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협력 간에 선순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면 한반도 평화체 제 구축은 매우 용이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주변국의 협력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208)
그러나 오늘날 동북아 안보정세는 북핵문제를 비롯하여 양안문제와 역사문제, 배 타적 민족주의, 영토문제 등 적지 않은 마찰요인이 상존하고 있으며, 미중 패권경쟁 이 노골화되고 있는 가운데 군비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동북아 안보질서는 탈냉전 이후 기대했던 협력보다는 신냉전적 경쟁과 갈등요인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동북아는 현재 유럽과는 달리 다자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지역적 협력기재가 없 는 가운데 안보적 측면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균형에 의해 움직 이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협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비군사적 분야의 교류협력은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나 냉전이 완전히 종식되 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동북아의 냉전적 기류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작동하 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대립요인은 북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을 강화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 미국과 중국의 협력관계가 중요하다. 미중 패권경쟁은 동북아의 신냉전 기류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을 제도화시키기 위해서 는 1970년대 초 유럽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된 CSCE를 동북아에서 실현시킬 필요가 있다. 1970년대 초 유럽질서는 비록 데땅뜨 무드가 흐르고 있었으나 동서독을 중심 으로 하는 NATO와 WTO 간의 냉전적 대립은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다자안보협력회의에서 1975년에는 헬싱키 최종합의서를 만들어 냈으며, 그 이후 1986년에는 스톡홀름 협약과 1992년에는 비엔나 협약으로 진전될 수 있었다. 또한 그 성과를 토대로 유럽에서는 재래식무기 군축협상인 CFE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결국 현재는 유럽은 다자안보협력회의인 CSCE를 OSCE로 기구화하여 운용 하고 있다.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북한의 참여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208) 전재성, “동북아 구상, 남북관계, 국제관계”, 『동북아구상과 남북관계 발전전략』(통일연구원, 2006), p.52.
는 첫째, 남북한 간 외교적 불균형을 해소시킬 필요가 있다.209) 탈냉전과 더불어 한 국은 중국 및 러시아와 수교한 이후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은 아직도 미국 및 일본과 수교를 맺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를 위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북한도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아울 러 한국을 비롯한 관련 국가들은 이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외교적 고 립에서 탈피하면 경제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체제위기로부터도 벗어 날 수 있 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북한의 무력도발은 사라질 것이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은 가능해질 것이다.
둘째, 북한이 느끼고 있는 체제위협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세습 독제체 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은 외부로부터 정권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들이 협력하는 기구인 다 자안보 레짐이 구축되어야 한다. 6・25전쟁 이후 남북한은 체제경쟁 속에서 대립적 상호작용을 전개해 왔다. 이는 남북한 모두 상대방의 성장과 발전을 자신에 대한 위 협요인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군비를 강화해 왔다.210) 이 러한 현상은 남북한이 협력하여 해결하기란 어렵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적대감정 과 불신 때문이다. 대립으로 일관되고 있는 남북관계가 동북아 협력관계와 선순환 될 수 있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더욱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셋째, 남북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역내 모든 국가들도 공존공영의 정책을 도모해야 한다. 북한 을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에 초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책이 중요하다. 따라서 상호 간 대북정책은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대북정책은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추구하는 공존공영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유리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체제로 고려할 수 있는 방 안으로는 6자회담을 재개하여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그 성과에 따라 다자안 보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배타적이지 않 는 수평적 한미동맹 기조 위에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 만 여기에서 짚어야 할 것은 미국이 유럽에서는 포괄적 동맹체제를 실현시켰지만,
209) 백종천, 『한반도 평화안보론』(세종연구소, 2006), pp.477-478.
210) 위의 책, p.478.
한반도에서는 유럽과 달리 다자간안보 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려 하고 있기에, 한국이 미국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한국은 동북아의 균형자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즉, 국력 또는 군사력만으로 주도할 수 있 는 하드 밸런스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규범, 의제 제안 등 협력과 통합의 제도화를 이룰 수 있는 화합적 균형자론도 있다. 한국은 동북아의 균형자로서 상황과 여건에 부합한 외교적 노력을 보다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제4절 남북한 군비통제 추진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장거리미 사일 시험발사 및 SLBM 개발 등으로 전략적 인내의 인계점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핵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 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 하여 제 분야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는 군사적 대립문제가 해결되어야 한 다. 남북 화해협력 사업이 크게 진전된 상황에서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지 않을 경 우에는 불안한 평화일 뿐이다.
남북한의 군사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군비통제가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한 간 군비통제 추진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실행은 불가능한 것 으로 인식되어 왔다. 분단 이후, 남북 간에 군비통제 추진에 대한 주장은 간헐적으 로 지속되어 왔으나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물론 남북한 군비통제 추진이 답보상태 에 놓인 근본요인은 북한에 있다. 즉, 북한의 선군정치와 변하지 않고 있는 적화통 일전략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 군비통제는 북한이 변하지 않을 경우에는 추진될 수 없는 정책이라는 인식을 갖기 쉽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군비통제를 추진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설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체제위기에 봉착해 있는 김정은 정권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따 라서 북한의 변화를 한반도 군비통제의 필요조건으로 설정할 경우 군비통제는 추진 불가능한 정책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반도 군비통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 군 비통제는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듯이 군비통제도 환경과 여건을 개선해 나가면서 점진적·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논문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폐기 이전에 구조적 군비통 제(structural arms control)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군사적 신뢰구축 (military confidence buildings)과 운용적 군비통제(operational arms control)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구조적 군비통제는 여건조성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