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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를 경험하였는데, 이는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이 오토바이 운전에 대 해 위험하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과 연관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 나 오토바이 운전에 대해 응답자 본인이 느낀 위험성에 대해서는 동부 거주 여성과 읍면부 거주 여성의 응답에서 차이가 있었다. 동부 거주 여 성의 경우 외출이 주로 시내 도로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이들이 지각할 수 있는 공간 환경 상의 제약은 이륜차 도로가 부재하는 것에 집중되었 다. 그러나 읍면부 거주 여성의 경우 여기에 더하여 지방도를 의식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경우 시내까지의 거리 및 지방도 환경 상 오토바이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고 위험하다고 응답하였다.

이처럼 결혼이민여성들의 오토바이 운전 숙련도는 한국에 와서 발휘될 일이 없어, 이동 수단으로서의 오토바이 또한 이용이 저조했다. 따라서 결혼이민여성들의 가정에서 오토바이를 구입할 유인은 없었으며, 실제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두 여성 또한 원래 집에 있던 남편의 것을 운전하 며, 남편의 말을 따라 반드시 마을 안에서만 이동한다고 대답하였다. 이 처럼 한국에 온 결혼이민여성들이 이륜차 도로가 따로 없는 공간 환경 과, 이에 더하여 지방도라는 제약까지 돌파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한 국에 와서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는 여성이 소수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공간 환경에 대하여 결혼이민여성 자신이 자각한 위험에 더불어, 한국인 가족 성원들이 모두 위험성을 강조할 때 지방도와 이륜 차 도로의 부재는 큰 제약으로 다가온다.

외출 및 이동에 있어 이들의 의사보다 우선되는 것은 이들의 몸이며, 정 확히는 임신한 몸이다.

결혼이민여성의 경우 '모성(maternity)'10)은 이미 결혼의 암묵적인 계 약 사항에 포함되어 있다. (이선형, 2013) 결혼이민비자(F-6)가 보장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의 체류권은 이들의 모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 이는 아이를 낳지 못한 이주여성은 모성에 근거한 체류권 보장 에서 차별을 받기 때문이다. 임신·출산의 시기가 결혼 초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체류자격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은 어머 니가 된다. (이선형, 2013) 가족들은 결혼이민여성들의 빠른 임신을 기대 하며, 임신에 대한 일은 공론화되어 센터 직원들, 이웃들, 친척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고 격려의 대상이 된다. (김지은, 2007) 이렇게 공적인 압력 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언어 제약을 차치하고서라도 결혼이민여성이 사생 활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것(임신 못한 것) 사람들이, 솔직히 가족이 싫어해요 왜냐면 2년 넘었 는데. 약을 먹니, 뭐 하니 이렇게 물어봤어요 다 가족들이. 저도 (임신 못)하고 싶은 것 아닌데 다른 사람 생각이 다 다르잖아요.

아쉬운 게 (일)하고 싶은데 남편이 안된다구. 이제 임신 됐으니까. 2년 넘게 기 다리니까 없었잖아요. 근데 갑자기 이제 애기가 있으니까 다 기다린 사람들이.

사람들이 다 기다려서. 그만두라고. 그날 바로. 그래서 그만 뒀어요. 근데 거기 서 이제 6주 될 떄 계속 일하면서 하품 나오더라구요. 계속 하품해요. 그래서 이상한 게 거기서 얘기하더라구요. 너 왜 자꾸 하품 나와? 모르겠어요. 늦게 잤 어? 모르겠어요. 그래서 우리 시누이가 와서 얘기하더라구요. 나는 너무 일 좋 으니까 생각도 못 한 거예요. 혹시나? 이렇게 하더라구요. 가서 테스트해보자구.

진짜 이렇게…. 너무 행복해요 다들 행복해요. 근데 나는... 회사에서 너무 친해 져가지구 그 행복 받았는데… (J, 동부 거주)

10) 임신 및 출산과 같은 생물학적 사건과 관련된 몸의 경험으로서의 모성(maternity)을 의미한다. (이선형, 2013)

대상자 10은 임신에 관련하여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없 었던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10은 한국에 온 지 2년이 되도록 임신이 되 지 않자, 주변 사람들이 공공연히 피임 여부에 대한 의심을 화제에 올렸 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10은 그 원인을 적응 스트레스로 생각하고 있 었는데, 그 이유는 2년이 넘어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곳에서 직장 동료들과 사이가 좋아지고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끼자 바로 임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은 임신을 하자마자 임신한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식구들의 요구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래두 이제 첫째가. 병원에서두 우리가 모르잖아요. 솔직히 가족들이 뭐라구 하면 그거 받아들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겁이 많아요. 분만 할 수 있지만, 하지 만 시누이가 자꾸 수술하라고. 왜요? 너는 겁이 많아서 안 된다구. 얼마나 무서 운지 알아? 그래서 내가 그 말을 받아들이면서 사인을 하는 거에요. 이게 제 힘 으로 할 수 있는 것 해야 되는데 처음에 무서워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다른 말 쉽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국말을 많이 알아 야 좋은 것 같애요. (J, 동부 거주)

또한 출산에 와서도 대상자 J의 의사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10은 자연 분만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몰랐고, 의사와 소통도 어려웠다. 시누이의 판단에 따라 무엇인지 모르고 제왕절개 서류 에 사인을 해야 했던 경험이 있는 J씨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고, 또 서류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공공재로 취급받는 것과는 별개로, 의심과 감시의 시선을 보내 던 가족들에게 있어서, 임신은 결혼이민여성들을 비로소 가족으로 받아 들이는 의식의 절차가 된다. 여성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임신은 도망 을 가지 않겠다는 증표로 작용할 뿐 아니라 실제로 이동이 어렵다는 점 에서 감시의 눈길을 느슨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대상자들의 응답 속에

서 임신 전후로 이동성의 자유가 크게 달라졌다는 응답을 찾아볼 수 있 었다.

한국 오기 전 공부했어요. 한국어 기초만 공부하고.. 한국에 와서 거의 3년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밖에 안 나갔어요. 어떻게 버스 타는지도 몰랐어요. 임신한 다 음에는 나가요. 2016년에 아기 가졌고 그 다음에 여기 백제, 한국 박물관 갔어 요. 다문화 센터 팜플렛 봤어요. 그렇게 어디에 다문화 센터가 있는지 알았어요.

그 다음에 가서 공부했어요.

아기 가지고 나니까 나갔어요. 왜냐하면 내 남편 친구 있어요. 아내가 베트남인.

베트남인이 센터 가면 거기서 친구 찾아. 다른 남자 찾아. 이혼했어요. 남편 무 서워. 내가 나가면,(내가 나갈까봐) 필리핀인도 그럴까봐. 남편한테 난 베트남인 같지 않다고 말했지만... (C, 동부 거주)

남편 같이 이야기 해 주면, 저는 애기 없으니까 남편도 걱정 하잖아요. 그냥 남 편 다 그래요 걱정.애기 없어? 남편 말만 들어 그냥 나가. 다 있어요. [항상 남 편하고 나갔어요?] 네네 어디 가면 다 남편 같이. 남편이 "안돼. 너는 (센터에 가서) 공부 못해." 그냥 또 책 하나 주었어. 저는 그냥 답답. 왜 센터 안 가? 근 데 저 애기 있어요? 빨라요. 검사 있어도 아침에 검사하고 낮에도 센터 가요.

빨라요. 제가 처음에 와서 애기 없으니까 센터 오고 싶어요. 그런데 남편이 "지 금 안돼요." 그냥 책 줘요. 어떻게 봐야 할지 잘 몰라요.

[연구자: 지금은 어떄요?] 괜찮아. 그냥 괜찮아. 그때 처음 애기 없으니까 남편 걱정해요... 그냥 애기 있은 전에 그 때 남편은 같이 왔다 같이 와요. (S, 읍면 부 거주)

대상자 C는 도망갈 것을 의심하는 남편 때문에 한국에 오고 첫 3년 간을 집에만 있었다가,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외출이 허용되었다고 말한 다. 첫 외출에서 우연히 센터의 존재를 알고, 영어로 된 설명을 읽고 어

떤 곳인지 알았다고 한다. 대상자 S의 남편 또한 소통의 불편을 해소하 기 위해 아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생각은 있었으나, 센터에는 보내지 않으려 했다. S씨는 결혼 전 캄보디아에서 한국어 공부를 할 때 센터의 존재를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남편이 보내 주지 않으니 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임신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모든 절차는 갑자기 빠르게 진행되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바로 센터에 보내 준 것이다. 임신 전에는 늘 어디든지 동반하던 남편은 임신 후부터 S씨가 혼자서도 외출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가족들에게 있어 결혼이민여성의 한국어 습득은 언어습득의 차원 이전 에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체계적인 단체 한국어 교육의 참여는 '나쁜 친구'를 사귀는 것, 즉 가출이나 '나쁜 생각', 즉 취 직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를 불러온다. (김지은, 2007) 이에 따라 결혼이민 여성들의 한국 거주 초기에 남편들은 방문교육을 신청하는 수고를 감당 하거나 소통의 불편을 감수할지언정 센터에 보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 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신과 감시의 눈길에 직면한 결혼이민여성들은 임신이 라는 의례를 통해 진짜 가족이 되는 단계를 통과할 필요가 있다. 즉 이 들은 ‘국민의 배우자’11)에서 ‘국민의 어머니’가 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결혼이민에 포함된 모성의 계약을 수행함으로서 보여 주어야 한다. 임신 이후에 센터에 나가 한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한국 생활 적응을 위한 노 력으로써 대체로 관대한 눈길로 보아진다. 임신이라는 의례 전후로 센터 에 가는 동일한 활동의 의미가 잠재적인 도망의 몸짓에서 가족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뒤바뀌는 것이다.

(2) 구속 및 감금

전술하였듯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임신 시기부터 조금씩 외출을 하거 나, 센터에 가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대답한 반면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11) ‘국민의 배우자’일 것은 결혼이민(F-6) 비자 발급의 첫 번째 조건으로서,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민과 결혼하게 되면 국민의 배우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