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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승계문제

- 후계체제의 정비: 후계자 내정은 권력승계의 시작이며 이제 부터 가장 어려운 단계가 전개될 것임.

․현존 권력자의 위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후계내정자가 자신의 권력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함.

․후계자 등장이 최상층 권력 균형에 불안을 제기하지 말아 야 하며, 후계자가 북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구 체적으로 실적을 내어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중간간부와 일반주민의 충성을 얻어야 함.

- 핵협상

․단기: 5대 1 협공에 밀리지 않을 것

․중‧장기: 핵무기 보유국가로 공식 또는 묵시적 인정받는 것

또는 핵보유를 가능한 장기화한 상태에서 비핵화를 진행

․중기: 미국과 양자 협상구도를 재정립하는 것임.

- 대남관계: 긴장과 유화를 적절히 배합하여 차후 재개될 협상 에 대비한 입지를 다지고, 한국 국내정치에 영향을 끼쳐 한 국의 대북정책변화를 유도. 한국과는 핵문제를 협상하지 않 는 한편, 6.15선언과 10.4선언에 따라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 을 확대·강화할 수 있는 관계를 정립함.

- 대미관계: 미국의 적대 시 정책종식과 핵위협 제거,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 핵보유상태에서 관계 정상화 성사

오를 만드는 데서 관련 행위자(또는 집단)가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행위를 할 것인가에 대해 구조적 제약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여기서는 북한의 권력승 계문제와 관련하여 권력승계의 구조적 맥락과 미래의 핵심추세를 찾 아내고 설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 이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러저러하게 제공되는 다양한 정보의 진위 여부와 그 의미에 대해 보다 올바르게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 앞으로 전개될 시나 리오를 작성하는데 있어서도 근거없이 튀지 않고 핵심추세가 어디의 무엇인지를 파악해내고 이를 중심으로 향후 정세 전개를 전망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글은 구조적 맥락과 미래추세를 판단하기 위해 첫째, 후계체제 수립을 4단계로 구분하며, 둘째, 수립과정에 영향을 주는 근본문제 를 4가지로 설정한다. 후계체제 수립의 4단계란282 ① 1단계: 내정 단계, ② 2단계: 독자권력 구축단계, ③ 3단계: 공인 및 공동통치단 계, ④ 4단계: 권력승계단계이다. 근본문제 4가지는 첫째, 김정일과 후계자 사이의 권력분쟁 방지의 문제, 둘째, 후계자 권력체계 수립과 북한 상층 권력체계 재편의 문제, 셋째, 후계체제 수립이 정권 대 주민관계에 미치는 영향, 넷째, 주변정세의 진행이 후계체제의 수립 과정에 미치는 영향이다. 근본문제 4가지는 서로 연계되어 있으며, 후계체제 수립의 4단계 중 2단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문제로 대두할 것이다.

282_이승열이 설정한 4단계를 수정. 이승열, “‘수령체제’의 기반약화와 ‘수령계승방식’

에 의한 3대 세습의 한계,” 󰡔2009, 격동의 한반도: 오늘과 내일󰡕 (북한연구학회 주최 2009 춘계 학술회의, 2009.3.27), p. 99.

이하에서, 2008년 8월 이후 김정일의 건강악화 이후 북한 동향을 설명하고, 이어서 4단계와 4문제에 관하여 보다 자세히 서술한다.

가. 김정일 건강이상과 후계구도 출범으로서의 권력체제 재정비

2009년도 북한 내외의 최고관심사 중의 하나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관한 사항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서는 이러저러 한 추측이 많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8년 8월 건강이상으로 정상업 무를 중단했다. 그 후 10월 초부터 사진을 통해 공개활동을 시작했으 며 2008년 11월부터 2009년에 걸쳐 횟수로 과거의 약 1.5배에 달하는 현지지도를 수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강상태는 2009년 8 월 이전 까지는 상당히 위중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평가는 2009년 8월 4일 그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3시간 동안, 그리고 이어 현정은 현대아산그룹 회장과 16일 4시간 동

안 회동한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반영하여, 9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은 “한 때 사람들은 김 위원장이 (권좌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 냐는 생각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 김 위원장은 다시 건재 를 과시하고 있다”283고 결론했다.

북한은 2008년 10월경부터 2009년 상반기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건 강을 우려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9월 10일 김영남 총리의 회견을 통해 “후계문제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지만, 전반적으로 많은 정황과 증거가 존재한다.

283_고승일·황재훈, “오바마 김정일 꽤 건강 통치력 건재,” 󰡔연합뉴스󰡕, 2009년 9월 21일.

한국의 국정원도 2009년 6월 1일 “북한당국이 김정운의 후계 선정 사실을 담은 외교전문을 해외주재공관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들에게 확인했다.

2008년 8월 중순 뇌경색 발병 이후 북한 대내‧외 정책의 일반목표 는 당면위기를 돌파하고 안정적 권력승계를 위한 후계체제 기반건설 및 환경조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서는 우선 권력승계문제와 관 련해서 보자.

언제 김정은을 후계자를 내정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284 북한 당국은 김정일 건강이 악화된 2008년 8월 이후 후계체제 구축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후계자 내정에 이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인사개편을 추진 하였는바, 이는 후계체제 기반건설의 일부로 평가할 수 있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2008년 8월 이후 주요 인사 내용을 보면, 이렇다. 2008년 말 김경옥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제1부부장으로 승진되었고, 이어 해 임됐던 최익규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부장으로 승진·복귀시켰다.

2월 군 지도부도 교체와 함께, 4월에는 매제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포함해 기존 4명이던 국방위 위원을 8명으로 확대했다.

한편 2008년 8월부터 10월 사이 김정일 와병시기에 장성택 행정부 장이 대리하여 국정을 관리하였다고 한다. 2009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큰 이상이 없다고 밝혀지기 전까지는, 통치의 일부를 위임받 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이 국정 전반을 관리하고 있 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즉 김정일이 현지지도 등 공개활동

284_일설에 의하면, 2008년 10월 10일이다. 정용수·김동호, “김정운 작년 10월 10일 게 후계자로 확정,” 󰡔중앙일보󰡕, 2009년 6월 4일. 북한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 한 것을 1월 8일 조직지도부에 하달했다고 한다. 최선영·장용훈, “소식통, 북 김정 일, 3남 정운 후계자 지명,” 󰡔연합뉴스󰡕, 2009년 1월 15일.

을 비교적 활발히 하고는 있으나 현재도 뇌혈관계 질환의 후유증으로 인해 정신적·육체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어서 국정현안에 대해 형식적 인 보고를 받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285 김정일은 장성택에게 일부 통치를 위임하여 수행하도록 하면서, 군부인사, 국 방위원회 재편 등 김정일 유고 대비 및 권력세습과정 완수를 위한 최상층의 인적기관별 전열을 재정비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에서 일정 회복하고 재집무를 시작한 2008년

10월경 주요 정책방향에 대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평가된다. 기본방

향은 전반적으로 김정일 건강이상에 따른 내부동요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을 기본으로 놓고, 단기적으로 고립을 감수하더라도 중‧장기적 으로 북한의 대남, 대미 협상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높이는 정책을 구 사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 장성택의 현지지도 동행횟수가 급증하였으 며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기로 결정하고, 대남강공, 로켓발사, 핵 실험 실시 등에 대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나. 후계체제 수립의 4단계

김정일의 권력승계 경험과 북한의 후계자론에 의거한 권력승계를

4단계로 사고할 수 있다. 즉, ① 1단계: 내정단계, ② 2단계: 독자권력

구축단계, ③ 3단계: 공인 및 공동통치단계, ④ 4단계: 권력승계단계 이다.

여기서 1단계와 2단계가 핵심이다. 1단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으 로서 “수령의 후계자로서의 필수적인 품격과 자질을 손색없이 갖춘 인물을 내세우는 것”286이다. 2단계에서는 “후계자의 영도를 실현할

285_최선영·장용훈, “‘속성’ 김정운 후계체제 미래는,” 󰡔연합뉴스󰡕, 2009년 6월 2일.

수 있는 조직사상적 기초를 튼튼히 쌓고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는 것”287이다.

김정일의 권력승계의 경우, 4단계의 각 단계마다 처리된 주요 사안 은 다음과 같다. 1단계 내정단계는 1971~1973년에 걸친다. 이 단계 에서는 후계선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71년 6월 사로청 제6차 대회 김일성의 연설에서 후계체제 수립 필요성이 암시되며, 항일 빨 치산 1세대 내부논의가 시작된다.288 1972년에 사실상 김정일을 후계 자로 삼기로 한 결정이 내려진다. 이어 1973년 3월 김정일 주도하에 3대 혁명소조운동이 시작되었다. 1973년 8월 30일에 열린 정치위원 회 확대회의에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결정하되, 우선 조직·선전부문에 대한 전권을 주기로 내부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289 김정일은 1973년 9월 5기 7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 조직담당 비서 겸 조직 지도부장, 선전담당 비서 겸 선전선동부장으로 선출되었다.290 1973년 9~10월 동안 전당적으로 김정일을 높이 받들고 충성을 다한다는 결 의를 다지는 결정서를 채택하도록 하였다.

2단계는 내정 및 독자권력 구축단계로 1974~1980년에 걸친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제5기 8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당 정치위원 으로 선임되고, 후계자로도 추대되었다. 이 시기 ‘당 중앙’ 호칭이 사

286_김재천, 󰡔후계자문제의 이론과 실천󰡕 (출판지 및 출판사 불명, 1989), p. 43; 김유 민, 󰡔후계자론󰡕 (출판지 불명: 신문화사), pp. 77~78; 이교덕, 󰡔북한의 후계자론󰡕

(서울: 통일연구원, 2003), p. 38에서 재인용.

287_조선로동당출판사 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20: 혁명위업 계승문제의 빛나는 해결󰡕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2000), pp. 50~71; 이교덕,

󰡔북한의 후계자론󰡕, p. 39 재인용.

288_이찬행, 󰡔김정일󰡕 (서울: 백산서당, 2001), pp. 353~355.

289_위의 책, p. 355.

290_위의 책, p. 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