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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전제의 문제: ‘신경생물학적 미학만이 완전하다’는 주장

학에 기초하지 않은 어떠한 미학이론”도 결코 ‘완전’하거나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제키의 이 같은 발언은 전통적인 철학적 미학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제키는 신경생물학에 기초하지 않은 기존의 철학적 미학이론들은 모두 ‘불완전한 것’으로 가치 절하하였 다. 말하자면 그는 ‘뇌 활동을 고려한’, 그리고 ‘견고한 신경생물학’에 바 탕을 둔 자신의 미학이론이 ‘불완전한’ 철학적 미학을 대체할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내었다. 이와 같이 새로운 학문분야인 신경생물학적 미학, 즉 신경미학의 우월성을 강조한 반면, 기존 철학적 미학의 유효성을 부정한 제키의 견해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뇌 활동의 산물’로 간주 한 그의 이론적 가정에 근거한 것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철학과 신경 과학의 본성을 오해하고 양자를 상호 배타적인 관계로 간주한 그의 학문 적 입장을 전제한다.

제키는 20세기 말에 이루어진 신경과학의 혁명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여긴 나머지 21세기에는 철학 자체가 쇠퇴하고, 철학의 주요한 물음들이 신경과학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110) 무엇보다 그는 마음의 본 성, 마음과 뇌의 관계, 또는 뇌의 기능에 대해 철학이 오랫동안 성취해 온 ‘빈곤한 결과’에 대해 실망을 표출하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추상하 며, 이상(ideals)을 구성하는 뇌의 능력”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신경생물학 이 짊어져야 할 철학적 짐”이라고 생각했다.111)

미래의 신경생물학이 당면하게 될 문제는 철학이 […] 과거에 부적합하게 씨름해 온 전혀 성공적이지 못 했던 영원한 진리와 궁극적인 가치이다.112)

110) 베넷, 해커 지음, 이을상 외 옮김, 『신경과학의 철학: 신경과학의 철학적 문제와 분 석』(이하 『신경과학의 철학』), 서울: 사이언스북스, 2013, p.781

111) Zeki, “Splendours and Miseries of the Brain”,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1999, Vol.354(1392), pp.2053-2065 (베넷, 해 커, op. cit., p.781에서 재인용. 베넷과 해커의 주석에 따르면, 제키는 ‘이상적인 것 (ideals)’를 관념(ideas)이나 개념(concepts)을 의미하는 말로 쓰고 있다.)

112) Zeki, op. cit. (베넷, 해커, op. cit.에서 재인용)

가령 제키는 “어떻게 색깔이 물질세계에 존재하는가?” “색깔은 대상 의 속성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등과 같은 철학적 물음에 신경생물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신경생물학은 “물체가 색 깔을 띠지 않는다는 것”, 즉 색깔은 ‘뇌의 속성’이라는 것을 밝혔다. 다시 말해 신경생물학은 색깔이 물체가 본래 갖고 있는 속성이 아니라, “뇌가 대상의 물리적 속성에 부과하는 해석”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는데, 제키에 의하면 이는 철학자들의 방법으로는 결코 해명해낼 수 없는 과학적 사실 이었다.113)

이 같은 진술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신경생물학에 기초하지 않은 미학이론은 완전하지 않다’는 제키의 주장은 철학적 방법에 대한 그의 불신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M. 베넷과 P.

해커가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듯이, 제키를 포함한 일부 신경과학자들이 철학에 제기하는 비난은 “철학적 기획을 과학적 기획으로 동화시키려는”

잘못된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114) 베넷과 해커에 따르면, 마음이나 의식, 감정, 혹은 미적 감흥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것과 신경과학적으로 탐구 하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것이다. 베넷과 해커는 제키와 같은 신경과학자 들이 철학과 신경과학의 본성을 혼동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115)

신경과학자들의 혼동은 부분적으로 선험적이고 개념 적인 물음과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물음을 구분하지 못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철학은 오직 마음이라는 개념 및 이와 관련된 개념과의 세세한 논리적-문법적 연결을

113) Ibid., p.2056. (베넷, 해커, op. cit.에서 재인용) 114) 베넷, 해커, op. cit., pp.777-798

115) 베넷과 해커는 그들의 공동저작 『신경과학의 철학』의 제14장 ‘방법론적 반성’에서 F. 크릭, G. 에덜먼, S. 제키와 같은 현대 신경과학자들이 철학의 방법에 대해 표명해 온 불신과 개탄이 잘못된 것임을 분석적으로 비판하였다.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마음의 본성을 탐구할 수 있다. 그래서 철학은 마음이라는 개념과 인간, 감성 적 존재자, 신체, 뇌라는 개념 사이의 관계를 밝혀낼 수 있다. 이것은 철학의 영역이다.

신경과학은 우리의 심리적이고 행동적인 능력과 그 수행을 신경적으로 기초지우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마음의 본성을 탐구할 수 있다. 철학적 기획 과 신경과학적 기획은 전혀 다른 것이다. 더욱이 신경과 학적 기획은 [참이거나 거짓인 어떤 경험적 이론을 형식 화하는 데 있어 개념이 경험에 선행한다는 점에서] 철학 적 기획을 전제한다.116)

예컨대 미학이라는 동일한 탐구 대상에 대하여 신경과학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미와 예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능력의 신경학적 원리와 법칙에 관한 경험적 질문들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미학에 대해 철학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미와 예술 경험의 개념과 그에 연관된 다 른 개념들 간의 연결 관계를 논리적, 규범적으로 명료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미학에 대한 철학적 기획과 신경과학적 기획의 본 성을 분명히 하고 양자 간의 차이를 구분한다면, 어느 한 쪽의 기획을 다른 기획에 동화시키거나 양자의 기획을 혼동하는 데에 따른 제키의 주 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앞서 논의한대로 철학적 미학과 신경과학적(혹은 신경생물학적) 미학이 서로 다른 기획 아래에 상이한 접근을 취한다고 해서 양자의 관계가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구획 지어져야 하는 것은 아 니라는 점이다. 철학적 미학과 신경과학적 미학은 분명히 서로 다른 전 략을 취하고 있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새롭게 떠오른 2세대 신경미학자들은 제키와 달리,

116) Ibid., pp.788-789

미학에 대한 상이한 학문적 접근들이 가진 고유성을 인정하면서 미학에 대한 제 학문 간의 협력적 관계와 통섭을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M.

피어스와 D. 자이델, O. 바타니안, M. 스코프, H. 레더, A. 채터지, M.

네이달은 공통적으로 미학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 접근과 인지 신경과 학적. 실험심리학적 접근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종속적 관계를 맺는 것에 반대하며, 신경미학이 다양한 학문적 접근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진 정한 의미의 학제적 연구 분야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117) 달리 말해 신경미학은 전통적인 철학적 미학과 예술철학, 미술사학은 물론이 고 신경학적 미학, 예술심리학, 진화생물학적 미학 등 광범위한 학문 분 야에서 제시된 관점들과 논의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미와 예술 경험의 여러 층위들을 다각적으로 해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다.118) 요컨대 피어스 외의 2세대 신경미학자들은 미학에 대한 기존의 다양한 접근들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에 비로소 신경미학이 진정한 융합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경미학을 신경생물학이라는 단일한 접근만으로 구획 짓는 것은 생 산 가능한 미학적 논의를 신경생물학적인 것으로 국한시키는 동시에 신 경미학의 의미 또한 매우 좁은 범위로 제한시키는 한계를 갖는다. 피어 스와 그의 동료 신경미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자각하고 신경미학의 탐구 대상과 범주에 관한 개념적 틀을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재규정하 였다.119) 이들은 예술작품과 같은 미적 대상에 대한 경험 일반을 지각적, 인지적, 정감적 능력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간주하고, 이에 연관된 다 층위의 심리작용과 그 근저의 신경적 작용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할 것 을 제안하고 있다.

가령 H. 레더와 그의 연구팀이 미적 경험의 복합적 심리처리과정들 을 크게 인지적 층위와 정감적 층위로 구분하고 이를 분석적으로 제시한

117) Pearce et al., “Neuroaesthetics: The Cognitive Neuroscience of Aesthetic Experience”,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2016, Vol.11(2), pp.265-279 118) Ibid., p.267

119) Ibid., pp.266-267

‘미적 경험 모델’120)은 미학에 대한 이 같은 통섭-지향적 시각을 집약적 으로 반영한 대표적인 학제적 연구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레더의 모델 외에도 최근 많은 신경미학 연구자들에 의해 미학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관점들을 배경으로 한 통섭-지향적 실험들이 개진되고 있다. 이에 관련 한 구체적 사례에 대해서는 본고의 Ⅴ장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