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가 식량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국제적 논의를 바탕으로 북한 부패와 식량권의 상관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유엔차원에서 부패 가 식량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유엔 식량권특 별보고관 지글러(Jean Ziegler)는 2001년 경제사회이사회에 제출한 보 고서에서 식량권의 실행을 저해하는 7가지 핵심 경제적 장애의 하나로 부패를 들고 있다.156 그리고 1996년 ‘세계식량정상선언’(Declaration of the World Food Summit)에서는 식량안보를 저해하는 원인의 하 나로 부패를 언급하고 있다.
부패가 식량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식량권의 개념 과 식량권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식량권은 기 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모든 인간의 권리를 의미한다. 특히 식량
155_NKHR2012000068.
156_유엔문서 E/CN.4/2001/53 (7 February 2001), para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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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1조 2항의 적절 한 생활수준의 권리를 구성하는 핵심 권리 중 하나이다. 그리고 식량 권의 주요 구성 요소에 대해서는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의 ‘일반논평’
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동 규약위원회 ‘일반논평 12’에 따르면 식량권의 핵심 구성 요소는 첫째, 양과 질에서 식량의 가용성(availability)을 의미한다. 식량의 가 용성이란 생산지로부터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토지와 천연자원의 소유와 사용에 관련된 부패행 위는 식량의 가용성을 제약하고 식량권을 침해하게 된다. 뇌물을 수수 한 대가로 토지 사용 허가를 부여하게 되면 이러한 부패행위는 불평등 하고 차별적 방식으로 식량의 가용성을 낳게 된다. 또한 부패는 육체 적·정신적 건강과 성장을 위한 영양소, 칼로리, 단백질 등 적절한 식량 과 식량안전의 수준을 위협하게 된다.
둘째, 적절한 식량권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접근성(accessibility) 이다. 식량에 대한 접근권은 2가지 측면으로 구성된다. 경제적으로 충 당 가능해야 하고 물리적으로 접근 가능해야 한다. 부패는 이러한 접 근성을 제약하게 된다. 특히 부패는 주로 사회프로그램을 저해함으로 써 식량에 대한 접근성을 제약하게 된다. 여기서 사회프로그램은 사회 적 취약집단에 대한 접근성을 구성하는 특별 요소이다. 사회프로그램 종사자가 식량을 구입하고 배분하도록 책정된 자금 또는 식량자체를 횡령하거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식량을 암시장에 전용할 때 취약집단 이 자신들에게 할당된 식량에 접근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상에서 보듯이 부패는 핵심자원을 사회적 지출로부터 전용하기 때문에 식량권의 실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157
또한 유엔 식량권특별보고관은 국가가 관할권 내 주민의 식량권을
존중·보호·수행할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부패투쟁이 주요 요소 의 하나라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부패는 식량권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가는 식량권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점진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평등하고 비차별적 방식 으로 식량에 대한 접근을 제공해야 한다. 국가는 적절한 식량에 대한 접근을 존중하고 제3자가 식량권의 향유에 개입하는 것을 방지함으로 써 식량권을 보호하고 식량권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 하여 식량권을 수행할 의무를 지닌다. 그런데 부패행위는 이러한 식량 권에 대한 국가의 3가지 의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 게 된다.
가. 부패행위와 식량의 가용성 및 접근성의 저하
식량권과 관련한 부패행위는 우선적으로 배급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러한 배급과정에서 식량권에 미치는 부패행위는 주로 횡령이라는 형 태로 나타나고 있다. 횡령이 식량권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 인과관계 와 간접적 인과관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직접적 인과관계로서 식량 배급 체계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횡령은 식량권(가용성, 접근성)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요인으로 작용 하게 된다. 구체적 배급과정에서 부패행위를 살펴보기로 한다.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수확된 농산 물을 당 등 관련 부서의 간부들에게 바치는 행위이다.
157_이상의 내용은 Julio Bacio-Terracino, “Corruption as a Violation of Human Rights,” pp. 19~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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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농장에서 햇곡식이랑 햇남새랑 채소랑 나올 때는 뇌물을 고이거든요. 군당 책임비서, 조직비서, 근로단체비서, 부장, 경영 위원장 등 당간부, 행정간부를 포함해서 리스트가 있어요. 이 사 람들한테는 각 농장마다 쌀 같은 뇌물을 갖다 고여요. 관리위원 장도 살아야 되니까요.”(사례 5)
식량 수확 후 분배과정에서 식량을 가로채는 부패행위이다. 특히 협 동농장에서 간부들이 담합하여 쌀과 같은 주곡을 횡령하는 부패행위 가 나타나고 있다. 리당 비서나 관리위원장은 벼를 수확한 후 이를 분 배하는 과정에서 부기실 요원으로 하여금 계량을 속여 장부상에 없는 여유곡을 만들게 한다. 이들은 장부조작을 통하여 식량을 빼돌려 개인 적으로 사취하는 것이다.158
식량 수매과정에서 수매원과 협동농장 간부 사이의 담합과 흥정에 따라 발생하는 부패행위이다. 식량 수매과정에서 식량수매원과 농장간 부들 간의 부적절한 교환행위로서의 부패행위를 의미한다. “수매분을 줄여 주는 대가로 뇌물을 수매원에게 주고 간부들은 그만큼의 여유곡 을 농장 살림살이나 간부 개인의 목적으로 착복하는 것이다.”159
이러한 공모와 답합에 의한 식량에 대한 부적절한 교환행위는 양정 국에서 식량을 배급하는 과정에서 양정국 관리와 식량 수령기관 사이 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공모와 담합은 예를 들어 김정일의 지 시나 당의 결정에 따라 지방 단위 특정 기관의 기관장이 정책을 수행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즉, 양정국이 정책을 수행하는 특정 기 관장과 결탁하여 배급 장부를 조작하여 식량을 빼돌리고 있다.
158_김성철, 북한관료부패 연구, p. 47.
159_홍민, “북한의 사회주의 도덕경제와 마을체제,”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박사학위논문,
2006), p. 337.
“예를 들어 김정일 방침에 따른 건물 하나를 건설 하겠다 하면, 건설에 참여하는 100여 명을 먹여야 되잖아요. 그런데 식량을 받아서 줘야하는데, 식량이 없으니까 100여 명이 먹어야 될 식 량을 해결하기 위해서 양정국 국장한테 가서 뇌물을 바치죠. 그 래도 이 사람들이 그냥은 안 줘요. 식량은 제한돼 있고 달라는 데는 많죠.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이익 관계를 설명하면서 배정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내가 열 톤을 줄 테니 아홉 톤은 가져 가고 한 톤을 돌려달라고 하는 거죠. 물론 장부상으로 그 기관이 열 톤을 수령한 것으로 되고 … 나머지 한 톤은 양정국 국장이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죠. 양정국 국장은 그 한 톤을 팔아서 돈으로 만들 수가 있으니까요.”(사례 7)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양정국 관리는 뇌물수수와 장부조작이라는 이중적 부패행위를 통해 개인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양정국의 역할이 변화하면서 이 과정에서 부패행위가 개입하고 있다. 양정체계 도 경제난으로 작동시스템이 변질되었다. 옛날 양정체계 아래에서는 양정국은 인구통계학적으로 숫자를 파악하고 정상적으로 배급을 집행 하는 기관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양정국은 절대적으로 적은 식량을 착 출하고 공급하는 임무로 역할이 변화되었다. 양정국이 적은 양을 차출 하여 배분하므로 권한이 강화되었다. 이렇게 적은 양을 배분하는데, 필 요로 하는 기관은 많기 때문에 양정국 국장의 권한이 강화되고 뇌물이 매개되는 것이다. 따라서 양정국 국장의 선호도가 높아졌다.(사례 7)
이외에도 식량이 빼돌려지는 다른 형태의 부패행위를 살펴보면 소 속 기관의 관장 영역에 있는 식량, 석탄 등의 수급과정에서 관료 자신 이 자금을 투자해서 물자를 확보하고, 이를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획득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이 비공식적 시장의 판매행위는 관료적 지위를 활용한 비공식적 연결망 자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160
160_최봉대, “계층구조와 주민의식 변화: 북한사회의 불평등체계의 변화와 주민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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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국의 묵인하에 이루어지는 개인식당의 확산도 식량권에 영향 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개인식당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식 량을 관료와 개인식당의 주인이 결탁하여 빼돌리면 일반주민들의 식 량권은 더욱 침해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식량 수급과정에서의 횡령은 1차적으로 식량의 가용성 수 준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식량을 필요 로 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차별과 경제적 접근성의 수준을 악화시키 게 된다. 횡령을 통해 빼돌려진 식량만큼 높은 시장가격으로 식량을 구입해야 하므로 북한주민들의 식량에 대한 경제적 접근 비용을 증가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둘째, 구금시설에서의 부패행위가 수감자들의 식량권을 저해하는 직 접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당국이 집결소에 식량을 배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업지를 할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부업지 경 작에 집결소 수감자들이 동원되는데,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된 생산물 은 집결소 운영을 위해 활용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집결소를 관리 하는 보안원들이 생산물을 많이 사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용성이라 는 기준에서 집결소 수감자들의 식량권은 저하되는 것이다.161
셋째, 간접적 인과관계로서 식량 구득에 할당될 수 있는 자원의 왜 곡된 배분은 식량권(가용성, 접근성)을 간접적으로 침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구체적 부패해위의 사례를 살펴보면 식량 생산과정에 서 비료나 사료 등을 빼돌림으로써 협동농장의 식량 생산에 부정적 영
적 정체성의 재형성 문제,” 1990년대 이후 북한사회 변화 (서울: KBS 남북교류 협력팀, 2005), p. 192; 김종욱, “북한의 관료부패와 지배구조의 변동: ‘고난의 행군’
기간 이후를 중심으로,” p. 384.
161_NKHR201200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