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형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진실을 추구한다.1) 이에 자화상 시 쓰기 에서 이루어지는 자기형상화는 진정한 ‘나’를 찾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자기형상이 실제 자아와의 연관성을 갖는 가능 경험의 통일체이자 존재 본질의 토대를 마련하는 상상의 통일체로 기능하기 때문이다2). 주 체는 그러한 자기형상을 형성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에두르 기를 통한 자기이해를 이룰 수 있다.
학습자는 자기형상화를 통해 ‘나’의 내면 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외부 세계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두 이해를 통합하여 새로운 자기이해를 이 루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청소년 학습자가 자기중심적인 사고 를 극복하고, 보다 심화되고 통합적인 자기이해에 이를 수 있도록 돕는 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 이미지 형성을 통한 ‘나’의 발견
학습자는 자아이미지를 점검하고 자기서사를 작성하는 과정을 통해 자 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본다. 그러나 청소년 학습자가 이 단계에서 명확한 자기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인식한 학습자가 받는 충격과 우울감이 다양한 일화를 서술하며 분화하는 소자 아들을 통합하는 인지적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많은 학습자가 이
1) 김대행(2000), 『문학교육원론』, 서울대학교 출판부, p.51.
2) 이경은(2014), 「후설의 상상 개념 - 유사 경험으로서의 상상」, 서울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번호 [구-30419]
시
<빛 좋은 개살구> 빛 좋은 개살구 /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명심 해라 // 살구껍질이라는 가면을 쓰고 / 남들에게는 맛있어 보인다 //
굉장히 잘 익은 척 / 굉장히 달콤한 척 // 하지만 그 껍질을 벗기면 / 빛 좋은 개살구 // 잘 버티고 잘 익은 척 / 싱싱하게 자란 척 // 하지 만 한 입 베어 물면 / 빛 좋은 개살구 // 과연 나도 / 이런 사람인 걸 까 // 껍데기와 속이 / 다른 사람인 걸까
자아 이 시를 쓰기 전부터 조금씩 느껴왔지만 내 자아는 주변인을 대하는 단계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혼란스럽 다”는 감상을 밝히고, 이후 이어지는 활동들을 포기하여 성찰적 사유를 진전시키지 못한다.
권채린(2017)3)에 따르면 자기 탐색의 주요한 원리로 작용하는 ‘기억’은 자주 자기 회귀적이고 자기 동일적인 탐색의 원리로 작용한다. 특히 인 지적 능력이 미숙한 청소년 학습자의 경우 과거에 상처 받은 기억을 통 해 내면을 탐색함으로써 과거를 낭만화하거나 상처를 재확인하는 데 탐 색을 그치고 현재와의 통합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나’를 나타내는 이미지의 형성은 자기 정의를 내리기 위한 첫 단 추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학습자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잔상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분화하는 소자아를 하나로 통합하고 자기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획득한 다. 그리하여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성찰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미지의 형성은 청소년 학습자가 불안정한 감정의 파동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 거리두기를 하였다 해도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쉽 지 않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자신의 내면을 탐색 하는 데 있어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를 매개로 하여 바라보는 유사 경험 을 통해 기억의 중립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3) 권채린(2017), 「자기 성찰적 글쓰기`의 논증적 가능성 탐색을 위한 시론(試論)」,
『우리어문연구』57, 우리어문학회, pp.409-438.
성찰 적 사유
태도와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반대된다는 느낌을 받고, 내 자아 가 이중적인 편이라는 것에 확신이 들어 굉장히 놀라웠다. 나의 자아 에 이렇게 이질감이 느껴졌는지 이 활동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고, 이런 가면 같은 내 자아가 굉장히 나쁜 자아라는 것을 잘 알기에 겉 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기 인식
활동 전 활동 후
?? 잘 모르겠다. 슬프고 무서운 사람?
겉과 속이 다른 개살구 같은 사람 이지만, 겉과 속이 같은 맛있는 살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구-30419]는 활동 전 자기인식을 “??”라는 기호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 슬프고 무서운 사람?” 이라고 하며 아직 자기 자신에 대 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상태임을 나타내었다.
이 학습자는 자아이미지 점검 및 자기서사 작성 시 매우 다양한 일화들 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요약하자면 친구들에게는 친절하지만 가족에 게는 불친절하게 굴었던 경험, 과외 선생님이 무서웠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아하는 척 했던 경험, 누군가 자신이 친절하고 순수한 사람이라 칭찬 해 주었을 때 기분이 이상했던 경험들이었다.
그러나 이 학습자는 다양한 일화들을 생각나는 대로 모조리 서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결국 어떤 사람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원인 모를 감정(후회, 공포, 괴리감)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연민만을 갖게 되 었다. 이는 이 학습자가 자기서사 작성 단계를 마치고 느껴지는 감상을 쓰는 란에 “내가 겉에 마음에 속하는 사람인지 속의 마음에 속하는 사람 인지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마음이 너무 여려서 한스럽다.”고 서술한 데 서 잘 드러난다.
자기 이해의 부재로 인한 혼란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사물이나 이미 지를 떠올리는 단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학습자는 이 단계에서 ‘폭풍우’,
‘가면’, ‘칠흑같이 검은 색’ 등을 떠올렸는데, 그것을 떠올린 이유에 대해 서 “폭풍우같은 비난과 일침이 두렵다”, “다크톤이야 말로 지금 내 마음 을 나타내기에 제격”이라 서술하였다. 이는 학습자가 아직 부정적 감정
에 매몰된 주관적 자기 인식의 단계에 있음을 뜻한다.
이 학습자의 객관적 자기 인식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을 떠올리면 서부터 시작된다. 학습자는 이 속담이 “겉으로 보기에는 좋으나 내실이 없는 경우”라는 뜻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겉으로는 맛있어 보이지만 속은 썩어 있는 개살구의 이미지를 떠올림으로써 마침내 자기 자신의 이 중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학습자가 “겉에 마음에 속하는 사람 인지, 속의 마음에 속하는 사람인지”를 고민하였던 것, 상관물을 떠올리 는 과정에서 ‘가면’을 떠올렸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자기형상화를 통한 객관적 자기 인식을 이루어낸 학습자는 부정적인 감 정을 일으키는 원인을 알게 됨으로써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게 된다. 이전에는 원인 모를 공포에 떨고 있던 자신을 연민하던 것에 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반성적 의식에 기반한 자아 성찰을 시 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습자의 태도 변화는 자화상 시와 자작시 해설에 잘 드러나 있다. [구-30419]의 시에는 ‘폭풍우’나 ‘칠흑’ 대신 ‘빛 좋은 개살구’라는 형상이 반복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 학습자의 자작 시 해설에 따르면 이러한 표현의 반복은 “좀 부끄러워도 계속 써야 의지 를 다질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마지막 두 연이 의문형 어미인 “~ㄹ까”로 끝맺어진 이유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 고 싶다는 생각에서” 쓴 것이다. 이를 통해 [구-30419]의 자화상 시 쓰기 는 이전 단계에서처럼 주관적인 감정에 매몰된 서술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기 인식에 기초한 반성적 자아성찰 활동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겉과 속이 다른 개살구 같은 사람이지만, 겉과 속이 같은 맛 있는 살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학습자는 자화 상 시 쓰기를 통해 이루어낸 자아성찰을 일상생활에도 적용하여 실천하 기도 한다. 이는 3개월 후 실시한 2차 수업의 활동 감상 서술에서 잘 드 러난다.
요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가족들에게는 더 날선 말을 많이 하지 않게 되 었고, 요새는 내 날선 말이나 행위로 인해 다투는 일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것을 보니 내 노력이 효과가 있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해도
남이 자극하거나 내 의지가 무력해질 때는 나도 모르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답답하고, 그러는 내가 약간 무서운 감정도 들어 고치기 힘든 편 인 것 같다. 정말 나도 모르게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내 의지가 많이 약 화된 것 같기 때문이라고 느껴지고, 다시 고치기 위해 마음가짐을 바로잡아야겠 다.
[구-30419-3차-4]
즉, [구-30419]는 자신을 나타내는 형상 ‘빛 좋은 개살구’를 발상함으로 써 객관적인 자기 이해를 이루고, 자기객관화를 바탕으로 한 반성적 자 아성찰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 학습자는 의지를 다지는 것에 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생각하여 실생활에도 적용하며 변 화를 꾀하는 노력을 기울이는데, 비록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의 지가 약해지만 원상태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고치기 위해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다”. 이러한 서술로 보아 이 학습자는 혀재 자아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성찰의 내면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형성을 통한 ‘나’의 발견 양상은 다음 학습자들의 활동의 감상에 서도 잘 드러난다.
처음에는 난 지금 무엇을 하는 건지, 계속해서 나아가 달린다면 그 끝에는 과 연 무엇이 기다릴지 물음표를 던져보고 싶었다. 그러다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 는 내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도토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 <굴러가는 도토리>를 쓰게 되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잠시 길에 몸을 묻어 나무가 된다”는 4 연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어디로 굴러가는지, 굴러가는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게 되었다. 자화상 시 쓰기를 통해 삶을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미래 를 생각하며 자신을 성찰하여 미래를 준비할 자세를 갖게 되었다.
[구-30414-3차-3]
나를 ‘베짱이’로 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인 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지금 누군가를 따라하기만 하는 따라쟁이다. 그러면 안되겠음을 깨달았다.
[구-30205-1차-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