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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대 여성들

Dalam dokumen 북한 여성의 일상생활과 젠더정치 (Halaman 149-167)

가. “다른 여자들과 다른” 처녀 장사꾼 (1) 장사에 일찍 눈 뜬 어린시절

사례 12는 북한에서 경제난이 시작되었던 1990년대 중반 평안남 도의 도시에서 노동자가정의 맏딸로 태어난 20대 중반의 여성이다.

갓난아기 때는 배급이 끊겨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부 모님이 일찍 장사를 시작하면서 소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당시 그 동 네에 한두 대밖에 없었던 자전거를 갖춰 놓고 살 정도로 풍족한 생활 을 했다. 아버지는 직장에 적(籍)만 걸어놓고 장사를 했는데, 돈을 많이 벌어서 시에서 이름이 자자할 정도였다. 장사를 유지하기 위해 간부에게 지속적으로 뇌물을 주어야 했는데, 뇌물을 받지 않은 간부 가 신고를 해서 장사밑천을 빼앗기는 일이 몇 차례 반복됐다.

사례 12는 중학교 때 대학에 진학해서 간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 지만, 점차 사회현실을 알게 되면서 차라리 장사를 해서 돈을 잘 버 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장사를 한참 잘 될 때, 저도 대학 가려 고 생각했댔는데, 북한에서는 아무리 대학가도, 여자가 뭐 간부 한 다 해도 힘들어요. 하긴 해도, 여자 간부도 많은데 막 간부들 시달 림 받고 뭐 할래면 차라리 장사해서 나 그냥 책임자하고서 사장하 고 있는 게 낫지, 물주 하는 게 낫지. (중략) 다른 언니들도 이렇게 무슨 시내에서 의대, 이런 대학도 나오고도 대학 나온 거 간판이지 하나도 필요 없는 거예요. 그냥 그저 다 장사하는 거예요. 대학 나 와서 막 국수장사하고 비리비리 하면서 기지지해서 돌아댕기는 사 람들이지. 차라리 나는 대학 안 나오고 그냥 어릴 때부터 장사했으

니까 장사 물계도 더 밝구. 그냥 그러는 게 더 나은 거예요. 제가 대학 졸업증 하나 필요하다 이러면 그냥 대학에 가서 제일 높은 교 수들한테다 다 돈 찔러주고 대학졸업증 하나 한 2년 뒤에 사면 되 는 거예요. 그래서 굳이 그런데 고민을 안 했어요. (사례 12 구술녹 취록, 2019/10~11)

위의 구술은 대학졸업장도 살 수 있다는 돈의 위력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감각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렇다 할 가정배경이 없는 노동자 가정 출신 여성의 젠더정치에 대한 간파를 보여준다. 사례 12는 북 한에서 여성이 대학을 졸업해도 간부를 하는 것이 쉽지 않고, 간부 를 한다고 해도 쉽게 출세하기는 어렵다는 성차별 구조를 10대 중후 반인 중학교 졸업 전에 인지한 것이다. 그는 뒷배경 없는 여성에게

‘간판 ’에 불과한 대학입학 대신 장사를 통해 돈을 버는 길을 별 ‘고민

없이’ 선택한다.

구술자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장사를 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장사 밑천을 몰수당하게 되었다. 이후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홀로 산골로 들어갔고, 사례 12는 아픈 어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하 는 가장의 처지가 되었다.

(2) 처녀장사꾼으로 자리잡다

사례 12는 2010년대 중반에 중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에 적(籍)을 걸어두고 열여덟 나이에 장사를 시작한다. 첫 장사는 리어카를 끌고 지역에 있는 공장에 가서 물품을 사서 싣고 와서 소매상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처음 2년간은 죽을 먹으면서 힘들게 장사를 했고 많이 울 기도 했다. 장사의 기반이 된 것은 아버지의 거래처와 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장사하시는 걸 종종 따라다니며 쌓았던 장사에 대한 “식견

ˮ

이었다.

아버지도 직장에 적을 걸어 놓고 장사를 하신 거죠. 그런데 장사 를 했는데 아버지가 너무 크게 장사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다나니 까 그렇게 돼가지고 이젠 아버지 이름이 너무 이렇게 자자해서 바 닥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돼가지고, 그 자리에. 아버지가 하댔으 니까 제가 그 바탕이 있잖아요, 아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그 바탕 으로 제가 시작한 거죠. (중략) 아빠는 마음이 또 착해가지고 그냥 다 그냥 그저 안 줘도 되는 작은 간부까지 조그만 거까지 다 줬거든 요. 차라리 저는 아버지 사례를 보고 저리 큰 간부한테 붙었어요.

작은 간부들 다 떼버리고. 그리고 그냥 잔간부가 와서 어쩌고저쩌 고 하면 말시키지 말라고 그러고, “너 가만두지 않겠어.ˮ 이러면 간 다음에 큰간부한테 전화해서 무슨 “부부장 동지, 이렇게 됐는데 이 거 도와주십시오.ˮ 하면 “알았어, 걱정말아.ˮ 그럼 그 순간에 없어 지는 거예요. (사례 12 구술녹취록, 2019/4, 13)

위의 인용문을 보면, 사례 12가 아버지로부터 배운 ‘식견’이 무엇 인지 알 수 있다. 그는 그것을 “어떤 품목으로 장사를 하는지

ˮ와 “사

람과 사업은 어떻게 하는지

ˮ라고 요약하여 말한다. 사례 12는 아버

지가 구축해놓은 장사 품목의 공급처와 판매처를 바탕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장사를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어떤 간 부와 ‘사업’을 해야 하는가이다. 북한에서 시장활동은 늘 합법과 불 법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이고, 규모가 큰 장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돈주들은 안정적으로 장사를 하기 위해 권력을 가진 간부들 과 결탁하여 사경제활동에 대한 보호를 받는다. 합법적 보호막은 불 완전한 것이어서, 언제든지 더 큰 권력에 의해 불법화될 수 있는 여 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사례 12의 아버지가 장사를 하는 과정에서 재산을 압수당한 것은 이 결탁 과정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커지는 과정에서 몇 차례 이런 일이 있었고, 사례 12는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잔간부

ˮ가 아닌 “큰간부 ˮ와 연계를 형

성했다.

“사람과의 사업ˮ은 간부와의 결탁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포함한다. 잘 팔리는 물건 을 많이 사다 놓고 많이 팔아야 이익을 창출하고 자본금도 불릴 수 있는데, 초반에는 돈이 잘 돌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다. 수금이 안 돼서 식량도 떨어지고 초기 장사밑천마저 잃을 상황이 되자, 사례 12는 수금을 하기 위해 도끼를 들고 직접 거래자를 찾아갔다. 그는 대금 지불을 미루는 거래자에게 “나 도끼 들고 이 집안 재산 다 까고 너 죽고 나도 죽을래.ˮ라고 위협하여 돈을 받아냈다. 이 일로 그가

“어려도 만만치 않다.ˮ는 소문이 나면서 여러 군데에서 못 받았던 빚

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사례 12는 그릇, 비닐방막, 옷, 파철, 철근 등 취급품목을 하나씩 불려가다가 마지막에는 돈장사까지 하 면서 큰 돈을 벌었다.

북한에서 보호자가 변변히 않은 어린 나이의 여성이 장사를 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지만, 사례 12는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갖는 제약을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하고 오히려 여성이라는 점을 잘 활용했다. 북한에서 여성이 혼자 장사하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육체적 완력을 쓸 수 없고 자신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례 12는 이삼십 대 남성 두 명을 경호원이 자 수금원으로 고용하였다. 처음에는 이들에게 북한돈으로 30만원 씩 주었다가 일하는 것을 보고 믿음이 생기면 더 많은 돈을 지급했 다. 나중에는 고용한 남성들에게 자신의 친척을 중매해주고 결혼을 시켜서 혈연관계를 만들었다.

내가 좀 장사가 되면서 남자들을 고용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 해가지고. 그래서 고르는 거 완전, 진짜 막 사람 한 명 고르는 거 거의 5개월 먹었어요. 그저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냥 “나 이런

사람 구하고 싶다.ˮ 이러니까 사방에서 들어오는 거예요. 나 좀 고 용해 달라고. (중략) [고용한 남성들에게] 여자를 일단 붙여줘서 마 음이, 가정적으로 안착을 시켜야지. (중략) 그러니까 가장 신뢰하 는 사람들이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제 가족 지키고, 그냥 가족처럼 돌봐주고 가족에서 뻗어져서 저리 먼 친척을 만드는 거예요. 그래 야 그게 비밀도 보장되고. 그러니까 그러면 제 가족도 먹고 살게 만드는 거잖아요. (사례 12 구술녹취록, 2019/15~16)

사례 12는 여성이어서 오히려 장사가 용이한 측면도 있었다고 말 한다. 아버지가 직장에 적(籍)을 붙여두고 장사하기 위해 여기저기 뇌물로 많은 돈을 내야 했던 데 비해, 여성인 그는 적은 돈을 내도 되었고, 간부들에게 필요한 부탁을 하는 데도 여성이어서 유리한 점 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간부들이 또 와서 그러거든요. 계속 와요. 그래가지고 달라는 대 로 다 주면 저희가 먹을 게 없거든요. 그래서… 아버지는 남자니까 그런데, 저는 여자니까 간부들한테 그냥 뭐 웃음 한 번 지어도 그렇 고, 그냥 이렇게 대처하기가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업하기가 여 자가 더 편하더라고요. (사례 12 구술녹취록, 2019/4)

위의 구술은 구술자가 공식적인 영역에서 여성의 사회적 성취가 불리한 젠더불평등 구조를 간파할 뿐만 아니라, 비공식적 영역에서

“웃음 한번 짓는ˮ 것과 같은 방법으로 오히려 젊은 여성이라는 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젠더불평등 구조의 틈 새를 공략하는 세 세대 여성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3) 이성교제와 결혼: “난 다른 여자들과 달라”

사례 12가 중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는 딸의 이성교제를 심하게

통제했다. 나중에 간부집으로 시집보내야 하는데, 연애를 해서 소문 이 나면 안 된다고, ‘평민집 아들

’과 연애를 하면 집에서 내쫓겠다고

했다. 그래서 학급의 다른 친구들이 이성교제를 할 때, 사례 12는 쫓아다니는 남자친구들을 다 거절했다. 사례 12가 중학교를 졸업하 고 아버지가 다른 지방으로 가신 뒤에도, 아버지가 무섭다고 소문이 나서 사귀자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동창생 한 명이 계속 따라 다녔다. 사례 12는 자신도 의지할 데도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그 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 당시 군인이었던 남자친구가 휴가를 나오면 같이 길거리를 걸어 다니거나 근처의 경치가 좋은 곳이나 유적지를 돌아다니면서 데이트를 하였다.

사례 12는 결혼하면 구속될까봐 두렵고 가사노동도 하기 싫어서 처음에는 결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2년쯤 만나다보니 남자친구 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집안에 소개해서 어머니에게 교제를 승인받았다. 남자친구네 집안도 장사를 해서 돈이 많았지만, 사례 12는 자신이 경제적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남자친구 집안의 경 제력을 그다지 매력적인 조건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북 한 여성들은 결혼하기 이전이라도 예비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기 마 련이고, 시댁이 경제적 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지만, 사례 12는 오히려 결혼하기 전에 시어머니를 잘 길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친구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얘기했다. 어려서부 터 집안일을 많이 해보지 않았고, 장사를 하면서도 어머니가 해주시 는 밥을 먹고 다녔던 사례 12는 “색시가 반찬을 못하면 불행하다.ˮ고 하는 남자친구에게 자신은 요리를 할 줄 모르고 집안일 할 시간도 없으니, 결혼하면 밥을 해주든지 집안일 하는 사람을 따로 두어야 한다고 대응했다.

Dalam dokumen 북한 여성의 일상생활과 젠더정치 (Halaman 149-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