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지역 군사·안보적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2. 아·태지역 군사·안보적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본 한반도 분단 비용과 통일편익
가. 분단 비용
한반도 분단의 고착은 미국과 소련 간 지정학적 대립의 부산물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직후, 한국의 이승만 정부는 통일을 위해 한국전쟁의 재개도 불사하고자 하 였다. 다시 한국전쟁에 연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미국은 한국을 만류하기 위해 한국에 안전보장을 공약해야 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북한의 군사적 침략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이 절실하였던 바, 한미동맹의 체결은 양국의 실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접 점이었다.100 한편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분쟁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1961년 7월 소련과 「조-소 우호협조 및 호상 원조조약」, 중국과 「조-
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동북아 지역에서 는 한미일 대 북중러 간의 군사·안보적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물론 중국과 소련 간 분쟁이 노골화되고 미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면 서 북중러의 북방 삼각 체제가 완화되지만, 냉전 기간 양 진영 간 ‘적대 적 세력균형’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냉전의 종식 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지정학적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자국 주도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시키고 있는데, 동북아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미국은 북한 의 재래식 무기 및 핵 개발에 대항하여 한국에 확장억지(extended
100_Victor Cha, “Powerplay: Origins of the U. S. Alliance System in Asia,”
International Security, Vol. 34, No. 3 (Winter 2009/2010), pp. 15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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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errence)를 제공하고 있다. 한반도에는 2만 8천여 명의 미군이 상주
하고 있으며, 한미 간 정기적 군사훈련, 긴밀한 정보교류 등 안보협력 이 공고하다. 한편 미국은 한미동맹의 영역에 한반도 이외 지역에서 의 역할을 추가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역내 비전통 안보 의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용성 (strategic flexibility)’ 확보가 필요하다. 미국은 대 테러전, 중동 지역 에서의 연루, 자국의 재정난 등으로 인해 동맹국이 특정위협에 대한 대응에 있어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미국이 지원하기를 희망한다. 이러 한 분업구조(division of labor)가 확립된다면, 미국은 아·태지역에 배 치되어 있는 미군의 자산을 비전통안보 의제에 대한 대응에 전용하여 활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전략은 미일동맹의 강화에도 투영 되고 있다. 일본은 자국의 ‘보통국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위대의 집단안보 차원의 무력 사용을 허용하였고, 일본이 역내안보 의제에 있 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미국은 이를 환 영하였다. 아울러 미국은 북한의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연계를 추구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정책결정자 들의 국수주의적 행위로 인해 양국의 민족감정이 고조되어 있기 때문 에 동맹의 연계가 답보상태에 있으나, 미국은 이를 지속적으로 추동하 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동맹 강화 및 연계 시도가 북한에 대한 억지력 강화 및 비전통안보에 대한 대응만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 동북아뿐만 아니라 동남아 및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도 역 내 국가와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를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호주 북부 다윈(Darwin) 지역의 미 해병대 순환 배치가 상징하는 것처 럼 미국과 호주의 동맹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기존의 모호성 유지
전략에서 벗어나 남사군도 영토 분쟁지역이 미국과 필리핀 동맹조약 의 관할 범위에 속함을 명확히 하였다. 미국은 필리핀 및 태국과 동맹 의 테두리 안에서 정규적 군사훈련을 실시해 왔는데 최근에는 이를 다 자가 참여하는 대규모의 군사훈련으로 확장하여 수행하고 있다. 중국 은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동맹 강화가 타 지역에서의 동맹 강화와 연동 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즉, 미국의 아·태지역 재균형 전략의 핵심에 미국 주도 동맹 체제의 강 화가 있는데, 미국 주도 동맹들은 비전통안보에 대한 대응을 명분으로 점증적으로 ‘지역화’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지역화’를 표면적 명분 으로 내세우면서, 중국에 대한 봉쇄의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시키고 있 다고 판단한다.101
종합하자면 미국 주도 동맹체제의 강화 및 지역화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인식 차가 심화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한미동맹이 자리 잡고 있다. 즉, 한반도 분단은 동북아 뿐만 아니라 아·태지역에서 ‘적대적 세 력균형’ 구도가 해소되는데 있어 장애요인이다.
한편 한반도 분단은 아·태지역에서 효율적인 다자주의가 태동하기 위한 신뢰의 규범 및 지역 정체성이 형성되는데도 제약요인이다. 아·
태지역은 다자안보협력체가 발전되어 있는 유럽과 달리 효율적인 다 자협의체가 부재하다. 이는 무엇보다 아·태지역 국가들이 유럽 국가들 에 비해 국력, 문화, 경제력 등에서 이질성이 높고, 역내 국가들 사이에 서 역사적 갈등의 앙금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 부 국가들은 영토분쟁에 휩쓸려 있기도 하다. 아울러 중국과 미국이
101_박재적·김동수, “비전통안보의 부상과 아·태지역 미국 주도 동맹 체제 강화: 한미동 맹에의 함의,” 국제문제연구, 제14권 1호 여름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2014), p.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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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지역 다자안보 협력에 관해 상이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동 지역에서 효과적인 다자안보 협력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미국은 호주, 뉴질랜드, 인도와 같은 동아시아 역외 국가도 포함되는 포괄적 다자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배제되고 동아시아 국 가만 참여하는 제한적 다자주의를 선호해오다가, 최근에는 ‘신 아시아
안보관(New Asian Security)’을 주창하면서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
가 등이 포함되는 범 아시아 지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물론 중국의 새로운 다자안보 구상에서도 미국은 배제되어 있다.
역내에서 효율적인 다자협의체가 태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 과 중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이 ‘영합(zero-sum) 관계’에 입각한 안 보관을 지양하여야 한다. 이에 착안하여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제안 하고 있다.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는 강대국과 차상위 도전국의 국력차 가 좁혀지면 양국이 전쟁에 휩쓸리게 된다는 서구 세력전이이론을 부 정하면서, 패권국 미국과 도전국 중국이 서로의 이익을 존중하며 협력 적 질서를 구축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북한의 핵문제와 인권탄압은 중국이 역내에서 신형대국관계 와 같은 협력적 담론을 주도하는데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고,
2013년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3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북
한의 일련의 공세적 행위에 대응하여 한국과 미국은 한미동맹의 테두 리 안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는데, 중국은 미국의 항공모함 이 훈련 차 서해 또는 동해에 배치되는 것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미국 과 중국의 지정학적 대립의 관점에서 북한을 여전히 자국의 ‘전략적 자산(strategic asset)’으로 인식하는 중국은 북한의 공세적 행위에 대 한 편향적 두둔 또는 방관의 태도를 견지하였다. 또한 중국은 중국으
로 탈출한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에 침묵함으로써 인류 보편적 규범을 수호하는 대국의 이미지를 창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후원국으 로서 중국의 이미지는 아·태지역에서 중국이 역내 규범 및 다자 정체 성 형성을 주도해나가는데 있어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효율적인 다자주의가 태동하기에는 척박한 아·태지역 안보환 경을 고려할 때 소다자주의가 양자와 다자주의 사이에서 교량적 역할 을 감당할 수 있다. 소다자주의는 ‘소수의 국가가 일정 수준의 제도화 의 틀 속에서 특정 이슈를 다루기 위해 연계되는 것’으로 정의된다.102 소 다자협력을 통해 역내 국가들은 효율적인 다자안보협력이 태동하 는데 필수적인 신뢰를 구축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소다자주의는 기 존 동맹이나 상당 수준의 안보협력 관계에 있는 국가들 간에 결성되는 경향이 큰 바, 아·태지역에서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 의해 주도 되고 있다.103 그러므로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소 다자협력을 중국 을 봉쇄하기 위한 전선의 구축으로 인식한다.
한반도 분단은 소다자주의가 활성화되는데 있어 장애요인이다. 무 엇보다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의 정체는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 2003년 6자 회담이 결성될 당시에는 6자 회 담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토대로 아·태지역의 다양한 안보 의 제를 다루는 확장된 다자협력체로 발전하리라는 기대가 팽배했었다.
그러나 6자 회담은 부침을 거듭하다가 현재는 정체 상태에 있으며 북 핵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6자 회담 자체를 정체시킬뿐만 아니라 한미중 소 다자협력의 발전도 가로막고 있다. 의장국으로서 6
102_박재적,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최진욱 외,『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추진 방향
(서울: 통일연구원, 2013), p. 80.
103_위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