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전략적 지원과 협력을 하는 관계로 전환되었다.북한은 중국과의 전략적인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행 태를 걷게 된다.
1. 장쩌민 정부의 3개대표이론과 대국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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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1992년 10월 장쩌민은 14대에서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의 발걸 음을 빠르게 하여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업의 더 큰 승리를 쟁취하자 (加快改革開放和現代化建設步伐奪取有中國特色的社會主義事業的更 大勝利)>는 보고를 통해 개혁·개방 14년간의 경험을 총괄하고 발전을 가속화할 것과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건립하자는 결정을 내리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바로 시장으로 하여금 사회주의 국가의 거시 적 조절 하에 자원배치에 대한 기초적인 작용을 하게 하는 것임을 지적
했다. 1992년 수정 통과된 중국공산당 당장에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건립을 명문화하였다. 이어 1993년 8기 전인대 1차 회의에서 통과된 수정헌법에도 중국경제가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처해있다는 것과 사회 주의 시장경제를 실시해야 함을 삽입하였다. 1993년 11월에는 14기 3 중전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건립에 있어 몇 가지 문제에 관 한 중공중앙의 결정(中共中央關於建立社會主義市場經濟體制若干問題
的決定)>을 통해 개혁의 전체적인 청사진을 그리고, 경제체제개혁도
전면적인 추진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었다. 또 농산물 배 급제를 전면 폐지하면서 곡물가격의 완전 자유화가 실시되어 농촌경제 도 시장경제와 마찬가지로 시장가격을 통한 경제관리가 가능해졌다. 또한 시장경제에서 개체경제와 사영기업의 역할이 확대되고 기존의 국 영기업을 국유기업으로 고치는 헌법수정을 통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추진하는 국유기업에 대한 민영화 개혁과 다양한 소유형태의 경제가 존재하게 되었다.60
20년 동안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현대화시키는 총설계사였던 덩샤 오핑이 1997년 사망하면서 명실상부한 중국의 당정군의 최고실권자가
60_김승채, 정치경제개혁의 30년 (서울: 교양사회, 2009), p. 25.
된 장쩌민은 중국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덩샤오핑 이론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치켜들고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건설 사업을 21세 기를 향해 전면적으로 밀고 나가자(高擧鄧小平理論偉大旗幟把建設有
中國特色社會主義事業全面推向二十一世紀)>는 보고를 통해 덩샤오핑
의 사상을 계승하여 중국 개혁·개방의 책임자로서의 야심찬 계획을 선 보였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바로 사회주의 조건 하에서 시장경제체 제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지적함으로써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발 전시키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1997년 중국은 비공유제 경 제가 중국 사회주의 경제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라는 것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중국은 비공유경제에 자본,기술 등 생산요소를 수익분배에 적 극 포함시켜 경제체제 개혁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장쩌민의 국가발전전략은 ‘3개대표론(三個代表論)’으로 종합되는 데 국내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여 중국공산당은 생존을 위해 ①선진생산 력의 발전요구, ②선진문화의 전진방향, ③광범위한 인민의 근본이익 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산당이 광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으로,지금까지 공산당이 노동자와 농민 의 전위정당으로서의 성격을 벗어나 광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집 정정당으로서의 성격전환을 의미하는 엄청난 전략적 변화이다. 이는 개혁·개방으로 중국사회의 중요 세력으로 성장한 자본가 및 지식인을 기존 인민의 개념에 포함하여 당이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전체 인민을 대표한다는 엄청난 정책적 전환으로,새로운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선 장쩌민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현실적 선택 이며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이다.이런 맥락에서 15기 6중전회에서 장쩌 민은 마르크스주의를 교조적으로 해석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장쩌민 의 3개대표이론은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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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Ⅲ-1 중국 개혁·개방 30년 일지
1978년 12월 덩샤오핑 개혁·개방 선언
1980년 8월 선전, 주하이 경제특구 지정
10월 산터우, 샤먼 경제특구 지정
1984년 4월 상하이 등 동남부 14개 연안도시 개방
1988년 4월 하이난 성 경제특구 지정
1989년 6월 텐안먼사태로 자오즈양 총서기 실각
장쩌민 당 총서기로 취임
1992년 1~2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10월 당 14차 전국대표대회,
사회주의 시장경제 공식화
1997년 2월 덩샤오핑 사망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2002년 11월 3개대표론 당장 삽입
후진타오 당 총서기 취임
2004년 3월 사유재산권 보호조항 헌법에 삽입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 사임
2005년 6월 상하이 푸둥신구 종합개혁시험구 지정
2006년 4월 텐진 빈하이신구 종합개혁시험구 지정
2007년 3월 물권법 통과
10월 후진타오의 ‘과학 발전관’ 당장 삽입
12월 우한, 창사 일대 2곳 환경경제특구 지정
장정에 마오쩌둥 사상,덩샤오핑 이론과 함께 중국 국가건설이념으로 채택되었다.
2000년부터는 중국 내부의 장기적이고 안정적 발전을 위하여 대외 지향적인 성장과 함께 내수 지향적인 성장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고 판단, 서부 지역 개발(西部大開發)에 착수하였다. 2001년 중국지도
부는 장쩌민과 주룽지를 중심으로 시장화 수준을 높이는 체제 내적인 개혁과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통한 국제 시장에의 편입 및 세계 화를 추진하는 체제 외적인 개혁에 노력하였다.이후 중국경제는 국제 무역기구 가입으로 인한 세계 질서 속 편입의 흐름 속에서 다른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적인 위상과 권위를 갖추어 나가게 된다.
나. 대외관계전략: 유소작위와 책임대국론
장쩌민 시기의 대외관계전략의 기조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을 심화시켜 사회주의 현대화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대내외 환경조성을 목표로 하면서도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수세적으로 내실을 다지는 ‘도광양회’를 넘어서 능동적으로 국제정세 에 대처하는 ‘유소작위’전략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중국이 서구의 중국위협론과 화평연변에 대응하여 필요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 는 대국의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전략이다.
1990년 제7기 제3차 전인대에서 리펑 총리는 정부공작보고를 통해 향후 국제관계에서의 전략 목표는 지속적으로 평화와 발전에 유리한 방향을 조성하면서 패권주의에 대한 반대를 견지하고 세계평화를 수호 하며 장기간의 세계평화 환경을 쟁취할 임을 밝혔다.이러한 국가발전 목표를 전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92년 중국은 외교정책의 기저로 국가 간의 자주독립, 평화공존 5원칙, 제3세계 국가와의 단결과 협력, 그리고 적극적인 대외개방과 반패권 등을 제시했다. 중국 개혁·개방을 통한 강대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의 기반 위 에서만 비로소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장쩌민의 대외관계전략은 기본적으로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전략의 연 장선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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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간 개혁·개방의 성과로 중국의 경제대국화에 대한 서구의 중국위협론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중국은 이중적인 대응전략을 가지고 있었다.우선 중국의 경제는 발전도상국가 수준으로 많은 취약성을 지 니고 있어 군사대국화,중국위협론 등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러면서도 대내적으로 중국은 누가 뭐래도 21세기는 중화민족과 중화문 명의 영광을 회복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강성대국임을 역설하고 있다.61그러므로 장쩌민시대 중국의 대외관계전략은 신국제질서구도 의 전환 속에서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전략의 연장선 위에서 성공적인 중국의 현대화를 건설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평화적인 국제환경을 조성 하겠다는 ‘유소작위’전략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62 1997년 중국 공산당 1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장쩌민 총서기는 21세기를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중국이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은 평화와 발전이 시대적 주제가 되고 있고 세계구조는 다극화추세로 가고 있으며,개혁·개방으 로 중국은 큰 성과를 이루었지만 선진국들과의 경제적·과학기술적 격 차는 크기 때문에 상당기간 전면적인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함 으로써만 21세기에 부강한 나라로 등장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그러면 서도 세계에는 아직도 냉전적 사고가 존재하며 패권주의·강권주의가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으며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낡은 국제경제질 서는 아직도 발전도상국가들의 이익을 해치고 있고 일부 강대국들이 인권을 빙자해 내정간섭을 꾀하고 있어, 중국은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수호하는 일에 적극 나설 것이며, 독립자주외교노선을 견 지하며 국가 간의 갈등은 무력보다 협상으로 풀어갈 것임을 천명했다.
61_人民日報, 1999年 9月 16日.
62_장공자, “21세기 중국의 국가전략과 한반도 정책,”한국동북아논총,제24집 (한국 동북아학회, 2009), p.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