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고 말함으로써 역내 사이버 공간의 규칙기반 질서 확립을 위한 호주 의 노력에 싱가포르가 협조할 의지가 있음을 전달하였다. 나아가 호주는 2017년 말 아세안 사이버 위협 완화 워크숍을 싱가포르와 공동 개최하기 로 합의함으로써 양국 간 협력관계가 양자 협력을 넘어 호주와 아세안 간 협력관계로 발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호주가 규칙기반의 사이버 질서 확립을 위 한 다자협력을 추동하려는 과정에서 왜 하필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의 입장을 특히 신중하게 여겼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전통적으로 호주의 협력안보 규범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선 동남아 국가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특히 아세안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큰 입지와 영향력을 가진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의 협조가 중요하기 때문으 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 아태 지역 난민 문제에 대응코자 지역적 다 자협력을 주도했던 당시에도 호주는 비슷한 전략을 전개한 바 있다.151) 둘째, 아세안 국가 중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가 사이버 안보 문제에 상 대적으로 큰 관심을 보이며 대응 모색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 이다. 일찍이 싱가포르는 사이버 안보가 자국의 미래 번영과 생존에 필 수적이라는 인식하에 국가 사이버 추진체계를 정비하고 영국과의 양자적 협력을 체결하는 등 대응 모색에 발 빠른 모습을 보여왔다.152) 인도네시 아 역시 2015년 사이버 공간에 대한 국제법 적용을 촉구하는 유엔 보고 서 채택에 참여하는 등 사이버 안보 거버넌스 구축에 관심을 보여왔 다.153)
인도-태평양 지역 사이버 공간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역내 국가들 의 관계 구도를 전략적으로 파악한 호주는 이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해나갔는데, 이는 중견국 네트워크 전략의 ‘맺고 끊기’ 단계로 볼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중견국은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다른 행위자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관계를 강화 또는 약화시키는 변환적 중개외교를 전개함으로써 전체적인 관계 구도에서 자국의 위치와 역할을 극대화해나간다.
2018년 말 호주가 아세안 회원국들의 정보 공 유체인 아워 아이즈 에 편입하고자 했던 사례는 맺기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2018년 10월 크리스토퍼 페인(Christopher Pyne) 호주 당시 국방부 장관은 호주 -인도네시아 국방장관 회의에서 호주가 아세안과의 대테러 관련 정보공 유 및 사이버 안보 협력관계를 구축하길 원하며, 따라서 아워 아이즈에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는 뜻을 전달하였다.154) 장관회의에 앞서 호주 언 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페인 장관은 “아직 호주는 아워 아이즈 가입을 공 식적으로 초대받진 않았지만, 우리는 가입과 정보 및 훈련 제공을 희망 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참여가 결정될 경우 호주는 아워 아이즈 국가 의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 향상을 돕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155)
호주가 아워 아이즈에 대한 가입 의사를 표명한 것은 기본적으로 아세안과의 사이버 안보 협력관계를 강화하길 원했기 때문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파이브 아이즈와 아워 아이즈를 잇는 중개자가 되는 것을 희망 했기 때문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만약 호주가 아워 아이즈에 가입하 게 된다면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테러 및 초국적 범죄와 관련한 중 요 정보가 파이브 아이즈와 아워 아이즈 간에 공유될 수 있으며, 이러한 정보공유 과정에서 호주의 중개권력과 위치권력은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 에 없다.156) 나아가 두 정보공유 네트워크를 연계시킴으로써 파이브 아
154) Australian Department of Defence, “Joint Chairs’ Statement:
ASEAN-Australia Cyber Policy Dialogue,” Commonwealth of Australia, September 18 2018a.
155) James Massola, “Christopher Pyne backs Australia joining Asia’s ‘Our Eyes’
intelligence group,” The Sydney Morning Herald, October 11 2018.
https://www.smh.com.au/world/asia/christopher-pyne-backs-australia-joining-as ia-s-our-eyes-intelligence-group-20181011-p5092t.html (검색일: 2019.8.25.) 156) Massola, 2018.
이즈에 대한 아세안의 시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고, 이를 토대로 아세안을 다중이해당사자주의 거버넌스를 지향하는 진영으로 끌어들일 기회 역시 창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맺기 전략은 파이브 아이즈 동맹 내에서도 전개되었는데, 사이버 공간에서의 테러 및 조직적 범죄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통신기술 기업들에 전자메시지 암호화 백도어 설치를 강력히 요구해온 호주는 파 이브 아이즈 동맹국들에 뜻을 함께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정보동맹 관 계를 더욱 강화하려는 노력을 전개하였다. 2017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파이브 아이즈 회의에 호주 측 대표로 참석한 브랜디스 법무장관은 회의 를 약 2주 앞둔 시점에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범죄행위에 이용된 전자메시지에 접근해 이를 조사하는 문제에 있어 호주 정보기관과 미국 을 비롯한 나머지 파트너 국가들의 정보기관 간 협조가 더욱 강화될 필 요가 있다고 역설하면서, “국가들은 (전자메시지 암호화 해제를 위한) 법 적 의무의 본질에 관한 공통된 표준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하였다.157) 또 한, 그는 회의 직전 발표한 성명에서도 역시 호주가 테러집단의 인터넷 악용 위협과 그 방지책으로서 거론된 전자메시지 암호화 해제 법 제정에 관한 파이브 아이즈 국가 간 논의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158)
파이브 아이즈 회의 직후 동맹국들은 ‘5개국 장관 공동성명(Five Country Ministerial 2017: Joint Communiqué)’을 발표하였고, 호주의 요 청대로 ‘암호화(encryption)’가 폭력적 극단주의, 글로벌 이주·난민, 국경 관리·인신매매·항공보안, 사이버 안보와 함께 5대 과제로 명기되었다. 공 동성명을 통해 5개국은 “암호화가 테러위협을 포함한 심각한 범죄를 조 사하는 과정에서 통신내용에 합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공 공안전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심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한편 “사이버 안보와 개인의 권리 및 자유를 지키면서 이러한 문제 해결 을 위해 통신기술 기업들과의 협력을 진전시켜 공유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것”을 약속하였다.159)
157) David Wroe, “How the Turnbull government plans to access encrypted messages,” The Sydney Morning Herald, June 11 2017.
https://www.smh.com.au/politics/federal/how-the-turnbull-government-plans-to -access-encrypted-messages-20170609-gwoge0.html (검색일: 2020.10.30.) 158) Harry Pearl, “Australia to seek greater powers on encrypted messaging at
‘Five eyes’ meeting,” Reuters, Jun 25 2017.
https://fr.reuters.com/article/us-australia-security-messaging-idUSKBN19G044 (검색일: 2020.10.30.)
159) Five Country Ministerial and Quintet meeting of Attorneys General, “Five
한편, 호주는 사이버 공간에서 중국의 행동을 배격하는 태도를 분 명히 밝힘으로써 중국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끊기 전략 역시 전개하 였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호주는 자국의 5세대 통신망 사업에서 중 국 기업 화웨이와 ZTE를 퇴출하였는데, 주목할 점은 호주가 그러한 결 정을 내린 시점을 전후로 나머지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에 화웨이의 5세 대 통신망 사업 참여 배제를 강력히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호주 는 파이브 아이즈 국가 중 처음으로 화웨이를 5세대 통신망 사업에서 퇴 출하였으며, 그 이후로도 지속해서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들에 호주의 전 례를 따르길 주문해왔다.160) 특히 화웨이 퇴출을 결정한 장본인인 턴불 총리는 퇴임 이후에도 영국 정부에 화웨이를 배제하는 데 동참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예로 2019년 3월 턴불 총리는 영국 방문 중 한 연설 에서 “호주는 이러한 (화웨이 퇴출) 결정을 내린 첫 번째 국가이다. 우리 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우리 스스로 주권을 지키고 변화에 대비하 기 위함이다…(화웨이 퇴출 문제에 있어) 영국이 결정에 앞서 여전히 고 민 중인 것으로 아는데, 나는 영국 신호정보국(GCHQ)이 (화웨이 장비 도입의 위험과 관련해) 우리와 일치한 견해를 드러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라는 발언을 전하면서 영국 역시 호주와 뜻을 함께할 것을 촉구 하였다.161)
호주가 화웨이 퇴출 운동에 앞장서온 데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호주는 중국을 자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 및 탈취 행위의 가해국으로 여겨왔으며, 동시에 안전하고 자유로운 규칙기반의 사이버 질서를 교란하는 위협 국가로 인식해왔다. 이러한 부 정적 인식은 2019년 10월 피터 더튼(Peter Dutton) 호주 내무부 (Department of Home Affairs) 장관이 호주를 겨냥한 중국의 사이버 공 격과 내정간섭 행위를 비난했던 데서 잘 드러난다. 더튼 장관은 “호주는 중국과 매우 중요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우린 우리 대학생들 이 부당하게 영향을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지적재산 침탈과
Country Ministerial 2017: Joint Communiqué,” June 27 2017.
160) Supratim Adhikari, “Former PM Malcolm Turnbull tells UK to follow Australia’s lead on Huawei 5G ban,” The Australian, March 6 2019.
https://www.theaustralian.com.au/business/news/former-pm-malcolm-turnbull-t ells-uk-to-follow-australias-lead-on-huawei-5g-ban/news-story/df3c7cd172a4b 34b70d88a67a196d48b (검색일: 2019.6.7.)
161) Malcolm Turnbull, “Address to the Henry Jackson Society, London,” The Hon Malcolm Turnbull’s official website, March 5 2019a.
https://www.malcolmturnbull.com.au/media/address-to-the-henry-jackson-societ y-london (검색일: 2019.6.7.)
정부 및 비정부 기관을 겨냥한 해킹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함 으로써 중국 정부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였다.162)
둘째, 호주는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중국과 거리를 둠으로써 미국 과의 신뢰관계를 강화하고 파이브 아이즈 정보동맹 내에서 자국의 입지 를 키우길 원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호주는 미국과의 군사·
정보동맹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동맹국으로서 자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중시해왔고, 그러한 맥락에서 화웨이 퇴출 운동에 미국과 발을 맞춤으로써 동맹국으로서의 신뢰성과 입지를 강화하길 원하였다고 볼 수 있다163) 더욱이 파이브 아이즈 정보동맹의 경우 미국과 나머지 파 트너 국가 간 정보·첩보 교환(intelligence exchange)이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호주로서는 미국과 견고한 신뢰관계를 유지함 으로써 동맹 내부적으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여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지원받길 원하였을 가능성이 크다.164) 호주는 2016년 국방백서에 서 “파이브 아이즈 정보공동체가 제공하는 정보우세(information superiority)와 첩보협력은 호주 방위 계획에 필수적”이라고 명기한 바 있는데,165) 이는 자국을 겨냥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과 내정간섭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호주가 정보동맹을 통한 미국의 협력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되었음을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호주는 화웨이 퇴출 운동을 통해 파이브 아이즈 동맹 의 역량과 결속력을 강화하길 원하였다. 호주는 중국의 사이버 공격 역 량이 증대하는 상황 가운데 안전하고 자유로운 지역 사이버 공간을 구축 하기 위해선 파이브 아이즈 정보동맹이 강력한 사이버 역량을 갖춰야 한 다고 믿어왔고, 따라서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들이 화웨이 문제를 두고 일치된 행동을 보이지 않을 시 정보동맹의 사이버 역량이 약화됨은 물론 동맹의 자체 역시 약화될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166) 이러한 시각은 2019
162) Ben Doherty and Melissa Davey, “Peter Dutton: China accuses home affairs minister of ‘shocking’ and ‘malicious’ slur,” The Guardian, October 12 2019.
https://www.theguardian.com/australia-news/2019/oct/12/peter-dutton-accuses-c hina-of-stealing-intellectual-property-and-silencing-free-speech (검색 일:2019.11.2.)
163) Christina Zhou and Jason Fang, “Why Australia is prepared to ban Huawei from its 5G network while the UK and Germany aren’t,” ABC News, March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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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bc.net.au/news/2019-03-07/why-is-the-uk-seemingly-not-as-wor ried-about-huawei-as-australia/10866848 (검색일: 2019.6.7.)
164) O’Neil, 2017.
165) Australian Department of Defence, 2016, p.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