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자연현상 혹은 사회현상에서 “본래의 순수한 상태에서 어떤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질되어 버린 경우를 가리키는 말”로 써 두루 사용되고 있다.6 자연현상에서는 어떤 물건이 썩어서 쓸모가 없게 된 상태, 인간 사회현상에서는 인간이 윤리·도덕적으로 타락하였 거나 법규·제도가 문란한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지속하여온 부패에 대한 인식은 시대적 배경에 따라 관점을 달리 해왔 고, 평가 기준 역시 개별국가들의 사회·문화적 상이성으로 인해 차별성 을 보여 왔다. 이로 인해 부패는 정치·행정학자들의 학문적 성향에 따 라 다양한 개념의 편차를 보이고 있다. 또한 개발협력을 지원하는 국제 기구들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강조하는 초점이 다르게 표출되고 있다.
1960년대 냉전 시기 서방 학자들은 대체로 부패를 민족국가의 내부 문제로 설정하였고 정치발전·행정발전·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추어 부 패개념을 규정하였다. 즉, 부패가 특정한 국가 내부에서 경제성장, 행정 효율성 및 정치적 안정에 미치는 효과 등을 중점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정보통신기술이 급속히 발달하여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이 심화되는 한편, 비정부기구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부패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즉, 비정부기구의 역할 강화에 따라 국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계층적 관료주의에 바탕을 둔 전통적 행정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기업·시민사 회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공동 협력하면서 국가경영을 보다 효율 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틀로서 거버넌스(governance) 이론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6_전수일, 관료부패론 (서울: 선학사, 1999), p. 13.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이후 유엔과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은 부패문제를 전세계적인 인류공통의 문제로 인식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가. 부패의 개념
부패란 일반적으로 공직자들이 국가의 법 또는 도덕적 규범으로부 터 일탈하여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칭하며 부정·비리·권력 남용 등의 용어와 혼용하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사적이익 (private gain)을 추구하기 위해 부여받은 권력을 오용하는 행위”라는 국제투명성기구의 정의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신뢰
(trust)의 남용이나 위반의 개념에 초점을 두는 정의도 존재한다.7 이
와 같이 부패개념은 다양한 속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분석 시각에 따라 각기 다르게 규정될 수 있다. 본 과제에서는 다양한 부패개념에 대해 하이덴하이머(Arnold J. Heidenheimer)의 분류를 원용하고자 한다. 하이덴하이머는 다양한 부패개념에 대해 공직중심·시장중심·공
익중심 3가지로 부패개념을 분류하여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8
첫째, 공직중심으로 부패를 정의(Public-Office-Centered Definitions) 하는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부패는 공직자가 규범에서 일탈하여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권력을 오용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7_Martine Boersma, Hans Nelen (eds.), Corruption & Human Rights: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s (Antwerp; Portland, OR: Intersentia, 2010), p. 8; 박형중 외, 부패의 개념과 실태 및 반부패 개혁 (서울: 통일연구원, 2011), pp. 10~11.
8_Arnold J. Heidenheimer, “Terms, Concepts, and Definitions: An Introduction,”
Arnold J. Heidenheimer, et al. (eds.), Political Corruption: A Handbook (New Brunswick, NJ: Transactions Books, 1993) pp. 3~14; 전수일, 관료부패론, pp.
14~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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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특수한 공적지위를 남용하여 뇌물 수 뢰 등 사적이익을 부당하게 추구하는 행위를 부패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나이(J. S. Nye)는 부패를 가족·친지들에 대한 관심 또는 금전 및 신분상 이득을 위하여 공적 역할의 규범적 의무로부터 이탈하 는 행위, 뇌물, 연고자 등용, 공금횡령 등을 통해 법규를 위반하는 행위 로 정의한다.9 ‘직무와의 연계성’, ‘사적인 이익추구’, ‘위법성’ 등 3가지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부패를 규정하고 있는 공직중심의 정의는 사회 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10 그런데 공직중심 개념에 주 목하여 협의로 부패를 규정할 경우 도덕적 규범에서 벗어나 행하여지 는 많은 비리들을 간과하게 될 수 있다.
둘째, 시장중심으로 부패를 정의(Market-Centered Definitions)하 는 시각이다. 이는 공직자들을 관리하는 규범이 존재하지 않거나 명백 하게 표명되지 않았을 경우 시장에서 최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행 위로 부패를 설명하는 시각이다. 크레베런(Jacob van Klaveren)은 공 직자가 공적 지위를 사업으로 간주하여 최대한 소득을 올리려고 노력 할 경우 부패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소득을 추구할 경우 공직자의 소득의 크기는 공공선을 위해 노력한 결과에 대 한 윤리적 평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공직자의 소득은 시장에서 수요·공급 곡선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방식과 유사하게 대중의 수요 곡선 상에서 자신의 소득이 최대한 커질 수 있도록 균형점을 찾아내는
9_Joseph S. Nye, “Corruption and Political Development: A Cost-Benefit Analysi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LXI, 2 (June 1967), pp. 417~427 에서 발표된 내용을 편집한 Arnold J. Heidenheimer, et al. (eds.), Political Corruption: A Handbook, p. 966.
10_박중훈·최유성, 부패방지 정책 및 활동의 효과성 평가-예방적 차원을 중심으로
(서울: 한국행정연구원, 2009) pp. 10~11 참조.
그의 재능에 의해 결정된다.11
이는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를 원용하여 부패를 설명하는 입 장과 연결된다. 즉, 통제기제가 없는 경우 합리적 행위자인 공직자는 시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불법적인 지대추 구 행위를 수행하게 되며, 이러한 행위를 부패로 규정하는 시각이다.12 지대추구 행위란 특권을 확보하기 위한 독점적인 지위의 확보행위로 서 수입량 제한, 보호관세, 뇌물, 공갈과 은폐 등의 합법적이고 위법적 인 행동을 포괄한다. 또한 로비나 뇌물의 제공과 같은 비정상적인 방 법을 동원하여 경쟁억제에 따른 이전소득, 보조금, 이권, 특혜 등을 추 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13이와 같이 부패는 지대를 추구하는 데서 하 나의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다. 관료는 국가정책에 맞추어 가격을 조 정하고 시장진입을 통제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지대가 창출 되고 특정한 집단에 분배된다. 그런데 관료는 지대를 창조하고 분배하 는 데서 일정한 자의성을 개입시킬 여지가 있으며 자의성을 오용할 때 부패행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14
셋째, 공익중심으로 부패를 정의(Public-Interest-Centered Definitions) 하는 시각이다. 이는 공직중심 정의가 너무 협소하게 부패를 규정하는 반면, 시장중심 정의는 부패를 너무 광범위하게, 규정한다는 비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공공이익’(public interest)이라 는 개념이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부패를 정의하는 데
11_Jacob van Klaveren, “The Concept of Corruption,” in Arnold J. Heidenheimer et al. (eds.), Political Corruption: A Handbook, p. 26.
12_박중훈 외, 부패실태 및 추이분석 (서울: 한국행정연구원, 2006), p. 4 참조.
13_사공영호, “지대추구의 사회화와 인지·개념체계화,” 규제연구 제19권 제2호 (한국 경제연구원, 2010.12), pp. 6~8.
14_박형중 외, 부패의 개념과 실태 및 반부패 개혁, pp.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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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이익을 중요한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리드리히 (Carl Friedrich)는 공직자가 업무수행과정에서 개인 또는 가족·친지 들을 위하여 금전, 급속한 승진, 지위, 사치 등의 사적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이익을 손상하는 모든 행위를 부패로 규정한다.15 공익중심 의 정의에서는 법적 책임이 면제되는 부도덕한 행위도 부패의 한 형태 로 규정함으로써 공직자의 윤리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3가지 시각의 부패에 대한 개념 정의 중 본 과제에서는 주로 공직중심 시각으로 북한의 부패문제를 접근하고자 한다. 북한은 장마 당 등 시장활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계획경제를 기본적으로 유 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중심 시각은 상대적으로 적실성이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공익중심 개념도 후술하듯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 패현상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 공직중심 시각도 북한 내 부패의 경우 사적이익과 조직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상이 혼재한다는 점에서 북한부패현상을 설명하는 데 일정 정도 한계가 있으나 후술하듯이 가 장 근접한 시각이라고 본다.
나. 부패행위의 유형
부패행위는 규모와 수준, 부패행위의 주체에 따라 대규모 부패와 소 규모 부패, 정치부패와 행정부패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통치차원에 서 부패가 작동하는 수준 및 범위에 따라 대규모 부패와 소규모 부패 로 구분할 수 있다. 대규모 부패는 법에 의한 통치가 근본적으로 부정
15_Carl J. Friedrich, The Pathology of Politics: Violence, Betrayed, Corruption, Secrecy and Propaganda (New York: Harper & Row, 1972), pp. 127~141에서 발표된 내용을 편집한 Arnold J. Heidenheimer, et al. (eds.), Political Corruption:
A Handbook, p. 15.
되고 있는 군부 권위주의정권, 일당독재하의 전체주의국가 또는 체제 전환의 과도기에 처해있는 국가 등에서 흔히 발생한다. 최고위층 정치 인과 정부의 관리들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법·규범을 공정하게 제정·실 행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층의 기득권유지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를 왜 곡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대규모 부패가 만연해 있는 국가에서는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도 광범위하게 자행된다.
한편, 소규모 부패는 주로 국가기구가 견제와 균형에 의한 권력분립 원칙에 입각하여 구성되고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이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국가에서 발생한다. 정부 고위층이 비교적 책임행정 및 투명성을 추구하는 반면, 일부 중하위 관료들이 사적이익을 위해 공적 지위 및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를 지칭한다.16 북한의 경우 규모와 수준 모두 전방위적으로 부패행위가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규모와 수준이 라는 구분은 북한의 경우 무의미하다. 다만 규모와 수준은 북한주민의 권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대규모 부패의 경우 자원의 왜곡으로 인해 북한주민의 사회권 전반을 저하시 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소규모 부패의 경우 일반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되므로 자유권, 사회권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 로 작용하게 된다. 후술하듯이 주로 평등과 비차별이라는 관점에서 소 규모 부패는 북한주민의 인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둘째, 정부부패(government corruption)는 부패를 범하는 행위자에 주목하여 정치부패와 행정부패로 분류할 수 있다. 정치부패(political
corruption)17와 행정부패(administrative corruption)는 정부부패의
16_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Governance, Corruption, and Conflict (A Study Guide Series on Peace and Conflict, 2010).
17_Wikipedia, Political Corruption, <http://en.wikipedia.org/wiki/Political_corrup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