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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한미동맹

(1) 미국 입장

한반도는 동북아의 지리적 요충지임이 틀림없다. 냉전기에는 자유진 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하는 최전방의 전선이었고, 더구나 분단국으로서 긴장의 수위가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탈냉전 초반의 단 극 체제에서 한반도는 긴장의 수위가 낮아졌지만, 미중 경쟁 구도가 형성 되고 북한이 핵무기를 본격 개발하면서 생존을 모색하게 되면서 한반도 는 다시 미중 경쟁과 대립의 최전선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한미동맹의 유지 근거를 북한의 위협과 한미동 맹의 포괄적 목적에 두었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 호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동아시아를 미국의 주도하에 두 고, 또한 지구적 위기에 한국과 공동 대처하기 위해 한미동맹의 근거를

134)이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로는 Christopher K. Johnson, “President Xi Jinping’s

“Belt and Road” Initiative: A Practical Assessment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s Roadmap for China’s Global Resurgence,” A Report of the CSIS Freeman Chair in China Studies (March 2016); 이호철, “중국의 부상과 지정학의 귀환,” 󰡔한국과 국제정치󰡕, 제33권 1호 (2017); 이영학, “중국의 주변국 외교전략과 한국에 대한 함의,” 󰡔IN China Brief󰡕, vol. 289 (2015).

존속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를 두고 중국은 한미동맹이 과거 냉전의 유산 이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도구라고 비판해왔다. 중국은 한미동맹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특히 중국에 대한 견제 전략에 이용될 것을 우려 하여 선제적으로 비판의 수위를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동시에 일본 및 미국에 안보위협이 되는 한 한미동맹의 존속과 발전에 대해 중국도 근본 적인 비판을 하기는 어렵다. 강력한 한미동맹이 대북 억제력을 제공하 는 한에서만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중국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미동맹을 둘러싼 많은 이슈들이 있지만 무엇보 다 북핵 문제에 대처하는 한국·미국·중국 간의 정책조율이 가장 중요한 이슈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고도화하면서 한미 양국은 우선 미국의 전 략무기 배치를 점증해왔고, 주한미군이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했으며, 한국은 미국의 군사무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대량보복과 킬체인을 완성하려는 군사적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한일 간의 양자문제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은 지속적으로 긴밀해 져 왔다. 결국 북핵 문제 때문에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면서 중 국은 북핵 문제가 정체되는 것을 막고 북핵 문제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 으로 해결하면서 한미동맹의 군사적 고도화를 막아 향후 한미동맹이 중 국에 대한 견제에 활용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한미동맹의 군사적 고도화를 막기 위한 목적은 중국이 북핵 문제에 적 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중국은 미국이 추진하 는 북핵 문제 해결방안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이 러한 상황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변화하는 한중관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2) 중국 입장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한국전쟁과 냉전 시기의 미중 데탕트 이전까지의 적대적 대응, 미중 데탕트 이후 2008년까지 한미동맹의 존 재와 역할에 대한 인정, 2008년 이후 현재까지로 나타나는 비판적 입장 등 크게 세 가지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는 물론 한중관계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의 국내외적인 상황, 중국 자체의 국력 신장 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에서의 위상과 영향력의 변화, 그리고 미중관계의 변화에 주로 기인하여 변화하여왔다.

(가) 적대적 대응: 한국전쟁에서 미중 데탕트까지

먼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1949년 10월 1일에 신중국을 건국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미국에 대한 외교적 불만과 군사·안보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여 전히 국민당이 지배하는 ‘중화민국’을 지지하고 있었으며, 유엔에서도 장제스의 중화민국이 중국을 대표하고 있었다. 이에 더하여 공군력이 미 약했던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보유한 공군력과 일본에 투하한 원자 폭탄의 위력에 커다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중국은 건국 다음 해인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그해 10월 전쟁에 참전함으로써 미국과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하게 되었다. 결 국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된 중국은 소련과 동맹을 맺으며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중소분쟁 에 이어 소련과 국경 분쟁까지 일어나자 ‘반소반미(反蘇反美)’의 고립주 의 정책을 펼치게 된다. 이러한 중국의 대미 적대인식과 비판적인 한미동 맹의 시각은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과 정 상회담을 갖고 미중 데탕트를 성사시키기까지 지속되었다.

(나) 한미동맹의 존재와 역할 인정: 미중 데탕트 이후 2008년까지 소련으로부터의 군사·안보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은 미중 데탕 트 이후 미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인정하는 모습을 취하였다. 1992년 한중수교까지 한국과의 공식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한미동맹에 대해서 도 수교 이후 2008년까지 냉전 시기의 구조상, 냉전 이후는 북한 핵 위협 에 대응하여 한국의 입장과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미군의 주둔과 한미동 맹의 역할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냉전 말 소련 붕괴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하자 미중 데탕트 이후 유지되었던 미국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는 상 황이 나타났다. 특히 1989년 6월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고 중국 정부가 시위자들을 유혈 진압하자 미국은 중국에 대해 경제제재를 주도하였다.

당시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1992년 초 ‘남순강화(南巡講 話)’를 통해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중국의 대외전략으로 제시하며 국내외적으로 마주한 난관들을 헤쳐 나갔 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국력 차이를 인정하는 동시에 한미동맹 에 관한 군사·안보적 대응보다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한국과의 경제협 력을 우선하려는 모습이 나타났다. 따라서 중국은 한미동맹의 존재와 역 할을 인정하면서도 한국과의 우호협력을 강화시켜 중국 견제를 공공연히 나타내는 미일동맹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기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는 논쟁이 계속되면 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 적으로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소원해진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는 모습과 이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다) 비판적 입장: 2008년 이후 현재까지

2008년 5월 이후 중국은 공식적으로 한미동맹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 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은 3박 4일의 국 빈 방문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당일 오후 곧바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단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과 후 주석은 한중관계를 기존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 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과 다음 날인 28일 공 동성명 발표를 통해 한중관계 격상은 물론 이외에도 외교 당국 간 고위급 전략대화 체제를 구축하고, 기존 양측 간 ‘한중 외교·안보 대화’의 정례 화, 양국 지도자 및 정부 각 부처, 의회와 정당 간의 교류 강화,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양국 간 협력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도착 당일인 27일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08년 5월 27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군사동맹이 동북아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이는 “역사가 남긴 산물(美韓軍事同 盟是一個歷史遺留的産物)”로 냉전 시기의 군사동맹으로는 세계와 지역이 당면한 안보 문제를 보고 평가해 처리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135)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중국 정부는 28일 오전 주중 한국대사관에 “한 미동맹이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은 역사적 유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역사 의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란 뜻이며, 한미동맹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중국 외교부는 또 “한미동맹은 양자 차원의 문 제로 중국 정부로서는 한미동맹이 역내 평화와 안정에 유리한 역할을 하 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136)

135)中華人民共和國外交部, “2008年5月27日外交部發言人秦剛擧行例行記者會,” <http://www.

fmprc.gov.cn/zflt/chn/fyrth/t458969.htm> (검색일: 2017.09.15.).

136)“냉전 산물” 발언 물의…中정부 해명도 아리송,” 󰡔동아일보󰡕, 2008.05.29.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낮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台)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지면서 “한미관계나 한일관계의 발전과 한 중관계의 발전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되는 것”이라며 한미동맹의 강화로 한중관계가 멀어지는 일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137) 그러나 친 강 대변인은 같은 날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한미동맹이 역사적 산물이 라면 「북중우호조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한국 기자의 질 문에 “북중우호조약은 상호 우호관계를 증진하기 위한 조약으로서 역사 가 이를 증명한다”며 군사 관계에 대한 언급은 회피했다.

하지만 한미동맹에 대한 표현은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역사가 남긴 산물’을 “한미 군사동맹은 특정 역사의 조건하에 형성된 양자 간 안배(美 韓軍事同盟是在特定歷史條件下形成的雙邊安排)”로 다르게 표현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친 대변인은 27일 한미동맹에 관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완전하고 체계적인 서술이었으며 이 문제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은 아 무런 변화가 없다(我在上次記者會上做了完整、系統的表述,中方在这一 問題上的立場没有變化)”고 강조했다.138) 그는 이어 미국과 일본과의 군 사동맹에 대해서도 한미 군사동맹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특수한 상황 에서 생겨난 양국 간의 문제라고 평가하고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신뢰 증진에 마땅히 부합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결론적으로 한미동맹과 한중 우호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키려는 한국 의 노력을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 시기에도 계속되 었다. 하지만 중국이 한미동맹을 보는 시각은 바뀌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에서 한국의 선택을 압박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137)“이대통령 "한미·한중관계는 상반 아닌 보완,” 󰡔노컷뉴스󰡕, 2008.05.29.

138)“2008年5月29日外交部發言人秦剛擧行例行記者會(組圖),” 󰡔和訊󰡕, 2008.05.29, <http://

news.hexun.com/2008-05-29/106325849.html> (검색일: 2017.09.15.); “친강

“北中 우호조약은 우호협력 위한 것”,” 󰡔연합뉴스󰡕, 2008.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