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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냉전 및 탈냉전 시기 미중관계의 전개와 특징

냉전(Cold War)시기의 미중관계는 크게 두 단계-1949년부터 1960 년대 중반까지 미소 양극체제의 영향에 따른 ‘적대적 관계’ 시기, 1970 년대 시작된 미중 ‘데탕트’와 수교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전략적 협력 모색’ 시기-로 나눌 수 있다.16)

탈냉전(post-Cold War)시기의 미중관계는 ‘전략적 불안정’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즉, 구소련과 동유럽의 해체에 따른 냉전체제의 종식과 1989 년 천안문 사건 이후 미중관계의 갈등 국면을 거치면서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중국이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적 불안정 시기가 지속되었다.

(1) ‘적대적 관계’ 시기(1949∼1960년대 중반)

냉전 초기인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수립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미중관계는 ‘적대적 관계’가 주류를 이루었다. 냉전 초기 미중 적대적 관계의 지속은 미소(美蘇) 양극체제라는 국제정세의 변 화, 소련 요인, 미중 양국의 국내적 상황 등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유주의 진영은 적극적으로 포용했지만 소련을 포함한 공산 주의 진영은 철저하게 봉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미국의 대중(對中)정책 역시 고립과 봉쇄가 주를 이루었는데, 특히 1950년 2월 「중소우호동맹조 약」의 체결과 6월 ‘한국전쟁’ 및 1954년 12월 「미국-대만 공동방위조약」

체결 등을 거치면서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17)

16)냉전 시기 미중관계의 성격 규정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Harry Harding, A Fragile Relationship: The United States and China since 1972(Washington, D.C.:

The Brookings Institution, 1992), pp. 297∼302.

17)David Shambaugh, “Patterns of Interaction in Sino-American Relations,” in Chinese Foreign Policy: Theory and Practice, eds. Thomas Robinson and

반면, 사회주의 신생 국가로서 독립과 주권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은 미소 양극체제의 영향으로 인해 소련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추구 했고, 자유주의 진영의 수장인 미국에 대해서는 제국주의·패권주의 세 력이라는 이유를 들어 적대적 입장을 취했다.18) 하지만 1950년대 후반 에 나타난 이념논쟁으로 인해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냉각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는 국경 지역에서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2) ‘전략적 협력 모색’ 시기(1960년대 후반∼1989년)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를 거쳐 1989년까지 미중관계는 상호 전략적 이해에 기반하여 ‘전략적 협력’을 모색한다. 이 시기 미중관계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는 대만 문제, 소련 요인, 미중 양국의 국내적 상황 등을 들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국내외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게 된다. 즉, 소련의 핵 개발이 가속화되고 1968년 베트남 전쟁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였다.19) 1972년 2월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의 ‘하나의 중국(One China)’ 원칙을 인정하는 공 동성명인 「상하이 커뮤니케」를 발표했다. 이후 중국과 미국은 1978년 12월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고, 1979년 1월 1일 정식적으로 국교가 수립 되었다.

David Shambaugh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p. 218; Jean S.

Kang, “US Policy Dilemma: Food Aid to an ‘Enemy State’?” International Studies Review, vol. 6, no. 2 (October 2005), p. 37.

18)세이시엔 지음, 정재남 옮김, 󰡔신중국 외교이론과 원칙󰡕(서울: 아세아문화사, 1995), pp. 164∼165.

19)닉슨 대통령은 1969년 12월 대만해협을 순찰하던 미 제7함대를 철수하도록 했고, 1970년 2월 의회 연설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건설적인(constructive)’ 관 계 수립 및 ‘중국의 국제사회 편입’”을 강조했다. 이어 1971년 3월 미국 탁구팀이 중국 을 방문하여 이루어진 ‘핑퐁외교’와 동년 7월 키신저(Henry Kissinger)-저우언라이 (周恩來) 회담 등을 통해 관계 정상화가 논의되었다.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은 1980년대 중반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의 적 용을 확대하는 무역협정에 서명하기로 결정했고,20) 1980년 11월 출범 한 레이건(Ronald Reagan)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국’을 승인하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대만에 대해서는 안전보장을 명분으로 첨 단무기의 판매를 유지하는 이중(雙軌)정책을 취하였다.21) 특히 레이건 행정부는 중국과의 군사전략적 관계 확대를 모색했는바, 이는 곧 소련에 대한 견제를 위한 중요한 전략적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역시 1960년대 후반부터 소련과의 이념적·군사적 대립이 갈수 록 격화되었고, 문화대혁명 이후 국내경제적 어려움과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할 필요성이 있었다. 중국이 처한 이러한 대내외적 어려움은 미국 과의 전략적 협력을 시도하는 데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22) 특히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한 덩샤오핑(鄧小平) 지도부는 미국을 포함한 서 방 진영의 경제적 지원과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대외관계의 전략적 환경을 개선하고 국제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는 외교정책을 구 사했다.23)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중국 지도부는 지속적인 개혁·개방을 통한 경 제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주변 안보환경 조성을 대 외전략 목표로 설정하는 등 적극적인 실용주의 외교를 지향했다. 미중 양국은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함과 동시에 안보협력도 확대하기 시작했으며, 양국 지도자 간 상호 방문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1989년 발생한 ‘6·4 천안문 사건’ 이후 미국이 대중 경제제재를 단행하 면서 미중관계는 급격하게 냉각되었다.

20)해리 하딩 지음, 안인해 옮김, 󰡔중국과 미국󰡕(서울: 나남출판, 1995), p. 171.

21)세이시엔 지음, 한인희 옮김, 󰡔중국외교사󰡕(서울: 지영사, 2000), pp. 22∼23.

22)Rosemary Foot, The Practice of Power: US Relations with China since 1949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p. 2.

23)Alan D. Romberg, “U.S. Strategic Interests in Northeast Asia: 2009 and Beyond,”

󰡔전략연구󰡕, 제14권 2호 (2007), p. 9.

(3) ‘전략적 불안정’ 시기(1989∼2008)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미중관계는 ‘갈등과 경쟁 및 협력’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전략적 불안정’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냉전 시기 미중관계 가 주로 ‘소련 요인’으로 인해 제한적인 범위에서 전략적으로 이루어진 관계였다는 점에서, 구소련의 해체로 대표되는 냉전체제의 종식은 양국 모두에 새로운 관계 정립을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동안 미중 양국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각되 지 않았던 쌍무적 문제-인권, 무역마찰, 대만 문제 등-이 수면 위로 떠오 르게 되었다. 또한 소련이라는 주적(主敵)이 사라진 탈냉전 시기에도 여 전히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새로운 지역강대국으로 부상 하고 있는 중국 간 지역 안보 현안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남으로 써 역내 불안정과 복잡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24)

탈냉전 초기 미국의 대중정책은 부시 행정부의 ‘평화적 참여(peaceful engagement)’ 정책과 클린턴 행정부의 ‘포괄적 참여(comprehensive engagement)’ 정책 및 ‘확대(enlargement)’ 정책 등을 통해 중국을 변화 시키겠다는 것이었다.25) 하지만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크게 효과를 거두 지 못했음은 물론, 중국 역시 이에 대해 ‘화평연변(peaceful evolution)’

24)Thomas J. Christensen, “China, US-Japan Alliance and the Security Delemma in East Asia,” International Security, vol. 23, no. 4 (Spring 1999), pp. 49∼60;

Richard Holloran, “The Rising East,” Foreign Affairs, no. 102(Spring 1996), pp. 3∼21. 중국이 세계적인 차원의 강대국은 아니지만 최소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역 강대국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David Shambaugh,

“Chinese Hegemony over East Asia by 2015?”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vol, 9, no. 1 (Summer 1997); Samuel S. Kim, “China as Great Power,”

Current History, vol. 96, no. 611 (September 1997), pp. 246∼251; Micheal Yahuda, “China’s Search for a Global Role,” Current History, vol. 98, no. 629 (September 1999), pp. 266∼270 등 참조.

25)이러한 정책 추진의 논리적 근거는 ‘중국의 부상’은 불가피하며, 미국의 정책적 목표는 중국을 포용하여 중국이 국내적 시각에서 벗어나 국제적 태도를 갖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는 것이었다. Suisheng Zhao, China-U.S. Relations Transformed: perspectives and strategic interactions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2008), p. 7.

의 전략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점을 들어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탈냉전 시기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아태 지역의 안보와 안정에 있 어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더해주는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심 지어는 미국의 역내 이익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26) 비록 2001년 ‘9·11’ 사건 발생 이후 2002년 9월 발표된 부시 행정부의 새 로운 󰡔국가안보전략󰡕보고서27)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아태 지역 의 안정과 번영을 촉진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구성부분”이라 하여 미 중관계를 ‘전략적 협력’ 관계로 보는 인식상의 변화는 있었지만, 미국 이 여전히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competitor)’ 관계로 규 정하고 있고 잠재적인 위협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오랫동안 지 속되고 있다.28)

반면, 중국은 탈냉전 시기 평화롭고 안정적인 주변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함과 동시에 아태 지역 내에 불안정 요인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동맹관계 강화와 일본의 군사대국화 추진 등을 아태 지역에 존재하는 전통적 안보위협의 예로 들고 있고, 미국의

26)1997년 󰡔4년 주기 방위 평가󰡕보고서는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중점을 “미국과 대적할 만한 신흥 패권국의 출현을 방지하고, 미국 안보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을 미국과 대적할 만한 특정국가의 통제하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중 국과 러시아를 우회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Department of Defense of the United States, Report of the Quadrennial Defense Review (May 1997); 2001년 5월 󰡔 국과 아시아: 새로운 미국전략과 군사배치를 향하여󰡕보고서는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 책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할 것을 천명했고, 중국을 미국의 새로운 도전의 하나로 인 식했다. RAND, The United States and Asia: Toward a New U.S. Strategy and Force Posture, embargoed news release report (May 15, 2001).

27)The White House, 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September 2002).

28)부시 행정부 초기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지만, 2001년 9·11 사건 이후 중국의 협력이 필요해짐에 따라 2002년 ‘건설적 관계(constructive relationship)’로 재규정했고, 부시 2기 행정부에서는 중국을 ‘책임 있는 이익공유자(responsible stakeholder)’로 명명했고, 2006년 4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중국을 ‘이 익공유자(stake holder)’로 지칭했다. 차창훈, “전략적 경쟁자 혹은 이익공유자?, 미중 군사교류에 대한 일 고찰,” 󰡔국제정치논총󰡕, 제46권 2호 (2006), p.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