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아분열의 원형
1.2. 실재계적 불안과 상상계적 자아
『잃어버린 시간』의 서술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화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것과 같은 감각을 갖게 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내면 의 변화와 그가 감각하는 외부세계 뿐이다. 이 소설은 화자의 머릿속 생각들로 온통 가득하다. 반면에 밖에서 바라보는 그는 어떤 모습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본 현실이 어 떠한지는 거의 알 수가 없다. 소설의 모든 내용은 마르셀의 사고와 감관이라는 필터 를 거쳐서 제공되며, 그 외에는 간혹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서술되는 내용을 마르 셀의 귀를 통해 전달받을 뿐이다.
가에탕 피콩은 마르셀의 자아가 세계에 대해서 취하고 있는 이러한 관계를 예리하 게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잃어버린 시간』에는 “전망의 유일한 주체인 자아가 전망이 유일한 대상”이 되어버리는 선회가 있다. 그 자아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다 보고, 보고 있는 자신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으면서, 자신만을 보려고 하는” 자아 이다.81) 프루스트의 작품은 “이 초월적 ‘에고’의 무훈시”82)이다. “그는 절대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전망대 같은 곳에서 사물과 사람들을 불시에 관 찰하길 원한다.” 이러한 자아와 외부세계와의 분리는 유약한 자아를 외부 현실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자아의 분열과 더불어 『잃어버린 시간』 전체에서 두드러
81) Gaëtan Picon, Lecture de Proust, Gallimard, coll. « Folio Essais », 1963, p. 100.
82) Ibid., p. 102.
지는 또 하나의 증상이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있을 때마다 마르셀은 의식적, 무의식적 으로, 마치 살아있는 세포가 공격당할 때 항체를 만들어내듯이, 타자의 존재로부터 자 신을 방어하는 항체를 만들어낸다.83) 마르셀에게 “현실은 본질적으로 위협”84)이다.
이 초월적 ‘에고’의 모습을 띤 자아는 우리의 맥락 속에서는 나르시시즘적이고 상 상계적인 자아이다.85) 이 자아는 외부와 분리되어 안전한 관찰의 공간을 찾으며, 의 식적, 무의식적으로 외부와의 철저한 거리를 견지한다. 그렇다면 그의 자아가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잠자리의 드라마의 핵심이 되는 마르셀의 분리불안은, 낮의 세계의 환희와 밤의 세계의 불안을 대변하는 자아의 서로 만날 수 없는 분열을 견인한다. 이 분열된 두 자아 중, 우리가 아직 살펴보지 않은 낮의 자아가 바로 이 외부세계와의 사이에서의 분리를 보여주는 자기중심적인 자아에 해당한다. 이 두 자아를 분리하고 있는 핵심에 어머니와의 분리불안이 있다고 할 때, 이 분리불안은 두 자아 모두에게 있어 그 성격 의 원인을 형성한다. 분열된 두 자아는 그 불안에 대한 반응의 동전의 양면이다. 따라 서 낮의 자아가 취하는 특질의 원인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마르셀이 가지는 분리불안 을 좀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마르셀이 어머니의 입맞춤이 없는 그 밤에 과연 죽음처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 지는 명확히 말해지고 있지 않다. 단지 우리는 마르셀이 외부세계와 어떤 보호 없이 만나는 것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오직 어머니의 부재에 관련해 말해지고 있을 뿐, 그 두려움 자체가 구체적으로 말해 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 두려움의 접근 불가능한 성격을 뚜렷하게 반증하고 있 다. 어머니의 존재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마르셀을 지켜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 가 처음 발베크의 호텔방에 도착했을 때의 대목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파리에 있는 내 방 물건들은 나 자신의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날 방해하지 않았 는데 그 이유는 물건들이 이미 내 기관의 부속품이자 나 자신의 확장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쇠풀 냄새가 거의 나의 자아의 내부까지 나의 최후 방어선을 노리고 공격을 계속하였으며, (...) 날 포위한 적들로부터 위협을 받으며 몸에 난 83) Gaëtan Picon, op. cit., p. 133.
84) Ibid., p. 131.
85) 상상계는 분열된 육체를 상상적으로 통합하는 자아의 형성 단계와 관련된 개념이다. 앞에서 언급한 거울단계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미지 타자와의 동일시로 인해 주체는 소외되고 자아 는 상상적인 것이 된다. 이때 형성되는 것이 상상적인 이상적 자아이다. 이 때 이미지-타자 는 나르시시즘적 자아에 상응한다.
열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외에 세계도 방도 육체도 가지지 못한 난 혼자였고 죽고 싶었다.
les objets de ma chambre de Paris ne gênaient pas plus que ne faisaient mes propres prunelles, car ils n’étaient plus que des annexes de mes organes, un agrandissement de moi-même... c’était presque à l’intérieur de mon moi que celle du vétiver venait pousser dans mes derniers retranchements son offensive, (...) N’ayant plus d’univers, plus de chambre, plus de corps que menacé par les ennemis qui m’entouraient, qu’envahi jusque dans les os par la fièvre, j’étais seul, j’avais envie de mourir.86)
습관에 의해서 익숙해지지 않은 외부 공간은 마르셀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습관은 외부세계를 자신의 연장으로 자기화하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낯선 냄새가 자아의 내 부까지 공격할 때, 자아는 이러한 외부의 사물들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그 경계가 유약하다. 자신에게 동화되지 않은 대상은 모두 적들이다. 자신이 장악하지 못한 곳에 서 그는 분명 육체를 갖고 있으되 가지고 있지 못한 존재로 스스로에게 인식된다. 다 시 말해, 그 자신의 육체의 습관으로 연장된 외부세계가 그에게 안정성과 동질성을 제공해 주며, 내부세계가 투사되어 그 힘에 지배된 외부세계만이 그에게 자신을 보호 해 줄 수 있는 세계를 제공한다. 안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자신의 연장인 공간, 안전한 은신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발베크의 그 방에 그의 습관에 익숙한 물건 이라곤 없다.
그곳은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했으며, 내가 그 물건들에 던진 것과 똑같은 경 계의 눈길을 되돌려 보내면서 내 존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그들 의 일상을 방해한다는 걸 증명했다.
elle était pleine de choses qui, ne me connaissant pas, me rendirent le coup d’oeil méfiant que je leur jetai et sans tenir aucun compte de mon existence, témoignèrent que je dérangeais le train-train de la leur.87)
86)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Ⅱ, pp. 27-28.
87)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Ⅱ, p. 27.
그리고 그의 존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대상들은 그를 위축시킨다. 심지어 그것 이 인간이 아닌 사물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마르셀이 되풀이해 절망하는 것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음과 없음의 차이가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사이에서 마르셀이 내부세계의 우위를 선 택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된다. 내부세계는 그의 자아 그 자체이며, 자신의 내부세계의 확장이 아닌 한, 외부세계는 그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할머니의 존재는 마치 그가 습관으로 외부를 자신의 연장으로 만들어내는 것처럼, 마르셀에게 있어 자신의 정신을 할머니의 마음속에서 연장시키는 역할을 한다.88)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서 어느 한 사람에 불과하며, 그래서 혼자 있다는 느 낌, 자기 생각이나 삶에 대한 욕망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느낌 을 강하게 주는데 반해, 할머니와 있으면... 내 생각이 내 정신에서 할머니의 정 신으로, 환경이나 인격의 변화 없이 옮겨 갔으므로 할머니의 마음속에서 어떤 빗나감도 없이 연장되리라는 사실도 잘 알았다.
...augmentent encore l’impression qu’on a d’être, pour elles, un autre, de se sentir seul, gardant pour soi la charge de ses pensées, de son propre désir de vivre,... quand j’étais avec ma grand’mère,... mes pensées se prolongeaient en elle sans subir de déviation parce qu’elles passaient de mon esprit dans le sien sans changer de milieu, de personne.89)
곧, 마르셀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혼자서 스스로의 생각과 욕망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다고 믿는다.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무력감 은 이미 잠자리의 드라마의 말미에 드러나 있다. 그는 어머니와 다시 헤어져 보내게 될 다음날 밤에 대해서 “그런 일들은 내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며”, “오직 시간의 간 격만이 그 일을 피하게 해 줄 것처럼 보였다”고 쓴다.90)
이 무력감이 잠자리의 드라마의 비극적 결과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 그를 무력감 에 사로잡히게 한 요소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 드라마의 결과가 그의 의
88)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Ⅱ, p. 28.
89)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Ⅱ, p. 28.
90) Du côté de chez Swann, Ⅰ, p. 63.
지를 키워주려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의도를 망가뜨렸고, 아버지의 관용이 마르셀의 무력함에 대한 죄책감을 면제하여, 무의지를 극복하려 했던 직접적인 원인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마르셀의 분리불안은 이미 이 소설의 시작에 서부터 주어진 조건이며, 그 이전의 상황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잠자리의 드라마의 결과로 인한 무력감의 강화는, 마르셀이 이를 극복하는 것을 포기하고 회피하려는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 강력한 계기이다. 갑작스러운 충동에 의 해 반항을 시도하기 전까지는, 마르셀은 어머니의 엄격함을 생각하면서 그 상황을 버 텨오고 있었고, 분명 그 이전의 많은 밤들을 그렇게 견뎌 왔을 것이다.
낯선 외부세계에 취약한 자아가 외부를 장악하고자 하는 것은, 외부를 자신과 동 화하여 자아를 안전하게 하고자 함이다. 이는 심연이 주는 불안을 상상적인 방식으로 방어하는 과정이다.91) 이것은 마르셀이 상상계적 세계를 고수하는 이유와 연결된다.
심연은 라캉에 있어서의 실재(Réel)이다. 처음 인간이 만나게 되는 것은 원초적인 실 재이다. 아직 자아는 형성되어 있지 않고 그 안에는 충동과 분열과 공격성이 난무한 다. 그리고 아이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공격하고 삼키려고 한다.92) 아이는 자신의 자 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분열된 전체를 통합된 상으로 그러모 으는 동시에, 외부세계를 공격하고 자신의 연장으로 삼으려고 한다. 마르셀이 외부 대 상, 특히 타자마저도 자기와 동일시하여 자신의 연장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외부세계로의 자아의 확장이라는 상상계적 특성과 연결된다. 라캉에게 있어서 상상계 (Imaginaire)란, 아직 언어의 장인 상징계(Symbolique)로 완전히 들어오기 전, 이미 지들로 이루어진 자기중심의 세계를 말한다.93) 이는 자아의 형성 과정에서,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던 아이가 자신의 육체가 온전한 하나의 개체임을 깨닫고 환희의 감정을 느끼는 단계와 연관된다.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면서 느끼는 자유의 환희와 어머니와 분리되는 데 따른 불안감은 동전의 양면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육체를 삼
91) 이는 상상적 자아를 외부로 투사하여 자신과 동일시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것은 외부에 자신을 확장하여 나르시시즘적으로 동일시하려는 공격성과 연결된다.
92) 멜라니 클라인은 어머니의 몸에 있는 좋은 내용물을 훔치려는 유아의 구순-사디즘적 충동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Melanie Klein, op. cit., 1984, p. 2.
93) 주 30) 참조. 라캉에게 있어서 상상계(Imaginaire)란, 언어의 장인 상징계(Symbolique)로 완전히 들어오기 전,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자기중심의 세계를 말한다. 아이는 어머니와의 이 자관계에서 ‘아버지의-이름’이라는 삼항을 통해 어머니와 분리되며 법과 언어의 세계인 상징 계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은 잔여가 대상 a로, 이는 상징화되지 못한 어머니의 욕망의 잔여이며, 공백이며, 욕망의 원인이다. 실재(Réel)는 상징화되기 전의 세계이며, 되지 못하고 남은 어떤 것이다. 대상 a는 잔여라는 점에서 실재이며, 공백으로서 환상의 구조의 원인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상징계의 일원이며, 환상이 덧씌워진다는 점에서 상상적이다. 이 처럼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는 대상 a를 중심으로 서로 중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