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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국가-사회 관계: 소련/중국과 비교한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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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에서 국가-사회 관계: 소련/중국과 비교한 특징

전체주의는 사회를 총체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시도와 노력이 일정하 게 공통적인 조치와 정책을 유발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Friedrich/

Brzezinski 등의 고전 전체주의론에 따르면, 예를 들어 파시즘과 스 탈린주의는 이데올로기적 내용과 사회적 기반 등에서 차이가 매우 크 다고 해도, 사회를 총체적으로 통제하려는 의도와 노력이 존재하고, 그 로부터 일정한 통치구조, 제도와 절차, 그리고 정책이 유발되고, 그에 의해 ‘중요한 효과’가 공유된다면, 양자는 전체주의적이란 측면에서 본

157) Mark Edele, Stalinist Society, 1928-1953, p. 195.

질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Friedrich/Brzezinski의 전체주의 론도 국가마다 또한 시기별로 전체주의적 프로젝트의 의지와 노력의 강도, 그리고 구체적 추진양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열어 놓았다.

국가마다 전체주의의 구체적 시현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 은 Harvard Interview Project에서의 전체주의 개념에서 보다 명확 히 표현된다. 이 프로젝트는 소련체제를 ‘소련식 전체주의 산업사회’ 로 규정했다. 이는 소련체제가 전체주의라는 단일요소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적 특성과 산업사회적 불가피성과 특 징과의 복합적 혼합물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러시아적 특성에는 러 시아의 지정학적 여건과 국내정치 특성 및 러시아식 전통을 포함시 킬 수 있는데, 이는 볼셰비키가 전체주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 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주어진 상황으로 당면해야 했던 조건들이다. 산업사회적 불가피성과 특성은 공업화와 공업사회를 건설하고 당면해야 했던 필요 및 그 결과물의 효과들을 포함할 수 있다. 소련 ‘체제’라고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요소가 상호 작용하고 상호 겹치고 상호 침투한 구체적 결과물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이러 한 식의 인식 틀에서라면, 소련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공히 전체주 의로서의 본질을 공유하지만, 소련체제, 중국체제, 북한체제의 구체 적 양상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가. 상호 관계의 개관적 비교

스탈린 통치 시기 성립된 소련체제는 2차대전 이후에 탄생한 공산 주의 국가 사회 체제의 기본 모델이었다. 그렇지만 각국의 공산주의 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체제를 완전히 재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각국 의 공산 체제는 앞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주요하게 세 가지 요소에 의해 규정되었다. 첫째, 공산 체제 수립 이전에 각국에 이미 존재하

고 있던 전통과 국내 정치 및 경제 상황158) 그리고 지정학적 특성, 둘째, 사회주의적 전체주의 프로젝트가 제기하던 바의 사회의 총체 적 변형에 관한 요구의 구체적 양상 (의지와 노력의 강도 그리고 선 택된 방법), 셋째, 공업화 또는 산업사회 건설에 따르는 사회 구조 및 계층 변화의 요구이다. 이 세 가지는 각자 상대적으로 독립적이 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 서로 겹치며 상호 침투했다.

중국에서 성립했던 모택동 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와 관련하 여 여기서는 Andrew Nathan과 Martin King Whyte의 대표적 두 가지 고전적 견해를 소개한다. Nathan의 견해에 따르면, “모택동 정권은 스탈린주의적 발전 모델을 중국의 경제적 문화적 현실에 강 제하려 했지만 실패했던 노력으로부터 결과한 바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제도의 독특한 복합체(ensemble)이다.”159) 보다 자세히 설 명하면, “모택동 중국의 제도는 절반만 실현된 애초의 스탈린주의 패턴과 다른 여러 가지 패턴 사이의 혼합이다.”160) 여기서 여러 가 지 패턴에는 공산당의 연안 경험에서 도출된 일련의 패턴, 장개석의 국민당과 일본전통으로부터의 일정 패턴, 경제적 또는 정치적 당면 문제에 대한 실험적이고 현장성 적응으로부터의 일정 패턴이 포함 된다.161) 이러한 역사는 모택동 체제가 스탈린 체제와 부분적으로 유사하고 부분적으로 상이한 정권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158) 박형중, 북한의 개혁개방과 체제변화 (서울: 해남, 2004), pp. 63~98; Juan J.

Linz and Alfred Stepan, Problems of Democratic Transition and Consolidation: Southern Europe, South America, and Post-Communist Europe, pp. 235~254.

159) Andrew J. Nathan, China’s Transition, p. 51.

160) Ibid., p. 54.

161) 여기서 언급된 패턴의 영향을 강조하는 주장으로, Xiaobo Lu and Elizabeth J. Perry, Danwei: the Changing Chinese Workplace in Historical and Comparative Perspective (Armonk: M.E. Sharpe, 1997); Mark W. Frazier, The Making of the Chinese Industrial Workplace: State, Revolution, and Labor Managemen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Whyte는 모택동 체제와 스탈린 체제를 보다 선명하게 구별하는 주장을 한다. 그에 따르면, 모택동 체제는 첫째, 중국의 전통적인 전체주의 이념에 의해 영향받고, 둘째, 소련의 조직 형태와 현대 기 술 및 의사소통으로 무장한 엘리트들이, 셋째, 국가의 사회에 대한 극단적 수준의 지배를 만들어 내고자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먼저 그가 말하는 ‘전통적 전체주의 이념’을 설명해 보자. 과거 제국 적 중국은 ‘지배주의적인 전체주의적 비전’에 의해 기반하고 있었다.

특히 근대 이전의 중국 국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통제를 행사하고자 했지만, 자원의 제약, 주민의 가 난과 무지 때문에 이러한 비전은 완벽하게 실현될 수 없었다는 것이 다. 그렇지만 어쨌든 중국의 제국적 통치자들은 사회에 대한 총체적 지배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지속해서 추구했다고 한다.162) 청 나라의 멸망 이후 다원주의를 인정하고자 했던 개혁가들이 존재했 지만 이들은 실패하고, 중국 공산당이 1949년 승리했다. 그리하여, 국가-사회 관계는 개혁가들이 승리했었을 경우에 비해 한층 덜 혁 명적이고 더 ‘전통적’인 관계로 새로이 정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 국은 1950년대 주로 소련식으로 수행된 조직적 변화를 경험했는데,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비판과 중소 분쟁의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 지 도자들은 특히 1956년부터 새로운 중국식 내용을 첨가했다. 그 결과 로 성립한 중국식 또는 모택동식 공산주의는 소련의 조직 모델보다 결과적으로 한층 더 ‘국가의 사회에 대한 극단 수준의 지배’를 특징 으로 하는 체제였다.

초기 중국체제와 마찬가지로 초기 북한체제도 공히 소련체제를

162) Martin King Whyte, “State and Society in the Mao Era,” Kenneth Liberthal, Joyce Kallgren, Rderick MacFarquhar, Frederic Wakeman, Jr., editors, Perspectives on Modern China: Four Anniversaries (New York: M.E. Sharpe, Inc, 1991), pp. 255~257.

전범으로 하여 건설되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존재 했다. 중국의 경우 공산 혁명은 소련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자력으 로 수행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설되었을 때도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원활하지 못했으며,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까지 소 련의 중국에 대한 적극적 지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시기 동안 중 국이 당시 소련체제를 전범으로 자신의 체제를 수립하고자 했지만, 중국은 소련을 소련의 관련 문헌 번역이라는 간접적 방법을 통해서 학습했다.163) 소련이 원조와 전문가 파견을 통해 중국을 적극적으 로 지원한 기간은 1953~1956년에 불과했다. 이와 비교할 때, 북한 공산주의는 1945년 소련군의 북한 점령, 그리고 1948년까지 이어진 소련 군정을 배경으로 건설되었다. 다시 말해 중국체제 건설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소련은 간접적이고 소극적 역할 을 했다면, 북한체제는 소련 군정 주도하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상황이 변화했다. 1950년 발생했던 6・25 전쟁에 소련은 직접 참가하지 않았지만, 중국은 직접 참가했고 조선인민군을 중국 군 지휘 하에 두었다. 또한 중국은 1953년 휴전 이후에도 1958년까 지 중국군을 북한에 주둔시켰다. 1950년대에는 소련이 아니라 중국 이 북한에 대해 가장 비중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중국체 제는 1956년경부터 급진화하면서 모택동식 체제의 고유 특징을 보 여주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대로 북한에서도 동조되어 등장했다. 다 시 말해, (다음에 보다 자세히 서술할 것이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 북한체제도 중국에서의 사태 진전에 발맞추어 소련식 체제보다는 모택동식 체제의 특성을 보여주는 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164)

163) Deborah A. Kaple, Dream of a Red Factory: The Legacy of High Stalinism in Chin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pp. 3~18.

164) 북한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영향의 성격과 강도를 비교한 서술로서, Balazs Szalontai, Kim Il Sung in the Khrushchev Era: Soviet-DPRK Relations and the Roots of North Korean Despotism, 1953~1964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5), pp. 210~218.

나. ‘절정기 스탈린주의’ 모델 그리고 중국과 북한

우선 스탈린 체제의 모택동 체제에 대한 영향을 알아보자. 결론부 터 말하면, 모택동 체제는 스탈린 통치의 한 유형을 모방했고 그것 을 나중에 한층 더 급진화된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스탈린 통치도 시기에 따라 그 구체적 내용이 변화했는데, ‘절정기 스탈린주의’

(1946~1950)는 그 가장 극단적 유형이었다. 1950년대 초반 모택동 체제는 ‘절정기 스탈린주의’를 전범으로 삼아 건설되었다.165) 1953 년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 자체가 이 모델을 비판하고 포기했지만 중국은 이 모델에 집착했다. 그러다가 1956년 후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및 중소 분쟁의 영향 하에서 중국의 정책은 ‘절정기 스탈린주

의’를 한층 더 급진화시켰다. 이는 1956년 시작된 대약진운동

(1958~1960/1961)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다시 말해 “중국의 행정체 계가 스탈린주의 방법과는 진실로 다른 것이라 보는 것이 아니라, 스탈린주의의 특정 유형을 그대로 복사한 것”166)이고, 또한 이를 더 욱 급진화하는 것을 통해 소련 모델로부터 상당히 중요하게 이탈한 것이었다.167) 모택동 체제의 본질은 이처럼 ‘절정기 스탈린주의’ 모 델을 모방 및 급진화한 것이었고, (이 보고서의 주제인) 국가-사회 관계와 관련하여 말하면 결과적으로 소련체제보다 한층 더 ‘국가의 사회에 대한 극단 수준의 지배’를 시도했다. 모택동 체제는 1950년 대 말에 공고화되었고 그 체제의 핵심 요소는 모택동 사망 시기까지

165) ‘절정기 스탈린주의’ 모델의 특히 공장관리가 중국과 북한에 수용되는 과정과 내용 에 대해, 차문석, 반노동의 유토피아: 산업주의에 굴복한 20세기 사회주의 (서울:

박종철 출판사, 2001), pp. 147~208.

166) Deborah A. Kaple, Dream of a Red Factory: The Legacy of High Stalinism in China, p. 5.

167) Deborah A. Kaple, “Agents of Change: Soviet Advisers and High Stalinist Management in China, 1949~1960,” Journal of Cold War Studies, vol. 18, no. 1, (2016),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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