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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가정: 아름다움의 근원으로서 뇌의 mOFC

Ⅲ. 제키의 후기 신경미학: 예술에 대한 미적 경

름다움을 분석하는 것은 미적 판단을 분석하는 것과 같았다.90) 제키는 칸트의 이 같은 미학적 입장을 수용하여 아름다움과 미적 판단, 그리고 미적 경험에 관한 칸트의 근본 물음을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기 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점은 제키가 신경영상 기술을 활용하여 미적 경 험의 신경 기반을 조사한 그의 첫 번째 실험을 다룬 논문 “Neural Correlates of Beauty”(2004)에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 논문 의 서두에서 칸트의 구절을 직접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연구의 취지와 성 격을 소개하였다.

칸트는 그의 저서 『판단력 비판』(1790)을 출간함으 로써 아름다움과 미적 가치의 원리를 지각자의 내면에서 찾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칸트는 [경험과학적] 실 험을 통한 탐구에 적합한 다음과 같은 통찰력 있는 물음 을 제기하였다. “아름다움의 현상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조건은 무엇이며, 미적 판단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전제 는 무엇인가?” 본 연구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뇌 구조 물이 암시하는 [아름다움 혹은 미적 판단의] 특정한 신경 조건의 존재 여부를 조사함으로써 칸트의 위 질문에 대 해 실험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우리가 본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질문은 [신경 단위에 초점을 둔]

매우 기초적인 수준에서이다.91)

제키는 칸트가 사변적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문제에 대해 실험 과 관찰을 통한 경험적 방법으로 접근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혹은 미적 판단을 하는 모든 인간에게 어떤 보편 적인 정신 능력이 존재한다고 간주했던 칸트 미학의 근본 명제를 신경학

90) 칸트 지음, 김상현 옮김, 『판단력 비판』, 서울: 책세상, 2005

91) Kawabata and Zeki, “Neural Correlates of Beauty”, J ournal of neurophysiology, 2004, Vol.91(4), p.1699

적으로 재해석하여 경험과학의 맥락에서 검토 가능한 하나의 가설을 제 시하였다. 즉 칸트가 아름다움과 미적 경험을 ‘특별한 정신 작용’에 관련 지어 설명하려 했던 반면에, 제키는 이를 두뇌 피질 속에서 일어나는 ‘특 별한 신경 작용’에 관련지어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칸트의 미학적 물음에서 탐구의 이론적 근거를 찾아낸 제키 의 후기 신경미학은 다른 한편으로 버크의 미학적 성찰에서 또 다른 이 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말하자면 제키는 철학적 성찰과 생리학적 관찰 을 바탕으로 아름다움과 숭고의 근원에 관해 탐구한 버크의 미학으로부 터 탐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특히 저서 『숭고와 아름다움 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1757)에 제시된 버크의 주요한 논 제들은 제키의 논문 “Toward a Brain-based Theory of Beauty”(2011) 와 “A Neurobiological Enquiry into the Origins of Our Experience of the Sublime and Beautiful”(2014)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우선 그는 201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름다움을 정의한 버크의 문 장을 직접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실험의 가설과 결론을 각각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우리는 수세기에 걸쳐 제기되어 온 질 문, 즉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련된 하 나의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 질문은 버크에 의해 제기된 것으로, 신경생물학적으로 접근하기에 매우 적합 한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버크는 그의 저서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통해

“아름다움이란, 대부분의 경우, 감각을 매개로 하여 인간 의 마음에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신체 내부의 어떤 성질”

이라고 정의하였다.

버크의 이 같은 정의는 모든 감각을 통해 발휘될 수 있는 어떤 고유한 아름다움의 경험 능력이 존재함을 암

시한다. 따라서 이는 다음과 같은 하나의 중요한 물음으 로 이어진다.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상이한 감각을 매개 로 유발된 아름다움의 경험은 뇌의 동일한 혹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신경 활동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 까?”

[…] 우리는 상이한 감각을 매개로 발생하는 어떤 단일 한(single) 아름다움의 경험 능력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 우리는 버크의 정의를 재해석하고 신경과학의 선행 연구 결과들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설정하 였다. “아름다움이란 뇌의 내측안와전두피질(medial Orbito-frontal Cortex. 이하 mOFC)의 동일 부위에서 일 어나는 신경 활동과 상관관계를 갖는다.” 우리는 실험을 통해 결론적으로 이러한 가설이 옳다는 사실을 확인하였 으며, 이는 우리로 하여금 뇌에 기반한 하나의 미 이론 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92)

제키는 아름다움의 본성에 대한 그의 핵심 명제를 버크의 정의를 부 분적으로 수정한 다음의 문장으로 진술하였다. “아름다움이란, 대부분의 경우, 감각을 매개로 하여 mOFC의 활성화에 상관관계가 있는 신체 내 부의 어떤 성질이다.”93) 여기서 밑줄 친 부분은 제키가 버크의 위 문장 가운데 특별히 수정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이다. 제키는 이 후 계속해서 fMRI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신경영상 실험들을 설계함으로 써 아름다움을 mOFC의 활성화 작용에 관련된 신체의 성질이라고 정의 내린 그의 개념적 규정을 다양한 측면에서 경험적으로 입증해 보였다.

가령 제키는 2014년도 논문에서 다시 한번 명시적으로 버크의 미학 적 통찰을 실험의 주요한 이론적 근거로서 받아들였다. 즉 그는 숭고의

92) Ishizu and Zeki, “Toward a Brain-based Theory of Beauty”, PLoS ONE, 2011, Vol.6(7), p.e21852, p.1

93) Ibid., p.1, 7

경험을 아름다움의 경험으로부터 분리시킨 버크의 통찰을 받아들여 숭고 의 경험을 일으키는 뇌신경 기반과 아름다움의 경험을 일으키는 뇌신경 기반이 다를 것이라 가정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기획하였다.

실험 결과 이론상으로 상이하다고 간주되었던 두 경험이 실제로 상이한 뇌신경 체계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다른 한편 제키는 앞서 언급한 2011년도 논문과 2013년의 논문

“Clive Bell’s ‘Significant Form’ and the Neurobiology of Aesthetics”을 통해 아름다움을 환기하는 시각 예술의 공통 성질을 규명하려 한 벨의 미학적 통찰을 또 하나의 이론적 근거로서 수용하였다. 벨의 저서 『미 술(Art)』(1914)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미적 현상은 개인의 주관적인 경 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미적 감정을 일으키는 모든 종류의 시각 예술 이 공통적으로 가진 유일한 특징은 ‘의미있는 형식(Significant Form)’이 다.94) 여기서 벨이 말하는 ‘형식’이란 선이나 색채와 같은 조형 요소의 결합을 가리킨다. 그러나 벨은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결합이 시각 예 술의 본질로서 성립하는 ‘의미있는 형식’을 구성하는지에 관해서는 명확 히 규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벨에게 있어 분명한 것은 ‘의미있는 형식’이 무엇이든지 간 에, 예술작품이 환기하는 아름다움이란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주관 적인 성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벨은 아름다움을 외부 대상의 객관적인 특성(만)으로 한정 짓지 않고, 아름다움을 주관의 내면에서 환 기되는 주관적 성질로서 파악한 버크와 칸트의 기본 입장을 일관되게 공 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키는 바로 이러한 벨의 기본적인 입장에 동의하였다.95) 그러나 벨이 ‘의미있는 형식’을 예술작품에 표현된 선이나 색채와 같은 형식적인 요소에서 발견한 것과 달리, 제키는 이를 “개인을 주관적인 경험으로 이끄는 뇌의 특정한 신경 조직”에서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96) 다시 말해 제키는 벨의 ‘의미있는 형식’을 뇌신경 조직들의 ‘의

94) Ibid., p.8 95) Ibid., p.8

미있는 구성(Significant Configuration)’이라고 재해석하였다.97)

우리는 주관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모든 작품들은 그것 에 대한 경험이 mOFC 내 활동 강도의 변화, 더 구체적 으로는 그 안에 위치한 A1 부위 내 활동 강도의 변화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기반하며, 단일한 뇌기반 특 징(a single brain-based characteristic)을 갖는다고 가정 한다.98)

부연하자면 벨이 설명한 ‘의미있는 형식’이란 시각 예술작품에 표현 된 선이나 색채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조합을 가리키는 반면에, 제키가 제시한 ‘의미있는 구성’이란 시각 대상에 대한 시각 뇌 세포들의 반응, 곧 특정한 시각 피질 영역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들의 특별한 활성 작용을 의미한다. 나아가 제키에게 아름다움이란 외부 세계에 객관적으로 존재 하는 대상의 조형적 특징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신체의, 즉 시각 뇌 세 포들과 mOFC 부위 세포들을 포함한 특정 신경 조직의 특징적인 생리학 적 반응으로 간주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2000년대 중반 이후에 개진된 제키의 후기 신경미학이 아름다움과 미적 경험의 보편 성질에 관한 칸트와 버크, 벨 의 미학적 통찰들을 신경과학의 맥락에서 연결지어 재해석하고, 이를 탐 구의 이론적 토대로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요컨대 제키의 전기 연구는 위 미학자들의 기본 입장을 따라 인간의 내면에 미 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공통 성질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정 체에 대해 신경생물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다.

96) Zeki, “Clive Bell’s ‘Significant Form’ and the Neurobiology of Aesthetics”, 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 2013, Vol.7, p.1

97) Ibid., p.9

98) Ishizu and Zeki, “Toward a Brain-based Theory of Beauty”, 2011, p.8.

그림 5.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미 혹은 추를 경험하는 동안 유의 마하게 활성화된 두뇌 피질 부 위이다.

Kawabata & Zeki (2004)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기조 아래에 최근까지 꾸준히 발표된 제키의 대표 적인 신경미학적 연구 성과들을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개략적 으로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