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Radical Space

Dalam dokumen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Halaman 47-50)

2. 탈영역화 전략과 사회운동

2.1. Radical Space

Kohn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유럽 각국에 번성했던 저항의 장소들 을 협동조합과 민중회관, 노동회의소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Kohn은 이 들 공간을 ‘급진 민주주의 공간’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급진적’

이라는 용어는 과격하고 편향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급진적 (radical)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뿌리’를 뜻하는 라틴어 ‘radicalis’임을 감 안한다면(장문석, 2013), 급진 민주주의 공간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향 하는 공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급진 공간은 “권력 없는 자들 (subaltern)이 주체화되는 공간”이며(장문석 역, 2013: 282), “정치권력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변형하려는 목표를 공유하는 다양한 운동이 벌어 지는 일상 공간”이다(장문석 역, 2013: 21).

연구자가 주목한 것은 이들 급진 공간의 공간 활용 전략이다. 특히 민 중회관35)은 협동조합, 상조회, 노동자 조직 등에 ‘공간을 제공할 목적으 로’ 건립되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민중회관은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니 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다. 즉, 민중회관은 경제적 지위나 정치적, 종교적 소속 여부에 따라 참여를 제 한하지 않았다(장문석 역, 2013). 협동조합과 노동회의소 역시 본래의 활 동 외에 다양한 노동자와 사회주의 활동가들에게 모임 공간을 제공했다.

외부와의 경계를 허물고 거점 공간을 공유하는 것, 이는 바로 탈영역화 의 핵심 기제를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모임 규모가 조금만 커도 회원을 모두 수용할 만한 공간을 보유하지 못했다. (중략) 이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 활 동가들은 자율적인 모임 공간을 확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초의 민중 회관들은 현물과 노동 기부에 의지하여 소박하게 건립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규모와 상징적 외관을 더하게 되었다. 지지자들에게 민중 회관은 민중을 동원할 수 있는 최초의 자율적인 터전으로서 거대한 상 징적․실천적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장문석 역, 2013: 161, 강조는 인용자)

그렇다면 이들 급진 공간의 공간 전략, 즉 공간의 공유를 통한 탈영역 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발휘했는가? 첫째, 급진 공간은 ‘만남의 터 전’이었다. 급진 공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효과는 흩어져 있는 하위 계급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었다(장문석 역, 2013). 그리고 다 양한 타자를 경험하고 지각하게 함으로써(김동완, 2014) 결과적으로 이 념과 정치의식의 소통을 촉진할 수 있었다.

둘째, 급진 공간은 ‘개인적, 사회적 정체성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김동 완(2014)에 따르면 타인과의 만남은 일차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자각하

35) 『Radical Space』에서 장문석은 ‘민중회관’으로 번역하였는데, 정경섭은 이 를 ‘민중의 집’으로 번역하였다.

게 하는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하다. 더 나아 가 이들 공유된 공간은 그에 상응하는 실천과 행위가 무엇인지를 규정해 줌으로써 구성원 간에 서로 비슷한 사회적 정체성이 형성되도록 하였다 (장문석 역, 2013).

셋째, 급진 공간은 ‘연대와 네트워크를 촉진’하였다. 당시 좌파 담론에는 상당히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이 나란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동맹체를 하나로 접속시킨 것은 공유된 언어가 아니라 바로 이들 공유된 사회 공간이었다(장문석 역, 2013). 공간이 다양한 집단 간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민중회관 조직은 리좀적(rhizomatic) 구조,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오되 다양한 연결망을 통해 접속된 다양한 사회 구성체들로 이루어진 구조와 같다. 이러한 구조에는 중심도, 위계도 없다.

(장문석 역, 2013: 151-2, 강조는 인용자)

Kohn은 이처럼 이데올로기적으로 상이한 조직들이 독자성을 유지하며 한 공간 안에 공존했다는 점에서 민중회관을 Foucault의 헤테로토피아 (heterotopia)36) 논의와 연결시켰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Kohn은 “기성의 경제적 또는 사회적 위계를 역전시키고 그에 저항하는 현실적인 대항 터 전”이며 “지배적인 사회 인습에 도전함으로써 규범에 맞서는 중요한 투 쟁 장소”라는 점에서 민중회관을 ‘저항의 헤테로토피아’로 개념화했다(장 문석 역, 2013: 154-5).

연구자는 민중의 집과 청년허브의 공간 전략을 과거 이들 급진 공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물론 유럽의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에

36) Foucault는 헤테로토피아에 대해 하나의 실재 장소에 여러 공간들, 그 자체 로 양립 불가능한 여러 현장들을 병치시킨다고 설명했다(Foucault, 1986; 이 무용 외 역, 1997에서 재인용). 즉, 헤테로토피아는 서로 다른 모순적 경험들 이 공존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는 역사적․시대적 배경과 이념적 맥락이 상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민중의 집과 청년허브가 지향하는 공간 전략과 그 효과는 과거 급 진 공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Dalam dokumen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Halaman 4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