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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초기작품과 시각예술

토마스 만이 초기 작품에서 시각예술을 다루는 양상을 살펴보면 그가 작 품 속에서 단순히 대상의 외양 묘사에 그치지 않고 기법과 양식, 작가와 작 품뿐만 아니라 특정 사조와 이에 내포되어 있는 철학적인 문제에 이르기까 지 다양한 측면에서 시각예술의 세계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그 의미를 주 제와 긴밀히 연결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시기까지 쓰여진 유일한 장편 부덴브로크 일가는 일반적으로 만의 대표적인 음악적 작품으로 꼽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간과 이 공간 속 에 들어 있는 시각예술의 모티브들 또한 음악만큼이나 섬세하고 의미심장하 게 작품 안에 잘 짜여 들어가 있어 시각예술이 주제의 전개에 중요한 기여 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은 여기서 구체적인 대상의 묘사뿐만 아 니라 특정 회화에 사용된 기법의 의미까지도 작품의 주제와 긴밀히 연결시 키면서 시각예술적인 대상들을 작품의 주요한 라이트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 다. 이를 통해 볼 때 시각예술에 대한 토마스 만의 부정적인 입장 표명과는 달리 그가 이 예술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창작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사 실을 알 수 있다.

특히 글라디우스 데이(1902)는 구체적인 예술 작품, ‘외설스러운 성모 자상 사진’이 이야기 전개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다는 점, 곧 시각예술작품 자체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로 음악이 구조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과 달리 눈에 띄는 작품이다. 여기서는 특히 세기 말 시각예술이 성행했던 뮌헨에서 전개되었던 여러 시각예술 사 조 가운데 15세기 르네상스의 근대적 모방현상, ‘르네상치스무스’에 대한 비판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예술에 있어서

‘정신과 삶’의 문제를 작가가 직접 시각예술의 경우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 서 토마스 만의 부정적인 시각예술관의 근거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만의 유일한 드라마로서 르네상스 예술을

‘정신과 삶의 대립’의 장에서 치열하고 다루고 있는 피오렌차(1905)와 내

용상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 작가가 초기에 시각예술을 통해서 ‘정신과 삶’의 대립 문제를 다룰 때 형식상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했음을 보여준다.

힘겨운 시간(1905)은 토마스 만이 자신의 창작 세계와 시각의 세계가 갖는 관계를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기 작가의 정신세계에서 이 영역이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 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다른 인물의 등장 없이 창작의 고뇌를 토로하는 주 인공의 내적 독백 형식 안에 대부분의 내용이 추상적이고 미학적인 사유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흥미와 긴장감이 떨어지는 까닭 에 그 동안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만은 이 작품을 통해 초기 작가로서 자신의 창 작이 나아갈 방향을 선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의 정신세계와 전체 작품 해 석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만은 이 작품에서 문학 창작에 있어서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실러에 기대어 정당화함으로써 그의 시각예 술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독일 이상주의 전통에 근거한 의도적인 배제였 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5.1.  부덴브로크 일가  : 몰락과 죽음의 시각예술 모티브

19세기 말 뤼벡의 부유한 상인 가문의 4대에 걸친 몰락을 그리고 있는 토 마스 만의 첫 장편 부덴브로크 일가는 그의 대표적인 자전적 소설이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시민 가문의 몰락은 예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 다. 즉, 왕성한 생명력이 넘쳐흐르던 가문의 생물학적인 몰락은 정신적인 상 승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예술, 구체적으로는 바그너 음악은 여 기서 몰락과 상승의 흐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음악에 의해 몰락의 길을 가기 전 본래 부덴브로크 가문은 구체적이며 조형적인 것을 좋아했고 따라 서 비음악적인 세계였다.310) 그러나 3대째에 이르러 토마스 부덴브로크 대 표의 부인 게르다 Gerda를 통해 가문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음악은 부덴브 310) 황현수: 토마스 만의 문학과 사상. 세종출판사 1996. 44 쪽.

로크 가문을 건강한 시민적 삶의 세계로부터 몰락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 을 한다. 이러한 음악의 역할은 바그너 음악에 경도되어 시민적 삶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제 4대의 한노 Hanno에 의해 절정에 도달한다.

부덴브로크 일가는 주제뿐만 아니라 기법, 구조상으로도 바그너 음악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작품에 들어 있는 음악의 의미를 분석한 켄 모울덴 Ken Moulden은 작품의 창작에 미친 바그너의 영향력에 대해 토마스 만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언급한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첫 번째 대규모 “오케스트라 총보 Partituren”

(BeU 319)인부덴브로크 일가에서 바그너의 “모티브기법과 심포니적 인 변증법”(Üms 65)영향 아래, 음악적인 요소들이 양식구성상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II장의 B와 D), 음악 자체가 제 1 주제가 되는 4 악 장으로 이루어진 몰락의 심포니를 썼다:

InBuddenbrooksals der ersten seiner großen »Partituren«

(BeU 319) schrieb Thomas Mann unter dem Einfluß der

»Motivtechnik und symphonischen Dialektik«(Üms 65) Wagners eine Symphonie des Verfalls in vier Sätzen, in der nicht nur die musikalischen Elemente stilbildend wirken(vgl.

Kapitel II, B und D), sondern auch die Musik selbst zu einem Hauptthema wird:311)

이와 같이 음악이 작품의 내용, 구조적 측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함에 따 라 부덴브로크 일가는 토마스 만의 작품 중에서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음 악적인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음악 외의 다른 영역은 작품 해석과 문헌 연구에서 음악만큼은 중요치 않은 대상으로서 특별한 주목받지 못해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부덴브로크 일가에서 시각 예술의 역할을 분석하고 있는 게로 폰 빌퍼르트 Gero von Wilpert이다.

그는 “토마스 만의 창작세계에서는 전적으로 음악이 전면에 부각되어 다른 예술들을 대표하고 있는 반면, 시각예술과 작품의 주제는 ‘불분명한 관계 unartikuliertes Verhältnis’로 간주되며 지금껏 문헌 연구에서 별로 주목

311) Ken Moulden: Die Musik. In: Ken Moulden/Gero von Wilpert(hrsg.):

Buddenbrooks-Handbuch. Stuttgart 1988. 305-318. S. 305.

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312) 그러나 부덴브로크 일가에 들어 있는 음악 의 영역 외에도 가문 구성원들의 신앙 세계, 문학 혹은 시각예술에 대한 묘 사에 나타난 모티브들을 보면 이들이 음악만큼이나 섬세하고 의미심장하게 작품 안에 잘 짜여 들어가 있어 전체 장편의 라이트모티브로서 중요한 역할 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4대에 결친 가문의 몰락과 더불어 그들의 미적 취향은 선대에서는 시민으로서 가문의 삶을 미화시키고 고양하는 역할 을 했던 것으로부터 후대로 가면서 점점 직접적으로 개인적인 열망과 목표 에 부응하게 되는 것을 시각예술적인 대상들의 묘사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 다.313)

‘몰락과 죽음’의 데카당스 현상 그 자체로서 바그너 음악이 서사를 표면적 으로 주도해 나가고 있다면 이 현상의 근거로서 쇼펜하우어 철학은 작품에 관념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경험적 현상의 세계는 단순한 표상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세계의 ‘맹목적인 의지’를 본질적인 것 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현상의 세계는 무기적 자연에서 동식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러한 의지의 개체화, 개별화의 제 단계에 불과하며 개체 의 몰락과 소멸은 세계 의지의 실현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314) 개체가 고 통스러운 생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예술적 관조에 의해 세계를 망각하는 것이었다. 이 때 예술은 쇼펜하우어에게는 ‘의지 그 자체’인 음악 만을 의미했으며 건축과 회화, 시는 진정한 예술이 아닌 단지 ‘그림자’에 불 과한 것이었다.315) 이와 같은 맥락에서부덴브로크 일가에 복제된 시각예 술품, 동물 박제 등의 모티브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쇼펜하우어가 의 미하는 허상으로서의 현상세계를 상징하는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312) Gero von Wilpert: Die bildenden Künste. In: Ken Moulden/Gero von Wilpert(hrsg.): Buddenbrooks-Handbuch. Stuttgart 1988. 259-267.

S. 259..

313) Ebd. S. 266f.

314) 임석진(편): 철학사전. 중원문화 1987. 381 쪽 참고.

315) 공병혜: 쇼펜하우어의 미학사상. In: 미학대계간행회(편): 미학의 역사. 미학대계 제1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7. 349-365. 359 쪽 참고.

개체의 소멸을 뜻하는 죽음의 모티브는 작품 속에서 특정 시각예술작품의 모티브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토르발트센 Bertel Thorvaldsen (1770-1844)의 ‘예수상’은 죽음을 상징하는 직접적인 모티브로서 여러 번 등장한다.

그러나 시각예술이 이 작품 속에서 주제 자체가 되기도 하는 음악처럼 표 면적으로 드러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작품의 시각예술들은 서사의 배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시각예술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이들이 19 세기 시민계급의 예술적 취향에 전형적으로 부합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의 작품 속 시각예술에 대해 빌퍼르트는 “부덴브 로크 일가에서 시각예술은 음악이 이 소설 속에서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징후로서의 경향을 입증한다 die Kunstwerke der Buddenbrooks [...]

Tendenz belegen, die [...] symptomatisch sind für die Rolle, die die Musik in diesem Roman spielt”고 말한다.316) 가문의 구성원들은 음악을 통해 점차 예술로 경도되어 공적 삶을 포기하고 개인의 미적 세계에 빠져 들며 이 과정에서 시각예술은 몰락과 죽음에 이르는 데카당스화 경향 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징후로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건전한 시민적 취향 이 반영된 초기 멩슈트라세의 단정하고 실용적인 저택의 공간 양식은 제 3 대 토마스 부덴브로크의 피셔그루베 새 저택에 이르면 집 주인 부부의 개인 적 취향이 반영되어 있는 과도하게 심미화된 건축양식으로 변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이 단락에서는 부덴브로크 일가에 들어 있는 시각 예술적인 요소들이 ‘몰락과 죽음’의 징후를 나타내는 라이트 모티브로 사용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시각예술이 작품 전체 주제와 갖는 관련성을 입 증해 보고자 한다. 특히 가문의 몰락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몰락 의 징후로서 주거 공간의 변화’, 쇼펜하우어적인 실제와 허구사이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실재의 그림자로서 시각예술’, 구성원들의 죽음을 직 316) Gero von Wilpert 1988. S. 267.