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는 학습자가 여러 가지 표현을 떠올리게 된 계기와 그것이 담 고 있는 의미를 설명하고, 이를 자신의 의도에 맞게 다듬고 고쳐 쓰는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찰의 반복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학습자는 자작시 해설 및 퇴고 활동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시 쓰기 과정 을 전반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이때 많은 청소년 학습자가 자신의 시 텍 스트를 고치거나 의미를 부연하는 해설 텍스트를 작성하면서 성찰에 대 한 성찰, 즉 메타자아성찰을 이루고 성찰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학습 자가 스스로 얻은 깨달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내면화 작용에 도움을 준 다.
문학교육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정의되는 ‘내면화(內面化)’의 핵심은 어 떠한 가치체계를 자신의 인격 속으로 용해시켜 행동의 변화를 야기하는 데 있다. 이에 자화상 시 쓰기에서의 내면화란 글쓰기 주체가 자화상 시 쓰기 활동을 통해 이루어낸 모든 성찰의 통합을 실생활에 적용하여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실천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인지적․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 학습자는 종종 자신의 행위에서 동일성과 연속성을 상실하곤 한다. 그러나 이들이 자화상 시 해설하기와 고쳐 쓰기를 통해 자아의 재점검 및 재구성 활동을 수행하며 불일치한 현상을 고쳐나간다는 것은, 과거의 미래의 선택에 합리적인 유기성을 지 니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내면화하는 자아정체성의 확립과 상통되는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1) 자작시 해설을 통한 자아의 재점검
번호 [구-10513]
시
<냉동고> 내 마음은 냉동고이다. / 모든 것이 얼었다 / 내 마음에 튀기던 불꽃이며, / 잔잔하게 불던 따스한 바람마저 / 모두 얼었다 //
내 성격은 냉동고인 것처럼 / 차가워졌고 / 내 생각은 우리 집 냉동 고와 같이 / 복잡해졌다 // 차라리, 차라리 고장이라도 나버리면 / 다 녹지 않을까
자작 시 해설
내 시의 핵심구절은 “차라리, 차라리 고장이라도 나 버리면 다 녹지 않을까”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차라리 내가 포기해버리면 모두 나아 질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구절은 정말로 내가 공들여 쓴 구절이기에 소중하다. 냉동고에 있는 것들이 냉장고가 고장 나면 다 녹아버리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냉장고를 내가 끌 수도 있다! 그럼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학습자는 자화상 시를 작성한 다음 자신의 시를 해설하는 과정에서 인 식의 전환을 이루고 다른 방향의 자아성찰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는 ‘나’
를 타자에 빗대어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생각을, 이미 산 출된 자신의 자화상 시 텍스트를 점검하는 메타자아성찰 과정에서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며, 청소년 학습자의 자아성찰이 자화상 시 쓰기 단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기도 한다.
또 자작시 해설 활동은 글쓰기 주체의 메타자아성찰을 이룸으로써 성찰 의 내면화를 돕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글쓰기 주체가 자신이 작성 한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 발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표현에 담으려 한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직접 설명하기 위해 완성된 시 텍스트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성찰 과정 역시 되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학습자는 자화상 시를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자기 인식 에 기반한 자아성찰적 사유를 이루었다. 그런데 자작시 해설을 작성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자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재점검함 으로써 새로운 자아성찰을 이루게 되는 예이다.
자아 성찰 적 사유
자화상 시를 쓰며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나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잘 몰랐다. 하지만 내 시가 어떤 뜻인지 설 명하면서 생각이 바뀌어서 이제 얼어있던 나의 긍정적인 성격들을 다시 녹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자기 인식
활동 전 활동 후
긍정적이지만 소심한 사람 열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
[구-10513]은 자아이미지 점검 및 자기서사 작성 단계를 매우 열심히 수행하였다. 그는 “따돌림 당하는 친구를 돕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나서지 못했고,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오래 괴로워하며 친구들에게 사무 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구체적 일화를 들었다. 또 감정을 서술하는 부 분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의 외적인 모습만 보여 날 당당한 사람 이라 생각하지만 나의 내면은 자존감이 낮고 소심한 사람이어서 다른 사 람들이 날 당당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 안심되면서도 불안하다.”라고 서술하며 숨겨진 불안감을 직면,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이 학습자는 이어지는 비유 및 이미지 표현 찾기에서도 “높은 벽, 밤, 비, 엉킨 실, 고양이, 냉동고” 등 다양한 타자를 탐색하였고, 그 중 가장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적합하다고 판단한 ‘냉동고’를 주요 소재로 삼아 자신의 내면을 빗대어 표현하는 자화상 시를 작성하였다. 이 학습자의 자화상 시는 다소 어두운 정서를 띠고 있다. “고장이라도 나버리면 다 녹지 않을까”라는 마지막 연에서는 얼어버린 마음을 녹일 수 없다는 인 식 아래 무력감마저 느껴진다.
이 학습자가 인지적․감정적 전환을 이루는 것은 자작시 해설 텍스트를 작성하는 단계에서 나타난다. 학습자는 자신의 시에서 “차라리, 차라리 고장이라도 나 버리면 다 녹지 않을까”를 핵심구절로 뽑았는데, 이 구절 의 의미는 “차라리 내가 포기해버리면 모두 나아질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고, “이 구절은 정말로 내가 공들여 쓴 구절이기에 소중 하다.”라고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학습자의 자화상 시와 자작시 해 설 텍스트는 다소 부정적인 결말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학습자는 자신의 희망을 공들여 쓴 구절을 다시 한 번 해석 하는 과정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반전은 “그런데 생 각해보니 냉장고를 내가 끌 수도 있다!”라는 구절을 통해 잘 드러난다.
학습자는 이 문장 끝에 느낌표를 붙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놀라움 과 기쁨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럼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고 서술하며 마음을 녹이는 일이 자신의 의지에 달린 일임 을 다시 한 번 명시화한다.
이는 학습자가 작성한 활동의 감상에서도 재차 드러난다. [구-10513]은
“이제 얼어있던 나의 긍정적인 성격들을 다시 녹일 수 있게 된 것 같 다.”고 희망적인 전망을 밝힌 뒤, “일단 친구들한테 잘 웃어줘야겠다. 따 돌림 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용기 내서 다가가서 말도 걸고 다른 친구들 앞에서 칭찬도 해줄 거다.”라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세워보기도 했다.
그리하여 활동 후 자기 정의를 서술하는 란에는 ‘소심하다’라는 속성이 사라지고 ‘자신감 넘치는’이라는 속성이 새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자작시 해설을 통해 자아의 재점검을 이룬 학습자의 경우 보다 적극적 으로 성찰의 내면화에 임한다. 이 학습자의 3개월 후 인터뷰에서 나타난 내면화 양상은 다음과 같다.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내가 가끔 차가 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친구 없는 애들을 보고 “쯧쯧, 저러니까 저러지.”라고 생 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 그렇다. 그럴 때는 나 자신한테 놀란다. 그래서 냉동 고를 끄는 것처럼 나도 차가운 마음을 끄고 따뜻하게 변하려고 노력한다. 그 친 구한테 먼저 말도 걸고 게임도 같이 하자고 했다.
[구-10513-인터뷰]
학습자는 교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아직도 차가운 사람이라는 생 각이 들지만, 그럴 때마다 따뜻하게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는 자아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여겨진다.
인터뷰에 임하는 학습자의 태도는 다소 수줍어하긴 했으나 자신의 변화 양상을 밝히는 데는 거리낌이 없었는데, 이는 학습자가 활동 후 서술한
자기 인식(“열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과도 일치하는 양상이라 여 겨진다.
자작시 해설을 통해 자아의 재점검을 이루는 양상은 다음 학습자에게서 도 나타난다.
“내 슬픔을 덮을 수 있는 무지개가 필요하다”라는 구절을 보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동안 내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단 걸 알았다. 하지만 무지개로 내 슬 픔을 덮지 않고 무지개를 걷어서 슬픔 속에 담긴 진심을 알면 어떨까? 하는 생 각이 든다. 기쁠 땐 웃고 슬플 땐 울며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그저 밝아 보이 기 위해서 슬픔을 가리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건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직한 행복을 얻는 법은 슬플 땐 슬퍼해야 하고, 기 쁠 땐 웃어야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행복이다.
[구-30404-3차-3]
이 학습자는 자신이 작성한 시의 한 구절의 의미를 설명하다, 그러한 표현이 나오게 된 자신의 무의식을 깨닫게 되고(“감정을 억누르고 있었 단 걸 알았다”) 그에 대한 가치판단을 새로이 내림으로써(“지금까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인식의 전환을 통한 자아의 재점검 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화상 시를 쓸 때와는 다른 인식(“슬플 땐 슬퍼해야 하고, 기쁠 땐 웃어야 한다”)을 가진 주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는 자화상 시 쓰기를 통한 자아성찰이 정해진 단계에 따라 이루어지 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행하는 과정 어디서든 이루어질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화상 시 쓰기 수업을 안내할 때 이것이 꼭 선형적인 순서를 지켜 이루어지는 경직성을 띠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2) 자작시 퇴고를 통한 자아의 재구성
자작시 퇴고는 주로 학습자의 시 텍스트에서 드러난 의미와 정서를 구 체화하거나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미숙한 작가인 청소년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