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독일 통일과 EU
1. 한국 통일과 동북아 및 동아시아 전략 환경
통일은 오래 지속되어 온 한국 국민의 국가적 목표이다. 1972년, 1991년, 2000년, 2007년 남북한의 지도자들은 통일의 과정과 관련된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원칙에 합의하고 재확 인한 바 있다. 그것은 통일은 독립적으로 성취되어야 하며, 스스로의 구상에 의해, 외세와 의 동맹이나 외세의 간섭 없이, 남북한의 주인인 남북 국민들의 종합적인 노력을 통해서 달성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남북한 관계에 있어 지속적인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북한은 공식적으로 통일을 지향하고 있으며 최소 남북 연합의 첫 단계를 창안하였다. 그러나 양측 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한 쪽이 다른 쪽의 규정과 조건에 의해 흡수될 것이라고 보고 있 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남쪽을 흡수하는 것은 시기의 문제에 불과하다 고 여겼다. 소련의 해체에 따라, 남한은 북한의 붕괴 및 흡수에 대해 진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두 가지 예는 모두 ‘영합 게임(zero-sum game)’이다. 상호 존중과 상대방의 이해에 대 한 인정 없이 통일 과정의 진전은 불가능한 일이다. 21세기 초에 이르러,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에 관한 전망이 등장하였다. 두 번의 정상회담이 실시되었고, 양국 간 대화는 확장되 었으며, 교역은 증가하였다. 한국이 자금을 조달하여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남 북한 합작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일괄타결(북한 비핵화 이후 관 계 정상화 및 경제 원조)’ 구상을 내놓자, 북한은 이를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기 위한 계획 이 탈을 바꿔 쓴 것으로 인식하였다.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촉발된 긴장고조는 미래의 통일과 관계된 대화의 가능성 전망에 전적인 타격을 입혔다. 한반도에 대화 및 평화에 대한 지원을 위한 기제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양국 간 새로운 군사적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의 상황이 어떻게 진전될 지와 관련해 논의되는 시나리오가 몇 가지 있다. 시나 리오 중 하나는 최종적으로 정권이 몰락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북한의 심각한 경제위기와 혼란의 가능성을 분석한다. 이는 한국의 흡수통일로 이어질 것이다.
흡수를 통한 급작스러운 통일은 위험할 수 있으며 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 다. 잃을 것이 없는 북한의 ‘애국자들’과 주체사상 지지자들은 아마도 한반도 전역에 이르 는 게릴라전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군사적 수단을 이용하여 흡수에 저항할 것이다. 북한에 이러한 저항 계획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한국에 장기간의 불안정 과 심지어는 대대적인 내전을 가져올 것이다.
몇몇 연구는 한국의 통일에 따르는 비용이 10년간 6천억 달러를 초과할 수 있다고 추정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산출은 너무 낮은 것일 수 있다. 독일 통일은 20년간 1조 3천억 유 로(1조 9천억 달러)가 소요되었으며 이는 동독을 재건하기 위해 서독에서 추렴된 것이었다.
독일 통일의 경험을 고려할 때, 한반도에서의 통일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임은 자명하다. 남측의 경제적 잠재력은 북측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한 국 국민이 많은 노력을 통해 달성한 현재의 삶의 수준을 유지시키기에는 충분치 않다.
독일 통일의 경우와는 달리 남북한 간은 상호연락과 여행이 불가능하며, 독일이 냉전 시기에 경험하였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내전을 겪은 데에서 비롯된 개인적 불신이 양국 국민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반면에, 수차례 예언되었던 북한 정권 붕괴의 개연성은 가까운 미래에는 실제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북한 정부는 지속되는 경제 위기와 자원 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사회 및 정치적 안정을 유지해왔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임박한 붕괴에 대한 전 세계적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조선민주주 의인민공화국은 생존에 성공하였다. 심지어 가혹했던 아시아 경제위기(1997~1998년)도 북 한의 중앙 계획경제의 토대를 침식하지 못하였다. 북한은 많은 북한 인명을 앗아간 ‘고난 의 행군(조용한 굶주림)’ 시기를 극복해냈다.
현실은 가까운 미래에도 북한 권력은 김씨 일족 및 그 측근에게 남아있으리라는 것이 다. 이들의 권력은 수천의 가족과 사회적 연결로 묶인 지배 계층의 고도로 계층화된 구조 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반대 정당이나 대안권력의 기반이 없다. 모든 가능한 반체제 활동은 무자비하게 억압되며, 그것의 형성을 위한 조건 또한 부재하다. 이러한 상 황 하에서 북한 정권의 급작스러운 붕괴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 정책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인 중국은 남한에 주둔한 수천의 미군이 중국 국경까지 이동하는 것을 명백히 원하지 않는다. 만약 북한 정권이 갑자기 붕
괴한다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중국이 한반도의 안정을 강조하는 분명한 이유이며, 이는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2011년 5월 중국 방문 시 재확인된 바 있다.
중국 국영 중앙텔레비전(CCTV)에 따르면,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북한 지도자와의 만남에 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양 측은 안정되고 억제된 상태를 유지하여야 하며, 융통성을 보이고, 걸림돌을 제거하며, 관계를 개선하고 평화, 안정 및 한반도 내 발전의 현실화를 위해 긍정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모든 관련 당사자가 한반도에 핵무기가 부재하 고, 한반도가 평화적이고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기를 요 구한다.”
양 정상 간 회의 후 양측은 한반도 관련 이슈에 대한 자제를 요청하였으며 북한 핵 프 로그램을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이 재개되기를 희망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국, 일 본, 한국이 6자회담을 재개하도록 유인할 수 있는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은 1년여 만에 이뤄진 세 번째 방문이었다. 중국의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는 2011년 5월 28일 일본에서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
장이 ‘경제 발전’을 공부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국영 텔레비전이 보
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자동차 생산시설과 전자제품 공장을 방문하였으며 전 자책(e-book) 및 액정 디스플레이(LCD) 기술의 연구에 관해 보고받았다. 김 위원장은 후 진타오 국가주석과 면담하였으며, 이어진 연회에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임위원 9인 중 대 부분이 동석하였다. 중국 국영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중국의 “개혁 및 개방 정책이 옳은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평가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는 또한 북한이 “현재 경제 발전에 노 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위한 안정적인 환경이 몹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이전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방문 이후 그는 어떠한 중국식 개혁의 후속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번 방문 시, 북한의 국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의도는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의 역동적인 진전을 목격하기 위해서”라 고 보도하였으나, 북한 내 경제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단지 “조선 인민이 그들 자신의 성공과 더불어 그들의 이웃인 중국에서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 는 사실에 기뻐하였다”라고 말했다.
고립과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부는 국내 및 대외 정책에 변화를 추구할 계 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급자족 및 자력갱생에 기반을 둔 북한의 경제모델은 위기 상황 에서 생존하기 위한 실질적인 예비 자원을 갖고 있다. 식량 위기 시에 식량 공급을 위한 국제적 지원을 획득하기 위해 북한은 보통 몇 가지 측면에서 양보를 하지만, 자국의 핵심
적 목표에 관한 한, 절대 양보를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변화를 기대할 단 하나의 가능성은 북한의 점진적이고 진화적인 변화를 위 한 조건들을 창조하는 것인데, 이는 중국의 초기 개혁 형태와 유사한 경제 개혁에서 시작 된다. 김정일을 포함한 북한 지도자들이 최근거리 인접국인 중국 지역의 경제 발전에 대해 큰 관심을 피력하는 것과, 왜 북한 국경 바로 밖에서는 거의 같은 기후와 농업 조건임에도 주민들이 일정수준 이상의 생활을 구가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론적으로 중국 경제 모델을 북한에 적용할 수 있으나, 북한 지도자들은 그것이 결국 북한 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시장 메커니즘 도입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반면에, 심지어 북한 지배계층 사이에서도, 경제적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점증하고 있다. 우리의 전략은 북한으로 하여금 이러한 경제정책을 채택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통일 과정으로 향하는 첫걸음으로, 먼저 남북한 간 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를 위한 가장 긴급한 수단 중 하나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러 시아는 초창기부터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러시아 전문가들이 북한 내 원자력 발전소 건설 장소를 발견해내고 이를 기술적으로 분석했었고, 북한의 핵 프로그 램 관련 다자간 회담의 아이디어가 1994년 러시아로부터 최초로 제안되었다는 점에도 불 구하고, 4자회담(남북한, 중국 및 미국)이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어디에도 러시 아가 포함되지 않은 것과 관련하여 1990년대 말 러시아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남북한 간 대화를 촉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인들은 그들이 당면한 역사적 도전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대응을 찾아야 한다. 외세의 역할은 남북한 관계에 개입하는 것이 아 니라, 남북한이 통일에의 길로 나아가도록 돕고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그 영향력을 발휘하 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변 국가는 합리적이고 상호적인 양보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을 표명해야 한다.
6자 협상과정은 북한의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 오늘날 북한은 공공연하 게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고 공언한다. 현재 협상을 재개하는 것에 대한 전망은 확실치 않 다. 그러나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한 우려에 대해 토의할 채널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구’ 6자 형태는 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협상 형태와 다른 의제 를 고려해야 할 시기다. 원칙상의 비핵화는 가능한 것이나, 이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그리 고 북한 지휘부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북한에게 핵 프로그램은 먼저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