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동반자 관계의 개념
21세기 외교 관계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동반자 관계(partner- ship)’ 외교는 탈냉전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27) 냉전 이후 경제 글로벌화로 인한 무역량 증대, 인적교류 확대, 비전통 안보 이슈의 중요성 증가 등으로 국가 간 상호의존성이 심화하였고 이는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 등 각 영역에서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동반자 관계’의 중요성도 드러났다.28) 결국, 냉전 시절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분되어 있
26) Glenn H. Snyder, “The Security Dilemma in Alliance Politics,” World Politics, vol. 36, no. 4 (1984), p. 461.
27) 동반자 관계 외교는 ‘동반자 외교’ 또는 ‘파트너십 외교’라고도 불리고 있다.
던 세계 질서가 다극화되면서, 개별 국가들은 더 많은 ‘동반자’ 또 는 ‘친구’를 국제사회에서 찾는 것이 주요 외교 목표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즉 냉전 시기 국가 간 협력관계를 대표하는 개념이 ‘동맹’
이라면, 탈냉전 시기에는 ‘동반자 관계’가 ‘동맹’을 대체하는 대표 적인 국가 간 협력 개념이다.
‘동반자 관계’라는 용어가 현실 외교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개념 정의는 아직 명확히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동반자 관계란 국가 간 관계 설정 초기부터 군사‧안보 분야 교류를 추진하기보다는 경제 분야 교류에 초점을 맞춰 관계 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외교 형태라 정의할 수 있다. 혹은 동반자 관계를 국가 간 협조 관계인 제휴(alignment) 관계로 정의하 기도 한다. 제휴란 둘 혹은 그 이상의 국가들 사이(trans-state)에 서 발생하는 것으로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특정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정책적 협력을 상호 기대(mutual expectations of some degree of policy coordination)하는 것을 의미한다.29) 즉 동반자 관계는 동맹보다는 느슨한 형태의 상호 협력을 기대하는 제휴 관계 로 바라보는 것이다.
결국 ‘동반자 관계’ 개념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동반자 관계는 특정 가치관이나 정치적 이념보다는 ‘이익’을 공유하는 개념이다. 둘째, 동반자 관계는 잠재적 적 또는 위협을 상 정하는 동맹과는 달리 제3의 적을 가정하지 않으며, 동맹보다는 느 슨한 형태의 협력을 추구한다. 셋째, 동반자 관계는 원칙적으로 정
28) 도종윤, 동반자관계(Partnership) 외교연구: 한국-EU, 한국-러시아, 한국-중국 문서를 중심으로 (제주: 제주평화연구원, 2016), p. 1; 이희옥‧왕원, “중국의 ‘전략 적 동반자 관계’ 외교의 유형화 시론(試論),” 중국학연구, 제82집 (2018), p. 236.
29) Thomas S. Wilkins, “‘Alignment’, Not ‘Alliance’ - The Shifting Paradigm of International Security Cooperation: Toward a Conceptual Taxonomy of Alignment,” Review of International Studies, vol. 38 (2012), pp. 56~58.
치, 경제, 사회문화 분야 등 국가 간 포괄적인 협력을 지향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반자 관계 외교가 최근 국제사회에서 적극 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외교 형태(framework)라고 본다면, 국제정 치에서 오랫동안 국가 관계의 기반으로 작동하던 동맹과는 어떠한 차이 또는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첫째, 동반자 관계와 동맹은 등장 배경의 차이가 있다. 동맹의 경 우 무정부 상태의 국제질서 하에서 힘을 강조하는 국가 간 관계성에 근거해 등장한 개념이고, 동반자 관계의 경우 동맹과는 달리 국가 간 상호의존이 심화하면서 교류와 협력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등장 한 개념이기 때문에 모두 ‘국가 간 협력’을 강조한다고 할지라도 접 근법의 차이가 존재한다.30)
둘째, 국가 간 맺는 공식적인 협정으로 행동의 구속력이 있는 동 맹과는 달리 동반자 관계는 국가 간 관계성이 경직되어 있지 않고 유연성이 높다. 즉, 동반자 관계는 높은 수준의 제도화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타국과의 관계를 맺거나 중단할 때 발생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국가의 행동반경이 동맹보다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냉전 이후 여러 국가가 동반자 관계를 선호한 데에는 양자 간 동맹 관계로 인해 자국의 자치권(autonomy)을 양 보하지 않고 경제적 또는 안보적 협조 관계를 타국과 형성할 수 있 기 때문이었다.31) 또한, 동맹은 참여국 간에 공동의 위협이나 적을 상정하기 때문에 제3국과 새로운 관계 설정을 할 때 동맹 참여국과 의 관계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동맹국 간 ‘연루’와 ‘포기’라는 동맹 의 특성이 동맹 참여국이 행동의 반경을 제한한다. 반면 동반자 관 계의 경우 협력의 단계를 경제 분야로부터 정치‧군사 분야로까지
30) 이희옥‧왕원, “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외교의 유형화 시론(試論),” pp. 237∼238.
31) Georg Strüver, “International Alignment Between Interests and Ideology: The Case of China’s Partnership Diplomacy,” GIGA Working Papers, 283 (2016), p. 8.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간 관계 설정의 폭이 동맹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동반자 관계는 정치‧군사 이외 분야의 협력 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잠재적 위협 또는 적국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특징이 있으며, 제3국과의 관계 설정에도 상대적으로 자유 로운 장점이 있다.
셋째, 동맹이 ‘위협 중심적’이라면, 동반자 관계는 ‘목표 중심적’이 다. 동반자 관계는 상대국과의 관계에서 분쟁 가능성을 대비하기보 다는 공동의 이익과 목표를 먼저 추진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즉, 동반자 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외교 분야에서 협력을 통해 상호 이견 을 해소하고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 에 주로 비군사적인 분야인 인적교류의 확대, 경제 협력, 사회문화 및 과학기술 협력, 보건‧복지협력에서 협력을 추진하고 때로는 정 치 및 군사 분야에서의 협력을 하기도 한다.32)
나. 중국과 러시아의 동반자 관계 외교
동반자 외교는 21세기 국제관계의 새로운 외교 형태로 그 폭을 넓 히고 있으며, 동반자 외교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러시아 역시 동반자 외교를 자국의 국가 이익을 확대하는 측면에서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동반 자 관계 외교는 각각 어떠한 특징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32) Avery Goldstein, Rising to the Challenge: China’s Grand Strategy and International Security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5), p. 134;
Colleen Chidley, “Towards a Framework of Alignment in International Relations,” Politikon, vol. 41, issue. 1 (2014), p. 154, 재인용: 위의 글, pp. 8~9.
(1) 중국의 동반자 관계 외교
중국은 1950년 2월 소련과 「중소우호동맹호조조약(中苏友好同盟 互助条约)」을, 1961년 7월에는 북한과 「중조우호합작호조조약(中朝 友好合作互助条约)」을 맺은 이후 현재까지 타국과 동맹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또한, 1982년 9월, 덩샤오핑(邓小平)은 제12차 당 대회 에서 중국의 ‘독립자주외교(立自主外交)’를 제시하였고, 1984년 5월
‘불결맹(不结盟: 남과 동맹을 맺지 않는다)’, ‘불고립(不孤立: 남으로
부터 고립되지 않는다)’, ‘불대항(不对抗: 남과 대결하지 않는다)’,
‘불겨냥(不针对第三国: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 전방위진행외교
활동(全方位进行外交活动: 전방위적으로 외교활동을 추진한다) 등 의 ‘4불1전(4不1全)’의 방침을 제시하였다.33)
이 외교 전략의 핵심은 중국의 안보와 경제발전에 동맹외교는 유 리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 중국은 비동맹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고, 중국은 대결 중심의 집단정치를 반대하고 ‘전방위외교활동(全方位 外交活动)’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선언이었다.34)
이후 중국의 외교는 “군사 동맹은 아니지만 상호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양자 차원을 넘어 지역 또는 전 지구적 사안을 논의하고 장기적인 협력을 통해 발전을 추구하는 관계라는 뜻에서
‘전략 관계’를 활용하고 있으며,”35) 이 전략 관계의 구체적 형태가
‘동반자 관계’인 것이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동반자 관계’에 대한
33) 허문영‧마민호, 중국의 부상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대응 (서울: 통일연구원, 2011), p. 21; 饶银华, “论邓小平独立自主和平外交政策,” 探索, 3期 (2014), pp.
9~12; “南方周末:中国“独立自主”外交政策的不变与变,” 南方周末, 2002.12.12.,
<http://news.sohu.com/10/74/news204917410.shtml> (검색일: 2020.10.11.).
34) 예쯔청 저, 이우재 역, 중국의 세계전략 (서울: 21세기 북스, 2005), pp. 82∼83, 재인용: 허문영‧마민호, 위의 글, p. 21.
35) 강준영, “전략, 동반자, 협력... 단어와 수사보다 내실에 주목해야,” 신동아, 2009.12.4.,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8963/2> (검색일: 2020.6.14.).
정의는 내리지 않았으나, 중국 내 전문가들은 이를 ‘공동의 이익’과
‘협력 관계’라고 해석하고 있다(<표 Ⅱ-1> 참조).
<표 II-1> ‘동반자 관계’에 대한 중국 연구자의 정의
연구자 ‘동반자 관계’에 대한 정의
쑤하오(苏浩) “서로 적이 되지 않고 공동의 이익을 가지며 협력할 의사가 있다는 특징이 있는 국가 협력 관계”
먼홍화(门洪华) “국가 간에 공통의 이익을 갖고 공동 행동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국제협력관계”
볜무둥(卞慕东) “구동존이(求同存异)의 바탕 위에서 협력하는 국가 관계”
닝사오(宁骚) “협력적 상호 이익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평등한 방식으로 교류하는 것”
판산쥐(潘珊菊)‧ 안둥쉐(安冬雪)
“국가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정치‧경제 등의 영역에서 협력을
추구하는 국제관계”
왕차오룽(王巧荣) “국가 간에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협력 관계”
출처: 현미정,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실효성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0, p. 22의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 재구성
중국의 동반자 외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하여 ‘동반자
관계’를 수식하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중국은 동반자 외교
를 추진하면서 국가 간 관계성의 정도를 구별하기 위해 전략(战略), 합작(合作), 협작(協作), 전천후(全天候), 전면(全面), 전방위(全方位), 호혜(互惠), 창신(创新) 등의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선 전략(战略)은 전체적인 국면을 지도하거나 결정하는 책략으 로 중국에서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양자 관계의 측면보다는 전체 적인 국면의 측면에서 국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수립하는 관계이 다.36) 첸치천(钱其琛) 전 부총리 또한 동반자 관계는 전략적으로 전
36) “战略,” 漢典, <https://www.zdic.net/hans/%E6%88%98%E7%95%A5> (검색일:
20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