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일정책의 재인식
가. 기존 통일정책: 민족중심, 사회문화 중심의 통일정책
지난 20년간 통일정책은 민족중심, 사회문화중심의 통일정책 기조를 유 지하여 왔다. 이러한 기조는 지난 10년간 햇볕정책 하에서 극적으로 강화되 면서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와 기여를 하기도 하였지만, 몇 가지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하였다.12 대북인식과 관련, 햇볕정책에서는 북한 지도부가 개 혁·개방의지가 있으나 ‘한반도 냉전구조’로 인해 주저하고 있다고 보고 ‘냉 전구조’의 핵심인 한국과 미국, 일본의 대북 적대정책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보았다.13 북한이 안심하고 개혁·개방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대북정책의 주된 관심이었다. 즉, 햇볕정책에서는 김정일을 독재자의 이미 지보다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 지도자로서 인식함으로써, 타도와 변화 의 대상이 아니라 지원의 대상으로 보았다.
햇볕정책에서는 화해·협력의 추진에 대하여 매우 확고한 입장을 갖고 일 관성을 보였다. 그러나 화해·협력은 북한변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정책 의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화해·협력 그 자체가 정책의 목표가 된 듯한 느낌 을 주었다. 이는 정책추진에 있어서 보상, 설득, 제재의 불균형에 기인하였 다고 할 수 있다. 화해·협력이 긴장완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북한이 변화하 지 않을 경우 정책대안을 찾지 못하였다. 실제로 대북 화해정책이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조치를 가져오지 못하였고, 더욱이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교류협력의 지속 이외에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 였다. 이는 햇볕정책이 북한의 변화의지에 대한 확신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
12_최진욱,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북한의 반응,” 통일정책연구, 제17권 1 호 (2008), pp. 56-59.
13_윤덕민, “새정부의 외교정책 추진방향: 글로벌 코리아 실용외교,” 국가안보전
이기도 하다.
나. 한반도 선진화의 초석: 통일 미래에 대한 청사진 제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제안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국내외적 환경의 변화는 다시 한번 대북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대북 정책은 지난 20년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 바탕 위에 본격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민족통일대계”로 발전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10 년 동안 ‘통일정책’이 아닌, 북한을 관리하고 남북관계의 현상적 측면만을 강조해 온 ‘대북정책’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이제 지난 60년의 남북관계를 돌아보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통일정책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국민 대다수가 통일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하고 있고, 이는 이미 지난 대선과 총선결과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한반도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초석으로서 통일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정책수립의 기초가 되는 확고한 목표의식을 정립해야 한 다. 어떤 방식의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 통일인가 하는 통일관의 정립이 전제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국 이 민족적 책임감에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야 한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지난 60년간 우리 국민이 스스 로의 힘과 노력에 의해서 성취한 소중한 자산으로 이를 더욱 발전시켜나가 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이러한 발전과 복지의 혜택에서 소외된 북한 주민의 처지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야 한다.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시 대에서 선진화시대로 변모한 대내환경과, 탈냉전에서 9·11시대로 변모한 대 외환경 속에서 통일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14
한반도 선진화는 현재와 같은 분단 체제에서는 매우 요원한 일이다. 이제 는 북한을 관리하고 남북관계의 안정만을 희구하는 소극적 정책에서 벗어 나, 한반도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적극적인 통일정책이 필요하 다. 그 동안의 기능주의적 통일방식을 바탕으로 한 남북한이 교류협력을
14_최진욱, “남북관계 60년과 통일담론,” KDI 북한경제리뷰, 제10권 8호(2008.8).
지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부터 과 감히 벗어나야 한다. 인식적 차원에서 기다리는 통일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통일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다. 남북관계 업그레이드 방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압박하거나 고립시키는 정책은 아니지 만, 분명 과거와 차별되는 새로운 차원의 남북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즉, 남 북관계가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호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핵문제가 해결되고 북한이 개방되어야만 대규모의 남북경협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민간기업과 국제사회의 참여 없는 남북경협의 발전은 한계가 있으며, 본격 적인 남북경협을 위한 최소한의 환경이 북한의 개방과 비핵화이다.15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내세운 대북정책 의 공약인 ‘비핵·개방·3000’ 구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비핵·개방·3000’ 구상 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하면 한국과 국제사회가 지원하여 10년내 북한의 일인당 국민소득을(GNI) 3천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정부는 ‘비핵·개방·3000’ 구상을 보완·발전시켜 2008년 통일부 업무 보고에서 상생·공영정책을 제시하였다. 이후 7월 11일 국회 개원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과 공영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 다”라고 밝혔으며, 통일부는 7월 31일 공식브리핑을 통해 “상생과 공영을 기본으로 5년간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함으로써 “우리 정부 대북 정책의 공식명칭과 공식테마는 상생과 공영”으로 결정되었다.
15_북한에서 70년대 재일동포들의 투자, 80년대 합영법, 90년대 라진·선봉, 2002 년의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성과를 보지 못한 것도 결국 정치·경제체제 때문이
<그림 3-1> 이명박 정부의 상생·공영정책 기본 구도
2. 통일개념의 확대와 수평적 네트워크 형성의 필요성
가. 초민족적 국가 개념의 정립
한국사회는 두가지 차원에서 모두 초민족적 공동체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 660만 명의 한인들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으며, 외국으로 나가는 연인원이 천 2백만 명을 넘어섰다. 또한 한국사회는 급속히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으며, 개방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 지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 거주 외국인과 국제결혼 가족들에 대한 적절한 정책 이 뒤따르지못하고 있다. 통일과정을 통해 화해와 개방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국가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을 국가 경쟁력 강화의 소재로 삼아야 한다. 자기 동포나 자국에 사는 외국인이 비판하는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정책수립이 필요 하다. 통일을 계기로 폐쇄성과 단일민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국내 거주 외국인에 게 지방 참정권 중 주민소송제, 주민감사청구권, 조례 개·폐 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 통일의 개념 확대
통일의 개념은 남북한의 통일을 넘어서 전 세계 재외동포들을 포함하는 개념 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한민족 공동체 형성은 한국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 또는 고유성을 인정하는 문화다원주의에 기초하여야 한다. 이는 독자적인 문화영역을 형성한 각국의 한민족 공동체의 이중 정체성을 인정 하고 이들의 소외감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민족 공동체에 한국이 중심 이라는 우월주의는 자칫 해외 한민족 사회를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져 한민족 공동체 사회의 형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다. 수평적 네트워크의 필요성16
한민족 공동체는 전지구적으로 하나의 정체성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개별국가별로 상이한 정체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하 는 것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수평적 네트워크의 개념은 민족공동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민족공동체가 한국중심이라면 수평적 네트워크는 여러 형태의 세계 속 한인들이 각지에서 하나의 중심을 형성하면서 느슨하게 연결된 형태의 혈연적, 문화적 공동체이다.17
재외동포사회는 한국이나 북한의 일부가 아니며, 모국이 중심이 되고 재외동 포사회가 이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대등한 관계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 런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조국의 공민으로서 조국을 위해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한민족 동포사회의 수평적 네트워크 개념이 거주국에서 재외동포들의 성공 적 정착에 바탕을 둔 것이며 조국으로의 재이주를 목표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 라는 점에서 통일한국의 초기단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통일 이후 남북의 경제 력 격차로 인해 북한 주민의 대규모 남한유입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노동력 의 균형을 파괴하고 남한의 노동시장을 교란할 뿐만 아니라 북한지역의 발전에 도 저해요인이 될 것이다.
향후 통일의 방향은 변화하는 문화인류학적 환경과 한민족의 현실에 맞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 한민족 공동체 형성의 남북연합단계에서, 남북한과 함께 재외동포가 수평적 네트워크 개념으로 참여하는 경제, 사회, 문화 공동체를 거 쳐 통일국가를 이루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즉, 민족의 범위를 한반도에 국한하
16_보다 자세한 논문은 최진욱, 남북한 재외동포정책과 통일과정에서 재외동 포의 역할 (서울: 통일연구원, 2007) 참조.
17_통일노력 60년 발간위원회편, 하늘길, 바닷길, 땅길 열어 통일로: 통일노력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