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차이와 반복』에서 제시되는 ‘미시적 무의식 이론’을 “무의식은 미분적이고 잠재적이고 문제적이다”는 명제로 요약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들뢰즈가 무의 식에 대한 탐구에 있어 제시하는 ‘미분적, 문제적, 잠재적’이라는 특성들이 바로 이념을 설명할 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혹은 이 세 특성은 본래 이념에 대한 설명으로 기획된 것인데, 순서상 무의식에 관해 언급하는 대목이 먼저 나온 것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차이와 반복』에서 미분과 잠재성에 대한 탐구는 온전히 ‘4장: 차이의 이념적 종합’이라는 이념을 주제로 다루는 장에 할애되고 있 으며, 거꾸로 무의식에 관한 고찰은 2장 4절에 국한지어 서술되고 있다. 물론 차
126) 미분적인 것과 강도적인 것은 때로 구분되지 않고, 미분적이고 강도적인 요소라고 병 기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들뢰즈가 미분적인 것들로 구성된 이념의 차원에서, 미분 적인 것들로부터 강도가 생성되는 동시에 다시 강도가 하나의 미분소로서 다른 차이들 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운동이 함께 일어난다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이러한 이념의 층위에서 강도가 현행화되었을 때에만, 이 장과 분리되어 있는 현행적인 층위를 마주하게 된다. 들뢰즈는 이러한 이념의 현행화를 극화 내지 분화라는 이름으로 칭하고 있다.
이의 철학의 지반 위에서 그리고 일의성의 존재론에 기반하여 차이와 동일성 개념 을 새롭게 재정립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는 『차이와 반복』에서 무의식 자체가 결코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여기서 중 요한 것은 이념과 무의식이 『차이와 반복』에서 분명 동일한 세 특성을 매개로 공 명하고 있다는 점이고, 우리는 이로써 이념에 대한 탐구를 살펴봄으로써 들뢰즈가 이 책을 저술할 당시에 무의식에 대해 정립했던 특성들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라 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바탕위에서, 들뢰즈가 제시하는 이념 개념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출발해, 미분적, 문제적, 잠재적이라는 개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① 미분적(différentiel) 이념
우선 ‘이념(idée)’이란 통상 무질서하게 주어진 잡다(le divers/diversity)를 하나 로 포괄해서 묶는 개념이다. 칸트는 플라톤이 “결코 감관들로부터 빌려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성의 개념들조차도 훨씬 넘어가는, 그러니까 경험 중에는 결코 그 것에 상응하는 것이 만나지지 않는 그런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의미에서 “사물들 자신의 원형들”(『순수이성비판』, B370)이란 의미로 사용한 이데아라는 개념을 차 용하여, 경험과 분리된 “순수관념들로부터의 개념”(같은 책, B377)이라는 의미로 이념을 사용한다. 들뢰즈 역시 분명 감각경험의 대상은 결코 될 수 없지만, 사물을 분류하는 지성의 개념과는 달리 우리의 사유를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 인 열쇠라는 점에서 이념이라는 용어를 채택한다. 그러나 들뢰즈는 이념을 플라톤 이나 칸트처럼 거시적인 일반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규정한다. 그에게 이념이란 특 이성과 교차하는 지점에 서있는 보편성에 가깝다. 일반성(généralité)이 차이를 무 화하는 가운데 획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제각각의 특이성들과 공존불가능한 것이 라면, 보편성(universalité)은 차이 그 자체로부터 생성되는 반복의 운동을 통해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이성들과 교차한다.
들뢰즈는, 이념이 기존의 용법대로 어떤 차이나는 것들 사이의 종합을 이뤄내는 것이라는 점과 동시에 차이를 결코 일반성의 이름으로 무화시키지 않을 것, 나아 가 차이로부터 생성의 운동을 드러낼 것이라는 과제를 스스로 부여한다. 이 때에 들뢰즈가 주목하게 되는 것이 수학적 의미에서 적분의 대(對)개념으로 사용되는 미 분이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속도는 총 이동거리와 시간을 통해 구해질 수 있 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평균’속도인데, 가다서다를 반복할 고속도로의 상황 을 떠올리면, 언제나 동일한 속도로 부산에 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이동과정에서 지나칠 과속탐지기가 측정하는 속도는 ‘순간속도’에 가깝
다. 전자가 적분이라면 후자는 미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적분은 구간별 상이한 차이들을 소거하는 가운데에만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들뢰즈가 그와 대립하는 것으로서 미분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은 자연스럽다. 그러 나 미분이 어떻게 차이로부터 종합을 수행하는 동시에 차이들을 생성해내는가하는 문제는 해명이 필요하다. 가령 과속탐지기가 길목에 설정된 두 지점을 지나치는 차량의 속도를 순간적으로 탐지할 때, 두 지점은 가능한 최소의 거리로 설정된다.
미분은 그 자체로 최소의 차이를 갖는다는 점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두 지점이 오르막길일 때와 내리막길일 때,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일 때와 매끈한 고속도로일 때의 속도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즉 최소의 차이를 갖는 두 항을 설정 하고 그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미분값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두 항간의 관계에 따 라 상이하게 제시된다. 더욱이 오르막길 내지 내리막길이라는 것은 언제나 두 지 점을 설정했을 때, 그 사이의 기울기로만 판단될 수 있을 뿐, 어떤 한 지점만을 두 고는 그처럼 지칭할 수 없다. 즉 각각의 항은 외따로 있을 때는 어떤 의미도 본래 적으로 획득하지 않은 미규정적인 것이다. 이 점에서 차이의 어떤 선재적인 규정 성 없이 순수하게 오직 두 항간의 관계로서만 차이를 ‘생성한다’는 명제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가 제논의 역설에 따라 공간의 무한분할가능성을 떠올린다면, 순간속 도를 구하는 두 지점간의 거리는 아무리 좁혀진다고 하더라도 0으로 수렴하는 지 점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분기해 나갈 수 있다. 즉 미분이 어떤 곡선의 기울기로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특수한 값을 나타내는 것인 동시에 어떤 변 이들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미분될 역량을 드러내는 것이다. 들뢰즈가 이로부터 도출하는 이념의 특성 중 하나는 이념은 언제나 선재하는 규정성 없이 오직 두 항간의 관계(dx/dy의 관계)라는 상호적 규정을 통해서만 규정성을 획득하 고 ‘보편적 종합’을 이뤄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분비가 다시 미분화될 수 있듯, 이념은 이념을 낳는 거듭제곱의 역량을 갖는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어떤 질에 상응하는 특수한 값을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질적인 고정성을 내포하 는 것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변이할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질화 가 능성의 순수요소’(DR 224; 국379)인 것이다. 들뢰즈는 때문에 이념을 ‘차이의 보편 적 종합’인 동시에 ‘변이성이나 다양성’에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② 문제적(problématique) 이념
둘째로 들뢰즈는 미분으로서의 이념이 문제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앞선 맥락과 유사한데, 미분은 언제나 두 항간의 관계를 통해 그 때마다 상이한 해(解)
들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들뢰즈가 문제와 해의 관계를 통상적인 용법과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음에 주의하자. 들뢰즈는 질문(interrogation)과 문제 (problème), 물음(question)을 엄격히 구분한다. 질문은 “어떤 공통체의 틀 안에 서 성립하는 것”(DR 204; 국347)으로 그 틀 안에서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가령
‘몇시죠?’라고 물을 때 그것은 ‘당신은 손목시계를 갖고 있거나 괘종시계 가까이에 있으니까요’라는 전제를 함축한다. ‘스피노자는 언제 태어났죠?’라고 물을 때, 그것 은 ‘당신은 서양근대철학사를 알고 있으니까요’라는 전제를 함축한다. 질문은 선생 님이 학생에게 제시하는 것처럼, 단일한 해답을 요구한다. 반면 ‘스피노자의 철학 은 오늘날에도 타당성이 있는가?’라는 문제는 우리에게 앞선 질문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 즉 질문이 상이한 것으로 포착된 해에 따라 경험되는 경우, 질문 은 이미 자신을 ‘분해’하면서 문제로 나아간다. 문제는 특정한 해결책을 추구하는 대신, 토론의 장을 연다. 여기서는 다양한 해결책이 발생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 은 해결이 아니라 그 사유를 촉구하는 문제자체이다. 만약 우리가 ‘스피노자의 철 학은 오늘날에도 타당성이 있는가?’라는 문제로부터 ‘일의성의 존재론이란 무엇인 가’ 내지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으로 나아간다면 더욱 그렇다.
즉 문제를 다시 분기하는 보다 근원적인 층위에 해당하는 것이 들뢰즈가 사유하는 물음이다.
때문에 들뢰즈가 이념을 문제적(problématique)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떤 단 일한 해로도 환원될 수 없는, 복수의 해결가능성의 장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우 리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저마다 상이한 해법들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은 하 나의 동일한 문제가 일으키는 자장 속에서 도출된 것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동시에 해결가능성 자체보다는 복수의 해법들과 다시 그로부 터 분기해갈 또 다른 해법들 자체를 무한히 증식적으로 사유해볼 수 있다는 점에 서 차이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만하는 차이의 역량을 증언한다.
③ 잠재적(virtuel) 이념
마지막으로 이념은 잠재성의 층위에서 이해된다. 들뢰즈는 다른 용어들을 채택 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사용하는 용어가 어떻게 통상적인 용법에 따라 이해되 어서는 안되는지를 세심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무엇보다 잠재성(virtualité)이 가능성(possibilité)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신중을 기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설명된다.
첫째로 가능한 것(le possible)은 현실적(le réel)인 것에 대립한다. 따라서 가능 한 것은 현행적인 것(l’actuel)이 되어야지만 현실성(réalité)을 획득할 수 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