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안보 영역에서 호주 연방정부가 설정한 정책 방향은 비교 적 순조롭게 초당파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전통적으로 친중 외교를 지향해온 대표 야당인 노동당은 중국을 사이버 공격의 배후이자 규칙기반 사이버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자로 규정한 연방정부의 정책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연방정부의 화웨이/ZTE 퇴출 결정, 호 주 신호정보국의 사이버 공격 대응 결정, 호주에 대한 외국의 내정간섭 을 방지하는 외국영향투명성제도법안, 그리고 정부 기관이 민간기업들에 사용자 메시지 데이터의 암호화 해제를 강제할 수 있는 ‘지원및접근법안 (Assistance and Access Bill 2018)’ 등에 노동당이 지지를 표명하거나 협조한 데에서 잘 드러난다.
2018년 호주 정부는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자국의 5세대 통신망 사 업에서 화웨이와 ZTE를 퇴출한다는 결정을 발표함과 동시에 파이브 아 이즈 동맹국들에 호주와 뜻을 함께하기를 강력히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정부의 이러한 결정과 행보에 대표 야당인 노동당은 지지와 협조
123) Carr, 2015; Gareth Evans, “No Power? No Influence? Australia’s Middle Power Diplomacy in the Asian Century,” Charteris Lecture at the Australian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AIIA). New South Wales Branch, Sydney, June 6 2012. http://www.gevans.org/speeches/speech472.html (검색일:
2018.10.10.)
의사를 밝혔는데, 노동당 대변인은 연방정부의 화웨이/ZTE 퇴출 결정에 동의의 뜻을 밝히면서 “노동당은 국가안보 문제에 있어선 호주 정보기관 의 조언을 항상 받아들일 것이며, 이는 오래된 초당파적 입장으로 변치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익명을 요구하는 몇몇 노동당 주요 인사들 역 시 노동당이 차기 연방정부를 구성하게 되더라도 화웨이/ZTE 퇴출 결정 이 번복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124) 중국을 대함에 있어 연방정부 및 여당인 자유국민연립당과 차별된 접근을 지향해온 노 동당이 화웨이/ZTE 사태와 관련해 연방정부와 같은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은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 정부가 설정한 국익과 역할 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해외 사이버 범죄 네트워크, 특히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 Islamic State) 퇴치에 호주 신호정보국이 공 격적 사이버 역량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방정부의 결정에도 역시 야당은 지지 의사를 표하였다. 전술한 것처럼 2016년 턴불 총리는 국가 사이버안보전략 발표를 통해 호주가 해외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 의 하나로 공격적 사이버 역량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것을 공표하면서, 이러한 공격적 사이버 역량은 국제적 규칙과 국제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 에서만 사용될 것이며 따라서 국제무대에서 선행적 규범을 옹호하는 호 주의 신용을 높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빌 쇼튼(Bill Shorten) 노동당 당수는 의회 연설에서 “테러에 대응하고 극단주의를 물 리치는 것은…공중지원과 군사훈련을 제공하는 일뿐만 아니라 적의 사이 버 활동을 방어적 방법과 더불어 공격적 방법으로 방해하는 일 역시 포 함한다”라는 발언을 통해 정부 정책에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125)
비슷한 맥락에서 2018년 연방정부가 제안한 외국영향투명성제도 법안에도 노동당은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7년 턴불 총리는 호주에 대한 외국, 특히 중국의 내정간섭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면 서,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제시하였다. 해당 법안의 주요 골자는 호주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의 분야에 대한 외국 세력 의 개입과 간첩 활동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124) Fergus Hunter, “Labor rules out overturning Huawei 5G ban, as renewed pressure expected,” The Sydney Morning Herald, April 18 2019.
https://www.smh.com.au/politics/federal/labor-rules-out-overturning-huawei-5g -ban-as-renewed-pressure-expected-20190416-p51emp.html (검색일: 2019.6.1.) 125) Parliament of Australia, “Speech by Bill Shorten MP,” Ministerial Statements,
(Commonwealth of Australia), November 23 2016.
로비스트들에 대리인 등록을 강제하고, 이들이 호주의 내정에 간섭하거 나 간첩 행위를 자행할 경우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2018년 6월 해 당 법안은 어렵지 않게 하원의 승인을 받고 초당파적 지지하에 상원에서 도 역시 찬성 39표, 반대 12표로 무난히 통과되었다.126)
연방정부에 대한 노동당의 협조는 2018년 12월 정부 기관이 민간 기업들에 사용자 메시지 데이터의 암호화 해제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제정으로도 이어졌다. ‘지원및접근법(Telecommunications and Other Legislation Amendment (Assistance and Access) Act 2018)’으로 불리는 이 법은 정보기관과 법 집행기관이 국가안보적 필요에 따라 통신 서비스 제공 업체의 암호화된 통신 메시지에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암호화 백도어(encryption backdoor) 설치를 강제하는 규정을 담고 있는 데, 이는 통신의 암호화가 안전한 온라인 환경 구축에 필수적이기도 하 지만 동시에 사이버 공간에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범죄 조직의 수단으 로 악용되기도 한다는 연방정부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127) 2018년 9 월 해당 법안이 하원에 처음 제출되어 같은 해 12월 상하원에서 모두 통 과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노동당은 세부 조항의 수정을 요구하며 여당과 대립하였지만, 연말 연휴 전까지 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국가안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노동당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결국 수정안을 철회하고 법안 통과에 합의하였다.128)
이렇듯 연방정부가 야당의 협조를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먼저, 남중국 해와 남태평양 등 호주 인근 지역에서 중국이 보여온 전략적 야심과 공 세적 행동 그리고 호주 정부 기관, 정당, 대학 등을 겨냥한 중국의 사이 버 공격과 내정간섭 의혹이 호주 사회의 반중국 정서를 키웠기 때문으로
126) Jason Scott, “Australia Passes Anti-Foreign Meddling Laws in Message to
China,” Bloomberg, June 28 2018.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8-06-28/australia-passes-anti-fore ign-meddling-laws-in-message-to-china (검색일: 2019.11.11.)
127) Australian Department of Home Affairs, “The Assistance and Access Act 2018,” Commonwealth of Australia, September 16 2019.
https://www.homeaffairs.gov.au/about-us/our-portfolios/national-security/lawful -access-telecommunications/data-encryption (검색일: 2019.11.11.); 암호화 백도 어란, 모바일 기기, PC, 클라우드 서버 등에 저장된 사용자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빼돌릴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128) Paul Karp, “Labor accuses Coalition of welching on a deal over encryption
bill,” The Guardian, February 12 2019.
https://www.theguardian.com/australia-news/2019/feb/12/labor-accuses-coalition -of-welching-on-a-deal-over-encryption-bill (검색일: 2019.10.29.)
볼 수 있다. 2016년에 들어 호주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정치기부금을 통 해 호주 정치인들을 매수하여 내정간섭을 자행해왔다는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2016년 9월 샘 다스티야리 (Sam Dastyary) 당시 노동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이 중국계 기업인들과 단체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그 대가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분쟁 등 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해왔다는 의혹이 불거져 파문이 일었 다.129) 그 이듬해에는 중국계 미국인 로비스트 쉐리 얀(Sheri Yan)이 호 주 내에서 중국 정부의 정보원으로 일해온 사실이 대서특필되기도 하였 는데, 얀이 이미 2015년에 유엔 총회 의장을 매수한 혐의로 미국에서 체 포되어 징역 20개월의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으며, 그녀의 남편이 호주 정보기관에서 오랜 기간 아시아 지역 책임자로 근무했던 이력을 가진 인 물이라는 점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130) 더욱이 2017년에는 중국 공산당이 호주 내 중국인 디아스포라 커뮤니티를 동원하여 연방정부와 노동당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벌이기도 하였다.131)
한편, 호주 사회의 반중 정서가 급격히 고조된 것은 중국의 사이버 공격과 내정간섭을 실존하는 위협으로 구성하려는 연방정부의 안보화 노 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외국영향투명성제도법안 발의를 이틀 앞둔 시점에 턴불 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부 세력들이 호 주의 정치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전례 없고 갈수록 복잡해져가 는 시도를 벌여오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충격 적인 보고서(disturbing reports about Chinese influence)”를 언급하며 해당 법안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하였다.132) 또 법안 발의를 위한 의 회 연설에서도 턴불 총리는 던컨 루이스(Duncan Lewis) 호주 안보정보 국장의 발언을 인용하여, “간첩행위와 내정간섭의 위협은 전례 없는 수 준이며…이러한 위협은 2차 대전 당시와 냉전 초기 소련의 정보원들이 연방정부를 침투했던 때보다 더 심각하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133)
129) Clive Hamilton, Silent Invasion: China’s Influence in Australia. (London:
Hardie Grant Books, 2018) 130) Hamilton, 2018, pp. 77-78.
131) Amy Searight, Countering China’s Influence Activities: Lessons from Australia.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2020. pp. 83-86.
132) Tom Westbrook, “Australia, citing concerns over China, cracks down on foreign political influence,” Reuters, December 5 2017.
https://www.reuters.com/article/us-australia-politics-foreign-idUSKBN1DZ0CN (검색일:2020.10.3.)
133) Parliament of Australia, “Speech by Prime Minister Malcolm Turnbull, National Security Legislation Amendment (Espionage and Foreign Interference)
지원및접근법안이 처음 발의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안보적 수사 법이 활용되었는데, 2017년 6월 턴불 총리는 의회에서 가진 국가안보 연 설에서 해당 법안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달 말 우리 법무장관은 캐나다에서 파이브 아이즈 파트너 국가 법무장관들을 만날 것이며, 테러리스트들과 조직적 범죄자들이 ‘제어되지 않은 디지털 공간 (ungoverned digital spaces)’에서 처벌을 피해 활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사입장 국가들 그리고 통신·기술 산업계와 무엇을 더 해나갈 수 있을 지 논의할 것이다…내정개입과 간첩행위는 우리 국민의 안전과 우리의 경제적 번영 그리고 우리 주권의 핵심에 놓인 민주주의적 제도 보전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는 세계적 현실”이라고 말하였다.134) 그는 연설 한 달 뒤 조지 브랜디스(George Brandis) 법무장관과 함께 가진 공동기 자회견에서도 역시 “인터넷이 범죄활동을 숨길 수 있는 ‘온라인상의 어 두운 장소(dark spaces online)’로 이용되지 못하도록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사이버 안보 위협에 대한 사회적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자 하였 다.135)
연방정부의 안보화 노력은 중국, 내정간섭, 사이버 안보위협 등에 대한 사회 인식이 변화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데, 2019년 로위 연구소가 발표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이 국 제사회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조사 대상자 32%만 이 ‘매우 그렇다’ 또는 ‘다소 그렇다’고 답하였다.136) 이는 전년도 조사 결과보다 20% 낮은 수치이다. 한편, ‘외국 기업의 기술 도입 문제와 관
Bill 2017, Second reading,”, Commonwealth of Australia, December 7 2017c.;
2016년 9월 호주 공영방송 ABC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던컨 루이스 안보정보 국장은 2015년 호주 3대 정당인 자유당, 노동당, 국민당 소속의 유력 정치인들과 가진 사적인 자리에서 중국 공산당이 정치기부금을 통해 호주 정치에 개입하여 내정간섭을 가해왔고, 중국 공산당의 정보기관과 밀접하게 연관된 다수의 중국 기업인이 호주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경고하였다. 이후로도 그는 지속해서 중국이 막대한 기부금을 앞세워 호주의 정당과 대학 등에 영향력을 행사해왔음을 경고해 왔다. 관련 내용은 다음의 기사를 참고할 것: Chris Uhlmann, “Domestic spy chief sounded alarm about donor links with China last year,” ABC News,
September 1 2016.
https://www.abc.net.au/news/2016-09-01/asio-chief-sounded-alarm-about-donor -links-with-china-last-year/7804856 (검색일: 2020.9.8.)
134) Parliament of Australia, “National Security statement,” Commonwealth of Australia, June 13 2017a.
135) Parliament of Australia, “Transcript of press conference: AFP Headquarters, Sydney,” Commonwealth of Australia, July 14 2017b.
136) Natasha Kassam, Lowy Institute Poll 2019, Lowy Institute, Sydney, 2019,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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