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정권 수립 직후부터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추진하였다. 북한에서는 1946년 중요 산업의 국유화가 시작되었고 1947년부터 계획경제가 실시되었 다. 그리고 1958년 농업의 집단화가 완성됨으로써 ‘생산관계의 사회주 의적 개조’가 완료되었다. 이후에는 구소련 및 중국 등을 모델로 삼아 중공업 중심의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구축된 북한의 계획경제체제는 다른 사회주의국가들 과 마찬가지로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계획 경제 시스템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생산 활동을 전개해야만 했다. 그 결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실과 시스템 사이의 괴리는 쌓여 갔다.
북한 당국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지배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개선 조치를 취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변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해 온 탓에 기업지배와 관련된 제도와 실태 사이에는 여전히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본 절에서는 최근까지 북한의 기업지배 실태와 제도가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에 대해서 고찰해 본다.
가. 북한 기업지배의 원형: 대안의 사업체계
북한은 1950~60년대에 걸쳐 경제행위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 권한 을 국가에 집중시키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를 구축하였다. 중앙계 획당국―내각(성(省), 위원회)―기업으로 이루어진 위계구조를 통해 국 가가 기업에 생산 명령을 내리면 기업이 수행함으로써 생산이 이루어 지는 시스템을 형성한 것이다. 국가의 사회주의적 개조와 중공업 발전
을 당면 과제로 설정한 북한은 그에 앞서 동일한 과제에 직면했던 바 있는 구소련과 중국의 경험을 모방하여 이와 같은 경제체제를 도입하 였다.
국가가 내리는 생산 명령에는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에 관한 사항만 들어 있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국가는 중앙집중적 자재공급체 계를 통해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현물로 공급해주어야 했으며,
‘유일적 자금공급체계’를 구축, 기업 운영에 필요한 자금 역시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하여야 했다. 또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 규모를 국가가 규정하고, 인력을 배정해 주어야 했기 때문에 노동시장은 존재할 필요 가 없었다. 기업은 이렇게 국가로부터 공급받는 원자재와 노동력을 활용하여 계획된 품목의 상품을 목표량만큼 생산하기만 하면 됐다.
국가계획에 따라 생산되는 모든 상품의 가격은 국가의 가격 결정 기관에 의해 단일하게 책정되었으며, 생산된 모든 상품은 사전적으로 국가계획에 의해 정해진 곳으로 공급되어야 했다. 즉, 중앙의 계획당국 에서 기업이 생산 활동을 전개하는 데에 필요한 생산요소를 조달하는 경로부터 생산한 상품의 판매처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지정해 주도록 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시스템하에서 기업은 국가의 명령을 실행에 옮기는 생산현장에 지나지 않았다.16)
16) 이론적으로는 계획수립 과정에 기업의 참여가 보장되어 있었지만, 실제 계획수립 과정에서는 상급 기관의 의지가 일방적으로 관철될 수밖에 없었다. 이석기, “북한 기업의 변화와 행위자 분석,” 이석 외, 북한 계획경제의 변화와 시장화 (서울:
통일연구원, 2009), p. 152.
Ⅰ
Ⅱ
Ⅲ
Ⅳ
Ⅴ
Ⅵ
Ⅶ
그림 Ⅱ-1 공장·기업의 관리·운영조직체계
자료: 통일부, 북한개요 (서울: 통일부, 1984), p. 84.
그렇다면 생산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업 내 의사결정은 어떻 게 이루어졌을까. 1950년대까지는 지배인이 기업의 생산 활동 전반을 관리·운영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지배인 유일관리제’
가 시행되었다.17) 그러나 지배인 유일관리제하에서 생산 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가 배제되고18) 지배인의 독단적 관리·운영이 용인되어 관료주의, 기관본위주의(departmentalism), 개인주의 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19) 그리고 1961년 ‘대안의 사업체계’가 도입됨 으로써 지배인을 대신해 당이 기업 내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었다.
‘대안의 사업체계’란 1961년 12월 김일성이 대안전기공장 현지지도 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제시한 기업 관리 방안으로, 당위원회에 의한 집체적 지도와 중앙집권적 자재공급체계 구축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 었다.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란 지배인 개인이 아니라, 당비서, 지배 인, 기사장, 근로단체 책임자, 기술자대표 및 생산핵심당원 등으로 구 성되는 당위원회가 집단적으로 기업의 생산 활동 전반을 관리·운영하 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관리·운영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당위원회에서 집단적 토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되었으며, 최종적인 책임 역시 당위원 회의 몫이었다. 북한의 기업 관리·운영 체계는 이처럼 당위원회가 최고 의사결정 기관으로서 정점에 있고, 재정, 노동, 자재공급, 후방공급 사업 등 행정·경제활동 전반은 지배인이 책임지고, 기사장은 생산 과정 전반을 총괄하며, 당비서가 노동자들의 정치조직생활 지도를 담당하는
17) ‘지배인 유일관리제’ 하에서도, 비록 이후에 비해서는 기업(지배인)의 경영상의 자율 성이 상대적으로 높긴 했지만, 지배인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한도 사회주의 사회였던 만큼,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당이 지도적 지위 를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당의 ‘지도’를 받도록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지배인은 기업소 당조직의 지도하에 놓여 있었다. 대외경제정책연 구원, 북한경제백서 (서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2), p. 335.
18) 당시 기업 내 노동자 조직으로 ‘생산자협의회’가 있었으나, 지배인에 대한 견제력을 지니지는 못했고, 지배인에게 건의나 제안을 하는 정도의 기능밖에 하지 못하 고 있었다. 위의 책, p. 335.
19) 이석기, 북한의 기업관리체계 및 기업행동양식 변화 연구 (서울: 산업연구원, 2003), p. 59.
Ⅰ
Ⅱ
Ⅲ
Ⅳ
Ⅴ
Ⅵ
Ⅶ
체제로 구축되었다(그림 Ⅱ-1 참조).20)
하지만 실제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주도한 것은 당비서였으며, 기업 의 모든 경영활동은 당의 통제 속에서 진행되었다.21)기업 관리에 관한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당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당비서가 갖 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배인은 기업 관리·운영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당비서와 협의해야 했으며, 기업 관리상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당비서 에게 보고해야 했다.22) 지배인 유일관리제와 비교할 때, ‘대안의 사업 체계’하에서 지배인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고, 기업 내 의사결 정은 지배인을 대신해 당비서가 주도하게 된 것이다.
한편 ‘대안의 사업체계’를 통해 중앙집권적 자재공급체계가 구축되 었다. 계획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재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개별 기업이 성·관리국에 서 발급한 지시서에 의거해 다른 기업과 계약을 맺어 필요한 자재를 확보하던 체계를 폐지하고, 상급기관인 성·관리국에서 책임지고 기업 에 자재를 공급하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23)
20) 위의 책, p. 64.
21) 김연철,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 (서울: 역사비평사, 2001), p. 276; 김영희,
“7·1 조치 전후 북한 공장의 관리운영실태,” 산은조사월보, 633호 (한국산업은 행, 2008), p. 114; 권영경, “북한의 국유기업개혁 내용과 성공의 가능성 탐색: 중국 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동북아경제연구, 16권 2호 (한국동북아경제학회, 2004), p. 111.
22) 박형중, 북한의 경제관리체계 (서울: 해남, 2002), pp. 205~206.
23) 김일성은 이와 관련해 “공장, 기업소들에서 요구되는 모든 자재를 성 자재상사들이 책임지고 공급하여 주도록 하여 공장, 기업소 지도일꾼들이 그 전처럼 자재 때문에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일이 없이 생산지도에 모든 힘을 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김일성, “국가재산을 애호절약하며 수산업을 더욱 발전시 킬 데 대하여,” 사회주의 경제관리문제에 대하여, 제3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 사, 1970), p. 558(위의 책, p. 81에서 재인용).
나. 계획경제의 붕괴와 기업지배의 변화:
기업 의사결정 권한의 분권화 시도
이러한 북한의 기업지배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런데 이는 비단 북한만 겪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주의 국가 대부분이 동일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것은 계획경제 시스템이 갖고 있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한계에 기인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와 기업 사이에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현물계 획 달성이 중요한 기업은 계획 편성 과정에서 생산능력은 축소해서 보고하고, 자재·설비 및 노동력은 과다하게 신청할 유인을 지니고 있었 다. 효율성보다는 양적 생산이 기업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보다 중시되 는 상황, 즉 비용을 줄이는 문제보다 주어진 목표 생산량을 채우는 일이 중요한 상황에서 기업이 이러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었다. 계획당국도 기업들이 이러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은 알았을 것이 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계획경제가 원활하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생산물을 수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적정량만큼 공급해 주어야 한다. 하지 만 기업들은 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기업들은 기한 내에 생산계획을 달성하는 데에 관심을 두었지, 다른 기업이 생산에 차질을 빚는가 여부 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협동생산규율의 위반’에 대해 김일성이 수차례 비판을 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고,24) 이는 기업들 이 자재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셋째,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 문제 또한 기업의 효율
24) 양문수, 북한경제의 구조: 경제개발과 침체의 메커니즘(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p.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