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재난협력에 관한 국제원칙 (1) 인도적 지원 4대 원칙
재난구호 및 협력과 관련된 국제원칙은 먼저 1965년 제20차 국제적 십자사・적신월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7가지 「국제적십자운동 기 본원칙(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Red Cross and Red Crescent Movement)」이 있다. 이 기본원칙은 국제적십자 운동의 세 구성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및 각 국의 적십자사를 통합하고 이끄는 공동의 가치로, 국제적십자운동 구성 기구가 취하는 모든 인도적인 활동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이 며 행동원칙이다.122) 수원국에 해를 끼치지 않으며 본래의 목적을 달성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7가지 기본원칙은 ① 인도(humanity),
② 공평(impartiality), ③ 중립(neutrality), ④ 독립(independence),
⑤ 자발적 봉사(voluntary Service), ⑥ 단일(unity), ⑦ 보편(universality) 이다. 이 중 인도, 공평, 중립, 독립의 원칙은 국제적십자운동의 정신과
122) 대한적십자사, 국제적십자운동 기본원칙(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Red Cross and Red Crescent Movement)(서울: 대한적십자사, 2012), p. 2.
존재이유 등의 근본적 성격을 나타내는 원칙이며, 자발적 봉사, 단일, 보 편의 원칙은 국제적십자운동의 구조와 운영방식을 설명하는 원칙이라 설명된다.123)
국제적십자운동의 기본원칙은 이후 재난구호 및 협력, 인도적 지원과 관련된 국제문헌들에 반영되어 있다. 1991년 12월 19일 제78회 유엔총회 결의 제46/182호로 채택된 「인도적 응급 지원의 조정 강화(Strengthening of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Emergency Assistance of the United Nations)
」
124)는 재난의 피해자에게 있어 인도적 지원의 중 요성을 인식하며, 인도적 지원에 있어서의 인도성, 중립성, 공평성 원칙 의 준수 및 피해국의 주권 및 영토에 대한 존중이 필요함을 명시하고 있 다.125) 인도성의 원칙은 생명 및 존엄성 보호를 강조하며, 인도적 지원이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인류에게 제공되어야 하고, 특히 여성이나 아동, 노 인과 같은 취약한 계층에 관심을 두고 이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공평성의 원칙은 인종이나 종교의 차별 없는 지원을 의미하며, 인도적 지원이 온전 히 필요(needs)에 의해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다. 중립성의 원칙은 일방 적인 호의를 배제하며, 분쟁상황에서의 인도적 행위는 한쪽의 이익을 위 한 것이 아니어야 함을 강조한다.126) 마지막으로 2003년 유엔총회 결의 제58/114호에서 상기 원칙들과 함께 확인된 독립의 원칙은 인도적 지원 이 정치, 경제, 군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이뤄져야 하며, 다른 목적과 분리123) 위의 책, p. 3.
124) 동 결의는 국제공동체, 특히 국제연합체제 내에서 인도적 지원을 위한 노력을 더욱 효 율적으로 경주하고 더욱 강화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을 바탕으로 한다. 동 결의는 현재 국제사회의 재난협력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주요 기금 및 기구들, 즉, 유엔중앙긴급대응기금(Central Emergency Response Fund: CERF), 통합지원호소 절차(Consolidated Appeal Process: CAP), 긴급구호조정관(Emergency Relief Coordinator: ERC) 및 인도주의 지원기구 간 상임위원회(Inter-Agency Standing Committee: IASC)의 설립의 근거가 된다.
125) GA Res. 46/182 (19 December 1991), paras. 2~3.
126) 이명근 외, 인도적 지원정책 및 사업 연구: 긴급구호 시스템을 중심으로, p. 45.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127) 유엔총회가 결의를 통해 재확인한 인도적 지 원의 4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표 Ⅲ-1 인도적 지원 4대 원칙 인도
(Humanity)
인도적 지원의 목적은 생명과 건강의 보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며, 지구상 모든 인류의 고통은 어디서든지 해결되어야 한다.
공평 (Impartiality)
인도적 지원은 오직 필요(needs)에 따라서 이뤄져야 하며, 국적, 인종, 성별, 종교적 신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과 관계없이 차별 없이 이뤄져야 한다.
중립 (Neutrality)
인도적 지원을 수행하는 행위자는 정치적, 인종, 종교 또는 신념과 관계된 분쟁 상황에 관여하지 않으며, 한쪽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독립 (Independence)
인도적 지원은 정치, 경제, 군사적 또는 기타 다른 목적으로부터 독립되어서 이뤄져야 한다.
출처: UNOCHA, “Disaster Response in Asia and the Pacific: A Guide to International Tools and Services,” (2013), p. 8.
한편 1990년 결의 제46/182호는 재난에 대한 대응 활동 및 피해국의 대응 역량 강화에 있어서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히 재난대 응이 개발로 이어지는 이전 단계이며, 재난을 당한 국가의 경제발전 및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함을 명시하고 있다.128)
2003년 16개 주요 공여국 및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및 관련 비정부 기구들에 의해 합의된
「
인도주의 공여에 관한 원칙 및 실행(Principles and Practice of Good Humanitarian Donorship)」 또한 인도적 지 원의 핵심 원칙으로 인도, 공평, 중립 및 독립을 명시하고 있다.129) 2007년 IFRC 가이드라인은 지원국의 책임과 관련해 재난구호 및 초기 복구 지127) GA Res. 58/114 (5 February 2004), preamble.
128) GA Res. 46/182 (19 December 1991), paras. 10~11.
129) Principles and Good Practice of Humanitarain Donorship, Endorsed in Stockholm, 17 June 2003, Principle 2, <www.ifrc.org/Docs/idrl/1267EN.pdf>.
원은 기본적으로 인도, 중립, 공평의 원칙에 부합해야 하며, 특히 지원의 우선순위는 필요에 기초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130)
2016년 제68차 유엔 국제법위원회(ILC)에서 채택된 「재난시 인(人)의 보호에 관한 초안 규정」 제6조에서는 상기 국제적십자운동에서 오래전 부터 천명하고 있는 인도, 중립 및 공평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에 더하 여 재난에 대한 대응은 비차별원칙(non-discrimination)을 준수하며 취약계층의 필요에 관한 고려를 바탕으로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131) 비차별원칙은 재난위험 감소과정에서도 준수 되어야 하며, 그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독립적인 원칙으로도 다뤄질 수 있다.132) 2007년 IFRC 가 이드라인 역시 재난에 대한 지원은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국적, 민족, 인종, 종교적 신념, 신분, 성별, 장애, 나이, 정치적 입장 그 어떠한 구별도 없이” 제공되어야 함을 강조한다.133) 한편, 재난은 여성, 아동, 장애인, 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으며, 따라서 이들의 필요에 대한 지원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2007년 IFRC 가이드라인은 재난구호 및 초기 복구지원 과정에서 여성 및 가장 취약한 계층의 특별한 필요를 반영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134)
(2) 주권존중의 원칙
재난에 관한 국제문서들은 대부분 재난을 당한 국가의 주권존중 의무 를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권존중 원칙의 논리적 귀결로서 현 국제법 원칙상 재난구호 및 협력은 재난 발생국의 요청 또는 동의를 필요 로 한다.135)
130) 2007 IFRC Guideline 4 (2).
131) ILC, Draft Articles on the Protection of Persons in the Event of Disasters, with Commentaries (2016), Article 6.
132)Ibid., Article 6, para. 6.
133) 2007 IFRC Guideline 4, para. 2 (b).
134) 2007 IFRC Guideline 4, para. 3 (a).
앞서 언급한 1991년 유엔총회 결의 제46/182호는 유엔 헌장에 따라 개별국가의 주권, 영토적 완전성 및 국내적 통합이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재난 발생국의 동의와 요청에 의해 인도적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136) 2005년 「아세안 재난관리 및 긴 급대응에 관한 협정」 제3조 제1항 전단 또한 동 협정의 기본적 원칙 중 첫 번째로 당사국의 주권, 영토적 완전성 및 국내적 통합이 존중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하단에서 재난의 영향을 받은 당사국(affected Party)은 영토 내에서 발생한 재난대응에 있어 일차적 책임(primary responsibility) 이 있으며, 외부의 지원 또는 지원의 제의는 재난을 당한 당사국의 요청 이나 동의에 의해서만 제공된다고 규정하고 있다.137) 2007년 IFRC의
135) 더 나아가 1998년 템페레 협약 제4조 제5항의 경우, 외부의 인도적 구호 제의를 거절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No telecommunication assistance shall be provided pursuant to this Convention without the consent of the requesting State Party. The requesting State Party shall retain the authority to reject all or part of any telecommunication assistance offered pursuant to this Convention in accordance with the requesting State Party’s existing national law and policy.”
136) GA Res. 46/182 (19 December 1991), para. 3: “The sovereignty, territorial integrity and national unity of States must be fully respected in accordance with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In this context, humanitarian assistance should be provided with the consent of the affected country and in principle on the basis of an appeal by the affected country.” 물론 동 결의에서 의 재난을 당한 국가의 동의는 ‘shall’이 아닌, ‘should be provided with’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성격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 동의 없이도 구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David D. Caron and Charles Leben, The International Aspects of Natural and Industrial Catastrophes (Leiden/ Boston: Brill/Nijhoff Publishers, 2001), p. 78, para. 110.
137) ASEAN Document Series 2005, p. 157, Article 3 (1): “The sovereignty, territorial integrity and national unity of the Parties shall be respected, in accordance with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and the 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 in the implementation of this Agreement. In this context, each affected Party shall have the primary responsibility to respond to disasters occurring within its territory and external assistance or offers of assistance shall only be provided upon the request or with the consent of the affected Party.”
가이드라인 또한 제3조에서 재난을 당한 국가는 영토 내에서의 재난위험 감소, 구호, 초기복구지원을 제공하고 조율할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명 시하고 있다.138)
이러한 맥락에서 재난 시 외부의 지원을 요청하거나 받는 국가는 영토 내에서의 지원에 관해 전반적으로 지시, 통제, 조정 및 감독할 권한을 갖 는다.139) 이는 재난 발생국의 일차적 역할 및 책임을 보완하며, 국제법에 부합하는 주권적 권리(sovereign right)의 일환이라 설명된다.140) 유엔 국제법위원회(ILC)의
「
재난시 인(人)의 보호에 관한 초안 규정」
제10조 제2항 역시 재난을 당한 국가는 구호 지원에 대한 지시, 통제, 조정 및 감독에 있어 일차적 역할을 수행함을 명시하고 있다.141)한편 피해국의 요청이나 동의가 없을 경우 인도적 지원이 불가능한 것 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142) 실제 외부의 인도적 지원 제공을 위해 재난을 당한 국가의 요청과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지에 관해서는 유엔 국제법위원회(ILC)의 ‘재난시 인(人)의 보호’에 관한 주제 검토 과정에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최종 초안 역시 대다수의 협약이 취하고 있 는 입장과 같이 동의 필요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결론은 「재난시 인(人)의 보호에 관한 초안 규정」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 는데, 예를 들어, 제3조의 용어의 사용에서 ‘지원국’을 “재난의 영향을 받은 국가(affected State)의 동의에 따라 지원을 제공하는 국가”로 정의하 는 것을 볼 수 있다.143) 따라서 현재까지의 관련 국제문헌에서는 주권존
138) 2007 IFRC Guideline 3 (1).
139) ASEAN Agreement, Article 3 (2).
140) 2007 IFRC Guideline 3 (3).
141) ILC, Draft Articles on the Protection of Persons in the Event of Disasters, with Commentaries (2016), Article 10 (2): “The affected State has the primary role in the direction, control, coordination and supervision of such relief assistance.”
142)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오시진, “재난 발생시 일방적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제법적 검토,”
고려법학, 제22권 제3호 (2015), pp. 649~684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