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북한 기업지배 시스템의 개혁 수준:
1980년대 초중반 중국 상황과 유사
지금까지 북한과 중국의 기업지배 시스템이 어떠한 변화 과정을 거 쳐 왔는가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앞서 2절에서도 언급했듯이, 북한 기업지배의 성격을 구명함에 있어서 중국을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양국 정치·경제체제와 기업지배 시스템이 유사한 변화 양상을 보여 왔으며, 앞으로도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을 참고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변화 경로에 비추어 볼 때, 시장화 이후 북한 기업지배 시스템의 개혁 수준은 어떠한 단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중국과의 비교를 통해 북한 기업지배 시스템의 개혁 수준을 규정할 경우, 핵심은 북한이 1980년대 초중반 중국의 방권양리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중국이 1980년대 후반 청부경영책임제를 실시한 단계와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 평가하는 일일 것이다. 북한이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기
99) 이러한 상황은 주로 이사회에서 국가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이 없는 경우에 발생하였다.
100) 이근·한동훈·정영록, 중국의 기업 산업 경제, p. 190.
이전과 유사한 단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렇다 고 1990년대 초반 중국이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한 단계와 동일 한 수준으로까지 진일보했다고 평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선행연구를 보면,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것 같다. 우선 북한이 중국의 1980년대 초중반 방권양리 수준에서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김석진은 북한의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국영기 업 개혁 방향이 중국 개혁개방 초기 개혁 기조인 방권양리와 비슷하다 고 평가하면서, 이러한 방식의 개혁은 소유제도는 그대로 두고 계획의 범위를 축소하고 기업의 자율권을 확대하며 인센티브를 제고하는 등 관리방법만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체제 내 개혁’에 속하는데, 사회주 의국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 다.101)
민준규·정승호의 연구도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에 제시된 기업지배 개혁 방안이 중국의 1980년대 후반 개혁 내용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 를 내리고 있다.102) 이 연구는 북한의 분배제도, 기업의사결정권, 소유 제도, 가격자유화 등 모든 부문의 개혁 수준이 중국의 1980년대 후반 개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달리 북한의 기업지배 개혁 수준이 중국의 1980년대 후반 수준 에 도달해 있다고 평가하는 연구도 있다. 권영경은 7·1 조치는 방권양 리 단계의 개혁 조치와 거의 유사했으며, 김정은 정권의 우리식 경제관 리방법은 중국이 청부경영책임제를 실시한 단계와 유사하다고 평가하 고 있다.103) 이 연구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회주
101) 김석진, “북한의 ‘경제관리방법’ 개혁 동향과 전망,” 통일경제, 2013 겨울호 (현 대경제연구원, 2013), pp. 21~22.
102) 민준규·정승호, “최근 북한의 경제정책 추진현황 및 평가: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중심으로,” pp. 9~11.
103) 권영경, “북한은 제2의 중국이 될 수 있나? - 김정은의 경제정책과 ‘80년대 중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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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업책임관리제 하에서 공장·기업소들이 상대적 경영자율권을 부여 받은 대신, 경영을 통해 얻는 수익을 국가와 기업이 7:3으로 분할 배분 한다는 점 등에 주목하고 있다.
박형중 역시 북한의 경제정책이 1980년대 후반 중국의 그것과 유사 하다고 평가한다.104) 사회주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첫째 단계인 [중앙집 권적 계획경제 + 생산수단의 국유 + 공산당 통치]로부터 둘째 단계인 [분권화된 계획경제 + 생산수단의 국유 + 공산당 통치], 셋째 단계인 [계획지령의 폐기 + 생산수단의 국유 + 공산당 통치]를 거쳐, 넷째 단계인 [생산수단의 민영화 + 공산당 통치]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데, 김정은 시대의 북한과 1980년대 후반 중국이 모두 셋째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단계의 핵심 특징은 국유기업의 경영이 계획 지령이 아니라 상업적 원칙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러 한 원칙이 북한에서는 5. 30 조치를 통해 선포되었다고 본다.
본 장의 검토 결과를 토대로 볼 때, 이 가운데 전자의 평가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즉 북한의 기업지배 시스템의 개혁 수준이 1980 년대 후반 중국의 수준에 미치지는 못한 채, 여전히 중국의 1980년대 초중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 경영의 자율성 측면에서 보자.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도입 을 통해 7·1 조치에 비해서 기업 경영의 자율성이 보다 강화된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렇지만 중국이 1984년부터 공장장 책임제를 도입하 여 당의 역할을 축소시킨 데 이어 청부경영책임제를 도입, 생산수단의 공유제는 유지한 상태에서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하려 한 것 과 같은 보다 진전된 형태의 경영 자율권 부여 방안이 북한에서 모색되
개혁·개방과의 비교,” p. 41.
104) 박형중 외, 한반도 중장기 정세 변동 및 정책 도전 관련 요인의 식별(2015~2030)(서 울: 통일연구원, 2015), pp. 165~172.
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앞서 보았듯이, 최근 제시된 사회주의기업책임 관리제 하에서 지배인 책임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 고는 있지만, 아직 불분명하며 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대안의 사업체계 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도 아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기업 경영의 자율성이 강화되는 가운데 경영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하는 현상도 강화되었다. 청부경영책임제 대상 기업은 약정 이윤 납부를, 임대경영책임제 적용 기업은 임대료 납부를 완수하지 못하면 기업이 책임져야 했다. 특히 임대경영책임제 적용 기업 임차경영자는 담보로 개인재산을 제공하고, 두 명 이상의 보증인을 확보해야 했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로는 연성예산제약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증진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중요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북한에서는 지배인이 경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둘째, 기업 소유권 측면에서도 북한의 개혁은 중국의 1980년대 후반 수준만큼의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도 국유기업이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되는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라는 점에서, 국유기업을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상황은 현재의 북한이나 1980년대 후반의 중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기업 소유권과 관련해 보다 주목할 부분은 비국유기업이 공식화되어 있느냐 여부이다. 중국에서는 1980 년대 중반 이후 대표적 비국유기업인 향진기업이 빠르게 증가했다.
게다가 중국은 개혁개방 초기 고용인원 7명 이하의 자영업 및 소규모 사기업을 허용한 데에 이어, 1988년 이후에는 고용인원 8명 이상인
‘사영기업’도 합법화하였다. 이러한 비국유기업의 확산은 국유기업을 경쟁 환경에 노출시키고 국유기업의 독점 구조를 와해시킴으로써, 국유기업이 경영을 효율화하고 기업지배를 개선하도록 하는 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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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조하였다.
북한에서도 전술한 바와 같이, ‘돈주’를 중심으로 사적 기업 활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이는 주로 사적 자본을 국유기업에 투자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증가하는 현실을 북한 당국이 부분적으로 수용,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에서는 지방공장에 한해서는 개인투자를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05)
이처럼 북한 당국이 사영기업을 허용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사적 기 업 활동이 전개되고는 있으나, 이것과 1980년대 후반 중국에서의 비국 유기업 활동이 갖는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북한에서는 제도적으로 사적 경제활동에 대한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탓에,
‘돈주’들이 사업 규모를 확대해 가기가 쉽지 않다. 국가가 불법적 활동 이라는 굴레를 씌워, 경제활동에 타격을 가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기업은 영세한 형태로 운영되거나 국영기업의 외피를 쓴 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하다보니, 북한의 사적 기업 활동은, 그것이 중국에서 국유기업 과의 경쟁을 촉발하고 국유기업의 독점 구조를 와해시켜, 국유기업의 경영 효율화 및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던 것과 달리, 시설 사용에 대한 대가 지불 등을 통해 국유기업이 액상계획 목표를 충족하는 것을 돕는 정도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즉 북한에서는 사적 기업 활동 이 국유기업의 효율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05) 권영경, “북한은 제2의 중국이 될 수 있나? - 김정은의 경제정책과 ‘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의 비교,” p. 41.
나. 북한 당국의 개혁 의지: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 결여
지금까지 기업지배 시스템의 개혁 수준이라는 측면에서 북한의 현재 상황과 1980년대 중국 상황을 비교해 보았다. 이번에는 정부의 개혁 의지라는 측면에서 둘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정부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개혁을 추진하느냐가 기업지배 개혁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의 경우에는 정부가 기업지배의 개혁에 대해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 노선으로 들어선 이후, 경제책임제, 이윤유보제, 노동계약제, 이개세제, 공장장 책임제, 청부경영책임제, 주식제 전환 등의 정책을 마련하면서, 계획의 비중을 줄이고 기업의 자율성을 강화하며, 인센티브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을 중국정부가 지속적으로, 또 주도적으로 전개해 왔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새로이 도입한 개혁 방안이 지닌 문제점과 한계가 드러나면 이를 보완하고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는 작업이 주기적 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다.
반면 북한의 경우에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주도적으로 기업지배 개 혁을 이끌어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7·1 조치도 1990년대 나타난 변화 를 사후적으로 승인한 측면이 많았으며,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역시 국가가 뚜렷한 지향점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기보다는 기업지배에서 나타난 현실과 공식 제도 사이의 간극을 어느 정도 메워주는 데에 초점 이 맞춰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정부가 명확한 지향점과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보니 기업지배 개혁 작업도 일관성 있게 이어지지 못했다. 7·1 조치 이후 이루어지던 기업지배의 개혁 작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돌연 중단되었으며, 2010년대 들어 와 다시 진전되고 있는 듯하지만, 북한 당국이 개혁의 속도를 높이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