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는 대표적인 이념 스펙트럼이다. 좌-우 이념의 구체적인 내용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약간씩 다른데, 일반적인 구성 내용은 <표 Ⅲ-1>로 요약할 수 있다. <표 Ⅲ-1>은 15개의 가치 기준으로 좌와 우를 구분한 것이다. 좌익적 가치의 요소는 평등, 진보, 개혁, 조합, 권리, 소수인권, 재분배, 사회정의, 정부규제강화,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사회 민주주의, 다문화주의, 국제주의 등이다. 반면에 우익적 가치의 요소로 는 위계질서, 보수, 반동, 가족, 의무, 전통, 사유재산, 자유시장, 정부규 제완화, 자본주의, 군주주의, 파시즘, 기독민주주의, 제국주의, 민족주 의 등이다. 이들 구성요소는 선악(善惡)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상대 이념과 비교되는 관점에서 강조하는 내용일 뿐이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이런 좌-우의 이념 스펙트럼은 한반도에 잘 적용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의 태도 분포에서 추출한 이념 스펙트럼 가운데 여러 나라에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 지 않는다. 결국 전형적인 좌-우 사회균열 기준 외에 북한이라는 축으로 나눠지는 대한민국의 균열구조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념은 정치화되었을 때 현실에서 중요하게 기능하며, 정치화의 대표 적 행위는 특정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는 행위다. 한국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주는 변수 중 하나는 북한 및 통일 문제의 인식이다. 예를 들면, “북한을 흡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보수적 정파를 지지하는 행위로,
“북한 정권을 인정하며 통일해야 한다”는 인식은 진보적 정파를 지지하 는 행위로 연결되는 관계는 여론조사가 활용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나타났다.5) 또한 2000년대 여론조사에서도 “북한 정권이 비록 독재정 권이지만 대북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비율은 진 보적 정당의 지지자가 보수적 정당의 지지자보다 더 많았다.6)
5) 김재한, “한국 유권자의 이념분포와 정계구도,” 김재한 외, 한국 정치외교의 이념과 논제
(서울: 소화, 1995), pp. 26~41.
6) 김재한, 대한민국 국회, 불신과 양극화(춘천: 한림대학교출판부, 2012), pp. 135~136.
친(親)북한 vs. 반(反)북한의 태도는 남한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북한’보다 ‘북한 정권’에 대한 태도 이며, 또 ‘친’ 혹은 ‘반’이라는 표현보다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북한 입장 을 더 이해하느냐, 더 경계하느냐는 것이다. 친(親)미국 vs. 반(反)미국의 태도 역시 남한의 보수 vs. 진보의 이념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다. 이는 중국에 대한 태도로 확장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을 이념적으로 구분할 때 흔히 우와 좌 또는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한을 우파 또는 보수 사회로만 볼 수 없는 것 처럼, 북한도 좌파 또는 진보 사회로만 볼 수 없다. 북한 정권은 반동 즉 극우적 집단이라는 해석도 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겉모습에 불과하 고, 실제로는 위계질서, 군주주의, 의무, 민족 등을 극단적으로 중시하기 때문이다. 2006년 5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남북 수석대표들이 남한 농촌 분위기를 소재로 인사말을 주고받는 와중에 북측 대표는 민족의 단 일 혈통이 사라질까 걱정이라며 삼천리금수강산에 잉크 한 방울도 떨어 뜨려선 안 된다고 진지하게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북한의 순혈주의는 인종주의에 가깝다.
남한에서도 진보 좌파가 보수 우파보다 민족을 더 중시하고 더 인종주 의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1980년대 진보 진영 내에서 민족을 중시 하는 NL 계열과 계급을 중시하는 PD 계열 간의 경쟁에서 NL 계열이 우 위를 점했던 것은 한반도라는 전통적 정치문화에다 유신 정권 때의 이른 바 ‘한국적(韓國的)’과 ‘반공(反共)’의 강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전통적인 좌-우 이념 스펙트럼에서 인권은 우익보다 좌익에서 더 중요 시하는 가치다. 그런데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는 남한 내에서 주로 보수 진영의 담론이다. 북한의 독재 압제에서 벗어나 이주한 탈북자에 대해서 도 보수 진영이 더 수용적이다.
개성공단 등 북한 거주 노동자의 활용에 대한 보수-진보 진영의 태도 는 남한 내 자본가 또는 노동자에 미치는 영향보다 북한 정권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북한 관련 요소들이 남한 사회 이념 스펙트럼의 한 축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통일정책은 남 한 내에서 이념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여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대북정책에 대한 태도가 진영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최근 이슈는 사드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 고고도미사일방 어체계) 배치 문제이다.7) 한국갤럽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사드 배치에 대한 태도는 지지 정파별로 달랐다.8) 2016년 7월 조사에서 대통령의 직 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자의 사드 배치 찬성 : 반대 비율은 68% : 12%였고 대통령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자의 찬반 비율은 39% : 47%였다. 8월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의 긍정적 평가자 는 81% : 7%로 사드 배치 찬반 비율이 나눠진 반면, 부정적 평가자는 40% : 48%였다. 2016년 당시 정부 여당을 부정적으로 평가할수록 또 야당을 지지할수록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반면에, 2016년 당시 정부 여 당을 긍정적으로 평가할수록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 사드 배치에 대한 태도는 주변국에 대한 태도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한국갤럽의 2016년 8월 조사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계층 의 사드 배치 찬반 비율은 67% : 23%였고,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계층의 찬반 비율은 48% : 43%였다. 이를 뒤집어 집계하면,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응답자 가운데 미국을 한반도 평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변국으 로 본 비율은 63%, 중국을 가장 중요한 주변국으로 본 비율은 28%였다.
반면에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응답자 가운데에는 미국을 중시한다고 한
7) 김재한, “통일‧안보 정책의 정치화와 사드 배치 논란,” 통일전략, 제16권 제4호 (2016), pp. 25~27.
8) 한국갤럽이 2016년 7월 12~14일 및 8월 9~11일에 걸쳐 주한미군 사드의 한반도 배치 에 대해 전국 성인 1,004명에게 조사하였다.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219호 (2016년 7월 2주);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223호 (2016년 8월 2주).
비율이 39%, 중국을 중시한다는 비율은 46%였다. 미국과의 관계를 중 시할수록 사드 배치에 찬성했고,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할수록 사드 배치 에 반대했다. 사드 배치는 중국에까지 영향을 주니 중국에 대한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결국 중국에 대한 태도 자체는 미국에 대한 태도에 서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사드 배치 문제 역시 북한 정권과 미국을 두고 전개되는 남남갈등의 연장일 뿐이다.
나. 균열의 진영화
남남갈등은 여론화와 정치화를 통해 진영화되어 왔다. 진영화 현상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전문적 식견을 갖는다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관 찰된다. 사드 배치에 대한 전문가의 인식 또한 정치화되어 있다.9) 51명 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는 사드 배치의 찬반, 북한의 핵 및 핵 전쟁 의도, 사드 실효성(방어력, 억제력, KAMD와의 상호보완성, 고비 용 문제), 사드 배치의 대외관계(한·중관계, 한·러관계, 한·미관계) 영 향, 사드 배치의 남북관계(남북관계, 통일, 정상화) 영향 등에 대한 인식 이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10) 51명이라는 작은 조 사 표본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나왔으니 그만큼 심각한 차이 라고 말할 수 있다. 사드 실효성과 같은 기술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은 보 수·진보의 구분과 관계없이 일관되어야 하지만, 반대로 전문가의 과학 적 식견조차 정치화되고 이념화되어 있는 것이다.
진영화 현상은 ‘친구의 친구는 친구’, ‘친구의 적은 적’, ‘적의 친구는 적’, ‘적의 적은 친구’라는 구조균형성(structural balance)에 주로 기 인한다. 국내적으로 경쟁하는 상대가 반(反)북한 성향을 갖는다고 자신 이 친(親)북한 성향을 갖는다든지, 혹은 경쟁 상대가 친(親)미국 성향을
9) 김재한, “통일‧안보 정책의 정치화와 사드 배치 논란,” pp. 27~28.
10) 최영미·곽태환, “한반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쟁과 평가기준: 전문가 조사 분석을 중 심으로,” 한국과 국제정치, 제32권 제3호 (2016), pp. 57~87.
갖는다고 자신이 반(反)미국 성향을 갖게 되면, 양극화는 심화된다. 남한 내 보수와 진보 계층을 각각 대표한다고 전제될 수 있는 조선일보와 한겨 레신문의 사설이 북한, 대북정책, 미국, 대미정책 등을 지지하거나 비판 하는 경향을 집계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11)
1990년 1월에 시작해서 2006년 8월까지 발간된 조선일보 및 한겨레 신문의 사설을 분석하여 연도별로 집계한 결과, 북한 정권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경향의 두 계층 간 차이는 16년 동안 별로 변하지 않았다. 반면 에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두 계층 간 태도 차이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늘었다. 특히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지지/반대의 양극화가 심화 되었다. 그렇지만 대북포용정책이 실시되던 시기에 북한 정권에 관한 계 층 간 입장 차이의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 가 아니라, 대북포용정책의 등장이라는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에 따 라 특정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반대 계층이 더욱 명확해졌다. 대북정책 방향은 남북한 관계라는 측면뿐 아니라 남한 국내정치의 진영 기준으로 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를 확장해서 2009년 7월까지의 두 신문 사설 내용을 월별로 집계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12) 먼저, 북한을 보는 태도의 계층 간 차이는 거의 고정적이었다. 북한에 대한 두 신문 간의 호감도 차이는 거의 상수 (常數)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지속적이었다. 반면에 미국을 보는 인식의 차이는 감소하는 추세였다. 두 신문의 차이는 북한에 대한 입장에서였 고, 미국에 대한 입장이 아니었다. 남남갈등의 양극화는 정부의 대북정 책 및 대미정책과 연관이 있다. 다만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사설로 판단컨대, 북한에 대해 진보 정파가 우호적이면 보수 정파는 무조건 적대 적이거나, 아니면 미국에 대해 보수 정파가 우호적이면 진보 정파는 무조
11) 김재한, “남남갈등과 대북 강온정책,” 국제정치연구, 제9집 제2호 (2006), pp. 124~136.
12) 김재한, “북한 및 미국 관련 남남갈등의 변화추세: 조선일보 및 한겨레신문 사설 분석을 중심으로,” 통일과 평화, 제1권 제2호 (2009), pp. 14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