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상황을 둘러싼 정 책환경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탈북자 문제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내부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큰 쟁점으로 부상 하였고, 둘째, 주변국이 탈북자 문제를 정치·외교적으로 이용하기 시작 했다는 점이다.
가. 탈북자 문제의 쟁점화
북한은 과거 탈북을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간주하고 방임 내지 묵과했으며,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인지하지 않았 다. 그러나 김정은은 탈북자들이 북한 내부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는 한편 체제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결 과, 탈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힘쓰는 한편 탈북자의 재입북을 유도함으로써 김정은의 애민정책을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이 탈북자라는 체제 불안 요인을 단순히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쟁점화 함으로써 정치적 선전도구로 역이용 한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재입북 사례가 늘어나면서 북한이탈주민의 사 회부적응 문제가 대두되는 등 남한 사회를 적잖이 놀라게 하고 있다. 이 로 미루어 볼 때, 탈북자 인권문제가 부각될수록 북한은 더 많은 재입북 을 유도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들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집권 하에서는 탈북자 문제를 해결함에서 남한 및 주변국 들의 더욱 치밀하고 노련한 기획과 공조가 요구된다.
나. 정치·외교적 자산으로서의 탈북자 인권
탈북자 문제가 단순히 골칫거리가 아닌, 하나의 정치·외교적 자산으 로 활용될 수 있음을 간파한 북한은 탈북자 문제를 남한 및 주변국과의 협상테이블에서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기 위한 하나의 외교적 카드로 사 용하기 시작하였다. 12명의 탈북여성 종업원 문제를 이산가족 상봉제안 과 연계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주변국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탈북경로의 주 요 경유지인 중국과 태국은 남북한과의 관계에서 북한이탈주민 문제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주는 일종의 외교적 카드로 활용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근거해 관련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은 주변정세 및 남북
한 관계에 따라 탈북자 검거를 강화 또는 완화하며, 태국은 남한과의 정 치·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탈북자를 최종적으로 남한에 인계하는 역 할을 도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탈북자 문제해결의 최종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통감하고, 주변국 외교에 보다 힘써야 한다. 한국정부는 중국이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중단하고 남한행을 묵과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반대 급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한 동 남아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 의 잇따른 핵개발로 북한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여론이 악화되는 현 시점은 한국정부가 이 지역에서 외교력을 확장할 수 있는 최고의 적기라 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탈북자 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 해 아세안을 적극적 행위자로 끌어들이고, 범아시아 지역 안보 차원에서 의 전략적 제휴 관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Ⅴ. 결론 및 정책적 고려사항
한동호
북한인권 정책환경 분석
이상에서 북한인권 정책환경을 각각 국제·국내·북한이탈주민 관련 사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북한인권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 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국가들의 의견이 국제사회에 쏟아져 나오게 되 었음을 반영한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은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주 목하고, 필요하다면 인권침해 상황이 심각한 특정국가에 대해 특별절차 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국, 러시아, 쿠바 등 구사회주의권 국가 혹은 제3세계 국가들은 인권을 명분으로 특정국가의 국내 상황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북한인권 침해 가해자에 대한 감시 및 비판을 넘어, 국제형사법상 책임성 규명의 사안으로까지 그 논의를 확대하였다. 북한 의 6차 핵실험과 거듭되는 미사일 시험발사로 국제사회가 제재국면에 돌입하면서, 미국에는 국내법적 조치를 통해 북한인권 침해 가해자에 대 한 책임성 규명과 대북제재의 상호연계성을 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을 준비하고 통합을 대비해야 할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북한인권 에 대한 한반도 주변국의 상이한 입장은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한반도 주변 4개국 중 미국과 일본은 북한인권 문제해결을 위한 제재와 압박의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 각종 구금시설, 이 동의 자유 제한, 납북자 문제 등 북한인권 문제를 시민·정치적 권리의 시 각에서 접근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동아시아에 투영되는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 및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으 며, 북한인권 문제 역시 이와 동일한 정치·외교적 시각에서 접근한다. 이 처럼 북한인권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상황이 신냉전 구도로 형성되 어 가면서 한국의 정책적 선택도 점점 난해해지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표출된 대표적 사례가 해외체류 탈북자 관련 사안이다. 해외체류 탈북자 문제는 이미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 기부터 발생한 사안이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 더 정확하게는 2012년 중 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방침에 대한 반대 시위를 전후해 국제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실상 탈북자의 첫 경유지 혹은 정착지 기능을 하고 있는 중 국의 정책이 해외체류 탈북자의 인권 상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유엔 COI 보고서나 여러 국제NGO 보고서를 통해 알려진 바 있 다. 여전히 중국은 탈북자가 ‘경제적 이주민’ 혹은 ‘불법이민자’라는 입 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따라서 강제북송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 다. 한편 태국은 한국에 정착하기 직전 탈북경로의 마지막 경유지로 꼽히 고 있는데, 태국이 탈북자의 한국행을 허용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태국이 처한 정치·안보적 상황에 대한 이 해관계 속에서 한국정부에 암묵적인 협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북한인권 문제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국내외적 요인들이 복합 적으로 얽혀있는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북한인권 문제해결을 위해 어떠 한 정책방향을 지향하고 이를 위해 어떠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가?
2017년 9월 29일 국회에 보고된 통일부 제1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 (2017~2019)에 따르면 북한인권 증진 관련 7가지 추진과제가 제시되 었다. 7가지 추진과제는 각각 인도적 지원의 지속성 확보, 다자 및 양자 차원의 북한인권외교 추진, 북한인권재단 출범,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체계적 조사·기록·보관,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문제해결 노력, 북 한인권 개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 북한인권정책협의회 등 정책추 진 협업체계 구축으로 요약된다. 이를 바탕으로 현 정부가 고민해야 할 정책적 고려사항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의 필요성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개선논의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였고, 현재 미국 을 중심으로 한 압박기조와 중국 및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대화기조가 대립되는 실정이다. 대북제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국제사회 거의 대다 수의 국가가 동의하지만, 특정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인권 논의에서는 다 소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 또한 국내적으로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다소 공세적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새 정부 출범 이후
부터는 인도적 지원, 개발협력 등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교류·협력 및 남 북대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국제사회와의 공조 차원에서 통일부는 ‘다자 및 양자 차원의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인권외교 추진’을 주요 추진과제로 제시하였는데, 이는 2017년 7월 신베를린 선언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인권에 대해 ‘국제사회 와 함께 분명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현 재 국제사회 대다수의 국가가 북한인권 상황에 대해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3월의 유엔 인권이사회와 12월의 유엔 총회 북한 인권결의에 대해 한국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지지의사를 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개별국가 차원에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특별한 우려를 표시하고 결의를 통과시킨 국가들과도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 다. 또한, 유엔 차원에서 북한인권결의에 반대 혹은 기권한 국가들에 대 해서는 설득과 조정·협력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대북제재 국면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여러 유럽 국가들의 지원 속에 대북 인도적 지원 규모는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이 국제 적 추세이다.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한 사회 내의 취약계층을 보호 하고 지원한다는 인도주의의 정신은 지속되는 것이다. 신베를린 선언에 서 문 대통령은 ‘북한주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인도적인 협력을 확대’할 것을 언급했는데, 이는 인도적 지원을 위해 한국정부가 국제사회와 보다 긴밀히 협력해야 할 것을 시사한다.
둘째, 북한인권에 대한 국내적 지지 구축의 필요성이다. 2016년 북한 인권법이 국내에서 제정되긴 했지만, 북한인권 사안을 둘러싼 상이한 입 장들이 여전히 서로 충돌한다. 북한인권법에서 합의된 북한인권재단이 아직도 출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다. 북한인권재단은 북한인 권 실태조사 및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 북한인권 관련 사업 추진 등 여러 관련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재단 출범을 계기로 한국의 북한인권정책이 비로소 본격적으로 실행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