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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농당스의 무용사적 의의

III.1. 자기반영적 비판으로서 농당스

III.1.1. 푸코의 비판 모델

푸코는 「비판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critique?)」(1978)163)에서 근대국가의 계보학을 살펴봄으로써 비판을 익숙한 사유 형식의 한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실천으로 재정의한다. 그는 비판을 판단의 정지에 기반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실천으로 보았다. 어떤 구성된 범주 내에서 일어나는 판단과는 달리, 비판은 그 장이 구성되는 방식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푸코는 비판을 정의하려는 시도에 앞서, 비판적 태도가 역사적으로 통치(gouvernement)에 대한 반발로서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이때 통치는 지식과 구체적인 진리 주장을 통해서 정당화되는, 전략적이고 규제된, 그리고 합리화된 권력의 형태를 의미한다. 푸코에 따르면 통치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순종적 관계에 종속됨으로써 작동되는 것으로, 이때 이러한 구원에 대한 추구는 진리를 도그마적으로 설정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통치는 기독교 목회의 방식으로 출현했으며 중세시대까지는 통치술(l'art du gouvernement)을 대부분 수도원 같은 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지만, 15세기 이후 이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16세기에는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가 집권층의 주요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민중에게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통치 받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가 불러일으켜진 것이다.

163) Michel Foucault, “What is critique?” in The Politics of Truth, eds. Sylvère Lotringer and Lysa Hochroth (New York: Semiotext(e), 1997), pp. 41-81.

이 에세이는 푸코가 1978년 5월 27일 프랑스 철학협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기록하여 1990년 학회지에 출간된 것이다. 본고는 영역본을 참고했다.

비판적 태도의 역사에서 푸코가 첫 번째 기준점으로 삼는 사건은 교회의 성서 주해 독점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성서로의 회귀다. 푸코는 일반 신도가 교회의 가르침이 성서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성서가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를 의문시하는 것으로부터 비판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가 비판적 태도의 두 번째 기준점으로 파악하는 지점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불합리한 법에 의해 통치되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비판은 박탈되어서는 안 될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내세우는 것이며,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는 어디인지를 묻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는 비판이 법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코는 권력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가지는 확신의 정도에 비판의 기준점이 있다고 본다. 비판적 태도는 권력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그러한가를 묻고 스스로 납득이 되는 한에서만 그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푸코는 비판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통치하는 이들]에 맞서는 반대편으로서, 또는 상대방이자 동시에

적대자로서, 통치술을 불신하고 거부하고 제한하며, 그 정당한 한도를 모색하고 그것을 변형시키며, 그것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방식, 통치술과 동일한 발전 선상에서 당시 유럽에서 탄생했던 일종의 일반적인 문화적 형식, 도덕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태도, 사고방식과 같은 그 무엇이며, 간단하게는 통치 받지 않는 기술, 혹은 더 잘 표현하자면 저런 식으로는 그리고 저러한 대가를 치르면서는 통치 받지 않겠다는 기술이다.164)

즉 푸코는 ‘어떻게 통치 받지 않을 수 있는가’의 문제인 비판이 단순히 통치 그 자체를 급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다시 말해 비판이란 어떤 것이 이만큼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실천들이 사실은 그저 친숙한

164) Ibid., pp. 44-45.

개념들과 가설들, 즉 확립되었으나 검토되지 않은 사고방식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존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지식, 또는 푸코의 용어로는 에피스테메(épistémè)라고 볼 수 있다면, 비판은 그러한 정당화의 근거가 되는 에피스테메 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165)

푸코의 비판 모델은 진리나 정의에 근거해 지식 체계의 거짓과 기존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비판 모델과 구별된다. 그 이유는 첫째, 푸코는 진리나 정의라는 고정된 가치를 상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그렇다고 비판에 대한 그의 촉구가 아나키로의 이행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푸코에게 비판은 단순한 저항이나 거부가 아닌, 통치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 제기다. 따라서 비판은 피통치자의 상태를 인지하고 심지어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통치의 한계를 정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런 면에서 푸코의 기획은 어떤 대상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기 때문에, 사회 비판으로서 어떤 실효성을 가지는지에 대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푸코가 스스로 밝혔듯이, 그의 비판 모델의 목적은 어떤 사고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필연적이고 또 이성적인 것으로 현재 자연스럽게 간주되고 있는 존재 지평이 사실은 특수하고 우연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것과 그것이 얼마나 강압적일 수 있는가를 폭로하는 데 있다. 푸코가 스스로 말하듯이, 그는 모든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게 위험하다면 우리에게는 항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밝힌

165) 에피스테메는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로, 푸코는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1966)에서 서구의 지식 체계가 불연속적으로 각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따라 구분된다고 주장한다.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사성, 17-18세기 고전주의 시대에는

표상, 그리고 18세기 말 이후로는 표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실체가 모든 지식 체계의 근간이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특정 시대에 각기 다른 영역의 지식들에는 공통성이 존재하며, 그 공통성으로서의 에피스테메가 그 시대의 모든 사고와 지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미셸 푸코, 『말과 사물』, 이규현 옮김 (서울: 민음사, 2012) 참고.)

것이며, 우리는 어떤 것이 주요한 위험인가에 대해 매일 윤리적·정치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166) 따라서 푸코의 비판 모델은 규범적 척도를 요구하지 않는 새로운 비판 기획이며, 이는 우리를 비판적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고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비판을 통해 현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윤리적인 사고와 실천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