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항변권의 이론적 근거를 사정변경의 원칙이 아니라 급부의 대가관계와 이에 기초한 위험의 적정한 배분에 두는 이상, 이행곤란사유
126) 松井, 65면 127) 임건면, 186면
128) 이은영, 162면; 김동훈(1999-2), 241면; 정종휴, 613면; 김계순, 30-31면
의 발생시점을 계약 체결 이후로 한정할 이유가 없다. 이행곤란사유가 계약 체결 전에 발생한 것이든 후에 발생한 것이든 그로 인하여 선이행 의무자가 반대급부의 이행을 받기 곤란할 상태에 처하여 급부의 대가관 계가 위태롭게 된 데에는 차이가 없고, 따라서 불안의 항변권 또한 동등 하게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2) ‘선이행의무자의 인지 여부’의 제도적 위치
명문의 규정을 둔 현재의 독일민법 제321조 제1항은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의 학설 중 계약 체결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도 이행곤란사유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견해 또한 선이행의무자가 계약 체결 이후에 비 로소 그러한 이행곤란사유를 인지할 것, 또는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을 불 안의 항변권의 요건으로 삼고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선이행 의무자가 이행곤란사유를 인지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일률적으로 불안의 항변권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견해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내포 하고 있다.
① 선이행의무자가 계약 당시 이행곤란사유를 인지할 수 있었 다고 하여도 이는 원칙적으로 주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이행곤란사 유의 존재로 인하여 반대급부의 이행이 곤란해지고 급부의 대가관계가 훼손될 위험이 발생하였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② 이행곤란사유의 유형 및 정도,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약 정내용 또는 계약 이후의 경과에 따라서는 선이행의무자가 이행곤란사유 를 인지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로 인하여 반대급부를 이행받기 곤란 할 현저한 위험이 상존하는 것을 수인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③ 불안의 항변권은 하나의 이행곤란사유로 인하여 발생할 수
도 있고 여러 이행곤란사유가 중첩되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위와 같이 본다면 선이행의무자가 중첩된 이행곤란사유 중 일부만을 인지하고 있었 거나 인지할 수 있었던 경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하여 결론을 내기 어렵다.
거래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례를 들어보면 위와 같은 문제점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매도인이 매수인의 공장설비에 이미 여 러 건의 가압류 또는 체납처분이 집행되어 있는 등 변제자력의 중대한 결여가 발생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원자재를 계속 공급받아 사업을 유지․확장하면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매수인의 주장(이를 반드 시 사기라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을 믿고 원자재 공급계약을 체결하 고 선이행의무를 부담하였는데, 이후 매수인의 미지급 원자재대금이 누 적되고 사업전망도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고 하여도 당초의 원 자재 공급계약 당시 매수인의 변제자력이 결여되어 있는 상황임을 인지 하고 있었다고 하여 불안의 항변권이 발생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129)
선이행의무자가 계약 체결 당시 이행곤란사유를 인지할 수 있었던 경우 불안의 항변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이행곤란사유의 인지가능 성 자체가 불안의 항변권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서가 아니라, 선이행의무자가 이행곤란사유를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계약을 체결하였 다는 사실로부터 선이행의무자가 그러한 이행곤란사유로부터 발생하는 반대급부의 위험을 수인하였다는 사실을 쉽게 추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 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선이행의무자가 계약 체결 당시 이행곤란사유 를 인지하지 못하였을 것’을 불안의 항변권이 발생하기 위한 독자적인 129) CISG 이후에 성립된 PICC 제7.3.4조, PECL 제8:105조, DCFR III.–3:401 제2
항, 제3항 모두 이행곤란사유의 객관적 발생시점은 물론 당사자가 계약체결 당시 이를 인식하지 못하였다거나 인식할 수 없었다는 점을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는 점 또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요건으로 보기보다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불안의 항변권의 소극요 건으로서 선이행의무자의 ‘위험의 수인’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간접사실로 위치시키는 것이 보다 이론정합적이지 않은가 생각된다.
즉 소송절차에서 선이행의무자는 이행곤란사유가 존재한다는 사실 만을 주장․입증함으로써 항변을 다하였다고 보고, 이에 대하여 상대방은 이행곤란사유가 계약 체결 당시 존재하였고 선이행의무자 또한 이를 인 지하였거나 인지할 수 있었다는 사정을 다른 사정과 함께 주장․입증함으 로써 선이행의무자가 그러한 위험을 수인하였다고 재항변하도록 하는 것 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