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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상의 고착과 구조적 반복

2.2. 알베르틴과 드라마의 반복

콩브레에서 있었던 또 하나의 큰 사건은 뱅퇴유 양과 그 파트너의 악행을 목격한 일이다. 이는 지극히 선한 인물인 뱅퇴유 씨의 죽음 후에 일어난 일로서, 산책을 하던 마르셀은 어느 날 우연히, 뱅퇴유 씨의 딸과 그녀의 동성 연인이 그녀 아버지 사진에 침을 뱉고 거기에서 쾌락을 느끼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방어할 수도 없는 망자에 대해 그토록 가혹하게 구는 사람이 자 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줄 때 느껴지는 쾌락의 매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녀는 친구 무릎 위로 뛰어 올라 친구의 딸이라면 했을 법한 몸짓으로, 입맞춤을 받기 위해 순결하게 이마를 내밀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둘 다 무덤 속에서까지 뱅퇴유 씨의 부성을 강탈하여 잔혹함의 절정에 이르는 희열을 맛보았다. (...) 나 는 뱅퇴유 씨가 일생을 딸 때문에 감내해야 했던 그 모든 고통의 대가로, 그가 죽은 후에 딸로부터 어떤 것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164) Sodome et Gomorrhe, Ⅲ, p. 179.

165) Sodome et Gomorrhe, Ⅲ, p. 177.

Mais elle ne put résister à l’attrait du plaisir qu’elle éprouverait à être traitée avec douceur par une personne si implacable envers un mort sans défense ; elle sauta sur les genoux de son amie, et lui tendit chastement son front à baiser comme elle aurait pu faire si elle avait été sa fille, sentant avec délices qu’elles allaient ainsi toutes deux au bout de la cruauté en ravissant à M. Vinteuil, jusque dans le tombeau, sa paternité. (...) je savais maintenant, pour toutes les souffrances que pendant sa vie M. Vinteuil avait supportées à cause de sa fille, ce qu’après la mort il avait reçu d’elle en salaire.166)

뱅퇴유 양의 부친모독의 장면을 목격한 것은 마르셀 자신의 내부에 있던 충동이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마르셀 자신에게서 어머니의 이마에 주름살을 만드는 일이 깊 은 죄책감으로서만 드러나 있다고 해서, 모독에서 오는 쾌락의 암시를 놓쳐서는 안 된다. ‘뱅퇴유 양’이라는 이름은 억압되어야만 하는 실재적 충동을 대체하는 기표로서 마르셀의 내부에 각인된다. 그리고 곧 알베르틴에 의해 발화된 이 ‘뱅퇴유 양’이라는 이름이 ‘참깨’처럼 마르셀의 마음을 건드려 그의 내부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게 된다.

잠자리의 드라마와 뱅퇴유 양의 행동의 목격, 그리고 바로 살펴보게 될 알베르틴이 결정적이 되는 기차에서의 대화라는 세 사건은 연결되어 있다.

알베르틴과 안정된 관계를 맺어가던 주인공은, 결국 새로운 세계에의 여행과 자유 를 위해 알베르틴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결심하고, 그 결심을 어머니에게 말한다. 이 결정은 어머니를 만족시킨다. 그러나 이별이 예정된 알베르틴과의 관계에 결정적인 변화가 오는 것은 바로 그녀의 입에서 이 뱅퇴유 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이다.

“,,,보세요. 참으로 야릇하죠, 이 친구가 바로 그 뱅퇴유의 딸과 가장 사이좋은 친구랍니다, 그러니 나 뱅퇴유의 딸도 거의 똑같이 잘 알아요. 그녀들을 언제나 내 두 언니라고밖에 부르지 않죠. 당신은 나한테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하기야 옳은 말씀, 당신의 귀여운 알베르틴도 그 정도의 음악에 대해 서 당신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유감없이 보여 드리겠어요." 우리가 파르빌의 정거장에 들어가고 있을 때에, 콩브레와 몽주뱅에서 이토록 멀리, 뱅퇴유가 죽은 지 이토록 오랜 후에 발음된 이러한 말에, 하나의 심상이 내 마음속에 활동하기 시작했다. (...) 동성애의 전문 실행자인 뱅퇴유 양과 그 여자 친구의 친구인 알 166) Du côté de chez Swann, Ⅰ, pp. 160-161.

베르틴, (...) 그것은 전에 앙드레 곁에 있는 알베르틴을 보면서 내가 어쩐지 걱 정되었을 때 어렴풋이 두려워하던 그 무엇이었다.

« ...regardez comme c’est extraordinaire, est justement la meilleure amie de la fille de ce Vinteuil, et je connais presque autant la fille de Vinteuil. Je ne les appelle jamais que mes deux grandes sœurs. Je ne suis pas fâchée de vous montrer que votre petite Albertine pourra vous être utile pour ces choses de musique, où vous dites, du reste avec raison, que je n’entends rien. » À ces mots prononcés comme nous entrions en gare de Parville, si loin de Combray et de Montjouvain, si longtemps après la mort de Vinteuil, une image (...) Albertine amie de Mlle Vinteuil et de son amie, pratiquante professionnelle du saphisme, (...) c’était quelque chose... que j’appréhendais obscurément quand je m’inquiétais tout en voyant Albertine auprès d’Andrée.167)

가벼운 마음으로 알베르틴을 만나다가, 별 고뇌 없이 그녀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던 마르셀은 돌이킬 수 없는 암초에 걸린다. 그녀가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그것 도 그 뱅퇴유 양과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그가 사디즘에 대한 관념을 가지게 했던 그 사건, 선한 부친에 대한 모독적인 행동으로 쾌락을 얻는 뱅퇴유 양의 행동과 연결되 는 동시에, 완전히 가질 수 없는 존재로서의 알베르틴을 위치 짓는다. 그리고 다음 순 간, 그의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어떤 불안도 가지지 않아도 되었던 그녀는, 갑자기 마 르셀에게 가장 큰 불안을 주는 존재로, 도저히 놓쳐서는 안 되는 존재로 순식간에 자 리 잡는다. 그녀와 떨어지는 일은 이제 마치 어머니와 떨어져야 했을 때와 같다.

내 면전에 있던 알베르틴은 목적지에 닿은 걸 알고서 우리가 있던 찻간 안에서 몇 걸음 걸어 나가 승강구 문을 열었다. 그러나 내리기 위해 그녀가 한 이 동작 은 내 심장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갈기갈기 찢었다, (...) 내게서 멀어지는 알베르 틴 이 내 마음을 어찌나 아프게 했는지, 나는 그녀를 따라잡아, 필사적으로 그 팔을 잡아당겼다.

Albertine, placée en face de moi et voyant qu’elle était arrivée à destination, fit quelques pas du fond du wagon où nous étions et ouvrit la portière. Mais ce mouvement qu’elle accomplissait ainsi pour 167) Sodome et Gomorrhe, Ⅲ, pp. 499-500.

descendre me déchirait intolérablement le cœur (...) Elle me faisait si mal en s’éloignant que, la rattrapant, je la tirai désespérément par le bras.168)

이 사건은 마르셀에게 있어 이중으로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에게 속한 여인임으로 해서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와 같이, 동성애를 즐긴다는 이유 로 인하여 알베르틴은 그가 결코 완전히 가질 수 없는 대상이 되며, 이로서 그녀는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녀가 뱅퇴유 양과 그다지도 친하다는 것은, 마르셀에게 지난날 그가 목도했던 뱅퇴유 양과 그 연인의 행동을 알베르틴도 할지 모른다는 강한 개연성을 심어 준다. 그런데 뱅퇴유 양의 부친 모독의 행위는 그 자신이 어머니에게 행한 것과 동일하다. 뱅퇴유 양이 선한 아버지의 사진에 침을 뱉 고 모욕하는 것은 잠자리의 드라마의 그 날, 마르셀이 어머니의 이마에 최초의 주름 살을 만든 행위와 동질적인 것이다. 따라서 뱅퇴유 양과 동성의 연인관계일지도 모르 는 알베르틴과 결혼한다는 것은 어머니를 이중으로 모독하는 행위이다. 그는 그 모독 의 쾌락을 거부할 수 없다.169)

알베르틴과의 관계에서 마르셀은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러하듯이 그녀에게 군림하기를 원하지만, 이 사랑에는 단순히 이러한 강박적 성격뿐 아니라, 고통받기를 원하는 죽음충동적인 성격이 있다. 알베르틴은 동성애자이고, 때문에 마르셀은 그녀를 결코 완전히 가질 수 없으며, 어딘가에 있을 그녀의 동성 애인에 대한 끊임없을 질투 때문에 그들의 관계에는 결코 지속적 평화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그 가 겨냥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그는 이 사랑을 통해 이중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하나 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기다리던 고통의 반복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를 모독하는 데서 오는 악마적인 쾌락이 그것이다.

마르셀의 무의식은 그날 밤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는 장면에 고착되어 있어서 쾌락 을 위해 그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알베르틴의 사후에도 그는 세탁소 소녀 등 을 통해 알베르틴의 악덕에 크게 집착하며 그 모습을 재연한다. 이렇게 그의 쾌락의 한 축을 이루는 악의 궤도는 근본적으로 타자를 불신하며, 외부에 자신의 순수한 모

168) Sodome et Gomorrhe, Ⅲ, pp. 500-501.

169) 바타이유에 따르면 뱅퇴유 양은 프루스트이고, 뱅퇴유 씨는 프루스트의 어머니이다. 그녀가 아버지 생전에 집 안에 동성의 정부를 들인 것은 화자의 아파트에 그의 동성 파트너였던 운 전수 아고스티넬리를 들인 것에 대응한다. Georges Bataille, La littérature et le mal, Gallimard, coll. « Folio Essais », 1957, p.103.

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면의 삶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의 기호는 그에게 실패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것은 몽상, 혹은 실패를 위한 사랑이다. 바타이유가 말 하듯, 그의 세계에서는 “공포가 사랑의 척도인 것과 마찬가지로 악에 대한 갈증은 선 의 척도이다.”170)

그의 궁극적 목적은 그에게 외상이 되어 있으며 그의 욕망의 원형을 이루는 콩브 레의 그 밤을 반복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상실과 되찾음의 반복은 그것이 설령 고통을 의미하더라도 그가 가장 욕망하는 것이다. 오히려 어쩌면 바로 그 고통 이 그가 원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어린 시절 내 가슴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고 믿은 어린애다운 슬픔을 가라앉히려고 어머니를 꼭 껴안았던 것처럼 순수하게.

Je l’embrassai aussi purement que si j’avais embrassé ma mère pour calmer un chagrin d’enfant que je croyais alors ne pouvoir jamais arracher de mon cœur.171)

알베르틴과의 이 사랑은 명백히 어머니와의 관계의 재현이다. 마르셀은 온갖 말로 알베르틴을 꾀어 그와 함께 파리로 가도록 한다. 그리고 방금 전 그녀에게 권태를 느 끼고 그녀와 헤어져 새로운 욕망을 찾아 떠나려던 마음을 가뭇없이 잃어버린 채, 그 녀와의 갇힌 지대로 들어갈 결심을 한다. 슬픔에 울고 있는 그의 앞에 어머니가 나타 난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이제 할머니를 빼어 닮고 있다. 이제 할머니의 자리는 어머 니가, 그리고 어머니의 자리는 알베르틴이 대신한다. 그리고 알베르틴은 쉽게 교환할 수 있는 욕망의 환유적인 대상이 아닌, 은유가 일어나 의미가 발생한 유일한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여자 친구, 그것은 뱅퇴유 아가씨’라는 말은 ‘열려라, 참깨’였었기에, 나 자신 그것을 찾아내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며 ‘열려라, 참깨’가 알베르틴을 산 산조각난 내 심장 깊숙이 들여보내고 말았다. 문은 그녀를 들여보내고 나서 다시 닫혀, 설령 내가 100년 동안 찾아본들 문을 다시 여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할 것 이다.

Mais les mots : « Cette amie, c’est Mlle Vinteuil » avaient été le 170) Georges Bataille, op. cit., p.105.

171) Sodome et Gomorrhe, Ⅲ, p. 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