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민중의 집에 머물렀다. 이는 성산동으로 이전한 후에도 계속된다. 대학 동아리와 총학생회, 미혼모 단체, 요양보 호사협회, 각 지역의 대안 학교, 청소년 독서 모임 등 많은 단체가 민중 의 집을 찾았다. 2014년에는 11월 말 기준으로 약 15개 단체가 숙박을 하였는데 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숙박 횟수가 증가한 것이 눈 에 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넘어 전략적으로 공간을 나누고 공유한 결과, 민중의 집은 다양한 필요에 맞 게 전유되었다. 이를 통해 민중의 집은 결과적으로 이질적인 (heterogeneous) 행위와 행위자들,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복수의 공 간(김동완, 2014)이 되었다. 이는 곧 Lefebvre가 말한 차이의 공간이기도 하다.
제3절 효과
그렇다면 민중의 집의 이러한 ‘거점 공간의 경계 허물기와 공유적 전유 를 통한 탈영역화 전략’은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가?
더 나아가 민중의 집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경험을 제공한다. 바로 ‘타자’를 인식하고 조우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는 공공성의 회복과 관련하여 Arendt가 주장했던 핵심이기도 하다. 민중의 집에서 타자에 대한 지각은 공간을 예약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게시된 일 정표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내가 이용하고 싶은 시간에 해당 장소가 비어있는지 확인하다보면 일정표에 빽빽하게 적혀 있는 다른 모 임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우리 모임 앞·뒤로는 어떤 모임들이 있는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투명가방끈·마레연·소행 주·청년연대은행 등과 같이 낯선 이름의 단체들은 민중의 집에서 과연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궁금증은 곧 관심의 시작이 다. 타자와의 이러한 간접적인 조우는 민중의 집 내부로 와서도 계속 이 어진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게시된 다양한 홍보물들이다.
인근의 전통 시장과 시장 내 상점들을 소개한 그림 지도, 협동조합 홍보 포스터, 외부 기관에서 열리는 프로그램 안내문, 지역 및 사회 현안에 대 한 공지문 등은 세상에 대한 다양한, 때로는 낯선 관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자와의 직접적인 조우이다. 민중의 집 에서 조우하게 되는 대상은 대부분 사전에 이용을 예약한 단체나 단체의 구성원들이다.47) 민중의 집은 같은 시간에 거실과 큰 방에서 서로 다른 모임이 열리는 경우가 많다. 민중의 집 내부에 별도의 알림 게시판을 운 영하지는 않지만 직접적인 인사나 교류가 없더라도 출입문을 드나들고 화장실과 부엌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의 활동에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완벽하게 독립적인 활동을 하기는 어렵다는 공간상의 제약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낳는 것이다.
47) 물론 우연한 만남도 있다. 연구자 역시 인터뷰를 위해 민중의 집을 방문했 다가 예쁘게 한복을 입고 명절 인사를 온 어린이집 아이들과 보호 중인 길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협동조합 활동가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성미산 마을의 공동 육아와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에 대해 알게 되었 다.
예를 들면 거실에서는 반려견을 동반하고 애견 훈련 모임을 갖는데, 큰 방에서는 비정규직 노조 모임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죠. 대놓고 물어 보지는 않지만 지나가면서 저긴 뭐하는 모임이기에 개들이 많은지 궁금 해 하죠. 물론 대충 짐작들은 하겠지만.
(현 사무국장 A)
이러한 마주침은 신기함과 놀라움을 넘어서 상대방의 활동에 대한 적극 적인 지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민중의 집에서 자주 회의와 모임 을 가진 협동조합은 조합원 수를 많이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타자와의 마주침이 이처럼 언제나 긍정적인 관심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연 구자가 인터뷰했던 이용자들 중에는 별다른 느낌 없이 ‘여기에 우리 말 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와 같은 단순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 었다. 그리고 특정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나 불쾌감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질감과 불쾌감 역시 ‘타자와 함께 있음’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김동완, 2014). 차이를 포용하고 자유로운 존재자로 서의 타자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리얼하게, 있 는 그대로 만나고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인터뷰들은 이를 통해 민중의 집이 공공성 실현에 기여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중의 집은 다양한 세대가 이용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공 간이에요.
(공간 이용자 G)
민중의 집의 공간적 장점은 여러 단체와 사람이 오간다는 점, 다양한 분 위기와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는 점인 것 같네요. 협동조합 조합원, 성소 수자, 페미니스트, 공부방에 다니는 초등학생 아이들, 노동조합, 지역의 상인들... 한데 어울리기는 정말 어려운 그룹들이에요. 그런데 이런 사람 들이 공간을 함께 쓴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죠.
(공간 이용자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