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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식과 대응전략 평가 : 지속과 변화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한 이후 북·중 관계는 국가전략의 목표 차이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 조정과 관련하여 북·중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였다.그러나 1990년대 후반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을 다시 평가하게 만들었다. 중국은 미 국과의 외교적·군사적 경쟁에서 주변지역의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 요했고,따라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도 아울러 높아졌다. 북·중 간 여 러 마찰요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전략적 이익에 대한 고려가 북·중 관계가 복원되도록 했던 것이다.

건국 이후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은 국제질서의 변화에 맞추어 부국강 병을 추진해 왔고 이를 정당화하고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국가 전략이념들을 제시하고 실천해 왔다.덩샤오핑에 의해 제기된 ‘개혁·개 방론’과 ‘평화와 발전론’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시장경제 도입과 서구 국가들과의 교류를 정당화하기 위한 국가전략이었다.

1989년 중국의 천안문사태 이후 서구 국가들의 중국견제와 봉쇄에 대응하기 위해 덩샤오핑은 다시 ‘도광양회’와 ‘유소작위’라는 새로운 국 가전략이념을 창출하였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는 서구의 압력에 대 한 유연한 대응전략이며 ‘유소작위’는 중국인들의 자존심과 민족주의 정서를 반영하는 이념이었다. 1990년대 이후 현대적 의미로 새롭게 각 색된 중화민족주의의 등장은 ‘유소작위’의 개념,즉 현실적인 실천방향 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정치·경제적 개혁·개방에 대해 북한은 일정 수준 보 조를 맞추면서도 무엇보다도 체제 내부의 단합과 개방 압력 최소화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북한에게 절대명제는 경제발전보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김정일 후계체제를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경제난 속에서 도 끊임없이 집착해온 핵개발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 한과 중국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이념갈등,중국 개혁·개방에 대한 입장 차이, 미·중 수교로 인한 비방전 등 일정 정도의 갈등과 반목은 있었지 만 안보전략적 관점에서 북·중 관계는 여전히 견고한 협력체제를 유지 하고 있었다.

중국의 경제력 급부상과 군사력 증강은 중국위협론을 불러왔고, 이 에 대응하여 중국은 책임대국론을 주장하였다. 중국위협론이 등장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중국의 부상에 따르는 현대판 중화민족주의에 대 한 서구 국가들의 경계로 볼 수 있다.장쩌민체제는 서구는 물론 주변 국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그리고 중국의 평화적 이미지 개선을 위해 1996년에 ‘신안보관’을 선보였다. 장쩌민체제에서 제기된 신안보관의 핵심적인 내용 가운데 하나는 주변국들과의 협력관계를 확대하는 것이 며, 이는 주로 지역다자협력체로 나타났다.

이런 중국의 부상에 대해 북한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과 의 이념적 동질성을 강조하면서 양국 간의 친선관계를 확대시키려 했 으나,중국이 한·중 수교를 선택하면서 사실상 북·중 관계는 1990년대 후반까지 경색국면을 맞이한다.그 결과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심화되 며 경제적 어려움 또한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나 비록 일정 정도의 갈 등과 반목을 경험하기는 했지만,중국과 긴밀한 대화 채널을 복원하면 서 김정일체제의 공고화에 기반해 북·중 협력 및 개혁·개방에 대한 비 판적 수용 속에서 나름대로 체제생존전략을 추구했다.

2003년 공식적으로 출범한 후진타오체제는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통 한 중국의 부상을 지향하고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국가전

략으로 2003년 11월 화평굴기, 2004년 4월에는 화평발전론을 표명하였 다. 이는 덩샤오핑의 ‘평화와 발전,’ 장쩌민의 ‘신안보관’을 계승한 것이 며, 대국주의적 정서가 내포된 개념이었다. 화평굴기의 ‘굴기’는 중국의 부상과 중국이 아시아의 대국임을 국제사회에 다시 확인하려는 후진타 오체제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이는 현대판 중화주의라 고 볼 수 있다.화평굴기론 다음에 등장한 화평발전론은 이념상 화평굴 기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굴기’라는 표현 대신 ‘발전’이라는 표현으 로 중국이 평화지향적임을 강조하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의 부상이 세계의 일극화를 견제하고 세계의 평화와 안 전을 도모하는데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안보와 관련 하여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독자적이고 대립적인 행보를 나타내어 갈등적 편승전략을 통해 현안별 지지 입장을 취할 것 임을 분명히 했다. 핵무기 개발 및 미사일 발사로 인한 갈등과 마찰이 대표적이다.북한 입장에서는 완충지대적 특성을 부각시켜 대중협력체 제를 끌어내어 체제보위뿐만 아니라 경제적 실리를 추구한 것으로 평 가할 수 있다.

기존의 북·중 동맹관계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의존관계임에도 불구 하고 상당한 대등성을 유지해 왔다.북한의 전략선호에 있어 가장 경향 성이 높은 전략은 편승(Bandwagoning Strategy)이다.한 국가가 편 승전략을 선택하는 목적은 강한 국가의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으나, 강대국이 조성해 놓은 유리한 국제적인 상황을 이용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북한은 중국과의 동맹관계를 적절히 활용함으로 써 체제유지를 도모하고 있다.

중국에게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한·중 관계가 한·미 동맹관계를 대 체하거나 초월할 수 없다는 한계성에 기초한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

한국과의 전면적 협력관계를 본격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하더라도 중 국이 한국에 있어서 미국의 특수한 지위를 대체하는 것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기본전제 위에서 중국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평 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오바마 행정부의 국제협력주의노선에 부응하여 미국과의 상 호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시키고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동북아의

‘평화환경’조성이 중국의 국가적 이익에 대단히 중요한 조건이라고 믿 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분쟁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확산되는 상황이 상징하듯이, 동북아의 안보질서는 협력적 요소와 갈등적 요소가 혼재되어 언제든지 역내 정세가 불안정 해질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193 더구나 북한과의 관계회복 및 협력 강 화를 전개한 시기적인 배경도 1990년대 후반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미· 일 동맹 및 미국의 TMD 등 안보 불안의 증가였으며 이런 상황에서 북·중 동맹이 공고화된 것이다.

실제로 2009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원자바오 총리는 북·중 수교 70 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양국관계를 대대손손 이어가자’며 혈맹적 양국관계를 대외적으로 과시하였다.또한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 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식량 제공 등 대북지원정책을 펼치기도 하였 다. 이에 대해 미국과 한국 등의 불만이 제기되었지만 ‘인도주의적’차 원일 뿐이라며 불만을 일축하면서 국제적 영향력을 과시하였다. 이후 북·중 협력관계는 중국의 국방부장, 길림성 성장(省長)등의 방북과 북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두 차례의 방중 등으로 더욱 긴밀해 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3_이수훈·박병인, “동북아 안보질서의 변화와 북한의 인식,” pp. 85~87.

이러한 중국의 부상은 북한에게도 다면적이고 양가적인 인식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즉 중국의 경제적 대국화가 북한의 경제난 극복에 유리 하게 작용할 수 있는 동시에 정치적 예속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또한 안보의 측면에서도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전이가 북한 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안보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북한과의 동맹관계에 대한 책임회피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기존 동맹관계를 깬 새로운 형식의 관계형성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와 동맹관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중국 4세대 지도부의 등장에도 기인하는 바가 크다. 유연한 개방전략과 친서방적인 성향이 강한 유학파의 득세는 북·중 간 협력관계를 약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이익추구 과정 에서 북한과의 전통적·혈맹적 동맹관계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이는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도 체제 수호를 위해 핵을 포 기하지 않으려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구소련이 해체된 1990년대 초반 이후부터 이미 수출입 시장의 타격과 에너지 위기를 겪는 상황에 서 중국의 경화결제의 요구는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더욱 배가시켰 다. 그 과정에서 북한과 한국의 국력은 더욱 심각한 격차로 벌어지게 되었고, 북한 입장에서 미국의 적대정책 또한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런 다면적인 위협 속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야말로 국 가 안보와 정권 보위를 위한 결정적인 도구라고 인식한 것이다.즉 북 한 입장에서는 전통적 동맹의 확고한 지지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 라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전이가 복잡하게 전개되고 ‘조선압살정책’ 을 의미하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지속된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핵 무기 개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194 주지하듯이 핵카드는 북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