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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체제의 인식과 대응전략 : 중국활용전략과 김정은

가. 개혁·개방과 과학적 발전관에 대한 입장: 중국 업고 나가기

북·중 간 관계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북한의 대중 경제협력 역시 급속히 확대되었다. 2004년 4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이후 북·중 간의 경제관계가 단순한 교류의 차원을 넘어 제 도적 협력을 모색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당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경제협력을 논하는 과정에서 중국정부는 중국기 업이 북한과 다양한 형태의 호혜협력을 행할 것을 적극 장려한다는 입

153_위의 책, p. 60.

154_위의 책, p. 60.

그림Ⅳ-2 북한의 대중국 비중 추이155

(단위: 백만 달러)

장을 표명했다.156

2005년 10월 후진타오 주석은 북한을 방문하면서 양국관계가 ‘삼신 (三新:새로운 시기,새로운 정체,새로운 수준)’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 다고 평가했다. 여기에서 새로운 시기와 새로운 정세는 대내외적 상황 변화에서 새로운 북·중 관계가 다방면에 걸쳐 상호의존이 심화되는 관 계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157

이러한 북·중 관계의 발전은 2001년 이후 북한의 적극적인 대중관계 강화 노력이 중국의 대외정책과 부합하여 가시화된 것으로 평가할 수

155_이종운, “·중 접경지역 중국업체의 대북 거래관행 분석,”KIEP오늘의 세계경 , Vol. 9, No. 27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9), p. 1.

156_신상진, “후진타오 집권 초기 중국의 대북정책 결정요인 분석,”북한연구학회보, 10권 제1(북한연구학회, 2006), p. 208.

157_이희옥, “중국의 대북한정책 변화와 함의:동북4성론을 포함하여,”현대중국연 구, 81(현대중국학회, 2006), pp. 88~89.

있다. 한편 2001년 이후 미국의 강경한 대외정책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마찰을 가져왔다. 따라서 이 시기의 북·중 간 협력 강화는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2005년 후반기부터 북한의 위폐 및 인권 문제를 중심으로 대북 압박 이 가속화되면서 중국의 개방지역을 둘러본 김정일 위원장의 행보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를 북·중 경제관계 확대를 통해 돌파하려는 의지 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최대 교역상대국은 중국이나,남한 역시 두 번째 교역상대국 이며, 북한 대외거래의 20~30%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과의 각종 교역에서 상당한 규모의 현금수입을 얻고 있으나,이 수입은 고스 란히 중국과의 대외무역에서 적자를 보존하는 데 사용되는 실정이다. 과거 일본인 납치문제로 불거진 북·일 교역의 중단은 남·북 교역의 증대를 가져왔지만 남·북 교역이 중단될 경우,북·중 무역이 활성화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다. 다시 말해 남·북 교역의 중단 및 감소는 북·중 무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른바 연쇄효과,즉 “남·북 교역 중단→남한으로부터의 경화수입 감소→대 중 결제수단의 부족→대중 수입능력 약화→북·중 무역 정체→타국 가로의 거래이전 애로→전체교역 침체”의 악순환을 걸을 수 있기 때 문이다.158 이에 따라 중국은 2008년 2월 21일자로 중국 변경무역의 70%이상이 거래되는 단동지역의 대북 무역을 위안화로 결제하기 시 작했다.159 이는 중국경제영향권으로의 편입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볼

158_이석, “대북 경제제재의 효과: ·북 교역 북·중 무역으로 대체가능한가,” KDI 북한경제리뷰, 5월호 (한국개발연구원, 2010), pp. 4~7.

159_·중 무역은 중국의 기준에 따르면 일반무역,’ ‘변경무역,’ ‘무상원조,’ ‘가공무역,’

보세무역,’ ‘기타6가지 형태로 구분되나,제일 큰 비중은 변경무역보세무 이다.변경무역은 호시무역변경소액무역으로 나눠지는데,호시무역은 변경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주체의 고립경제체제를 걸어왔던 북한에게는 오히려 체 제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09년 북·중 수 교 60주년을 맞아 이루어진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10.4~6) 당시, 중국 은 경제원조에 관한 교환문서 , 경제기술협조협정 , 소프트웨어산 업분야 교류협조 양해문 , 중국 관광단체의 조선관광 실현에 관한 양 해문 등 일련의 주요한 합의에 서명한 바 있다.160 중국은 국제사회의 제제국면 속에서도 양국 간의 관계가 건재함을 내외적으로 과시하는 동시에 북한의 경제협력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해 주었다.

북·중 관계의 강화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데 제한적이나마 기여 할 것이다. 중국이 동북3성 개발을 위해 북한의 대외개방 확대와 안정 적 환경을 희망하고 있고,북한도 2012년 강성대국 실현을 위해 중국과 의 경협을 희망하고 있는 바, 향후 북·중 경협은 활성화될 전망이다. 다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국면을 고려하면, 중국의 중앙정부가 적극 적으로 나서기보다 6자회담과 연계한 신중한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북한도 신의주, 나진-선봉 등 북·중 접경지역을 중 심으로 한 경협의 활성화에만 관심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북·중 협력 강화는 북한의 전면적인 변화나 개혁·개방정책의 수행에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북·중 관계의 강화는 6자회담 의 동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겠지만,북핵문제의 해결을 지연하는 측 면도 내재해 있다.

상기 도표에서 보듯, 2010년 현재 운영되고 있는 특구는 개성공단이

지역 주민들이 생활용품을 거래하는 무역을 의미하고, 변경소액무역은 권한을 부 여받은 기업이 세관을 통해 거래하는 것을 일컫는다.

160_연합뉴스, 2009105.

그림Ⅳ-3 북한의 경제특구 현황(예정지 포함)161

유일하다. 금강산관광지구도 2008년 박왕자 씨 피격 이후 중단되었다. 최근 북한이 검토하고 있는 평양,남포,원산,함흥,김책,청진특구 등 은 각 지역의 자원과 지리적 이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선정한 것으 로 보이나 북한체제가 완전한 개혁·개방의 길로 가지 않고, 핵폐기를 전제로 한 북·미 대화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2011년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6자회담의 재개에 찬 성하여,국제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6자회담 무용론을 견제하면서 대화 재개에 관한 논의를 유지시키고자 하였다.북한은 1980년대 이후,경제 개혁과 관련해 일보전진,이보후퇴라는 사이클을 반복해 오고 있다. 즉 부분적인 개혁과 개방이 시도되기는 하나, 여기서 발생되는 부작용이

161_한국일보, 201038.

다시 계획경제적 통제의 강화를 초래하곤 하였다.

한편 중국의 화평발전에 입각한 대국외교의 추진 과정에서 북한과의 마찰도 발생했다.북·중 양국 간의 불신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연유된 것이었다.중국이 경제성장을 더욱 적극적으 로 추동하기 위해 무엇보다 역내 질서의 안정을 원했던 데 비해,체제 내외로부터의 절박한 위협에 직면했던 북한으로서는 경제적 위기 극복 못지않게 비록 위기를 감수하더라도 핵개발이라는 강경책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동맹국으로서 서로에 대한 기대감의 차이와 비타협적인 태도였다. 양국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면서 서로 상반된 요구만을 강요했던 것이다. 중국은 폐쇄정책 을 고수한 채 핵개발을 통해 국제적 긴장을 야기하는 북한을 이해할 수 없었고,북한 역시 형제적 우의를 외면한 채 강대국 중심주의 논리만 을 앞세워 자신을 압박하는 중국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 갈등은 사실 제2차 북핵위기 발생 초기부터 시작되었다. 북한 이 미국과의 직접대화만을 고집함으로써 협상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 자, 중국은 2003년 2월 말 ‘기술적인’이유를 들면서 대북 원유 파이프 라인을 3일간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다.이어 중국은 북한에 “핵문제로 인해 전쟁이 야기되더라도 중국은 북한을 지원할 명분이 없다”고 경고 했다. 그러자 북한은 중국의 처사에 반발하여 예정된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공식 방북 일정을 무기한 연기시켰는데, 이것은 중국의 대미 편향적 태도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불만의 표시였던 것으로 관 측되었다.162 북한은 중국이 미국에 굴종하여 대북 압박과 제재의 선봉 장 역할을 다하면서 6자회담을 대미관계 개선 및 국제적 위상 강화 수

162_You Ji, “Understanding China’s North Korea’s Policy,”China Brief, Vol.

Ⅳ, Issue 5 (March 2004), p. 2.

단으로 활용하는데 대해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양국 간의 갈등은 2006년 1월 김정일-후진타오 간의 회담에서도 나 타났다.이 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북한이 6자회담 복귀조건으로서 제시했던 금융제재 해제 요구를 포기할 것을 권고했으며,이에 김정일 위원장은 “만일 미국의 금융제재가 지속된다면 북한은 붕괴될 수도 있 을 것”이라고 답변했던 것이다.163 그런데 이 답변의 행간에는 당시 북· 중 관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었다.무엇보다 김정일 위원장은 별다른 경제원조도 없이 금융제재 문제를 풀지도 못한 채 북 한의 6자회담 복귀만을 종용하는 중국 측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다. 특히 회담 기간 중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 강상춘이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체포된 사건은 그에게는 실로 모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이다.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후진타오 주석의 ‘권고’를 받아들 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며, 이에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서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표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은 2006년 7월 초 방북 한 미국 측 인사에게 “중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도와주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164 말했던 데서도 단 적으로 확인될 수 있다. 또한 지난 2007년 10월 ‘남·북 정상선언’제4항 을 둘러싼 논쟁은 명백히 북한 측에 의한 중국배제 움직임으로 해석되 고 있다. 즉 이 ‘선언’은 종전선언의 주체를 굳이 ‘3자 또는 4자’라고 명기함으로써, 만일 ‘3자’일 경우 한·중 양국 중 어느 국가가 배제될 것인지의 문제를 제기하였던 것이다.이에 대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163_“North Korea could collapse if U.S. sanctions continue” (11 February 2006). <http://home.kyodo.co.jp> (검색일: 2006.8.7).

164_중국 믿을 수 없다,” 중앙일보, 2006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