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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래의 여러 변화는 북한의 사회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에 다양한 차이와 균열을 만들어 내었다. 과거의 계층구조는 정치 적 위계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비교적 단순했다. 그러던 것이 1990년 대 이래에는 정치적인 것 이외에도 소득격차에 따른 분화가 가미된 양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격차가 발생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이래 구체제의 붕괴과정에서 새로이 열리게 된 기회에 적응하고 활용하고 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개인이 위치했던 정치적 권력위계에서의 지 위, 직업의 성격 및 지역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소득격차 에 따른 균열의 새로운 전개양상 이외에도, 정치 및 경제의 차원에서 지역 간 격차, 세대 간 격차 등이 존재한다. 사회 내의 이와 같은 다양 한 균열은 군대 내에도 침투·반영되어 있다.

가. 사회 계층적 균열

1990년대를 전후로 계층을 구분하는 주요 기준도 달라졌다. 과거

전통적 3대 계층은 권력 위계에서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었다. 권력 위계에서의 위치와 소비생활의 수준이 대체로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 러나 1990년대 이후의 계층구분은 결국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결정되고 있지만, 그 경제적 능력은 개인의 권력위계에서의 위치에 의해 크게 영향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의 경제적 능력이란 단지 소 비생활의 수준뿐만 아니라 사업자금화 할 수 있는 ‘개인축적’의 크기 도 포함하는 의미이다.

먼저 과거 정치적 기준에 따른 주민 집단별 권력위계를 보자. 북한 은 주민들을 성분에 따라 크게 핵심계층(핵심군중), 동요계층(기본

군중), 적대계층(복잡군중)의 3대 계층으로 분류했다. 어느 계층에 속 했느냐에 따라 개인의 권력위계에서의 위치와 소비생활수준이 결정 되었다. 전체인구 가운데서 핵심계층은 당과 군조직의 주요간부, 각 기업소 지배인, 지방의 고급공무원 등 1% 내외의 최상층과 중하급 간부들을 포함하여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경제난 이 후 북한의 핵심계층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한 자리수로 떨어졌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동요계층은 일반노동자, 농민, 사무원 등을 포함하는 데 전체주민의 50% 정도를 차지했다. 적대계층은 소 위 불순분자나 반동분자로 구성되는데, 전체인구의 20% 정도를 차지 했다.242

1990년대 이후에는 정치적 기준에 의한 전통적 3대 계층의 의미는 약화되었다. 그 대신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계층분화가 두드러지고 있 다. 경제적 능력은 재차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에 의해 크게 영향 받고 있다. 다시 말해 개인이 얼마나 큰 권력과 결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가 ‘개인축적’하여 사업자금화 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 또는 현행 소득의 크기가 대체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 준에 따라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계층을 최상층, 상층, 중층, 하층으 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990년대 북한의 최상층은 중국식으로 말하면 정상(政商)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정상(政商)이란 국영대기업과 군이 운영하는 상사(商社)의 최고책임자를 지칭한다.243 이들 상사는 국가의 특별 허가가 있어야만 종사 가능한 업종을 다루며, 또한 국가 전매(專賣) 상품을 독점하여 폭리를 취한다. 이들 상사의 최고책임자는 국가공무

242_한영진, “북한의 사회계층과 의식 변화,” 󰡔북한󰡕, 2007년 5월호, p. 102.

243_綾 野‧富坂 聰, 󰡔中國が豫測する北朝鮮崩壞の日󰡕 (文春新書, 2008), p. 100.

원이거나 현역 군간부로서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할 능력을 가지 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정부기관과 군의 자금원이 될 수 있도록 돈벌기에 매진하는 동시에 사재(私財)를 축적한다.

북한에도 북한식 정상(政商)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정상은 앞에서 언급한 북한경제 7대 구획 중에서 김정일경제 구획과 특권기관별 회 사경제에 속하는 (무역)회사의 최고책임자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중앙당, 국방위원회 등의 주요 인물이 뒤를 봐주는 인물들로 구성되 어 있다. 이러한 인물들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자신의 실력을 토대로 그러한 인물이 된 경우이다. 주요 권력자가 자신이 개인적으 로 신뢰할 수 있고 또한 능력을 겸비한 인물에게 무역과 관련된 독점 사업권을 확보해주고,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맡기는 한편 정치적으로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244 이들 최고경영자는 대체로 국제적 무역 과 금융에 능통하는 등 국제적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두 번째 부류는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은 고위층 자제들로 이루어진 중 국식으로 말하면 태자당(太子黨)이다. 이들은 ‘김정일 서기실’, 38호 실, 39호실과 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 관련 부서나 전문 무역기관, 주요기관의 무역분야에 종사하면서 공무원 겸 개인기업가 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부모의 권력을 배경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 고 대외 접촉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 해 잘 알고 있고, 외국어에도 능통하다. 이들은 또한 소속기관 이름으 로 벤츠를 사들여 자가용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가구와 가전제품뿐 아니라 생수를 포함한 식료품도 외국산을 애용하고 가정부까지 두는 등 귀족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수백만 달러를 보유

244_탈북자 면담, 2009년 9월 15일.

한 자산가가 적지 않다고 한다.245 북한의 대표적 정상(政商), 그리고 정상과 태자당의 공급처를 소개하면 <참고 Ⅲ-4>와 <참고Ⅲ-5>와 같다.

참고 Ⅲ-4 북한에서 정상(政商)의 사례

북한식 정상(政商) 중에서 잘 알려진 사람은 세 사람이다. 전승훈은 제2경제위원 회에 속하는 조선영방총회사의 해외사업부문인 부강회사의 총 책임자이다. 부강 회사의 자본금은 약 2천만 달러이다. 그의 동생 전영훈은 중앙당 재정경리부 직속 기업의 사장이다. 이 회사는 북한 중유 수입의 80% 이상을 취급한다. 전승훈, 전영훈 형제의 개인재산은 수백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차철마는 조직지도부 제1 부부장의 한 사람인 이용철(또는 이제강)의 사위로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산하 무역회사를 지휘하는 총 책임자이다. 차철마의 개인재산은 천만 달러로 알려 져 있다.246

이밖에도 ‘김정일 서기실’ 소속으로 이탈리아에 주재하는 30대 초반의 오영환은 아버지 오명근 때부터 김정일 위원장과 그 가계의 생필품을 조달해오면서 재벌로 불리고 있다한다. 오영환은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의 외동딸로 작년 9월 프랑스 유학 중 사망한 장금송의 애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40대 후반의 전영란(여) 정성제약연구소장은 오진 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며느리라는 정치적 배경을 활용해 남측 지원단체들과 보건 의료 지원사업에 이어 개성공단에 마늘 까는 공장도 설립하는 등 ‘문어발식’ 경협 을 통해 적지 않은 부를 이룬 여성 재벌이라고 한다.

자료: 최선영·장용훈, “<北7.1조치 5년> 천만달러 ‘붉은 자본가 등장,” 󰡔연합뉴스󰡕, 2007년 6월 29일.

245_최선영·장용훈, “<北7.1조치 5년> 천만달러 ‘붉은 자본가’ 등장,” 󰡔연합뉴스󰡕, 2007년 6월 29일.

246_“北에도 ‘대자본’ 등장. 양극화 심화,” 󰡔연합뉴스󰡕, 2006년 2월 26일; 綾 野‧富坂 聰,

󰡔中國が豫測する北朝鮮崩壞の日󰡕, pp. 101~104;

참고 Ⅲ-5 정상(政商)과 태자당의 공급처

이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해외 유학생이다. 중국식으로는 ‘해구’(海龜)이다.

다른 하나는 해외 체류 후 귀국한자들이다. 이들은 폐쇄적인 북한 내부에서 특이한 집단으로서 앞으로 북한변화의 첨병으로 등장할 수 있는 집단이다. 따라서 특별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외 유학은 80% 이상이 중국 유학이다. 중국과 북한은 정부 간 협정에 의해 해마다 80명 가량의 유학생을 교환한다. 또한 김일성 종합대학과 평양외국어 대학은 북경대학, 북경언어대학, 상해 복단대학 등에 100명 가량의 유학 생을 파견한다. 이들은 주로 중국어, 영어 등 어문 계열이지만, 이밖에도 경제학과 무역, 컴퓨터 등 이공계 학생도 있다. 남경군사지휘학원에도 유학생이 파견된다.

이들은 귀국한 이후 당의 중앙조직과 정부, 군의 중요기관에 배속되거나 외교관으로 활동한다. 이외에도 정부와 군이 운영하는 무역회사가 파견하는 준 국비유학생이 있다. 이들은 국비유학생에 비해 숫자적으로 훨씬 많으며, 졸업 또는 귀국한 이후에 는 무역회사의 관리직과 통역 및 중국 각 대도시의 현지사무소에 근무한다. 이들은 미래 정상(政商)의 싹들로서 북한의 부유 상층을 형성한다. 이밖에도 각종 연수와 요리기능 실습의 명목으로 중국 국유기업이 운영하는 식당 또는 북한의 해외 식당에 파견되는 것이 있다. 북한정부와 국영기업이 공동으로 매년 정치적 문제가 없고 용모단정한 250명을 선정하여 파견한다. 다음으로 해외 체류후 귀국한 사람들을 보자. 이들은 당과 군의 정보기관에 채용되어 정보공작원으로 활동하거나 정부 산하 대외우호단체의 통역 및 안내원, 대학과 연구소에서 외국어 교사와 연구자로 일한다.

이들은 또한 식당을 경영하거나 무역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자료: 綾 野‧富坂 聰, 󰡔中國が豫測する北朝鮮崩壞の日󰡕, pp. 90~99의 내용을 요약.

이들 최상층은 그 이하의 상·중·하층과는 매우 큰 거리를 둔 채 존재한다. 상·중·하층을 구분하는 데는 선명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 는다. 여러 추정성 기준이 있을 뿐이다. 북한 계층분화에 대한 한 연구는 상·중·하층을 가르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247 즉 상 층은 쌀밥에 돼지고기 먹는 사람, 중간층은 식량이 있어서 쌀밥 아니 면 강냉이밥이라도 떨구지 않고 먹고 사는 배고픈 고생은 안하는 사 람, 하층은 죽 먹는 날도 있고 밥 먹는 날도 있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사람, 풀죽이나 이어가는 사람이다. 2005년 이후 대도시 지역의 경우

247_조정아 외,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 p. 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