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농당스의 무용사적 의의
III.3. 춤의 패러다임 전환
III.3.3. 로메오 카스텔루치 <봄의 제전>(2014)
농당스 실천을 통해 “시공간 속에서의 움직임의 구성”이라는 안무의
기본적 정의가 확장되었다는 것이 명백해진 오늘날, 전환된 안무 개념은 공연예술과 조형예술 분야를 막론한 많은 예술작품에 해당될 수 있다.
키네틱 아트 같은 설치미술이나 관람객 자체의 움직임을 작품의 구성 요소로 채택하는 인터랙션 아트는 무용에서 발전되지 않았음에도, 또 출연자의 신체가 안무되는 것이 아님에도, 작품을 관람하고 그로써 비로소 완성하는 수용자의 신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그 움직임의 원칙으로서 안무 개념이 작품에 내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공간
193) 물론 2014년에는 이미 무용 작품에서 ‘춤’을 추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시점에 이르렀다.
[도판 13] 로메오 카스텔루치 <봄의 제전>
(2014)
속에서의 움직임에 신체의 연루가 절대적인 조건이 되지 않는 한, 심지어 무대 위에 무용수가 등장하지 않는 무용 작품도 가능해진다.
이탈리아의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의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194)은
바로 그 극단적인 예시가 될 수 있는 작품이다. 20세기 내내 계속해서 다른 버전으로 무대화되었음에도, 전통적으로
<봄의 제전>은 무용사에서 최초의 모던 댄스로 기록되었다는 상징성이 존재한다. <봄의 제전>에 대한 카스텔루치의
새로운 해석은 약 100년 전
바슬라브 니진스키(Vaslav Nijinsky)의 <봄의 제전>이 당시의 관객들에게 그랬던 것만큼이나 동시대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195) 무대 공간과 객석 사이에 유리벽이 설치되어있고, 천장에 배치된 40개의 기계가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녹음된 스트라빈스키의 선율이 흘러나오면 기계가 분진을 일으키며 나선형의 굵은 실타래 모양으로 뼛가루를 뽑아낸다. 이 6톤가량의 하얀 가루가 섭씨 1,200도를 상회하는
194) 카스텔루치는 1980년 시작된 이탈리아 아방가르드 연극 운동의 일원으로, 극단 소시에타스 라파엘로 산치오(Socìetas Raffaello Sanzio)의 수장이다. <봄의 제전>은 2014년 8월 초연되었고, 그해 12월 파리가을축제(Festival d’Automne à Paris)에서,
2015년 9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의 개관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광주에서 공연되었다. 파리에서는 ‘연극’으로, 광주에서는 ‘무용/시각연극’으로 분류되었다. 본고에서는 2015년 9월 6일 광주 CGI 센터에서 관람한 공연을 참조했다.
(http://www.festival-automne.com/en/edition-2014/romeo-castellucci-sacre-printemps http://www.acc.go.kr/performance/OpeningFestival/list?MN_KEYNO=MN_0000000730)
195)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Pavlovich Diaghilev)의 발레단 발레 뤼스(Ballet
Russe)의 스타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의
혁신적인 음악과 더불어 당시 발레에 통용되지 않던 아방가르드한 움직임으로 구성되었다.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Théâtre des Champs-Élysées)에서 있었던 초연에서 일부 관객들은 폭동에 가까운 소란을 일으켰고, 이후 이어진 평단의 리뷰 역시 찬사와 혹평의 양극단을 오갔다.
[도판 14] 로메오 카스텔루치 <봄의 제전>
(2014)
공장에서 분해된 소 75마리의 순수한 골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공연 프로그램에 이미 안내되어있지만, 공연 말미에 내려온 스크린에서도 다시금 확인된다. 뼛가루는 일직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기계가 회전하면 회오리를 만들며 허공에 퍼지기도 한다. 음악이 고조되면, 마치 화폭에 물감이 던져지듯 뼛가루가 쏘아져 유리벽에 부딪혀 흘러내린다. 그런가하면, 분쇄되지 않은 뼛조각들이 우르르 쏟아지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무대공간에 살아있는 몸이 등장하는 것은 음악이 끝난 후, 객석 조명이 켜지고 극장 문이 열리면서 공연이 끝났음이 암시될 때, 고글과 전신을 보호한 작업복을 착용한
‘청소부’들이 뼛가루와 뼛조각을 수거하러 나오는 때뿐이다. 그들은
갈퀴로 가루와 조각들을 컨테이너에 긁어 넣는데, 종종 아직도 기계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뼛가루 속으로 손을 넣어 만져보기도 하고, 바닥에 수북이 쌓인 뼛가루에 괜히 갈퀴로 모양을 내는 등, 청소라는 실용적 목적을 지향하는 것 같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무용 또는 연극일 수도 있는 작품에 대해 제기될 수 있을 첫 번째
의문은 무용수의 신체에 관한 것이다. 무용수나 배우의 신체가 현존하지 않는 무용이나 연극이 있을 수 있는가?196) 하지만 카스텔루치는 작품을 통해 이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이미 보여준다. 튀튀 대신 청소복을 입었을지언정, 무대 공간에는 분명 신체가 등장하지 않는가. 물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끝난 후이고, 객석에 불이 켜진 후에 등장하는 그들의 작업이 퍼포먼스의 일부로 여겨질 수 있는가에 대한
196) 무용수의 신체가 현전하지 않으면서도 무대에 ‘움직임’이 존재하는 순간은 벨의
<저자가 부여한 이름>에도 있었다. 무용수들은 공을 회전시키고 헤어드라이어를 작동시켜 사전 옆에 두고는 30초 정도 무대 공간을 떠난다. 그들이 무대에 부재하는 순간에도 회전 관성에 의해 계속 돌아가는 공과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에 밀려 넘어가는 책장의 움직임은 ‘공연’으로서 분명히 계속되고 있었다.
의문이 다시금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공연의 끝, 스펙터클의 끝, 퍼포먼스의 끝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실제로 뼛가루를 다루는
‘청소부’들은 호기심 많은 관객들이 유리벽 앞으로 다가와 관찰하고 사진 촬영을 하다가 결국 모두 퇴장할 때까지 무대 공간에서 그들의
‘퍼포먼스’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농당스에서 벨이 무용 공연의
안무적·극적 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채 그것을 구현시켜 비판했던 것과 같이, 카스텔루치 또한 이 작품에서 ‘신체의 등장’이라는 극적 규칙을 구현해 그것을 의문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카스텔루치의 <봄의 제전>이 안무에 대해 제기하는
급진적인 물음은 춤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농당스에서 춤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몸의 움직임이라는 속박이 끊어졌다면, 즉 움직임을 배제시킨 몸과 그로 인한 사물의 움직임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더 나아가 카스텔루치의 작품에서는 몸을 배제한 순수한 운동으로서 움직임의 탐구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구성하는 것이 기계와 ‘죽은’ 물질이라는 사실에서 이 작품이 무엇이 춤, 또는 퍼포먼스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리고 이 예술적 연구에서 포착되는 것은 제시되는 몸을 관객이 단순히
‘보는’ 것으로써 성립되는 춤에 대한 비판적 태도, 그리고 움직임의
목격자이자 퍼포먼스의 구성원으로서 관객의 강렬한 현존과 경험에 위치하는 움직임의 체험으로서 춤의 새로운 존재론의 가능성이다.
메타댄스로서의 농당스에서 매체로서 무용 공연의 작동 장치들과 구성 요소들이 비판적으로 조명되면서 그 모든 것을 인식하는 주체로서 관객이 강조되기 시작했다면, 춤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봄의 제전>같은 더 최근의 예술적 연구에서는 결국 무용 공연을 존재하게 하는 것으로서 관객의 현존과 감각에 구체적으로 주목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예술로서 퍼포먼스가 성립하는 조건들을 규명하려는 공연예술의 오랜 문제에 대한 동시대 예술적 연구의 실험과 대답을 엿볼 수 있다. 연행자와 관객의 현존, 신체와 움직임의 관계 등 퍼포먼스에 대한 기존의 전제들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경험과 인식을 위해 언제든 시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맺음말
아서 단토(Arthur Danto)가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예술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그 이후의 예술은 더 이상 가야할 특정한 내적인 방향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의 예술이라고 보았던 것처럼, 노엘 캐롤은 저드슨 처치 무용가들의 춤을 두고 춤의 종말을 선언했던 바 있다. 춤의 모방론이 표현론과 형식론에 의해 붕괴되었고, 그것들 역시 결국 저드슨 처치 그룹의 그린버그식 모더니즘 기획에 의해 대체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드슨 처치 무용가들은] 무엇이든 그것이 어떻게 보이든 간에 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컨템퍼러리 댄스의 가능성을 중대하게 확장시켰다. 그들은 춤의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이것은 춤의 끝이 아니라 아마도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197)
그러나 이 ‘새로운 시작’은 1960년대 포스트모던 댄스가 아니라 1990년대 농당스에 의해, 그리고 새 밀레니엄과 함께 컨템퍼러리 댄스로써 비로소 도래했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을 ‘춤 공연’으로,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은 아닌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기존 ‘춤’ 개념에 대한 자기반영적 비판으로서의 춤, 즉 일종의 메타무용으로서, 농당스는 기존의 춤 개념을 구성하고 공고히 유지시켰던 극장 장치를 구현해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동시에 그 장치에 의해 공연이 작동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비판의 과정에서 포스트모던 댄스를 포함한 기존의 춤은 “어떻게 보이든 간에...
춤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적어도 흥미로운 움직임으로서 제시될 때 춤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197) 이 글에서 캐롤은 2003년에 1960년대를 돌아보고 있는 것으로, 그가 여기서 말하는 컨템퍼러리 댄스에는 농당스도 포함될 것이다. (Noël Carroll, “Art history, dance, and the 1960s” in Reinventing Dance in the 1960s: Everything Was Possible, ed.
Sally Banes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2003), pp. 81-97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