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대북제재 국면이 계속될 경우 여러 협력사업 중 그나마 가장 추진 가능성이 높은 것은 대북지원(인도적 지원 및 민생 협력)일 것으로 보인다. 일반주민, 특히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군사 적 상황과 상관없이 추진하는 것이 국제규범이기 때문이다. 여러 UN 안 보리 결의에서도 인도적 지원은 계속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사정은 과거에 비해서는 다소 나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전 반적 생활형편은 비교적 열악하며 취약계층에 속하는 주민들의 수는 적 지 않다. 또 제재가 지속됨에 따라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일부 취약계층
및 취약지역에서 인도적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 지원의 필요성은 매우 크다.
북측의 수용 여부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적절한 방식과 경로를 선택한 다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제재가 완화되고 남북관계 및 북한의 대외관계가 크게 개선되면 대북지원사업 은 더욱 활발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가. 지원 주체와 경로
제재 국면에서도 대북지원을 성과적으로 진행하려면 무엇보다 지원 주체와 경로를 적절하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대북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우리 정부였으며, 식량이나 비료 같은 주요 지원물자 는 당국 간 채널을 통해 전달되었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제 재가 강력하게 실행되는 상황에서 당국 간 지원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 다. 북한 정권에게 직접 물자를 넘겨주는 지원은 UN 안보리 결의를 직접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북한 정권을 제재해야 한다는 취지와 상 충하기 때문이다.
당국 간 지원이 어려울 경우, 유력한 대안은 국내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이다. 과거에도 많은 민간단체들이 자체 모금한 자금과 남북협력기금을 함께 사용하여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친 바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크 게 경색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북한 측이 남북 양자 간 협력사업을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2017년 가을 현 재까지 북한 정권은 남측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적 지원 이다. WFP(세계식량계획), WHO(세계보건기구), UNICEF(유엔아동 기금) 등 여러 유엔 산하기구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에 대한 지원 사 업을 지속해 왔으며, <표 Ⅳ-3>에서 보듯이 정부도 여기에 상당한 금액 의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였다.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대북제재
국면이 본격 전개되면서 국제기구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은 일시 중 단되었으나 향후 지원 재개가 예상된다.70)
표 Ⅳ-3 국제기구를 통한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남북협력기금 지원액)
(단위: 만 달러)
기간 WFP WHO UNICEF 기타 합계
1996~1997년 (김영삼 정부) 2,253 70 494 155 2,972 1998~2002년 (김대중 정부) 4,564 105 - - 4,669 2003~2007년 (노무현 정부) 5,953 2,582 795 50 9,380 2008~2012년 (이명박 정부) - 2,555 1,371 259 4,186 2013~2017년 5월 (박근혜 정부) 910 1,236 1,004 412 3,561
합계 13,680 6,548 3,663 876 24,767
자료: 통일부 홈페이지 자료마당 통계자료 페이지, <http://www.unikorea.go.kr>
(검색일: 2017.07.27.) 이용하여 필자 정리.
각종 대북지원은 남북관계를 개선․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므 로 역대 정부는 당국 간 직접 지원을 선호했으며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지원은 보조적 정책 수단으로만 활용하였다. 또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행정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단점도 흔히 지적되었다. 그러나 대북제재 국면에서는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지원을 주된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또한 국제기구의 행정비용은 모니터링을 비롯하여 대 북지원사업의 실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국제 기구의 대북지원은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앞으로는 국제기구의 대북지원사업에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데 그
70) 정부는 2016년 9월에 열린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유엔아동기금(UNICEF)과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모자보건·영양지원 사업에 800만 달러의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기로 의결하였다. 통일부 보도자료, “정부, 국제기구에 기금 지원 결정,” (2017.
09.21., 통일부) 참조.
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이들 기구 간의 대북정책 대화를 강화하여 관련 정보 공유와 향후 사업 방향 설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 다. 대북제재가 상당한 정도로 완화되어 당국 간 지원 및 국내 민간단체 의 지원이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국제기구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을 계속하여 이들의 대북사업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 직해 보인다. 또한 당국 간 지원 및 민간단체의 지원을 재개할 경우, 과거 의 지원방식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국제기구가 북한에서 쌓은 경 험과 교훈을 반영하고 사업 내용과 방식을 참고하여 더 효과적이고 투명 한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나. 지원 방식
(1) 식량지원 프로그램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과거의 남북 당국 간 지원에 비해 여러 가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식량․식품 지원 사업이다. 주로 노무현 정부 시기까지 진행된 정부의 대 북식량지원은 대북지원에서 가장 큰 비중과 의미를 차지했는데, 사업 내 용은 쌀, 옥수수 등 주식용 곡물의 전달이었다.
이와 달리 WFP가 주도하는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식량지원 프로그램 은 단순 곡물이 아닌 영양강화식품(fortified foods) 지원으로 이루어져 있다.71) 이는 북한만이 아니라 저개발국에 대한 식량지원 프로그램의 일 반적 특징이기도 하다. 저개발국 취약계층에게 단순 곡물만 지원할 경우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비타민, 미네랄, 지방 등 필수 영 양소를 보충한 영양강화식품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WFP 등은 원료식 량 및 기타 원료를 지원해 북한 여러 지역에 있는 11개 가공공장에서 영
71) WFP, “Protracted Relief and Recovery Operations: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00907,” (Rome: World Food Programme, June 2016), pp. 1~19.
양강화식품(주로 슈퍼시리얼과 영양강화 비스킷)을 생산․공급하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식량지원은 지원 대상이 명확히 특정되어 있다 는 점에서도 과거의 남북 당국 간 식량지원과 큰 차이가 있다. WFP 등은 산모와 영유아 및 재해지역 주민을 지원 대상으로 설정하고, 이들에게 식품이 잘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주로 탁아소, 고아원, 병원, 유치원 등 산모와 영유아 보호시설에 식품을 공급하고 있다. 또 평양과 자강도를 제외한 전국 주요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기본적인 모니터링도 실시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바람직한 특성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의 대북식량지원 에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는 것은 현 정세에서 적절한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영양강화식품 공급, 취약계 층 집중 지원, 모니터링 실시 등 바람직한 사업 내용을 갖춘다는 전제 하 에 당국 간 지원을 재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지원조직 간 협력체계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여러 지원조직 사이의 협력체계가 마련 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의 대북지원에는 WFP, WHO, UNICEF를 비롯한 여러 유엔 산하기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스위스 개발협력청 등 선진국 정부기관, 세이브 더 칠 드런(Save the Children) 등 여러 국제 NGO도 참여하고 있다.
이들 다양한 지원조직은 유엔 북한 인도지원 담당 팀(United Nations DPRK Humanitarian Country Team)을 구성하여 공동으로 지원전략 을 수립하고 북한 당국과의 협의 채널로도 활용하고 있다.72) 또 <표 Ⅳ-4>
72) United Nations DPRK Humanitarian Country Team, “2017 DPR Korea: Needs and Priorities,” (Pyongyang: United Nations in DPRK, March 2017), pp. 1~31;
United Nations, “Strategic Framework for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Nations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017~2021,” (Pyongyang:
United Nations DPRK Office of the Resident Coordinator, 2016), pp. 1~30.
에서 보듯이 4개 지원부문을 설정하고 부문별로 조직 간 역할을 분담하 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처럼 지원조직 간 협력체계가 잘 되어 있으 면, 지원 사업을 더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고, 모니터링과 사업 평가를 실시하기도 더 용이하며, 북한 당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여 국제규범을 관철하는 데에도 더 유리하다.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당국 간 지원 및 국내 민간단체의 지원이 가능해질 경우, 이미 구성되어 있는 국제 지원조직 간 협력체계를 존중하 고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즉 지원 사업 내용을 구상할 때 기존 국제 지원조직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으며 사업 관행 도 되도록 국제규범에 가깝게 만들려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대북 개발지원을 위한 국제협력체를 만드는 방안도 생각 해 볼 수 있다.73)
표 Ⅳ-4 국제사회의 2017년 대북지원 목표와 전략
73) 장형수 외, 북한 경제발전을 위한 국제협력체계 구축 및 개발지원전략 수립방안(서울:
통일연구원, 2012), pp. 15~46.
부문 지원 대상 인구
지원
목표액 지원 조직 지원 전략
영양
공급 250만 명 3,900만 달러
· UNICEF
· WFP
· Deutsche Welthungerhilfe
· 산모 및 영유아 영양 공급
· 급성 영양부족 예방 및 처치
식량 보장 (농업 포함)
430만 명 3,000만 달러
· FAO
· WFP
· SDC(스위스 개발협력청)
· Fida/FAHRP
· Première Urgence International
· Save the Children
· Concern Worldwide
· Deutsche Welthungerhilfe
· Triangle Génération Humanitaire
· 농업 자재(비료, 종자 및 소규모 농 기계, 가축 등) 공급
· 토질 회복을 위한 지역사회 지원
· 영양 다양화를 위한 농업 지원
· 경사지 관리
· 취약집단을 위한 식량 지원
· 농업 복구 및 재난 리스크 관리를 위한 역량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