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셰익스피어와 동성애 문화 콘텐츠
2. 소네트 화자의 동성애적 경향
나는 나 자신을 몰수당하리라, 그래도 위안이 되게 제 2의 나를 그대가 돌려준다면.
하나 당신은 그리 아니 할 거요, 그도 자유가 되지 못할 것이라, 그대는 탐욕이 많고, 그는 마음이 곱기 때문이라.
그는 나를 위하여 보증인이 된 줄만 알았는데 그 증서로 그대는 그를 속박했어라.
그를 그대의 아름다운 담보로써 취득하려 하는 아! 그대는 고리대금업자, 모든 것에 이자 붙이고, 나를 위하여 채무자가 된 그를 고소하도다.
이리하여 나 그를 잃었노라, 나 당신에게 받은 학대로.
나는 그를 잃고 당신은 그와 나 둘 다 얻었어라.
그는 금액을 지불했지만 나는 자유롭지 않아라.
So, now I have confess’d that he is thine, And I myself am mortgaged to thy will, Myself I’ll forfeit, so that other mine Thou wilt restore to be my comfort still:
But thou wilt not, nor he will not be free, For thou art covetous, and he is kind;
He learned but surety-like to write for me, Under that bond that him as fast doth bind.
The statute of thy beauty thou wilt take, Thou usurer, that putt’st forth all to use, And sue a friend came debtor for my sake;
So him I lose through my unkind abuse.
Him have I lost; thou hast both him and me:
He pays the whole, and yet am I not free.
이러한 구성은 시인으로서 화자인 셰익스피어가 양성애자이며, 미남 청년에게 거부당하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애정관계를 검은 여인에게서 대리 만족하는 형태를 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홍기영에 따르면 전체 소네트를 3단 계로 나누고 욕정에 대한 혐오감과 미남 청년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 그리고 그 사랑의 예술적 승화라는 순서로 분류한다(홍기영 189). 이 시각은 이상화와 몰 입 뒤에 찾아온 불가피한 환멸감으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 비극적인 현상을 사랑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파악한 것이다. 또한 페퀴니(Joseph Pequigney)는 전편의 내용이 사랑의 도입, 성장, 성숙, 쇠퇴의 순서로 되어 있다 고 주장하였으며(Pequigney 5), 램지(Paul Ramsey)는 1595년에서 1599년까지
의 저술 시점에 따라 구성되었다고 언급하였고(Ramsey 16), 버로우(Colin Burrow)는 이 모든 이야기가 일관된 연속물이라고 보고 있다(Burrow 4). 그러 나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시에 배열된 순서와 다르게 화자가 검 은 여인과 먼저 교제하였고, 이후 2세를 출산하라는 권유와 미남 청년에 대한 한없는 애정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즉 헌정 대상이 되는 미남 청년을 아끼는 화자의 마음이야말로 작가가 소네트 를 저술한 근원적 동기인 것이다. 이러한 애정관과 관련하여 한도인은 사랑이 변 모하는 양상으로서 소네트 제20편과 제146편 그리고 제116편을 소개하면서 이 성애와 동성애를 육체적 욕망과 영혼의 구원으로 설명하고, 셰익스피어가 전하고 자 하는 진정한 사랑은 몸과 영혼이 하나로 결합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한도인 103). 즉 인생의 선배이기도 한 화자는 “나의 정열을 지배하는 여성과 같은 남 성”(the master-mistress of my passion)인 젊은이에게 “더러운 시간을 팔아서 신성한 시간을 사라”(Buy terms divine in selling hours of dross)고 조언하면 서, “사랑은 . . . 심판일까지 견디어 나가느니라”(Love . . . bears it out even to the edge of doom)고 전한다는 것이다.
제20편
나의 정열을 지배하는 여성 같은 남성 그대는, 자연의 손으로 화장한 여인의 얼굴을 갖고 있도다.
그리고 여자의 고운 마음씨, 그러면서도 부정한 여자와 달라 변할 줄을 몰라라.
여인의 눈보다 황홀한 그대의 눈은 허위로 움직이지 않고, 보는 것마다 도금한 듯하여라.
용색(容色) 아름다운 사나이로 모든 용색을 제어하며, 남성의 눈을 유혹하고 여성의 혼을 현혹시키도다.
그대는 처음에 여자로 태어날 것을, 자연이 만드는 도중 사랑을 느껴, 하나를 더 첨가하여 나를 실망시켰도다.
나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물건을 달게 하여.
여자의 기쁨을 위하여 만들어진 그대이니,
그대의 사랑만이 내것이요, 그것은 그들의 보배로다.
A woman’s face with nature’s own hand painted, Hast thou, the master-mistress of my passion;
A woman’s gentle heart, but not acquainted With shifting change, as is false women’s fashion:
An eye more bright than theirs, less false in rolling, Gilding the object whereupon it gazeth;
A man in hue, all ‘hues’ in his controlling,
Which steals men’s eyes and women’s souls amazeth.
And for a woman wert thou first created;
Till Nature as she wrought thee, fell a-doting, And by addition me of thee defeated,
By adding one thing to my purpose nothing.
But since she pricked thee out for women’s pleasure, Mine be thy love and thy love’s use their treasure.
제146편
이 죄 많은 이 흙덩이의 중심이며,
너를 싸고 있는 이 육체의 반란을 겪는, 아, 가련한 영혼이여, 왜 너는 안에서는 번민과 결핍을 맛보면서
바깥 벽은 그렇게 화려하게 칠하느뇨?
빌린 기한이 짧고 스러져 가는 저택에 왜 그렇게 큰 비용을 쓰느뇨?
이렇게 사치스런 육신의 상속자인 벌레들에게
그 전체 비용을 먹게 하려느뇨? 이것이 네 육신의 종말이뇨?
하다면 영혼이여, 네 노복인 육신이 손해 보게 하고 네가 살라, 노복으로 하여금 너의 양식을 증산하느라고 애쓰게 하라.
더러운 시간을 팔아서 신성한 시간을 사라, 속은 살찌게 하고 겉은 더 부유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여 너는 사람을 먹는 죽음을 먹고 살라.
죽음이 한 번 죽으면 죽는 자들 다시 없으리라.
Poor soul, the centre of my sinful earth, Feeding these rebel powers that thee array, Why dost thou pine within and suffer dearth, Painting thy outward walls so costly gay?
Why so large cost, having so short a lease, Dost thou upon thy fading mansion spend?
Shall worms, inheritors of this excess, Eat up thy charge? Is this thy body’s end?
Then soul, live thou upon thy servant’s loss, And let that pine to aggravate thy store;
Buy terms divine in selling hours of dross;
Within be fed, without be rich no more:
So shalt thou feed on Death, that feeds on men, And Death once dead, there’s no more dying then.
제116편
진실한 사람들의 결혼에 장해를 용납하지 않으리라.
변화가 생길 때 변하고
변심자와 같이 변심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로다.
아, 아니로다!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지표라, 폭풍을 겪고 동요를 모르는.
사랑은 모든 방황하는 배의 북두성이로다,
그 고도는 측량할 수 있어도 그 진가는 알 수 없는.
사랑은 세월의 놀림감은 아니라
장밋빛 입술과 뺨은 세월에게 희생이 되더라도, 사랑은 짧은 시일에 변치 않고
심판일까지 견디어 나가느니라.
이것이 틀린 생각이요 그렇게 증명된다면,
나는 글을 쓰잖으리라, 인간을 결코 사랑하잖았으리라.
Let me not to the marriage of true minds Admit impediments; Love is not love Which alters when it alteration finds, Or bends with the remover to remove.
O, no! it is an ever-fixed mark,
That looks on tempests and is never shaken;
It is the star to every wandering bark,
Whose worth’s unknown, although his height be taken.
Love’s not Time’s fool, though rosy lips and cheeks Within his bending sickle’s compass come;
Love alters not with his brief hours and weeks, But bears it out even to the edge of doom.
If this be error and upon me proved, I never writ, nor no man ever loved.
나아가 화자는 후손을 낳는 것이 젊음을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사라질 것임을 경고한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지난 400여 년 동안 이 시의 수신자인 미남 청년이 실제 누구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왔으며 가장 유력한 수신인으로 지목되는 사람 들로는, 사우샘턴(Southampton)의 백작 리오슬리(Henry Wriothesley)와 팸브로
크(Pembroke)의 백작 허버트(William Herbert)를 지목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 두 동성애적 성향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가 1592년에 런던의 극장가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1593년부터 2년 동안 역병이 퍼져서 극장이 폐쇄 되었을 때 그는 이 기간에 성적 내용을 담은 두 편의 설화 시 즉 비너스와 아 도니스 (Venus and Adonis)와 루크리스의 능욕 (The Rape of Lucrece)을 리 오슬리(Henry Wriothesley)에게 헌정한 적이 있었고, 다른 2절판 작품들을 허 버트에게 헌정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근거를 뒷받침해준다. 이외에 단순하게 출판 업자 소프(Thomas Thorpe)와 함께 일했던 홀(William Hall) 또는 사우샘턴의 계부인 하비(William Harvey)를 시의 헌정 대상자로 보는 견해는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단순히 표기되었다는 시각과 함께 시의 수신자와 남성 등장인물이 서로 다르다는 주장을 내포한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으로서 와일드(Oscar Wilde)는 그의 단편소설
『더블유 에이취 씨의 초상』(The Portrait of Mr. W.H.)에서 셰익스피어가 이 끄는 실제 극단에서 여성 역할을 맡았던 휴스가 소네트의 실제 대상인 것으로 주장한다. 19세기 말 영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동성애 작가로 지목된 와일드는 소네트 제135편과 제143편에 나온 윌(Will)과 제20편의 휴스(Hues)가 윌리 휴 스의 동음이의어라는 내용을 이 글에 실었다. 와일드는 소네트에 관한 전기적 관 점을 사실로 믿고 있었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강력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진부한 세속적인 이야기를 아름다운 우월한 소설로 그려내 려고 했으며, 그 안에 자기 자신을 투영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와일드가 동성연 애 혐의로 기소되자 그는 법정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언급하며 자신이 연 관된 바는 ‘감히 이름 부를 수 없는 사랑’(love that dare not speak its name) 이라고 변론했다.
금세기에 와서 그 사랑은 오해되고 있는데, 그 오해의 정도가 너무 심하여 그 사랑은 “감히 이름 부를 수 없는 사랑”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런 사랑 때문에 이 법정의 피고석에 있다. 그 사랑은 아름답고, 그 사랑은 순수하며, 그 사랑은 가장 고상한 형태의 사랑이다.
그 사랑에 부자연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사랑은 지성적인 것으로서 두 남자 중 연장자는 지성 을 지니고 있고 그 보다 어린 남자는 그 앞에 놓인 삶의 온갖 기쁨과 희망과 매력을 지니고 있을 때, 그 두 남자 사이에 반복해서 존재한다. 그 사랑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
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비웃으며, 종종 그런 사랑을 이유로 사람에게 형틀을 씌우기 도 한다.
It is in this century misunderstood, so much misunderstood that it may be described as the “Love that dare not speak its name,” and on account of it I am placed where I am now.
It is beautiful, it is fine, it is the noblest form of affection. There is nothing unnatural about it. It is intellectual, and it repeatedly exists between an elder and a younger man, when the elder man has intellect, and the younger man has all the joy, hope and glamour of life before him. That it should be so, the world does not understand. The world mocks at it and sometimes puts one in the pillory for it. (Ellmann 422)
이와 같은 추측들은 작가가 소네트 제18편에서 여름철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애정을 동성인 미남 청년에게 주었다는 동성애적 사실에 기초하여 1609년 판본 에 명시된 헌정 대상인 “Mr. W. H.”가 도대체 누구인가를 알아내고자 하는 호 기심의 발로였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화자 또는 작가가 미남 청년과 검은 안색 을 가진 유부녀인 여인에 대해 가진 욕망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문학과 사학 분야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연구주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네트의 전반부 126편중에서 그 대상을 명쾌하게 남성으로 언급한 것은 20편 이고, 나머지 후반부에서 분명하게 여성을 지목한 것은 7편에 불과하여 소네트 전체 154편중에서 127편은 그 수신자의 성별을 분명히 나타내지 않고 있다. 심 지어 에드먼슨(Paul Edmonson)과 웰스(Stanley Wells)는 그 수신자가 여러 명 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Edmonson & Wells 31). 무엇보다 이 모든 추론들은 셰익스피어가 화자인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어서 그 상대역이 누구인지를 밝 히고자 하는 것은 희소한 사료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사변적 결과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나아가 시의 수신자에 대한 위의 추론들만큼 소네트에 나타난 셰익스피어의 양성애적 경향도 충분한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이 부분이 모호한 이유는 수신자 의 성별이 대부분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또한 1번부터 17번 까지의 시들은 출산을 장려하는 명확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것들의 수신자가 남성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예컨대 소네트 3번은 “남편인 그대의 역할을 무시하 는”(Disdains the tillage of thy husbandry) 여인은 없을 것이라 말하고, 9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