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본 <의무교육역사과정표준>에 나타난 중국의 근대사 인식의 가장 큰 변 화는 막스주의 유물사관을 강화하여 근대사를 재정립한 것이다. 근대사 인식변화 의 주요부분은 ‘보편과 특수’의 문제 즉 세계사의 기본법칙과 중국사의 관계설 정 문제이다.
중국근대사를 아편전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에 이르는 시기로 정의하고, 중국근대사는 반식민지․ 반봉건투쟁의 역사이며, 결국 민족독립을 성취하고, 나
아가 현대화 실현을 위한 기초를 닦은 승리와 성공의 역사라고 규정하였다. 이는 세계사의 기본법칙과 구별되는 나름의 중국적 근대사인식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 가할 수 있다.
중국은 근대기에 자본주의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사회주의로 진입하여 현대 화를 실현하였다는 인식하에 중국근대사를 서양식 역사발전 패턴인 자본주의사 회와 연관짓지 않고 자기정체성의 재확립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재정립하고 있다.
이에 수정본 <의무교육역사과정표준> 중국근대사 서술과 <과정표준>에서 근대 화란 용어와 자본주의 관련서술은 모두 삭제되었다.
중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서양이 주도한 세계근대사에 대해서도 재해석을 하였다. 세계근대사에서 자본주의사회의 형성은 서양 및 그 식민지역에서 나타난 현상이며, 단지 세계근대사가 서양주도로 진행된 것은 서양 열강들이 자본주의적 생산․과학기술의 축적과 식민확장을 통해 세계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보 았다. 그 결과로 세계는 고립․격절의 상태에서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 형성되 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것이 서양이 세계근대사에서 한 역할이라고 보았 다.
중국은 세계근대사 속에서 서양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힘의 원천, 즉 서방 서 진, 동방후진의 원인은 바로 서방의 체제 우월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발전 과 시장의 확대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현재 중국의 발전은 근대기 중국인 민 모두가 합심하여 自强․救富운동을 전개하여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내고 사회 주의 혁명을 완수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중국공산당은 서방선진의 원천이었 던 과학기술과 시장확대를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에 입각한 개혁․개방정책과 과학발전 추구를 통해 성취해가고 있다는 ‘신중체서용’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32)
나아가 세계근대사의 결과물로 전 세계가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를 형성한 이 후의 세계현대사에서는 과거역사 속에서 민족 간 交往․交融을 통한 공동번영의 역사를 진행해온33)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는 ‘신중 화주의’적 입장에서의 ‘중국적 보편주의 구상’이 수정본 <의무교육역사과정표준>
에 담겨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32) 중국근대사 부분부터 중국공산당의 역할은 크게 강조되었고,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 해 중국의 모든 역사를 정통성에 기반하여 계승하였고, 모든 중화민족을 대표한다는 인식을 강 조하였다.
중국 「역사과정표준」상의 근대사 인식의 변화 에 대 한 토론문
구 난 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반채영 선생님의 연구는, 교학대강으로부터 과정표준으로의 전환, 한중 및 중일간의 역사 갈등, 역사교육에 대한 정치사회적 요구 등 다양한 역사교육 지형 변화에 직면한 중국이 2011년 고시한 역사과정표준 수정본과 그에 의거한 새 교과서를 통해 어떠한 근대 인식을 형성시키려 하는가를 심도있게 다룸으로써, 현재 중국 역사교육의 위치 그리고 역사교육이 당면한 정치사회적 요구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뜻깊은 논의라고 생 각합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근대사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발표문이 다루고 있는 근대 관련 역사 기술과 관련하여 세세한 학술적 논쟁을 연계시키지는 못하고 다분히 상식적 수준에서 몇가지 궁금한 점과 역사교육적 견해를 중심으로 토론에 임하겠습니 다. 이 점, 우선 양해를 구합니다.
전반부에서는 중국사, 후반부에서는 세계사를 대상으로 근대의 시기 설정 문제를 다 룬 연후에 주요 주제별 검토를 통해 근대사의 성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태평천국의 난과 의화단 사건을 反봉건보다는 부패암흑에 대한 저항으로, 양무운동과 무술변법은 자본주의적 시도가 아닌 求亡의 논리로, 신해혁명 후 항일투쟁에 이르는 과정은 중국 공산당과 연계하여 진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중국 근대는 반침략, 반봉건을 성취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여 국가부강과 인민부유의 기초를 닦은 시기로 수렴하고 있다.
또한 세계사의 경우 서양 주도의 종향적 발전과 중국 독자적인 횡향 발전을 구분하여 서구식 근대화 과정과 다른 중국 근대화를 명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을 세부적 사실을 들어 서술하고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이견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인식 이 갖는 기본적인 한계와 문제점이 없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몇가지 궁금한 점을 묻고자 합니다.
1. 중국의 근대사 인식이 전근대사에 대한 인식과 어떻게 통합적으로 연계되고 있 는가 하는 점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전근대사를 한중중심의 민족통합(다원일체 격국)이라는 일관된 논리로 맥락화하고 역사상 전개된 민족간 대립은 모두 계급투쟁 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근대 인식 또한 이러한 연장선에서 구성되고 있지만 민족통
합이 완성되었다는 전제에서는 아편 전쟁 이후 전개된 복잡다단한 현상을 또다른 계 급투쟁적 관점으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이 지점에서 발표자는 反봉건을 부패암흑에 대한 저항으로 완곡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부패 암흑에 대한 저항, 구망을 향한 노력, 중국 공산당의 前史로서의 재해석은 민 족문제와 애국주의의 맥락을 근대에 가동하기 위한 필연적 논리로 채택되었다고 생각 합니다만 이러한 논리적 구성이 갖는 한계(모순성)나 문제점에 대한 첨언이 필요하기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기대가 있습니다.
예컨대 서구적 근대의 부정, 반봉건 척결의 부패암흑척결 대치, 반침략과 연계한 구 망․구국 등의 하위 요소가 상호 정합적인 것인지, 멸만흥한 등과 같은 역사적 현상처 럼 이 논리로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은 없는지 등등 잡다한 의문이 떠오르기 때문입니 다.
2, 서구적 근대의 부정은 중국사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세계사 이해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작동되고 있는데 이러한 논리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현대 중국의 이중성 에 어떻게 작동될 수 있을지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구미 주요국가와 일본의 혁명이 국가발전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주도가 중국 발전 원동력을 변호하고 있다고 지적하셨는데 서구적 근대 를 중국과 단절시키려는 입장과는 배치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세계사 서술에 있어서 서구적 근대를 서구에 한해 작동한 것으로 구분짓고 중국 사 내의 근대를 부정하고 궁극적으로 신중국의 출현을 현대의 총화점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하였지만 정작 개별 국가사에 대한 평가는 이러한 대원칙을 비켜서고 있 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컨대 구미 주요국가나 일본의 근대화가 국가 발전을 이룩하였다는 것(물론 이것 이 중국공산당 주도의 개혁을 변호하는 근거로 보고 있지만), 국민당에 대한 평가 중
‘미 제국주의의 지원하에서’ 라는 서술을 삭제한 것 등은 일정정도 미국이나 일본 등 타국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적 대립을 걷어내기 위한 자기검열적 기제는 아닌가 합니 다. 서구 근대에 대한 단절과 배제적 인식이 자국이 처한 현재 과제와 미래 전망에 발 목을 잡는 지점이 존재하고 있다는 하나의 사례로 연결될 수도 있겠습니다.
4. 서론에서 과정표준 수정본과 새 교과서는 중국 내의 제공정의 성과, 장기 국가발 전 계획을 포괄한 새로운 역사인식의 반영이라 지적하였으면서도 정작 본문이나 결론 에서는 양자에 대한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행간을 통 해 현재 또는 미래 중국의 국가 비전과 연계된 역사 인식을 곳곳에서 읽을 수는 있었 습니다만 공정의 성과 등에 대한 손에 잡히는 언급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근대 라는 시대 특성으로 인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수정본 및 새 교과서의 변화 중 공정의
중국 역사과정표준상의 근대사 인식의 변화 에 대한 토론문 (구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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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를 담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으나 미처 서술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합 니다.
5. 다음에서는 역사교육적 측면에서 본 소견을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2장에서 애 국주의 강화를 위한 역사교육의 개혁을 언급하면서 ‘시간흐름에 따른 계통성의 강조’,
‘점-선 결합 방식’ 등이 또한 막스주의적 역사인식을 주입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지적 하였습니다만 역사교육적 관점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역사적 사실 중심의 주입암기식 역사교육으로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 는 기능(skill)과 능력(ability)을 습득할 수 있는 학습방법과 이를 위한 내용의 전환이 강조되어 왔으며 역사교육계 내에서는 역사학이라는 학문적 특성과 접목하여 설명해 석(narrative)적 방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물론 이것이 최신의 동향이라고 할 수는 없 으나 역사교육의 새로운 틀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유의미한 과제입니다). 위 의 변화는 이러한 역사교육적 세계적 추이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 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교학대강으로부터 과정표준으로 교육과정(curiiculum)의 유형을 전환한 기본 취지를 감안해 본다면 재고의 여지가 있습니다.
6. 이 밖에도 과정표준의 진술 중 학생들의 학습결과로 나타나는 행동 변화를 ‘안 다’, ‘열거한다’, ‘진술한다’보다는 ‘인식한다’, ‘요해한다’로 표현하고 있는 것 또한 역사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반영한 것은 아닐런지요? 了解의 사전적 의미는 ‘자세하게 알다’, ‘조사하다’, ‘알아내다’라고 진술되어 있는 바, 흔히 교육학에서 회자되는 자기주 도 학습적 개념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일반적으로 역사교육에 있어서 역사적 사고력은 연대기적 이해, 역사적 탐구, 역사적 상상, 역사적 판단 등으로 구분하고 있 습니다. 이에 의하면 적어도 요해는 연대기적 이해를 넘어서 역사적 탐구 또는 그 이 상의 수준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혹 중국적 표현으로서 ‘요해한다’라는 의미가 좀 더 특정 사실이나 인식을 강하게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취지가 담긴 것인지 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주 20에 언급된 요해에 대한 서술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 다.)
만약 이러한 사견이 부분적으로 타당하다면 중국의 역사교육은 중국공산당 영도의 신중국과 미래 발전이라는 역사인식을 주입해야하는 동시에 단순한 사실 이해가 아닌 스스로 탐구하고 인식하도록 하는 교수 학습 방법의 개선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추구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양자의 연결 지점 내지는 양자의 경합 지점을 함께 읽 어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제가 역사교육적 관점을 과도하게 투영하고 있 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7. 마지막으로 한국 역사교육이 당면한 문제와 연계한 저의 고민을 공유하고 싶습 니다. 중국의 역사 인식이 문명개화보다는 저항-자강에 힘이 쏠리고 있는 반면,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