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독일 통일과 EU
5. 독일통일의 교훈과 시사점
(4) 동·서 유럽의 통합을 촉진
독일통일과 동유럽 국가의 민주화로 동·서독을 경계로 분단되어 있던 유럽이 지리적, 정 치적, 경제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동유럽 지역의 유럽연합 가입으 로 유럽지역 전체의 안보와 평화가 증진되었다.
또 독일이 가장 많은 출자금을 부담하는 EU의 「폴란드·헝가리 경제재건을 위한 원조계획」 (Poland, Hungary Assistance for Economic Restructuring: PHART), 유럽부흥개발은행 (European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EBRD), 유럽투자은행(European Investment Bank: EIB) 등의 설립은 동·서 유럽의 실질적 통합의 계기가 되고 있다.
(5) 인류평화와 번영에 기여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은 인류가 전통적인 갈등과 불신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와 공동번 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되었다. 또 유럽연합은 공동의 안보 및 대외정책을 추진 함으로써 민주제도 확산과 인류보편의 가치 신장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유럽 국가들 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지역의 민주화 혁명을 적극 지원할 수 있었던 것도 유 럽연합을 통해 공동의 안보 및 대외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앞으로도 독일은 EU의 발전과 세계 평화를 위해 많은 분야에서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 대된다. 독일은 서유럽과 미국을 위시한 대서양 국가들 간의 중재역할을 담당하고 서유럽 과 동유럽 간의 결속을 위한 촉진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 3위의 경제력과 통일 후 더욱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초국가적 문제 해결에도 적극 참여할 것으 로 예상된다.
(1) 저지가 불가능했던 동독인의 통일 열풍
독일통일은 동독주민의 시위로 동독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동독 주민들이 서독에의 병합 을 원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동독주민의 통일욕구는 자유에의 갈망과 풍요로운 서독사회에의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베를린 장벽 붕괴 후에는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 했다. 또 1958년 발효된 유럽경제공동체(EEC) 조약에서 동서독을 단일 경제단위로 취급토 록 되어 있어 동서독 간의 경제 및 통화통합은 유럽공동체(EU)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 었다. 따라서 어느 나라도 독일통일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기 어려웠다.
소련이 독일통일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동독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과 시위의 무력진압 이 필요했으나 경제악화와 미국과의 화해체제 손상 우려 때문에 시행이 어려웠다. 프랑스 와 영국은 동독주민과 소련의 통일저지 노력에 기대를 걸었으나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또 CSCE 규약에 민족자결권이 규정되어 있어 동독주민이 자유선거를 통해 통일을 결정한 이 상 독일통일을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따라서 독일통일을 수용하면서 유럽통합을 추진하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 독일민족과의 미래관계에 대한 고려
프랑스, 영국 및 소련 지도자들이 동독에서의 통일열풍을 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 기 시작한 이후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독일민족과의 미래관계이다. 그들은 독일통일은 불 가피하고, 통일독일이 유럽의 가장 강력한 지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상 ‘독일민족 과 원수가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독일통일을 수락하되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보상을 받는 방 법을 택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유럽통합의 촉진을 차선책으로 선택했고 소련은 서독의 경 제지원으로 보상 받았다. 그러나 치밀한 고려 없이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에 반대한 영국 대 처총리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정계를 은퇴했다.
(3) 패권추구 우려의 해소와 신뢰 확보
유럽 국가들이 독일통일에 반대한 것은 패권적 독일의 등장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독은 철저한 나치과거 청산, 유럽통합 중시정책 및 유럽공동체(EC)에서의 희생적 역할
로 주변국의 우려를 해소하고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분단시 서독정부가 우방국들과의 긴밀한 협의와 양해 하에 동방정책을 추진했다는 점, 핵전쟁 우려에도 불구하고 「NATO의 이중결정」(NATO’s Double Decision)에 따라 퍼싱-
Ⅱ 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의 서독배치를 수용한 것은 미국 등 서방 동맹국들의 신뢰를 얻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서독정부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신속히 발표한 정책내용들은 더욱 독일을 신뢰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프랑스와는 유럽통합의 조기추진을 약속했고, 미국에 대해서 는 통일독일의 NATO 및 EC 잔류방침을 명확히 전달했으며, 소련에 대해서는 오데르-나 이세 국경선 준수, 통일독일 병력상한선의 37만 명 수락, 화생방 무기의 영원한 금지 약 속, 대규모 경제지원 제공 등을 통해 우려를 해소하고 협력관계를 강화했다.
(4) 미국, 프랑스 국민의 호의적 태도
분단 당시 서독정부는 주요 국가 국민들의 독일에 대한 인식을 호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우선 나치의 죄과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 보상으로 세계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큰 유대인들의 인식을 호전시킬 수 있었다.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하 고 추종하는 한편, 체계적인 홍보활동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각인된 나치의 이미지를 바꾸 는데 성공했다. 프랑스에 대해서는 청소년 교류재단의 설립, 공동 역사교과서의 편찬, EC 에서의 주도적 역할 양보 등으로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90년 조사에서는 미국 국민 88%가 부시 행정부의 독일통일 지원에 찬성했 다. 프랑스도 1989년 11월 조사에서 응답자의 68%가 독일통일에 찬성했다. 그 반면, 영국 에서는 응답자의 45%만이 독일통일에 찬성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독일에 대한 각국 국 민들의 인식이 정부의 대독일 정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5) 유럽통합의 조기추진 약속
2차 대전 이후 독일견제를 위한 서구국가들의 노력은 ‘통합을 통한 통제’였다. 따라서 서독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와 유럽공동체(EC)에 적극 참여 및 기여함으로써 신뢰 회복 기반을 마련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에는 프랑스와 유럽통합의 조기추진을 약속함 으로써 패권적 독일의 부상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었다.
나. 독일과 한반도의 대외적 통일여건상의 차이점 (1)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동의확보 문제
서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독일은 독일통일을 위해서는 2차 대전 전승 4대국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통일에는 이러한 대외적 제약이 없어 남북한이 합의하면 주변 국의 찬성여부와 상관없이 통일이 가능하다.
(2) 한국의 상대적 국력과 영향력의 취약성
한국은 서독에 비해 국력과 대외관계 관리능력이 취약하다. 서독은 막강한 경제력과 정 치·군사적 잠재력 때문에 주변국들이 독일통일을 바라지 않는 요인이 되었지만, 베를린 장 벽 붕괴 후에는 통일에 도움이 되었다.
한반도 주변 4개국은 EU와 함께 세계 최강의 대열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따라서 통일 한국은 이들에 비해 영토, 인구, 정치·경제·군사력 면에서 현저한 열세에 있다. 따라서 주 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이점은 있으나 주변 4개국 간의 관계에서 영향력이 매우 제 한적이다. 통일한국이 4개국의 어느 편에 선다 해도 기존의 세력판도를 변화시킬 수 없어 역내 균형자(balancer) 역할을 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서독에 비해 통일을 위한 대외관계 관리에 훨씬 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3) 미·소관계와 미·중관계의 차이점
통일직전 미·소관계는 독일통일에 기여했던 반면, 앞으로의 미·중관계는 한반도 통일에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많다. 독일의 경우 통일 당시 동·서독의 후견국이던 소련과 미국 간의 관계가 대폭 호전되는 과정에 있어 독일통일의 촉진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는 남북한의 후견국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점점 심화되는 추세여서 앞으로 통 일에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4) 소련·동독 관계와 중국·북한 관계의 차이점
과거 동독의 대 소련 의존도에 비해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가 낮아 중국의 변화가 북한
의 변화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과거 동독은 소련의 후견 역할 철회가 곧바로 동독 공산정 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데다 중국이 북한정 권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 북한 공산정권의 붕괴나 북한의 태도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5) 동북아 지역 통합 및 협력 저해 요인
우선 동북아 지역은 유럽과 통합여건 상의 차이점이 많다. 첫째, 유럽과는 달리 동북아 국가들은 절실한 지역통합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둘째, 유교문화의 가치를 공유하 고 있기는 하나 지역통합 촉진요소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셋째, 지역 내에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공산주의 제도가 혼재하고 있어 단일체제로 통합되기가 어렵다. 넷째, 지역통합에 적극적인 신뢰받는 지도자가 없다. 다섯째, 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세계 최강대국의 일원 으로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역내 문제에 집중하기 어렵다.
더욱이 동북아 지역은 상호간의 협력을 저해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산재되어 있다.
첫째, 동북아 지역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네 나라의 이익이 교 차하는 지역으로 역내 문제가 전 세계적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어 이해관계의 조정이 어렵 다. 둘째, 중국의 급속한 부상은 새로운 정세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은 아직도
‘아편전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력한 중화건설을 추구하면서 지속적인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어 역내 정세의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중국 지도자들은 자국 중심주의를 중시하면서 인류보편의 가치 실현을 등한시 하고 있어 주변국들의 우려를 낳 고 있다.
셋째, 중국·일본·한국 등 3개국 간에는 영토문제, 과거사 문제, 역사왜곡 문제, 위안부 문제, 납치문제 등 현안문제가 산적해 있으나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경험이 적고 각국 국 민들의 민족감정이 높아 합리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넷째, 핵개발, 대남도발 및 외 국인 납치 등 북한의 비정상적인 행태와 벼랑끝 전술은 중요한 지역정세 불안정요인이 될 뿐 아니라 역내 국가 간의 갈등조장 요인이 되고 있다. 다섯째, 역내 국가들 간에 경제협 력 관계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무역전쟁이 이루어지고 있어 항상 잠재적 갈등요인 이 되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지역에서는 지역통합 기구가 구성되기 어려울 것으로 평가되며, EU와 같 은 지역통합 노력이 한반도 통일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거나 통일에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