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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위 판시 내용을 지지하는 견해들에

학설들 중에는 대법원의 위 판시 내용을 지지하는 견해들이 존재함 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각 견해들64)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검 토를 하였다.

63) 같은 취지로는, 이근관, 위 논문(각주 24), 159쪽; 박배근, 위 논문(각주 24), 53쪽.

64) 여기서는 2009다22549 판결이 나온 후 발표된 논문들 중 필자의 검색 결과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는 견해들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물론 오타 오사무, “일제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 미완의 청산과 과제,” 한일협정 50년사의 재조명 V, 역사공간 (2016년), 77쪽, 78쪽 등과 같이 여기에서 소개하는 학설들 외에도 위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그와 같은 취지의 입장을 취하는 논문들도 존재하나, 대법원 판결을 직접적으로 다 루고 있지는 아니하기에 이 글에서는 제외하였다.

가. 김창록 교수의“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권리(2015) - 이하‘2015논문’으로 부른다”- 논문65)에서 제기된 견해에 대하여

(1) 주장의 내용

먼저,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8개 요강 ⑤항은 불법적 강제 동원으로 인한 배상청구권이 아닌 적법한 징용을 전제로 한 청구권만을 포함하는 개념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김창록 교수는 대법원의 위 판시를 지지하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김 교수는 조약해석의 관점에서“⒜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후 과거청산과 관련하여 다른 국가들과 체결한 조약들과는 달리, 청구권협정에는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과 같은‘권리’의 원인에 대해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비엔나조약의 해석원칙인‘문언의 통상 적 의미’만으로는‘권리’의 의미나 범위를 해결할 수 없다, ⒝ 오히려

‘추후의 관행’의 측면에서 보면, 청구권협정은 대일평화조약에 따라 한반도가 일본으로부터 분리·분할됨으로써 발생한 재정상 및 민사상의 권리 문제만을 해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민관공동위원회의 공식의 견 표명내용 중 강제동원 관련 부분66)’의 경우, 그 문구 자체에서 한국 정부가‘강제동원’을 원인으로 하는 권리를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 되었다고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65) 김창록 교수의 각주 23) 논문이다. 한편 문헌 검색 결과 김 교수는 2015논문 외에 이미 각주 61)에서 언급한 논문인 ‘한일협정과 한국인 개인의 권리, 법학연구 43권 1 호, 부산대학교 (2002)’ 등을 포함하여 청구권협정에 관한 연구결과를 다수 발표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2015논문이 김 교수가 2009다22549 판결 후 청구권협정 과 관련하여 작성한 가장 최신의 논문으로 확인된다.

66) 이 글 36쪽 참조.

무엇보다도‘징용’과‘강제동원’이 엄격하게 구별되는 개념임에도 이 를 구분하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 그 내용만으로는 대법원의 판시내용 을 뒤집을 논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67)

(2) 비판

(가) 위 ⒞의‘적법한 징용과 불법적 강제동원의 구별’ 관련

우선 김 교수 논거 중 위 ⒞와 관련하여, 필자는 이미 김 교수의‘적법한 징용과 불법적 강제동원 구별(구별설)’이 얼마나 문제 의 소지가 많은 견해인지에 관하여 앞서 비판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더 이상의 비판은 하지 않겠다. 결론만 적는다면, 위와 같은 구별설을 전제 로 하는 김 교수의 이 부분 논리를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전 제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민관공동위원회의 공식의견 표명 내용 중 강제동원 관련 부분’의 내용이야말로, 그 해석상 김 교수의

‘우려’대로 식민지배에 근거한 강제동원 한국인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보상)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대상임을 의문의 여지없이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유력한 증거로 봄이 타당하다.68) 해당 부분을 아무리 읽어보더라도 그 내용은“청구권협정을 통하여 일본으로부터 받 은 무상 3억 불에‘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이 포함 되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67) 김창록, 2015논문, 804쪽 내지 806쪽, 811쪽 내지 814쪽 참조.

68) 같은 취지로는, 이근관, 위 논문(각주 24), 161쪽.

(나) 위 ⒜의‘권리의 원인’ 관련

다음으로 위 ⒜와 관련하여, 물론 김 교수가 지적하고 있 는 바와 같이 청구권협정 어디에도‘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것은 사실이고, 앞서 소개한 청구권협정 전문에도‘대한민 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간의 청 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라고만 규정하고 있어 협

정 자체만으로는‘권리’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은 맞다.

즉, 김 교수가 소개하고 있듯이 예를 들어 일본국과 중화민국간의 평화 조약(1952. 4. 28.) 전문에는‘양자 사이의 전쟁상태의 존재의 결과로서 발생한 문제들의 해결’이라고 기재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69)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설령 김 교수 지적과 같이 청구권협정에 권리의 원인이 명 백히 기재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이것으로 인해 청구권협정 문구의 의 미가 애매하거나 모호해지지는 않는다. 권리의 원인이 조약에 반드시 기 재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합의의사록 제2조 (a)에서“재산, 권리,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 다.”고 친절하게 설명하기까지 하고 있는 이상,70) 그 이상의 보충적 해 석 수단이 필요하다는 김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 위 ⒝의‘추후의 관행’ 관련

69) 김창록, 2015논문, 804쪽.

70) 법무부, 법무자료 제238집, 49쪽.

1) ‘추후의 관행’ 주장의 문제점

마지막으로 위 ⒝와 관련하여 김 교수는‘추후의 관 행’이‘문언의 통상적 의미’와 함께 조약 해석의 1차적 기준이라는 전 제 아래,‘양국은 청구권협정 체결 후 현재까지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권리가 영토의 분리·분할에서 오는 재정상 및 민사상 청구권 해결에 국 한한 것이라는 점에 관하여 견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한 다.71)

이에 관해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비록 비엔나협약에서‘추후의 관행’을 조약해석에 있어서‘참작되어야 할’요소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추후의 관행이 어떤 조약 해석에 있어서나 반드시 참작되어야 할 기준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이 글에서 이미 밝혔지만, 비엔나협약의 태도나 이에 관한 ICJ 법리를 종합할 때 조약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약의 문구 그 자체 이고, 거기에 객관적으로 나타난 문구의 의미나 조약당사자의 의도에 비 추어 애매함이나 모호함 없이 해결이 되면 그것으로 족하며, 추후의 관 행이나 체결 당시 사정 등의 보충 수단을 추가로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조약 문언의 통상적·객관적 의미상 애매함이나 모 호함이 없이 명백하게 해석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후의 관행을 반드시 고려하여야 한다면, 조약 해석과 관련한 조약 당사자들의 끊임없 는 이의제기 가능성을 열어주는 결과가 되어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필자의 견해와 관련하여 “통상적인 조약해석의 규칙에

71) 김창록, 2015논문, 805쪽, 806쪽.

의하면, 조약 문면상 의미가 명확하면 다른 자료 - 예를 들어 준비자료 (travaux preparatoires) 등 - 를 검토할 필요 없이 문면의 통상적인 의미 를 좇으면 된다.”는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72)

결론적으로,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문언의 통상적·객관적 의미만 으로도 충분히 해석이 가능한 청구권협정과 관련하여서는‘추후의 관 행’을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73).

2) 청구권협정 후‘추후의 관행’의 존재 여부

위 1)에서 언급한 바에 따를 때 김 교수의 위 ⒝와 관 련한 주장은 그 자체로 검토의 필요가 없는 것이 될 것이나, 아래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나누어, 설령‘추후의 관행’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 도 현재 그와 같은‘관행’이 존재하지 아니함을 밝히고자 한다.

㈀ 우리나라

김 교수는 이에 관하여 우리나라의‘추후의 관행’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74) 즉, ㉠ 청구권협정 체결 직후의 시점에서 우리나라 정부가“우리가 일본국에 요구하는 청구권을 국제법에 적용해 서 보면 영토의 분리 분할에서 오는 재정상 및 민사상 청구권 해결 문제 인 것이다.”라고 밝힌 내용(우리나라 정부가 1965년 작성한‘한일회담

72) 이근관, 위 논문(각주 24), 156쪽. 이 논문 156쪽에서는 “UN 국제법위원회(ILC)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T]he starting point of interpretation is the elucidation of the meaning of the text.'라고 명언하였다.”라고 기재하고 있다.

73) 같은 취지로는, 이근관, 위 논문(각주 24), 159쪽, 160쪽.

74) 김창록, 2015논문, 805쪽 내지 808쪽.

백서 40쪽, 41쪽), ㉡ 1976년“대일배상금의 청구 문제는 한일회담 초기 부터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오로지 한일간에는 대일평화조약에서 명시된 바에 의하여 영토분리에서 오는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만이 남 아 있었던 것이다.”라고 밝힌 내용(경제기획원, 청구권자금백서, 1976년, 10쪽), ㉢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에서 앞서 정리한“공식의견 표명내 용”과 같이75)“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대일평화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밝힌 내용을 자신의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추후의 관행에 관한 김 교수 주장의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반박할 수 있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 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76) 즉, ㉠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조약 및 협 정해설에서 “... 우리 측이 최초에 제시한 바 있는 8개 요강에서 요구한 것은 모두 소멸케 되는바, 따라서 ... 피징용자의 미수금 및 보상금 ... 각 종 청구 등이 모두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멸케 되는 것이다.”라 고 밝힌 내용, ㉡ 앞서 정리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정부가 청구권협정의 후속적 국내조치로서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과 대일 민간청 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여 시행하였고, 이 안에 강제징용 사망 피해자가 포함되어 있는 사실, ㉢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05년 민관공 동위원회의 공식의견 표명내용 중 강제동원 관련 부분에서“일본으로부 터 받은 무상 3억 불에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힌 내용, ㉣ 2009년 8 월 14일 외교통상부가 보도참고자료를 통해“강제동원 피해자의 공탁금

75) 이 글 36쪽 참조.

76) 이하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조약 및 협정해설, 이근관, 위 논문(각주 24), 160쪽 내 지 162쪽 등을 참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