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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소적인 종합에서 통일적인 유기체로

우리는 이처럼, ‘미분적, 문제적, 잠재적’ 성격을 갖는 미시적 무의식의 한 가지 사례로서 들뢰즈가 주체의 성립 ‘이전’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애벌레 주체’ 내지 ‘작은 자아’가 성립하는 수동적 종합의 과정을 참조 할 수 있다.

가령 눈이라는 기관의 형성을 사례로 살펴볼 수 있다. 통상 ‘눈이 보는 것이 아 니라, 뇌가 보는 것’이라고 한다. 눈에 맺힌 상을 그대로 인지한다기보다는, 뇌가

‘재종합’한 영상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눈에 비친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우리

는 뒤집힌 세계를 지각할 것이다. 더욱이 시각정보가 형성되는 최종 과정은 기억 을 저장하는 장소인 해마를 거친다. 기존의 기억과 비교하여 지각된 시각상을 판 단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이다. 가령 무지개의 색깔이 언어권에 따라 다르게 지각되는 것은 이러한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안구를 통해 입력된 정보보 다, 뇌를 통해 출력되는 시각정보가 5배가량 많다는 점은 이를 입증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시각정보는 ‘의식적’으로 뇌가 조정한 결과, 즉 ‘능동적’인 종합의 산물이 라고 해야 할까? 들뢰즈는 눈이란 수동적 종합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동물이 스스로 눈을 형성해낸다면, 이는 분산되고 흩어져 있는 빛의 자극들을 자기 신 체의 특권적인 한 표면 위에서 재생되도록 규정하기 때문이다. 눈은 빛을 묶는다. 눈은 그 자체가 어떤 묶인 빛이다. 이 예를 통해 보더라도 종합이 얼마만큼 복잡한 것인지 족히 알 수 있다. 사실 묶어야 할 차이를 대상으로 하는 어떤 능동적 재생의 활동이 분 명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깊은 심층에는 어떤 수동적 반복의 정념이 있다. 새로운 차이(형성된 눈이나 바라보는 자아)는 바로 이 수동적 반복에서 유래한다. 차이로서의 흥분은 이미 어떤 요소적 반복의 수축이었다. 이번에는 흥분이 다시 반복의 요소가 되 므로 수축하는 종합은 어떤 이차적 역량으로, 정확히 말해서 묶기나 리비도 집중에 의 해 대변되는 역량으로 고양된다. 리비도 집중들, 묶기나 통합들, 이것들은 수동적 종합 들이자 이차적 등급의 응시-수축들이다. 충동들은 묶인 흥분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 다. 각각의 묶기가 일어나는 수준마다 어떤 하나의 자아가 이드 안에서 형성된다. 하지 만 이 자아는 수동적이고 부분적이며 애벌레 같은 자아, 응시하고 수축하는 자아이 다.’(DR 128-129; 국222)

우리 신체에는 차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이질적인 것들이 세포차원에 존재 한다. 이 세포들에 ‘분산되고 흩어져 있는 빛의 자극들’이 가해진다. 세포들 중 몇 몇이 이 자극에 반응한다. 이 세포들은 ‘자기 신체의 특권적인 한 표면 위에서’ 빛 이라는 자극을 ‘재생’한다. 자극-반응의 과정이 반복된다. 이로써 ‘빛을 묶는’ 기 관, 즉 ‘요소적 반복의 수축’으로서 ‘눈’이 출현한다. 이러한 자극-반응의 반복을 묶는 주체로서, 들뢰즈는 자아 이전에 ‘애벌레 같은 자아(sujets larvaires)’를 상 정한다. ‘봄’이라는 목적과는 무관하게, 들뢰즈는 특정한 자극에 반응하는 세포들 이 응결된 것이 곧 눈이라는 기관을 출현시킨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눈은 바로 이 수동적 반복에서 유래한다. 이렇게 반복의 결과, 일단 눈이라는 기관이 형성되면, 이제 눈은 빛이라는 자극을 기다린다. 즉 빛이라는 자극을 향한 일관된 ‘충동’을 형성한다. 때문에 들뢰즈는 ‘각각의 묶기가 일어나는 수준마다 어떤 하나의 자아가 이드 안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최초의 차이나는 것들이 프로이트식의 ‘이드’라

면, 그를 일관된 충동으로 묶어내는 수동적 종합물로서 출현하는 ‘애벌레 주체’가

‘자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미 반복의 결과 수축의 산물로서 출현한 ‘애벌레 주체’는 다시금 반복하고자하는 단일한 ‘충동’을 형성함으로써 ‘이차적 역량’으로 고양된다.

들뢰즈는 상세한 추가설명을 덧붙이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 시각이 어떻게 형성 되는가 하는 문제는 수동적 종합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를 제시한다. 가령 ‘보이 지 않는 고릴라 실험’127)의 경우, 시각정보가 뇌의 능동적인 지각작용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흰 색 옷을 선수들이 공을 몇 번 튕기는지 세어보라는 요구를 받은 피 실험자들은 검은 털투성이인 고릴라가 농구장의 정중앙에 짧지 않은 시간동안 나 타나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다시 동일한 영상을 보았 을 때, 피실험자들은 고릴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려고 하면 보 인다. 즉 주의집중의 여부와 관련해 ’능동적‘으로 형성되는 시각정보가 분명히 있 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를 갖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가령 인간 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자신의 후면을 보지 못한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다. 뒷면은 인간에게 사각(死角)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반면 초식동물은 사각이 없 기 때문에 전방을 볼 수 있다. 가령 토끼의 사각은 0˚, 말의 사각은 3˚이다. 의지와 무관하게 종마다 상이하게 ‘수동적’으로 종합된 시각기관에 의존하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각기관이 형성되는 과정 역시 전적으로 ‘수동적 종 합’이라는 점이다. 시각정보가 형성되는 과정은 적어도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1) 각막이 파장으로서의 가시광선을 지각한다. 2)망막의 시신경이 가시광선을 전기신 호로 변환한다. 3)후두엽으로 전달된 전기신호가 약 15개의 시각영역에 따라 색과 형태, 움직임, 깊이 등의 정보로 처리되어 하나의 영상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망막에서 전기신호로 변환되기 전부터, 유리체 안의 세포들은 색깔을 지 각한다. 색각을 담당하는 ‘원뿔세포’는 각각 특정 파장 영역에 해당하는 색의 빛에 반응한다. 망막은 이미 색의 정보를 계산한 다음에 뇌에 전달하는 셈이다.128) 앞선

127) 대니얼 사이먼스, 『보이지 않는 고릴라』, 김명철 역, 김영사, 2017, 19-23쪽

128) ‘원래 태양광 같은 빛에는 다양한 파장의 빛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빛의 파장은 약 400-800nm의 범위에 있으며, 3종의 원뿔세포는 반응하기 쉬운 파장이 각각 다르다. 사람의 원뿔 세포는 망막 전체에 약 600만개가 있으며, 65% 정도를 차지 하는 ’L원뿔세포(빨간 원뿔 세포)‘, 30% 정도를 차지하는 ‘M원뿔세포(초록 원뿔 세포)’, 그리고 5% 정도로 적은 ‘S원뿔세포(파란 원뿔 세포)’의 세 종률 나누어진다. L, M, S는 Long, Middle, Short의 머리글자로, 흡수하는 파장의 길고 짧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원뿔 세포 각각이 단독으로 특정 색에 대한 지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른 원뿔 세 포에서의 반응의 합과 차가 색각을 만들어 낸다. 반응의 합과 차를 ‘계산’하는 장치가 망막이다. 약 0.2-0.3mm의 두께 안에 몇 종류의 신경 세포와 그것을 지탱하는 세포가 있다.’, 「시각의 메커니즘」, 『Newton Highlight 97: 감각-놀라운 메커니즘』, ㈜아이뉴 턴, 2016, 44쪽

들뢰즈의 설명에 따르면, 파란색이라는 자극에만 반응하는 세포들, 빨간색에만 반 응하는 세포들 각각이 1)에서부터 ‘파란 원뿔세포’, ‘빨간 원뿔세포’ 등으로 수동적 종합을 이루는 것이다. 만약 망막에 이 각각의 원뿔세포가 없는 경우, 이러한 세포 적 수준의 종합이 일어나지 않아 선천성 색각 이상이 일어난다.129) 반면 1)에서는 입력되지 않았던 정보가 3)의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종합되기도 한다. 가령 한쪽 눈 의 맹점은 다른 한쪽 눈의 시야에 포함되기 때문에 두 눈으로 보는 경우에 우리는 맹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한 쪽 눈을 감아도, 시야에 구멍은 생기지 않는다. 이른바 ‘망막 충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130)

이상의 생리학적인 과정은 다소 기계적인 작동처럼 보인다. 자동연산과정처럼, 어떤 입력값을 정해진 도식에 따라 오차없이 정확하게 출력해내는 ‘자동적인’ 과정 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가령 클로소프스키는 “비생물에게는 오해가 없고,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유기적 세계에서 오류가 시작된다.”131)고 말한다. 수소 두 개에 산소 한 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확한 이 결합을 통해 물(H2O)을 만들어내는 원자간의 배합과 달리, 인간만큼 짝을 찾는데 무능한 동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 면 이는 정확한 지적이다. 즉 의식이 없다고 간주되는 무기물의 세계에서는 결합 의 법칙이 정확하게 이뤄지는 반면, 의식적으로 행위를 결정하는 유기물의 세계에 서는 그에 따른 오류가 언제나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를 다시 수동적 종합과 결부 지어 생각해본다면, 수동적 종합은 말하자면, 오차가 없는 무기물의 세계에서 이뤄 지는 자동적 종합과 같다. 달리 말하면, 수동적 종합이란 의식이 개입되지 않았기 에, 어떤 오류나 지연을 보이지 않는 종합, 그렇기에 ‘자동적 종합’ 내지 ‘기계적 종합’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종합인 셈이다.

이처럼 세포 수준에서의 수동적 종합과정을, 들뢰즈는 베르그송의 용어를 빌어

“수축(contraction)”(DR 129; 국222)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가령 ‘빠바바밤’이라는 선율을 들을 때, 우리는 ‘빠’, ‘바’, ‘바’, ‘밤’이라는 4음절로 그것을 분리해서 인식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선 (旋)율이라고 지칭한다. 즉 우리는 그 소리를 하나의 선율로 수축하는 것이다. 베 르그송이 직접 제시하는 사례는 시계의 틱톡거리는 초침 소리이다. 우리는 ‘틱톡틱 톡틱톡...’이라는 반복되는 시퀀스 안에서 ‘틱톡’이라는 쌍을 자연스럽게 수축하고,

‘틱’ 후에는 ‘톡’이 올 것을 기대한다. 마치 쥐불놀이때 빠르게 돌아가는 불붙인 마 른 풀에서 원환운동을 지각하듯, 우리는 비연속적인 자연물리적현상을 연속적으로

‘수축’하여 감지한다. 이때에 수축 자체가 자연물리적 현상 자체에 내포되어 있지 129) 위의 책, 80쪽

130) 위의 책, 54쪽

131) 클로소프스키, 앞의 책, 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