점을 두는 실증주의를 비판하는 후기 실증주의(post-positivism)적 인식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 통점을 보인다. 이는 구성주의를 “물질세계가 형성되는 ― 특히 인간 행위와 상호작용에 의해서 형성되는 ― 방법이 물질세계에 대한 규범 및 인식론적 해석에 달려있다고 보는 관점(view)”177)으로 정의하는 데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구성주의에 대한 보다 구체적 이해를 위 해 키오헨이 말하는 ‘재귀적 접근(reflective approaches)’을 상기할 필 요가 있다. 구성주의 개념이 국제정치학에 도입되기 이전에 키오헨은
‘재귀적 접근’이란 용어로서 구성주의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증 주의를 표방하는 기존의 주류 국제정치이론들을 ‘합리적 접근’으로 명 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이론들을 재귀적 접근이라고 포괄적으로 표현
177) Emanuel Adler, "Seizing the Middle Ground: Constructivism in World Politics," p.322 참조.
했다. <표 III-4>는 합리적 접근과 재귀적 접근에 대한 키오헨의 비 교를 요약한 것으로서 구성주의의 특징을 비교적 뚜렷하게 보여준다.
<표 III-4> 합리적 접근과 재귀적 접근의 비교
합리적 접근 재귀적 접근
학
파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사회학자, 맑시스트, 정치사상 및 이론가, 전통적 국제법학자 등 관
심 의 초 점
개인의 선호를 외적으로 주어 진 것(획일적 또는 상수)으로 간주
․선호도는 제도적 장치와 주도적 규범 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문 화적 다양성에 따라 차이를 보임
․인간 및 조직의 선호에 대한 반성 및 학습의 사회적 과정의 영향 중시
방 법 론
합리성 원칙의 결정론에 대해 약간의 이견은 있으나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깊은 신뢰(I.
Lakatos에 의존)
․역사·문서에 대한 해석을 중시
․과학적 방법에 대한 한계를 강조 분
석 행 태
항상 문맥적(contextual)
․제도의 본질, 즉 궁극적으로는 세 계정치의 특성에 대한 인간의 반 성 (human reflection)을 중요시 분
석 대 상
이익의 계산(calculations of interests) 및 효용의 극대화
중시
․비인격적인 사회의 힘, 문화·관습·
규범·가치의 영향 중시 (intersubjective meanings)
․제도의 역사성 및 내재적 동력에 관심
연 구 현 황
연구프로그램 풍부 연구프로그램 부족
출처: R. O. Keohane, International Institutions and State Power, pp.166-74.
국제정치학에서 구성주의의 개념은 1989년 오너프(N. Onuf)가 처 음 도입한 이후 1992년 웬트에 의해 확산되기 시작했다.178) 웬트는 국제정치적 행위가 물질적 이익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 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재귀적 접근을 구성주의라 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오너프의 애초 관심은 모든 종류의 사회질서 에 있었다. 즉 국제사회에도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주류 국제정치 학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홉스적 무정부상태 개념으로는 국 제관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현실주의 의 이론적 기반인 19세기 자유주의적 법이론에 대한 비판과, 언어와 사회적 실천을 바탕으로 사회의 구성방법을 규명하려는 후기실증주 의적 관심을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구성주의적 패러다임에 입각한 국 제정치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179)
초기 구성주의는 합리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맥락에서 재귀적 접 근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이론적 전통의 다 양성 탓에 구별의 필요성이 점차로 제기되었다. 구성주의 패러다임 내에서 이론적 구분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장 뚜 렷한 기준으로는 실증주의적 방법론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다. 즉 178) Nicholas G. Onuf, World of Our Making: Rules and Rule in Socail Theory and International Relations(Columbia, SC.: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ress, 1989); Marlene Wind, "Nicholas G. Onuf: the rules of anarchy," The Future of International Relations, pp.236-68;
Alexander Wendt, "Anarchy is what states make of it: the social construction of power Politics," p.393 참조
179) 오너프는 사회과학적 패러다임의 전통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한다. 효 용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패러다임(국제정치이론의 자유주의와는 구 분되는 철학적 의미), 구성주의적 패러다임, 그리고 맑스주의적 패러다 임이다. 그는 맑스주의적 패러다임은 논외로 하고, 주류적 지위를 점하 고 있는 자유주의적 패러다임과 구성주의적 패러다임의 긴장관계를 규 명함으로써 국제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했다. Marlene Wind, "Nicholas G. Onuf: the rules of anarchy," p.239, 241 참조
실증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하는지 또는 부분적으로 인정하는지에 따 라 ‘비판적 구성주의’와 ‘재래적 구성주의’로 구분된다. 양자의 구체적 차이는 <표 III-5>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표 III-5> 재래적 구성주의와 비판적 구성주의의 비교
재래적 구성주의 비판적 구성주의
방법론과 인식론 ․정상과학(실증주의) 인정 ․반실증주의 관찰자와
분석대상의 관계 ․분석대상과 관찰자의 상호
주 관적 의미연결 배제 ․분석대상과 관찰자는 분리 될 수 없음
정체성에 대한 이해방식
․정체성 및 관련된 재생산 적 사회적 실천 발견과 정체성과 행위간의 상관 성(인과성) 설명
․정체성규명을 원하되, 정 체성과 관련된 신화를 밝 히려 함
정체성의 원천(origin)
․정체성의 인식적 설명을
․정체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 그것들의 재생산 및 효과 를 이해하기 원함
․정체성을 갖기위해 타자의 존재가 필요(지배관계의 차이를 인정)
․정체성의 필요성을 요구하 는 어떤 형태의 소외에 초점
․정체성의 원천을 이해하는 데 이론적 특화
․동등한 자격일 때는 동화, 상하관계에서는 지배관계 에 중점
권력개념
․권력관계에 대해서는 분석 적 중립유지
․권력은 어디에서나 존재하 며, 또 사회적 실천은 권 력관계를 재생산하기 때 문에 권력 관계 규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님
․사회적 교환관계에서 존재 하는 권력에 초점
․그러한 권력관계의 규명하 는 것이 이론의 핵심
국가의 지위 ․존재론적 지위를 인정 ․국가의 존재론적 지위는 논쟁거리이며, 그것의 자 율성은 인정될 수 없음 출처: Ted Hopf, "The Promise of Constructivism in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pp.182-85
이러한 구분과 더불어 비판적 구성주의에 속하는 이론들은 비판국 제이론, 포스터모던 국제이론, 페미니스트 국제이론 등으로 기존의 사회학적 연구전통에 따라 고유의 이름을 가지게 되고, 일반적으로
구성주의는 좁은 의미에서 ‘재래적 구성주의’를 지칭하는 경향이 확 산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앞으로 구성주의는 주로 좁은 의미로 사용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재래적)구성주의에 속하는 이론들은 실증주의와 반실증주의(역사 주의)의 대립을 조화시킴으로써 고유의 과학적 접근태도를 마련했다 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는다. 특히 이해(verstehen)와 해석이 체계적 인 사회과학의 설명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두고, 구성 주의자들은 실증주의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극단적 대립을 화해 시키고자 한다. 실증주의자들은 이해를 “관찰자가 감정이입적 이해와 패턴인지를 통한 해석”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판단이 체계적 기준 에 의해 평가되지 않을 경우 관찰자의 개인적 관점에 불과하다고 주 장한다.180) 이에 반해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인식기반 자 체를 부정(anti-foundationalism)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오로지 언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담론해석만을 고 집한다. 구성주의는 상대주의적 인식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이로부 터 이해의 존재론적 함의를 찾아내고 있다. 즉 규범, 과학적 이해, 외 교실천, 군비통제 등은 사회적 현실로서 여기에는 이미 이해와 해석 이 내재해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지식구조는 공동체의 구성원 들과 그들의 행위에 의해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생산되기 때문이 다.181) 따라서 구성주의는 해석이 현실의 사회적 구성을 설명하려는 과학적 시도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180) Judith Goldstein & R. O. Keohane, "Ideas and Foreign Policy: an Analytical Framework," Ideas and Foreign Policy: Beliefs, Institutions, and Political Change, eds. by J. Goldstein &
R.O.Keohnae (Ithaca: Cornell Univ. Press, 1993), p.27 참조.
181) Emanuel Adler,"Seizing the Middle Ground: Constructivism in World Politics," pp.326-28 참조.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구성주의 이론들은 철학 및 사 회과학적 기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웬트를 중심으로 하 는 ‘자연주의적(naturalistic) 구성주의’와 오너프, 러기 등의 ‘신고전적 구성주의’이다.182) 인식론적 차이만을 두고보면, 웬트는 ‘과학적 실재 론(scientific realism)’를 근거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상으로 인식되 는 것은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183) 그는 자연과학에서도 먼저 논 리적으로 추론되고 나중에 경험적으로 증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예를 든다. 이에 비해, 러기(J. Ruggie), 오너프(N. Onuf), 크라토크빌 (F. Kratochwil), 아들러(E. Adler) 등은 뒤르켕(E. Durkheim)의 ‘집단 표상’ 개념, 베버(M. Weber)의 과학적 설명과 해석적 이해의 융합 시 도, 포퍼(K. Popper)의 ‘세계 3’ 개념을 인식론적 기반으로 삼는다.184) 182) John G. Ruggie, "What Makes the World Hang Together?
Neo-Utilitarianism and the Social Constructivist Challenge,"
pp.880-82; Friedrich Kratochwil, "Constructing a New Orthodoxy?
Wendt's 'Social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and the Constructivist Challenge," Millenium: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 Vol.29, No.1 (2000), pp.94-97 참조.
183) Alexander Wendt, "The Agent-Structure Problem in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pp.350-55 참조.
184) 뒤르켕은 사회적 삶에 있어서 이념적 요소는 개인 차원으로 환원할 수 없는 고유의 총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실체로 간주하고, 이것의 생산물을 ‘집단표상’이라고 불렀다; 실증주의와 역사주의를 모두 비판 했던 베버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이념 (Ideen)이 아니라 (물질적 및 관념적) 이익(materielle und ideelle Interessen)이다. 그러나 이념들에 의해서 창조된 세계상들(Weltbilder) 은 종종 전철수(Weichensteller)로서 선로를 결정해왔으며, 그 속에서 이익들의 역동성이 행위를 진전시켰다.”; 포퍼는 우주를 세개의 하위세 계로 구분한다. ‘세계1’은 물질적, ‘세계2’는 주관적, ‘세계3’은 문화적 세계로 각각 규정되고 이들은 존재론적 실체를 가진다. Max Weber,
"Die Wirtschaftsethik der Weltreligionen," Gesammelte Aufsätze zur Religionssoziologie, Bd.I, 4. Auflage (Tübingen: Mohr, 1947), p.252;
John G. Ruggie, "What Makes the World Hang Together?"
pp.857-62; Emanuel Adler,"Seizing the Middle G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