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시장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부패가 발생하는 요인은 주로 시장세력과 공적 지위의 연계, 공생 네트워크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살펴볼 수 있다.
가. 시장과 공적 지위의 연계 및 부패
북한에서 시장행위가 확산되면서 부패행위가 개입될 수 있는 요인 에 대해 앞에서 언급한 ‘정치자본’이라는 개념을 원용하여 살펴볼 수 있다. 정치자본은 공적 지위를 통해 주택, 자동차, 병원, 학교 등 공공 적 재화에 대한 점유·활용과 서비스를 향유하는 능력을 뜻한다.49 북 한에서 정치자본은 직위를 통한 특혜 또는 특권을 향유하는 것에 해당
49_Pierre Bourdieu, Practical Reason: On the Theory of Action, p. 16.
하며, 이런 정치자본은 가계의 출신성분과 가족적 세습에 의해 전수된다.
북한의 경우 빨치산 혁명전통을 정점으로 한 출신과 가계에 따라 정치 자본의 소유 수준이 현격하게 차별화된 사회라는 점에서 다른 사회주 의국가와 비교할 때 정치자본의 의미가 보다 강력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에서의 부패와 정치자본의 상관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이후 북한에서 부패는 시장의 활성화 현상 속 에서 정치자본의 소유와 영향력을 통해 발생하고 있다. 정치자본은 소 극적으로는 직위에 해당하는 특별한 배급과 공급의 혜택을 뜻하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관료적 직위와 특권을 통해 개인 및 기관·조직의 이익과 지대를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북한의 관료들은 1990년대 이후 정치자본을 활용하여 시장경제에 개입하면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적이익을 획득해 오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시장은 기존의 사회적 권력 관계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50
1990년대 경제난 이후 당·정·군의 관료들은 자신이 소유한 정치자 본을 통해 시장경제를 전유하는 방식에 있어 진화를 거듭해 갔다. 이 와 관련하여 시장의 확산과정에서 정치자본과 더불어 ‘시장세력’이라 는 개념을 적용하여 부패행위 개입 요인을 살펴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시장이 불법적 영역으로 통제되는 가운데 당·정·
군의 주요 권력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무역회사를 꾸리고 외화벌이 사 업에 뛰어들었다. 이들 기관들은 자기 기관의 운영과 생존을 명분으로 외화벌이 사업을 정당화해왔다. 그리고 중하위 관료들은 주로 주민들 의 시장 활동에 대한 통제를 명분으로 주민들로부터 뇌물을 받는 방식
50_경제적 거래의 사회적 배태성(embeddedness)에 대해서는 박찬웅, “시장과 배태: 경제 적 거래의 사회적 배태성,” 한국사회학, 제44집 5호 (한국사회학회, 2010), p.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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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시장과의 이해관계를 만들어 왔다.
2000년 이후 시장 활동에 대한 제도적 허용이 늘어나면서 당·정·군 기관들은 대내외 시장 거래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그 영 역도 크게 확장되고 있다. 사실상 굵직한 대외 무역 거래에 당·정·군의 주요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하면서 대내외 시장 규모도 양적·질적 으로 팽창하게 되었다. 또한 이들은 국정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를 이 용하여 국내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51 이와 함께 중하위 관료들의 시장 이해관계도 다양화되고 있다. 단순히 주민 시장 활동에 기생하는 방식을 넘어 시장 활동과 거래의 뒤를 조직적으로 봐주거나 주택 건설이나 부동산 투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능동적인 시장 행위 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2008년 시장에 대한 통제 정책으로 전환한 이후에도 사실상 주민들 의 시장 활동은 위축되었지만 기존의 당·정·군 중심의 외화벌이 사업 과 대내외 시장 거래는 큰 타격 없이 현재까지 유지돼 오고 있다. 사실 상 북한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힘은 이들 당·정·군 산하 무역회사들의 대내외 시장을 연결하는 무역 거래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시장 거래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직화되어 있으며 기관 또는 국가의 이름으로 권력의 용인 아래 움직이기 때문에 가장 안정적인 세력이라 고 할 수 있다.52 이들이 들여오는 수입 물자와 자금은 국내 시장으로 도 유입되어 국내 시장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53 또한 중
51_이와 관련해서는 이정철, “북한 구획 경제의 한계와 가격 제도 개혁,” 통일경제, 겨울호 (현대경제연구원, 2010), p. 94.
52_가령 군의 외화벌이 사업만 예를 든다면, 선군정치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국방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외화자금 투입이 필요하며 이런 이유로 국방공업과 외 화벌이 사업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최봉대, “북한의 지역경제협력 접근방 식의 특징-신가산제적 사인독재정권의 ‘혁명자금 관리제도’와 대외경제협력의 제약,”
현대북한연구, 제14권 제1호 (북한대학원대학교, 2011), p. 200.
하층 관료들 역시 국내 돈주와 상업자본가가 긴밀하게 연계되어 국내 시장경제의 상층을 차지하며 중요한 시장 행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상 이들 당·정·군의 모든 관료들이 북한의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실제적 세력이란 점에서 이들은 ‘시장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시장교환 활동을 통해 시장경제에 영향 미치는 과정에서 다양 한 부패와 연루되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에서 ‘시장세력’은 시장을 생계 근거로 활동하는 일반 주민과 매대상인 및 보따리 상인들과 같은 일반적인 시장 일상생활 영 위층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시장을 국가와 적대적인 관계에 위치시키고 시장을 통해 일상을 영위하는 일반주민과 상인들 을 시장세력으로 보지만, 그것은 매우 협소한 시각일 수 있다. 북한의
‘시장세력’은 대내외 시장 및 시장교환에 대한 직간접적 관여를 통해 생존과 이윤, 기득권과 지위 등을 유지, 확대, 재생산하는 데 있어 상호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개인 및 집단(기관, 조직)을 총칭하여 정의할 수 있다.54
이들 시장세력은 생계차원에서 시장 활동을 하는 대다수 주민들을 비롯하여, ‘돈주’를 비롯한 크고 작은 상인계층들, 이들의 활동에 약탈 적으로 기생하는 중하층 관료들, 당·정·군 기관 외화벌이 회사들과 그 관료들, 이들과 밀접하게 연계하여 활동하는 무역지도원들, 막강한 권 한을 가지고 시장교환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53_북한에서 외화벌이 사업을 통해 들어오는 외화의 자금 흐름과 관리시스템을 잘 이해 하면 북한의 경제구조와 작동원리는 물론 권력구조와 작동원리까지 파악할 수 있다.
김광진, “북한 외화관리시스템의 변화와 외화의존도의 증대,” 수은북한경제, 봄호 (한국수출입은행, 2008), p. 21.
54_홍민, 화폐개혁 전후 북한의 국가-시장 관계의 변화 동학: 후계 정치지형과 시장 권력과의 상호관계 및 변화구도 (통일부 연구용역 보고서, 2010.6), p.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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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기는 중앙 및 지역의 상층 관료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시장 세력들은 사적이익과 조직의 이익을 위해 시장을 전유(appropriation) 하는 데 있어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조직, 조직 대 조직, 조직 대 지역, 지역 대 지역 등의 사이에 네트워크를 형성·유지·변형하면서 상호 공 생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시장 전유에 있어 부문별, 지역별 협력·공생체계를 형성하기도 한다.55 시장세력들 은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자원, 물자, 운송, 에너지, 인간, 기술, 정보 등의 물질-에너지 흐름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부패행 위에 개입하게 된다.
나. 시장세력들의 결탁방식과 부패
시장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시장세력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탁하고 있는데, 그러한 결탁방식에 따라 부패행위의 개입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가장 상층에는 당·정·군 기관들의 외화벌이사업 회사들이
있다. 당 39호실, 38호실, 당재정경리부, 당조직지도부 등56에 소속된
외화벌이 기관들과 내각, 군, 인민보안부, 국가안전보위부, 주요 도급 기관 및 주요 특수기관 등의 산하에 있는 외화벌이 회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기관들은 북한의 내부 자원들에 대한 독점적 수취 권 한과 수출입권을 활용해 무역을 통해 국내외 시세차익을 남기는 방식
55_홍민, “북한 시장 일상생활연구-그로테스크와 부조리극 ‘사이’에서,” 박순성·홍민 편,
북한의 일상생활세계: 외침과 속삭임 (서울: 한울아카데미, 2010), p. 360.
56_중앙당 39호실에는 대성총국, 경흥지도국, 락원지도국, 금강지도국, 대흥지도국 등의 무역회사들이, 38호실에는 호텔, 상점, 백화점, 식당 등이, 또 당 재정경리부의 무역회 사, 식당, 상점, 농목장, 공장들, 당조직지도부 행정부문에서 관리하던 조선민족보험 회사, 727지도국, 2호지도국, 수도건설총국, 조선원예총회사 등 경제단위들, 당 민방 위부의 114지도국 등이 있다. 김광진, “북한 외환관리시스템의 변화와 외화의존도의 증대,” p. 25.
으로 수익을 챙긴다.57 이들 회사들의 국내 수출원천 동원, 대외 시장 거래, 수입품 국내 유통 등을 통한 수익 창출은 국내외 시장교환을 직 간접적으로 경유하여 이루어진다. 중앙당 외화벌이의 경우 국내적 유 통과는 별도 김정일 통치자금 조달로 바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 으나, 수출을 위해 국내 자원을 수매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이 관련 담당 일꾼이나 지역기관에 의해 유출되어 시장으로 나가고 있어 국내 시장과 완전히 절연되어 있다고 보기 힘들다.58
이들은 강력한 권력을 지닌 중앙엘리트들의 공식적, 비공식적 후견 과 보호, 독점적 지위 속에서 시장을 전유하는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가장 규모와 파급력이 큰 시장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국내외 수출입과 시장 유통과정에서 국가기관 명의와 ‘와크’(무역 허가권)를 통해 동원하는 자원, 물자, 운송, 인간, 정보 등의 규모 측면에서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이러한 ‘와크’를 매개로 한 구체적 부패행위 발생 구조를 살펴보기로 한다. 보통 회사와 권력층을 끼고 하는데 국가에서 어떤 물품을 구입 하는 오더를 주는 물량이 있고, 이를 ‘와크’라고 한다. ‘와크’로 통칭되 는 물량이 내려오면 북한 내부와 짜고 할당물품의 구입 가격을 속여 차액을 챙겨서 서로 나누어 갖는다. 즉, 국가에서 물품을 구입해서 보 내라는 명령이 내려오면 구매 가격을 속이는 것이다. 중국에서 실제 구매가격이 1,000원이면 국가에 가격을 올릴 때는 2,500원이나 3,000원
57_기관별 ‘회사’의 운영과 시장과의 연계에 대해서는, 박형중, “과거와 미래의 혼합물로 서의 북한경제-잉여 점유 및 경제조정기제의 다양화와 7개 구획구조,” 북한연구학 회보, 제13권 제1호 (북한연구학회, 2009), p. 48.
58_이와 관련 대흥지도국 산하 5호관리부에서 금, 송이버섯이나 지방 특산물 수매과정 에서 당 관료들을 통해 상당한 양이 중간 유출되어 국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증언도 있다. 2009년 5호관리부 수매담당 일꾼 출신 탈북자 인터뷰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