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마스 만의 시각예술관
2.2. 토마스 만의 시각예술관: 「 화가와 작가 」
이와 같이 음악과 시각예술을 대립적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예술 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토마스 만의 시각예술관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은 그가 직접 자신의 시각예술 취향에 대해 밝힌「화가와 작가 Maler und Dichter」라 할 것이다. 이 글은 1913년 12월 25일 베를리너 타게 블라트 Berliner Tageblatt의 크리스마스 판을 위해 토마스 만이 이 신 문의 편집자 프리츠 슈탈 Fritz Stahl과 가진 대담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 다.54) 그는 “귀하께서는 작품 창작을 하는데 어떤 화가와 연관성을 갖고 있 다고 생각하십니까? Mit welchem Maler finden Sie sich in Ihrem Schaffen verbunden?”55) 라는 질문에 대해 우선 음악과 비교하여 시각 예술에 대해 갖는 자신의 차별적인 입장을 분명히 밝힌 후 시각예술을 장르 별로 구분하여 작가와 작품을 들어가며 비교적 구체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53) 「Lübeck als geistige Lebensform」(1926) GW XI 389f. 인용문 내 강조는 본
논문 필자.
54) 「Maler und Dichter」(1913) GW XI 740.
55) Peter Pütz 1989. S. 279. 재인용. 본문 내 강조는 본 논문 필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최신 회화 앞에 마치 새로운 대문 앞에 있는 황소처럼 서있다 [...] ich vor unserer neuesten Malerei stehe wie der Ochs vorm neuen Tor”고 밝히며 이와 같은 그 의 무관심이 현대 회화에 대한 “이론적 무지 meine theoretische Unbelehrtheit” 56)에 기인하는 것으로 고백함으로써, 그가 근본적으로 시각 예술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확인한다.
그러나 전체 8문장, 13 줄에 불과한 이 텍스트를 예술 문화사, 미술사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현대 회화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토마스 만의 발언과는 달리 그가 이 분야에 적지 않은 식견을 가졌으며, 나아가 특정 작품과 일부 시각예술가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취향 또한 가졌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단락에서는「화가와 작가」를 주로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여 이 글 속에 내포된 토마스 만의 시각예술관이 갖는 상세한 내용을 구체적으 로 드러내도록 하겠다.
a. ‘청각형 인간’으로서 토마스 만
나는 현대회화, 그러니까, 회화 전반에 대해서는 도무지 별 관계가 없다는 빈곤 의 증명서를 내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청각형 인간’으로서 음악과 언어로 교육되었고 예술의 구성에 대한 제 생각은 음악적인 데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더 자세히 밝히자면: 그것은 – 이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도 라고 말할 수 밖 에 없는데 - 리햐르트 바그너의 작품으로, 이것은 이 작품에 대한 니체의 열정 적-회의적인 비판과 함께 나에게 결정적인 시기에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기본 개념을 형성했습니다.
Ich muß mir das Armutszeugnis ausstellen, daß ich zur modernen Malerei, ja, zur Malerei überhaupt wenig Verhältnis habe. Ich bin ein ›Ohrenmensch, bin durch Musik und Sprache gebildet, und meine Vorstellung von künstlerischer Komposition besonders ist musikalischer Herkunft. Genauer: es war - ich muß wohl sagen:
leider - das Werk Richard Wagners, das mir zusammen mit Nietzsche’s leidenschaftlich-skeptischer Kritik dieses Werkes, alle meine Grundbegriffe von Kunst und Küntlertum in entscheidenden Jahren einprägte.57)
56) 「Maler und Dichter」(1913) GW XI 740.
토마스 만은 이 글을 시작하면서 우선 자신은 동시대의 회화를 비롯하여 회화 전반에는 별 관계가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는 특히 시각예술 중 에서도 회화를 지목하여 이에 대해서는 별 흥미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 다. 그러나 만은 화가를 비롯한 시각예술가들을 생각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는 이들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1471-1528)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1745-1564),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 라파엘로 산치오 Raffaello Sanzio(1482-1520)와 같은 역사적인 시각예술의 대가들을 정신사적 스승으로 존경하였으며 창작의 모 범으로서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에 일치하는 의미를 선택적으로 추출하여 문학 작품 속에 수용하였다. 또한 그는 동시대의 시각예술가들, 특히 자신이 문학담당 편집자로 일했던 짐플리치씨무스 Simplicissimus 의 삽화 화가들과 공적, 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작업하였으며,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 막스 리버만 Max Liebermann (1847-1935), 막스 오펜하이머 Max Oppenheimer(1885-1954), 오스카 코코슈카 Oskar Kokoschka(1886-1980) 등과도 평생 친밀한 관계를 가졌다. 특 히 토마스 만은 이 화가들을 위해서 책 발간 서문, 전시회 축사 등, 여러 편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58) 그는 한스 토마 Hans Thoma(1839- 1924) 등 일부 화가의 작품들은 망명지 미국과 유럽 귀환 후 머물렀던 스 위스 저택에까지 옮겨 다니면서까지 평생 소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만이 여기서 니체의 ‘청각형 인간’ 개념을 차용하여 자신의 정체 성을 음악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신의 예술에서 근원적인 토대가 음 악에 있으며 시각예술은 음악과는 달리 자신의 예술, 곧 문학 창작에 있어 결정적인 영감을 제공하거나 작품 구성의 근간이 되지 못함을 강조하기 위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니체의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시각 의 세계를 배제하는 그의 이러한 부정적 시각예술관의 근원이 니체에게 있
57) 「Maler und Dichter」(1913) GW XI 740.
58) Katrin Bedenig Stein 2001. 참고.
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청각형 인간으로서 토마스 만은 자신의 예 술의 근원으로서 음악, 그 중에서도 자신에게 결정적인 때에 기본적인 예술 개념을 형성시켜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그너 음악이었음을 분명히 한 다. 그는 이어서 바그너의 음악을 니체의 비판과 함께 수용했다고 하면서 바그너와 니체가 사실상 청각형 인간으로서 자신의 예술관 형성에 가장 결 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임을 명확히 한다.
b. 토마스 만과 조각
시각예술에서 나의 관심은 본래 조각에 비중을 두고 있는데, 조각은 거의 전적 으로 사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동물을 제외하고는 저는 애 석하게도 자연에 대한 미적 감각을 거의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각에 대 해서는 저는 근대적입니다: 저는 로댕과 마이욜, 민네와 바를라흐가 말한 것을 상당히 이해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In der bildenden Kunst galt mein Interesse von jeher vorwiegend der Bildhauerei, wohl weil sie sich fast ausschließlich mit dem Menschen beschäftigt,- denn vom Menschen und Tiere abgesehen, besitze ich zu meinem Kummer nur wenig Natursinn. Der plastischen Kunst gegenüber bin ich modern: ich glaube manches von dem zu verstehen, was Rodin und Maillol, Minne und Barlach gesagt haben.59)
토마스 만은 시각예술에서 그래도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로는 회화보다 조각을 꼽고 있다. 조각은 거의 전적으로 인간을 다룬다는 이유에서이다.
위에서 그가 인간과 동물을 제외하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거의 없다고 말 한 것으로 볼 때 조각에 대해 가졌던 그의 관심은 미적인 측면보다는 조각 이 다루고 있는 인간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토마스 만은 시각 예술과 청각 예술에 대한 차별적 가치를 부여 한 것은 물론이고 시각예술 중에서도 조각과 회화에 차별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으며 그에게서 이들 장르들이 갖는 중요도의 순서는 그의 부인 카챠를
59) 「Maler und Dichter」(1913) GW XI 740.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회화와는 그는 그다지 활발한 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엇 이 좋은 그림인지는 금방 알아보고, 갤러리도 즐겨서 방문하곤 했으나, 회화는 그에게 겨우 세 번째 자리일 뿐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조각이고 넘버원은 물론 음악이었지요.
Zur Malerei hatte er kein sehr lebhaftes Verhältnis. Er merkte schon, was ein gutes Bild war, und besuchte auch gern eine Galerie, aber die Malerei kam doch erst an dritter Stelle. Nummer zwei war die Skulptur, Nummer eins die Musik.60)
토마스 만이 회화보다는 조각을 높이 산 것은 이 장르가 살아있는 대상을 다루어서 자연 풍경보다는 더 생생한 감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었 다. 사실 조각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움직임, 내면적 감정의 순간을 극적으 로 잡아내어 외면으로 드러내는 장르로, 토마스 만은 조각의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창작방법에서 인간을 시각적으로 파악하여 언어로 형상화하는 자 신의 분야와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보인다.
토마스 만의 조각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가 베 니스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1912)에서 주인공 작가 아셴바흐 의 창작과정을 묘사하며 “언어의 대리석 덩어리로부터 정신 속에서 보았던 늘씬한 형식을 해방시켰다 er befreite aus der Marmormasse der Sprache die schlanke Form, die er im Geist geschaut”61)고 하는 것은 작가로서 조각에 가졌던 그의 유대감을 반영하고 있는 증거라고 하겠 다. 그는 또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매혹시킨 미소년 타치오 Tazio를 “신 같은 조각상 dies göttliche(s) Bildwerk”으로 부르기도 한다. 율법 Das Gesetz(1943)에서는 주인공 모세가 예언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무형의 인간성 formloses Menschentum”62)을 다루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형
60) Katja Mann 2004. S. 57.
61) Der Tod in Venedig(1912) GW VIII 490.
62) Das Gesetz(1945) GW VIII 808, 810, 829.
체 없는 덩어리 ungestalter Block”를 가공하는 석공의 과업에 비유하기 도 한다. 모세는 조각가처럼 율법을 석판에 새기고 백성들에게 말한다.
그는 쓰고, 말하려고 했다: 그는 갈라진 돌판을 쪼고 갈고 다듬었 다...
Und er schrieb, will sagen: er stichelte, meißelte und spachtelte in den splittrigen Stein der Tafeln [...].63)
조각에 대한 그의 관심을 반영하듯 위에 언급된 조각에 대한 토마스 만의 취향은 당대의 흐름에서 전혀 뒤처지지 않고 동시대의 경향과 함께 하는 것 을 볼 수 있다. 토마스 만이 위에서 언급한 조각가, 아리스티드 마이욜 Aristide Maillol(1861-1944), 게오르게 민네 George Minne (1866- 1941), 에른스트 바를라흐 Ernst Barlach(1870-1938), 프랑수아 오귀 스트 르네 로댕 François-Auguste-René Rodin(1840-1917) 중에서 한 세대 전의 인물 로댕을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토마스 만과 동시대에 활동했 던 예술가들이며 로댕을 포함한 이 조각가들은 미술 아카데미의 관습적, 고 전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인간의 깊은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는 낭만적인 작품을 창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근대 조각의 최신 경향을 선호한 토마스 만의 취향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전위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각에 대한 이러한 토마스 만의 취향은 미적으로 전위적인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감정적이고 인 간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이 시대 조각가들의 경향에서 인간의 외모와 인상을 통해 내면을 파악해 내는 작가로서 자신의 창작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보인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들의 시각예술적인 조형성보다 작품이 담지하고 있는 내용에 더 관심이 있었으 며 자신의 문학 창작에 필요한 인간 묘사에 도움이 되고 이들로부터 무엇 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로서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3) Ebd. S. 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