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남북 간에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구조를 정착하기 위한 남북기본 합의서는 분단 46년만에 처음으로 남북 쌍방이 민족화해와 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체 를 지향하면서 통일로 나아가는 것을 약속한 민족의 장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196) 이러한 평가는 합의서 채택 이후 우리측의 기조연설문에서 남북기본합의서는 당사 자 해결의 원칙에 의해 적대적인 대결을 종식하고 공존공영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해 나가면서 평화통일을 실현하자고 한데서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북한도 “근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남북한사이의 첨예한 대결상태를 끝장내고 상호신뢰의 바탕위에서 민족적 단합을 이룩하여 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 가는데서 획기 적인 의의를 가지는 평화통일강령으로 된다.”라고 기본합의서의 의미를 강조하였 다.197)
196) 김진무,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 기본합의서”, 『북한』 (2008.7), pp.75-77.
197) 1991년 12월 24일 개최된 당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
이렇게 민족통일과 평화를 위한 남북기본합의서는 첫째,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 화의 제도화를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상대방체제에 대한 존 중, 내부문제의 불간섭과 비방, 파괴와 중상 중지, 전복을 위한 행위들의 금지 조항 등 평화공존에 관한 원칙에 합의하였고,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여 민족적 유대감 형성과 동질성을 회복하고, 이를 토대로 군사적 면에서의 현 정전상태를 공 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남과 북이 당사자로서 합의 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남북기본합의서는 선언적 수준을 넘는 실천적 합의문이라는 점이다. 남북기본합의서에는 화해, 교류, 협력, 불가침, 군비통제, 평화체제로의 전 환 등을 구체적인 실천과제로 상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3개의 부속합의서와, 4 개의 공동위원회를 설치함으로서 각각의 공동위원회를 설치함으로서 각각의 공동위 원회에서 민족의 공존과 공영에 대한 상호관심사에 대해 협상을 통해 실천할 수 있 는 대안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었다. 셋째, 남북기본합의서가 남북관계를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법제도적으로 규정한 문서라는 점이다. 남북기 본합의서의 국제법적 구속력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으나 법실증주의적 입장에서 규 명해보면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198) 마 지막으로, 남북기본합의서는 이후 남북관계에 있어 모든 합의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6‧15남북공동선언 및 10ž4남북정상선언은 물론이며 2000년 이후 수 많은 남북 교류와 협력을 위한 합의들과 제2차 남북 국방장관 간 회담 합의도 남북 기본합의서를 그 기준으로 사용하며 그 범위 내에 있음을 알 수 있다.199) 또한 한 반도 비핵화공동선언과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는 북핵문제를 해결할 제도적인 장
198) 「남북기본합의서」의 국제법적 구속력에 대해서는 첫째, 「남북기본합의서」는 단순한 정책선 언이 아니라 남북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법규범이다. 둘째, 「남북기본합의서」는 상호간에 국가 인 남과 국가인 북 사이에 체결된 것이 아니라 국제법상 ‘국제법 주체간에 문제에 의한 명시 적 합의’라는 점에서 그것은 조약임에 틀림없다. 셋째, 「남북기본합의서」는 전문에 민족 내부 상호간에는 ‘잠정적 특수관계’라고 했다. 즉 전문에서 남북한 관계는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 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명 시하였다. 즉 남북한 관계는 국제적 차원에서는 국제법상 주권국가간의 관계(1민족 2국가), 민 족 내부적으로는 국제법적 관계가 아니고 국내법적 관계도 아닌 특수한 지위의 관계라는 이중 법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넷째,「남북기본합의서」는 평화통일로 향한 첫 단계인 화해협력단계 에 적용되는 잠정성을 지닌 조약이다.
199) 통일부는 6・15 공동선언이 「남북기본합의서」가운데 실현가능하며 남북이 우선적으로 관심 을 지니고 있는 사항을 중점적으로 언급하였다고 하면서, 특히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 중 실천 가능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전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가 이행되는 것과 같은 성과를 달성해나가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03년 5월 29일, 통일부국민광장, ‘질문과 답변에서’
치를 위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즉 ‘의심동시해소원칙’에 의 거한 남북한 상호사찰, 군사기지사찰, 핵물질 및 핵시설물을 확인하는 특별사찰 등 당시 남북한 간에 논의되었던 내용들은 현재 진행 중인 북핵 폐기 협상에도 적용될 수 있는 합의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대한 논의는 9‧19 공동성명(2005년)과 2‧13 합의 (2007년)200) 그 후 북핵 문제에 대한 협상이 진전되면서 활발하게 전개 되었다. 특 히 2‧13 합의에 따라 북핵시설 폐쇄조치가 2007년도에 완료되고 북핵 시설 불능화 가 진행되었으며, 또한 4월9일 싱가포르 북・미합의에 따라 북한이 핵프로그램 신 고서를 6자회담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2‧13 합의의 이행을 완료하고 북핵 폐기 협상 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높였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합의 당시에는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 것으로 큰 기대를 받았지만, 1992년 합의 직후 사문화되었다. 그리고 2000년 정상회담 이후 2 차례의 국방장관회담을 비롯하여 장성급회담, 군사실무회담 등 각종 군사회담이 열 렸지만, 북한이 북핵문제, 체제위기, 그리고 대남적화전략 등을 이유로 남북 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특히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부정적 인 인식을 나타내고 있어서 남북기본합의서의 복원은 쉽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의 복원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대내외 여건 상 기본적으로 중장기적 국가전략으로 추진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의 복원 문제는 조급한 추진보다는 여건을 조성하고 면밀한 계획을 수립하여 준비해나가야 할 것이 다. 특히 북핵 협상과 남북관계 진전은 남북군사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한반도 상황의 발전에 대비하여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한 평화체제 구축방 안을 중장기적 과제로 삼고 추진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남북기본합의서는 긍정적 인 평가와 함께,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남북기본합의서는 합의 당시부터 이행가능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즉 남북기 본합의서가 전 세계적인 해빙 무드를 맞아 동구권과 소련 등 공산권이 붕괴하자, 북 한은 체제생존과 한국에의 흡수통일 우려 의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방어적인 전략에 서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 하였을 뿐, 합의를 이행할 의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200) 2007년 2월 13일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시설 폐쇄 및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에 따라 북한에 대해 에너지 및 경제지원을 하는 동시에 북・미 및 북.일 관계의 개선, 동북아 평화안 보협력체제 구축과 함께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을 논의하여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 문제 를 해결한다는 「2.13 합의」를 채택하였다.
둘째,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에 대해는 남북한 정부의 기본인식과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이루고자하는 정치적 목표가 서로 상이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 되자, 남한은 북한의 붕괴 가능성과 흡수통일을 논의하고,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핵무기 개발 등에 몰두하면서 미국과 갈등이 격화되고,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체제유지와 사회 안정에 전력을 쏟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 황을 고려하면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은 애초부터 남과 북에게 부차적인 것이었다 고 볼 수 있다.
셋째, 정치 군사적으로 냉전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남북한의 현실에서 남북기본합 의서와 같은 급진적인 화해와 협력을 위한 합의는 이행될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통일방안은 각각 자기 체제로의 통일이 목표이기 때문에 남북한의 평화공존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넷째,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201) 특히 남북기 본합의서가 구체적인 실천적 사항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정치 선언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으며, 실천적인 합의 또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 논란과 갈등의 소지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합의사항을 위반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규제의 내용과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202)는 것이다. 또한 남북기본합의서가 많은 이행사항을 담겨 있어, 이상주의적인 측면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 북기본합의서를 살펴본 봐 개선해야 할 점은 새로운 정책들을 만들어 내는 것 못지 않게 남북 간에 진행되어 오던 유의미한 관계성과 동력을 계속 살려 나가는 것, 특 히 정상회담의 성과를 실질적이고 내실 있게 활용하는 지혜가 바로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이다. 즉,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차별화와 단절보다는 보완, 발전시키는 데서 더 큰 효과를 얻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